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양판소를 이것저것 탐닉해 보았습니다.
여태까지 어니스트 헤밍웨이나 주제 사라마구나 그런 분들 소설만 접해보다 보니까 신세계더군요.
일단 이쁜 남주 여주 짝짝쿵 해피엔딩은 제껴놓겠습니다. 꼭 양판소가 아니더라도 저런 내용의 책들은 많으니까요. 그 중엔 명작도 수두룩하고.
양판소는 제 경험상, 독자에게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등장인물의 갈등이나 사상 같은 것은 자기들끼리 해결하고 마침표까지 확실히 찍습니다. (이런 부분만 들어가면 갑자기 등장인물들 대사가 늘어나면서 얘가 원래 이랬나? 하는 곳도 생기더랍니다.)
이 부분은 의외로 좋게 작용하는데, 그냥 읽으면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니까 지치지 않더라 이겁니다. 그냥 얘들이 그렇고 이렇구나, 복작복작 다음은 어떻게 될까? 하면 끝나더라고요.
그리고 양판소는 사건이 중심이 아니라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보다는 등장인물을 띄워주기 위해서 사건을 일으킨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양판소가 노리는 것은 철학이나 깨달음이 아닌 대리만족이니까요.
그냥 이쁘고 능력 좋은 애들이 어떤 일이든 헤쳐나가고, 노력으로 나 해결하고, 출생의 비밀이 있거나 하는 걸 보면서 환호하기만 하면 장땡이 되는 겁니다.
아이돌이나 일진들을 동경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죠.
저는 이 부분만 짚자면 양판소는 있어도 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물론 저런 대중성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벼룩 같은 글자들은 반대하지만요.
아마 우리가 독자들에게 저런 류의 소설을 보지 말라고 말하는 것보다, 우리들이 먼저 품격이 높은 글을 쓰기로 단합한다면, 고전물이 현대물이었던 때처럼 소설 신의 수준이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Commen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