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 판타지는 좋게 말하면 오므라이스이고, 나쁘게 말하면 오뚜기 도마도 케찹으로 만든 깍두기(실존한 음식)입니다. 써내려가는 작가의 필력에 따라 진수성찬이 될 수도 있고 듣는 것만으로도 토악질이 치미는 음식쓰레기가 되기도 하지요. 조아라에서 일컫는 퓨전판타지는 뭔가 정의가 다른 듯도 싶습니다만 제 기준에서의 퓨전판타지는 무협+판타지를 결합한 일종의 환협지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현대 레이드물을 가지고 퓨전판타지라 하진 마세요. 어차피 이 서평은 제 기준에서 쓰인 거니까요.
디자이어의 식감은 잘 만든 오므라이스 위에 주방장의 비법이 가미된 소스가 뿌려진 요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퓨전 판타지라는 간판을 걸고 있지만 연재된 분량에서 무협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작가의 색채가 진하게 녹아들어있다는 소리죠. 읽다가 가끔은 로그아웃하는 장면이 나올 때 이게 게임판타지였던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말이죠.
작가분께서 의도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게임판타지라는 소재가 무협이라는 장벽을 완화해준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저 스킬이다. 그저 강해질 뿐이다. 무협에서 제법 어렵게 설명하는 초식과 경지는 레벨 업으로 통합되어 표현됩니다. 등평도수와 능공허도만 나와도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독자들에게도 숫자풀이로 간단하게 설명되지요. 정통 무협 독자들이야 길길이 날뛰며 침을 뱉겠지만 개인적으로 신선했습니다.
디자이어에서 의외였던 점은 간지폭풍의 악역과 인물들이었습니다. 다른 세계의 xx인 천마와 쌍괴, 츤데레 캐릭터인 흑설향과 페르시크는 개인적으로 의아한 인물들입니다. 사실 이런 인물들이 조아라 노블레스 시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막상 보고나니 그렇지가 않았거든요. 특히 중간부분에서 천마에게 패퇴하는 주인공을 보고 노블 아재들이 풀발기해 손가락질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부보다도 강하다!’는 말에 오히려 바지를 부여잡고 다음 편 다음 편! 을 외치는 광경은 소름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건 사실 어떻게 보면 필력의 승리죠. 주인공이 저 기고만장하고 끝없이 강한 놈을 때려잡아 짱짱쌔질 것을 기대하게 만드는 흡입력. 노블아재들의 갑질에서 필력이 승리한 몇 안 되는 사례로 들 수 있겠죠?
디자이어의 몇 안 되는 단점 중 거슬렸던 것은 베타버전의 초반부 노가다(?)였습니다. 저는 사실 게임 판타지를 싫어하는 독자 중 하나인데요. 이런 노가다 장면을 보면 가끔 작가가 쓸 내용이 없으니 분량을 채우려고 억지로 넣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디자이어의 베타가 끝난 후 문파전으로 진행양상이 흘러간 것이 정말 다행스러웠습니다. 오히려 이쪽이 게임 판타지가 아닌 퓨전 판타지에 어울리는 진행이기도 하고 말이죠.
이제 디자이어는 350화의 가까운 대장정 끝에 겨우 무림을 먹어치운 상태입니다. 언젠가 판타지와 초능력의 대륙을 먹어치우고 강림할 마왕과의 전투가 이어지겠죠. 무협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디자이어에 가미된 무협의 색채가 후반까지 빛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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