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회귀의 사회적 정의
용례 : 영겁회귀.
역사의 기원이 반복해서 되돌아온다는 신화시대의 순환적 시간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니체에 의해 근대인들의 직선적, 진보적 시간관을 비판하고 허무주의를 정초하는 이론적 근거로 사용되었다. 기독교적 전통에 의하면 역사에는 처음과 끝에 의미와 목적이 있고, 그 의미와 목적의 실현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모든 삶의 원칙이었다. 삶의 목적은 미래(혹은 피안)에 있기 때문에 현재(혹은 현세)에 대해서는 금욕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헤겔과 마르크스 등을 거치면서 그와 같은 목적론적 역사관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그것이 광의의 진보주의를 뜻한다. 어제보다 내일이 더 중요하고 선하다고 믿는 진보주의는 모든 형태의 정권이 추진하는 개발주의, 근대화주의의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니체는 우리의 삶과 역사에는 헤겔이나 마르크스가 말하는 궁극적인 목표도 없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피안도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삶에는 어떤 목표도 의미도 주어져 있지 않으며, 목적도 의미도 없는 상태가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 삶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인간의 삶의 실상에는 허무주의가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약한 인간들은 허무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신이나 역사적 목표를 허구적으로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니체가 보기에 신이나 역사적 목표는 허무주의를 은폐하기 위해 약자들이 조작해낸 환상에 불과하다.
결국 영겁회귀의 사상은 연약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사상이라는 것이다. 니체에 의하면 허무주의를 긍정하는 인간, 영겁회귀의 상태를 적극적으로 인수하는 인간이 강한 인간이다. 그들은 피안과 미래를 믿지 않고 오직 현세와 현재를 탐닉한다. 니체는 영겁회귀의 사상을 통해서 천국의 경험을 피안으로 미루지 않고 현세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정신의 자유를 얻으려 한 것이다. 정신이 자유로운 자는, 만약 모든 행동을 하기 전에 그리고 행동을 한 이후에 "이 행동이 영원히 반복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환희에 차서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인간이다. 영겁회귀 사상을 통해서 니체의 허무주의는 자신을 위로하는 거짓된 이데올로기를 벗어버리고 자신의 생에 대한 조건 없는 긍정을 지향하게 되었다.(오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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