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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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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SF

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1.05.26 19:02
최근연재일 :
2021.06.01 17:59
연재수 :
7 회
조회수 :
219
추천수 :
6
글자수 :
30,646

작성
21.05.2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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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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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4쪽

나는 병신이다

DUMMY

나는 병신이다.


결투 약속이 잡혔답시고 폭우가 오는 날에 배를 타고 나가다니,


그 때문에 바다로 흘러 들어가, 3일간 아무것도 못 먹은 채 지평선을 떠다니는 곤욕을 맛보아야만 했다.


순전히 운 덕택이었다. 죽어도 시원찮을만큼 바보 같았던 내가 낮선 땅에 산 채로 이르게 된 것은.


그리고 물에 젖은 채 해변 위에서 퍼져있던 나를, 어떤 소녀가 구해주고 밥과 잠자리를 내어준 것도······.


······.


"······나!"


찰싹,


"······일어나!"


찰싹, 찰싹.


"일어나 새끼야!"


눈이 번뜩 뜨였다. 아는 천장이다. 바로 어젯밤 소녀의 배려로 묵게 된 그 집의 천장.


소녀의 이름이 예지芮知였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시야에 있는 것은 모르는 아저씨와 아줌마.


두 사람은 내게 성을 내고 있고, 그 뒤에서 날 구해준 예지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연신 미안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너 외적이지? 내 딸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보아하니 그는 예지의 아버지인 듯했다.


그는 내 멱살을 쥐고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깨어나자마자 이런 꼴이라니. 팔자 참 사납군.


그것보다 외적이라니, 무슨 소리야.


나는 뭐라도 대꾸하려 했는데, 예지 아버지가 먼저 침을 튀기며 말했다.


"네놈의 그 옷! 그 파란 천쪼가리는 대체 뭐냐! 우리나라에서는 안 입는 옷이라고."


그리고 그는 벽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검은 검집에 꽂힌 검 한 자루가 세워져 있었다.


"저 도검, 저것도 네 것이지? 이 나라에선 도검 같은 건 금지되어 있다. 그러니까 너는 외적이야!"


도검, 분명 그랬다. 저 도검은 나의 물건이다.


나는 3일 전, 생사결의 약조가 잡혀 근처의 무인도로 가려 했다.


그런데 그 날은 폭풍우가 내리는 날이었고, 도저히 배를 띄울 수 없는 날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대방과의 약조를 지키기 위해 나룻배를 타고 나섰다.


어떻게든 될 거라는 젊은 날의 치기에 그런 짓을 한 것이었지만, 어떻게 된 것은 내 머리였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왜 바람 부는 날에 배 타지 말라고 어른들이 누누히 말했는지 몸을 빌어서야 알게 된 것이었다.


그런 상념에 빠져있던 와중, 집 밖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수금! 수금이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수금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번달 수금인가. 이봐, 내 책상에 돈 봉투 놔뒀으니까 갖다 줘라."


손짓으로 예지의 어머니를 재촉하는 아버지. 그 말에 어머니가 알았다 하고는 방에서 빠져나가려 하는데, 그녀는 우뚝 멈춰서서는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 직후 그녀가 내뱉은 말은 충격적이었다.


"여보, 우리 돈 대신 외적을 갖다 바치는 건 어떨까요? 이번 달 수금은 물론 앞으로도 몇 개월은 면제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오, 괜찮은 생각인데."


두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저들끼리 지껄이더니,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선 밖으로 끌고 나가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심히 당황스러웠다.


"여보쇼."


내가 잠긴 목소리로 외쳤지만 그들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예지는 방 안에 남아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여긴 2층이었으며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밖으로 나가니 막 동이 튼 아침이었고, 마을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광장에 있는 한 거대한 바구니에 돈 봉투를 각자 하나씩 던져넣고 있었다.


기묘하게도 그들 전원이 활동하기 좋아보이는 회색의 옷을 위아래로 입고 있었다.


한편 바구니의 뒤에는 수금원으로 보이는 소녀가 서있었다.


그녀는 검고 단정한 차림의 옷을 입고 있었으며, 머리에도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그녀가 입은 옷의 이름이 양복이며, 모자는 중절모라 불린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머리칼은 노란 단발이라, 야밤의 보름달처럼 눈에 띄었다.


그런 그녀의 양옆에는 온몸에 갑옷을 두르고 있는 깡통 같은 거한 두 사람.


그리고 십자가에 묶여 있는 한 젊은 사내.


수금원 소녀가 역정내며 말했다.


"우리는 너희들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해 보호비를 받는 것일 뿐이다! 그러한 의도도 모르고 돈을 안 내겠다고 버티는 이기적인 녀석은 이렇게 되는 거다!"


수금원은 손에 채찍을 들고 있었는데, 그녀가 그것을 휘둘러 십자가에 묶인 청년을 한 대 쳤다.


청년의 비명이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고, 주민들은 더욱 겁에 질려 부리나케 돈 봉투를 던져넣고 도망치듯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예지 아버지는 나를 수금원의 앞으로 끌고가서는 그들에게 외적을 잡아왔노라고 고했다.


그러자 나를 바라보는 깡통 둘과 수금원.


아버지는 외적을 잡아왔으니 자기 집 수금은 제하여 달라고 부탁했다. 그에 수금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하는 듯했는데,


"이 외적을 어떻게 잡게 된 거지?"


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실실 웃으면서 답하길,


"하이고~ 제가 어제 바다를 보면서 담배를 피려고 해변에 나갔는데, 이녀석이 돗단배에 탄 채로 떠밀려 와있는걸 발견했지 뭡니까."


그리고는 내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아亞나라에선 볼 수 없는 이 파란 천쪼가리, 분명 외적의 표식입니다. 이걸 보고 제가 외적이라 판단하여 잡아서 저희 집에 가둬 놓은 것입니다!"


그 말에 수금원이 또 고개를 끄덕이는데, 나는 아저씨가 이 이상 제멋대로 지껄여 대는 걸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3일간 힘들게 표류하다 이런 정체도 모르는 땅에 오게 된 건데, 이 고생을 하고 받는 게 이런 대접이라니 견딜 수가 없었다.


외적이라는 게 정확히 뭔진 모르겠지만, 나는 괘씸한 마음에 입을 열었다.


"내가 잡힌 건 어젯밤의 일이요. 아니, 잡힌 게 아니라 구해진 거지. 나는 이 사람들 집에 묵으면서 밥을 얻어먹고 잠자리도 얻었소. 밥도 못 먹고 바다를 며칠 동안 떠돌아서 아사할 뻔했는데, 그걸 이 사람들이 구해준 거라고."


그 말에 수금원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뭐라고!" 라며 버럭 외쳤고, 예지 아버지는 내 돌발 행동에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무, 무, 무슨 소리야! 개소리 하지 마라! 내가 언제 먹여주고 재워줬다는 거냐!"


그 말에 나는 대답 대신, 수금원을 향해 꺼억~ 하고 트림을 했다.


"흐흐, 냄새가 구수하지? 이 사람들 집밥이 맛있더라고."


그러자 수금원의 얼굴이 붉어지며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너, 너희들 전부 구속이다!"


수금원의 앙칼진 고함이 온 마을에 울려 퍼지고, 그 직후 깡통 둘이서 우리를 붙잡으려 하는데,


"잠깐 기다리쇼!"


내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그리고 관리가 탐문을 하듯 당당하면서도 진지하게 물었다.


"당신들은 외적인가 뭔가를 막기 위해서 이곳에 있는 건가?"


그러자 수금원이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나?"

"그런 건 네 알 바 아니다."

"아니, 그냥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나는 십자가에 묶인 채 신음하는 청년을 가리켰다.


"이 청년도 외적이랑 관계있는 거냐?"


그러자 수금원이 대뜸 성질을 냈다.


"수금을 방해하는 건 외적이나 다름없는 행동이다!"

"그럼, 그 외적이라는 놈들이 최근에 여기 쳐들어온 적이 있었나?"


그러자 흐름이 끊겨 일순간 우물쭈물 거리는 수금원. 그녀는 그렇다며 다시 성질을 냈다.


"최근에 있었다!"


그 말에 나는 예지 아버지를 돌아보며 물었다.


"최근 언제."


내 물음에 예지 아버지는 심히 당황하며 대답을 못하는데, 수금원이 두 달 전이다! 하고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그, 그래! 두 달 전이었어!"


그러자 같이 맞장구를 쳐주는 예지 아버지.


당연한 얘기지만 미심쩍기 짝이 없는 반응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을 담아 조심스럽게, 하지만 무게감을 잃지 않도록 낮은 목소리로 예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저씨, 사실대로 대답해주쇼. 사실 외적은 나 같은 놈들이 아니라, 보호를 명목으로 이곳 주민들을 패고 있는 이놈들이 아니오?"


그러자 얼굴을 붉히며 또 당황하는 예지 아버지.


"개, 개, 개소리 하지 마라! 이, 이놈을 당장 자, 잡아가 주십시오!"


그가 깡통 거한의 쇠 팔뚝에 매달려 애원하는데,


"똑바로 대답해!"


내가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버럭 외쳤다. 수금원이 히익 하며 높은 비명을 지르고, 나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너는 아사할 뻔한 나를 구해주었다. 나는 그 보답을 하고 싶을 뿐이야. 원한다면 이놈들을 몰아내주겠다. 대답해라!"


내가 바라보는 것은 돈 봉투가 담긴 바구니였지만, 내 외침은 어제 묵었던 2층 집을 향했다.


어제 나를 구해준 은인, 예지가 불안한 표정으로 2층의 창가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던 것이었다.


"무, 무슨!"


예지 아버지가 말을 더듬으며 외치고, 수금원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오호라, 이놈을 구해준 게 저 애인가 보군."


그녀는 예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분명 너희 집 딸이었지. 당장 데려와라."

"하이고! 제발 봐주십시오! 저희 딸이 미쳤······ 아니, 이 자가 저희 딸을 혀, 현혹······."

"닥쳐라!"


수금원은 여리여리한 겉모습과는 달리, 꽤나 호기로운 주먹으로 예지 아버지의 얼굴을 후려쳐서 쓰러뜨렸다.


"안 데려오면 너희들 먼저 십자가에 매달아버리겠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살벌한 발언을 하는 그녀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벌벌 떨 수 밖에 없는 예지 아버지. 그는 필시 한 가족의 기둥일 텐데, 지금 그의 모습은 태풍 앞의 벼 한 줄기처럼 연약하기 그지없었다.


아비 된 자의 비참한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던 그때,


"도와주세요."


예지가 외쳤다.


"그 사람들은 두 달 전에 이 마을에 쳐들어 왔어요. 그리고 보호비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착취했구요. 외적 같은 건 하나도 안 왔어요! 온 건 그 사람들 뿐이에요. 그 사람들이 바로 외적이라구요!"


그 말에 당연히 수금원은 노발대발 하며, 예지 아버지는 안절부절 못 하며 소리쳤다.


온통 괴성으로 가득 차서 말 따위는 통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런 때에 내가 택한 행동은 더욱 크게 소리지르는 것이 아닌, 그저 예지에게 검지를 까딱여 보이는 것이었다.


예지는 나를 우두커니 바라보더니, 이내 내 의중을 깨닫고 방 안으로 급하게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더니 창 밖으로 무언가를 던졌다.


검은 막대의 형태, 그것은 나의 도검이었다.


나는 높이 뛰어올라 검집을 낚아채고 착지했다.


"도, 도검! 이놈! 외적의 표식을 들었다!"


눈을 희번득 하게 뜨고서 소리치는 수금원.


"네놈, 정말로 외적이었구나."


당황했다는 점에선 아까와 같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살기가 어려 있었다.


수금원은 나를 당장 처분하라고 소리치고, 깡통 괴한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하루를 묵게 해준 고마운 집을 등 뒤로 하고서 그들과 대치했다. 두 깡통은 손등에서 빨간색으로 빛나는 송곳 같은 것을 뽑아냈다.


검처럼 보였지만 생전 처음 보는 종류였다.


이녀석들, 키도 나보다 머리 두어 개는 더 크고, 저런 무거워 보이는 갑옷도 온몸에 두르고 있는데, 정녕 나랑 같은 인간인 건가?


그리 생각하며 쉬이 나서지 못하는 나의 등을, 예지의 떨리는 목소리가 떠밀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꼭 구해주셔야 해요. 못 구해주시면 저승에서 원망할 거에요."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소리까지 듣고서 주저할 순 없었다.


누구신지도 모르는 나를 구해준 은인이다. 마땅히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맞겠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네?"


나는 문득 걱정되는 것이 있어 물었다. 결코 내 신변이 아닌 그녀에 대한 걱정이었다.


"나는 이 땅의 이름을 모른다.

외적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며, 저 일당이 정말로 나쁜 놈들인지도 잘 모른다.

저들을 쓰러뜨리면 더욱 흉악한 외적들이 쳐들어와 지금 이상으로 괴로워질지도 모른다."


나는 왼손으로 검집을, 오른손 역수로 손잡이를 잡았다.


사지死地로 스스로를 내몰기 직전, 벼랑 끝에 서서 그녀에게 물었다.


"괜찮겠나? 네 미래가 내게 베여도."


기다릴 것도 없이 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예지에게서 이제껏 들은 것 중, 가장 맹렬한 외침으로 말이다.


"미래 따윈 상관 없어요! 저는 지금 당장! 현재를 똑바로 살고 싶어요!"


최후의 최후에 제대로 받았다.


제한된 환경, 제한된 육체, 그럼에도 무한의 용기를 갖고 있군.


두 깡통이 달려들며 적광赤光의 검을 내리쳤다.


"무한인無限刃 1식, 무한속無限速."


검을 뽑으며 베었다.


발도와 참격, 두 가지가 동시에 행해졌다.


검집에서 타점까지 0초, 무한의 속력을 가진 무한속의 검격.


두 갈래의 멈춘 적광 속에서 수십 갈래의 청광靑光이 어지러이 빗발친다.


깡통들의 잘게 썰린 덩어리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내가 납도를 함과 동시에 쏟아져 내렸다.


기묘하게도 피는 나지 않았으며, 대신 푸른 색의 찌릿찌릿한 실 같은 것들이 튀어나올 뿐이었다.


그것이 '전기電氣'라는 것이며, 내가 우연히 밟은 이 땅이 전기에 의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세상임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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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자유의 증명 21.06.01 19 0 7쪽
6 미쳐버린 환대 21.05.31 21 0 11쪽
5 여정의 시작 21.05.30 20 0 7쪽
4 탈출 21.05.29 24 0 9쪽
3 자유의 관철자 21.05.28 24 1 9쪽
2 어린 날의 과오 21.05.27 38 2 12쪽
» 나는 병신이다 21.05.26 73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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