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설명해, 이 글은 자극적인 제목을 가진 홍보물입니다. 아는 닉, 아는 소설이지만 내키지 않았던 분들도 낚인 김에 한번쯤은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
언제부턴가, 누군가가, 판타지 소설에 '정통'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뜻을 보아하니 바른 계통. 정당한 혈통. 도대체 정통 판타지라는 게 뭡니까?
전세계의 사람들이 극찬하는 반지의 제왕은 정통 판타지입니까? 정말로 많은 소설들이 그곳에서 나왔나요?
하루 세편씩 반년동안 하이텔serial을 뜨겁게 달구던 타자의 '드래곤라자'는 정통 판타지입니까? 그것이 판타지의 뿌리이고, 또 돌아가야 할 곳인가요? 지향해야 할 목표이며, 지켜야 할 올바른 혈통입니까?
d&d룰북에 나오는 드래곤은 정통성을 가진 모양새입니까? 공후세작이나 왕국은 언젠가부터 판타지의 틀을 이루는 중요한 기초가 되었군요?
어스시의 마법사는, 불과 바람의 노래는, 다크엘프 트릴로지는 정통이라는 단어에 적합합니까? 혹시 당신이 생각하는 정통 판타지가 단지 '인정받거나 검증받은 수작 환상소설'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린 매일 비슷한 맛의 음식들 속에서 새로운 맛을 찾습니다. 하지만, 정말 새로운 맛을 가진 음식이 나오면 몇입 대지도 않고 '내 취향이 아니니 그만두겠어.'라고들 말하지요.
자, 들어보세요.
내가 생각하는 판타지는 '환상'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판타지 소설은 '환상 이야기'입니다. 내 환상, 내 이야기.
물론 그 근간根幹은 다른 이들의 환상을 통해 받은 영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명작 중 명작이라는 '드래곤 라자'도, 이제 첫 플레이를 시작한지 10년이 넘어가는 TRPG도 있습니다. 부모님 몰래 모뎀으로 연결하던 01410, 그 끝에 닿아있던 텍스트 머드 무한대전도 있고, 패미컴 알라딘 겜보이로 밤을 지새던 드퀘, 파판도 있고, 5.25인치 디스켓으로 친구집에서 빌려온 영웅전설이나 천사의제국도 있습니다. 영걸전도 있습니다. 밤마다 지옥같은 가위를 경험하게 해준 러브크래프트나, 내게 남자다움을 알려준 레이몬드 챈들러도 있습니다.
내 이야기의 근간根幹은, 이 '바람노래'의 뿌리는 그런 다른 이들의 환상 속에 있습니다. 그러니 내 소설은 잡탕이요, 내 소설은 혈통없는 똥개입니다. 정통없는 판타지입니다. 정통 판타지가 아닙니다.
독특한 설정만으로 당신을 부르지 않습니다.
남들과 다른 소설이라고 포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늘 같고, 반복되는, 서로를 끊임없이 복제하는 판타지 아닌 판타지들에 질렸다면 한 번쯤은 용기를 내주세요. 몇편 읽고 취향이 아니라 접지 마시고, '오냐, 어디 한 번 해보자.'라는 오기로 다음 글을 눌러주세요. 그렇게 계속 읽어주신다면 언젠가...
그 옛날,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RPG게임의 엔딩을 보기 위해 밤을 새고, 쉴 새 없는 다운으로 세이브데이타를 날려먹다 결국 엔딩에 닿고, 그 뻔한 이야기에 눈물 흘려본 경험이 있다면, 그런 고전 게임의 아련한 향수와 그 풍미가 이 빌어먹을 습작에서도 조금은 묻어나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참으로 뻔한 이야기, 뻔한 노래입니다.
소년이 소녀를 만나고,
용과 마법이 춤추고,
모험으로 세상을 구하는,
그런 뻔한 노래.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고,
희망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뻔한 노래.
그렇게 흘러가는 노래.
바람노래.
기어코 내 이야기가 끝날 때, 당신의 입에서 '바람노래'가 흘러나오게 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에 담을 것은 이 열정과 자신감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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