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 비평요청덕에 부족함이 너무 큼을 깨닫고 이번엔 세계관을 사소한 것까지 차분하게 설정해보려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는 문제를 발견했죠.
소설 내의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 판타지세계관에서 태초부터 그 세계와 함께하며 수호하는 존재가 있고, 소설의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해봅시다. 가령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드래곤이라 표현해도 괜찮구요.
여러가지 경우로 나눠봤지만, 크게 보면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세계를 수호해온 존재는 하나로 고정합니다. 신은 유일신일수도, 여러 신들이 공존할 수도 있습니다.
1. 신은 존재하지 않지만, 대신 태초부터 함께해온 존재가 있다. 여기서 이 존재는 전지전능하지는 않다.
2. 신은 진짜 존재한다. 다만 한 번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세계를 수호해온 존재는 위와 동일.
3. 신은 진짜로 존재한다. 세계를 수호해온 존재는 사실 신의 대리자이며 기타 사항은 위와 동일. 하지만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4. 신은 진짜로 존재한다. 다만 한 번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세계를 수호해온 존재는 사실 신의 대리자이며 기타 사항은 위와 동일. 사람들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큰 차이점이 없는 항목도 있습니다만, 여기서 신의 존재 여부에 따라 ‘신성력’의 사용 여부, 신의 대리자인가 아닌가로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기에 일단 나눠봅니다.
신의 존재 여부가 불확실한 경우(1,2,3),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과연 이 절대자가 수호하는 땅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신앙이 필요할까? 하는 의문입니다.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해왔고 여전히 그들을 수호하는 존재입니다. 불의의 재앙을 막아주기도 하고, 그들끼리의 싸움을 방관할 때도 있습니다.
어찌보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절대자’인 셈이죠.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는 절대자로 말이죠. 이 존재를 섬기는 종교야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에게 이 절대자외의 다른 ‘믿음’이 필요할까요? 이 존재는 진짜 신이 아니기에 전지전능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품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신’과 같지 않을까요? 그들의 곁을 보살피는 절대자가 지금도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또 다른 신앙이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되나 생각하니 머리가 아픕니다.
이걸 제대로 매듭짓지 않고 넘어가려니 웃기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더군요. 예를 들어 나라를 세울 때 ‘절대자’를 섬기는 종교를 국교로 한다고 해봅시다. 수많은 나라들이 똑같은 존재를 섬기는 종교를 국교로 합니다만, 아무리 똑같은 존재라도 세세한 이념들엔 차이가 있겠죠. 그들끼리 전쟁을 버릴 땐 어쩌면 ‘OO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무슨 소리! OO님은 우리의 수호신이다!’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OO님의 말씀은 그게 아니다, 이단자!’라고 서로 외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죠.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면 말입니다.
또 전지전능할 순 없기에 사람들이 ‘절대자’라 부르는 존재가 미처 도와주지 못할 정도로 매우 멀리 떨어진 버려진 땅이 존재한다는 상황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 곳이라면 얼마든지 자신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새로운 ‘믿음’을 가질 수 있죠. 머리를 아프게 하는 곳은 어디까지나 ‘절대자’의 보호아래에 있는 땅이구요.
이번엔 신의 존재가 확실하게 알려진 경우(4)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머리가 아파지는게, 설령 진짜 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그들을 지키고 보살핀 건 어찌됐든 신의 대리자 역할을 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극소수라면 모를까 물리적으로 어마어마한 도움을 준 존재를 두고, 비록 존재여부가 확실한 신일지라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신을 섬기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고민해봤습니다. 종교인분들께 오해가 될까봐 말씀드립니다만, 어디까지나 소설 내에서 생각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아...막상 쓰고 다시 읽어보니 뭔 헛소리를 써놓은 건지 저도 이해가 안 가네요. 이부분은 너그럽게 넘어가주시길 바랍니다. 하하하.
이게 뭔소리야?, 하는 생각이 드셔도 대강이나마 제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전달되었겠죠? (아,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있을 치명적인 오류를 찾아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제 세계관 성립의 뼈가 되고 살이 될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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