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작가 솔가람이 무협에 뱀파이어를 등장시킨 나름의 사정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쓴 하프픽션 스토리입니다.
※ 작가의 적당한 부풀리기가 있음을 사전에 미리 고지합니다. ※
전작 허허실실을 마감하고 차기작 소재를 구상한다는 핑계로 편안하게 낮잠을 자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불현듯 시커먼 뱀파이어 한 놈이 침을 질질 흘리며 다가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비록 꿈이었지만 이것이 가위구나 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습니다. 원고 마감에 쫓기다 보면 이런 현상은 자주 겪는 일이거든요.
어쨌든 가위 따위에, 그것도 서양 귀신에게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억지로 각성해서 소림사 사대금강과 백팔나한을 출두시켰습니다. 사대금강만 해도 과한 것 같았지만 확실하게 하기 위해 백팔나한을 출두시킨 것이죠. 한데, 이것들이 뱀파이어 한 놈에게 맥없이 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땡중 하나가 물리자 그 놈이 뱀파이어 편이 되어버리고, 그 두 놈이 한 놈씩을 물어버리니, 금세 적이 네 명으로 불어나더군요. 그렇게 제가 불러낸 사대금강과 백팔나한이 그놈 수하가 되어버린 건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작가가 이 정도에 물러설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즉시 전진칠자를 불러 북두칠성진을 펼쳐 임시로 방어케 하고 동사 황약사, 서독 구양봉, 남제 단지흥, 북개 홍칠공, 중신통을 시켜 배후를 치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흡혈귀로 변한 사대금강이 문제였습니다.
이 녀석들이 두 눈이 시뻘겋게 변해서는 항룡십팔장을 연속으로 펼쳐서 잠시 쉬어야만 했던 홍칠공 노사를 물어버린 겁니다. 뭐, 홍칠공 노사의 말로는 배가 고파서 잠시 주먹밥을 먹으려다가 당했다고 하더군요.
어쨌거나 가위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뱀파이어로 변한 홍칠공 노사까지 타구봉을 마구 휘두르며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라고 가만히 보고만 있었겠습니까?
저는 그동안 천년마교 묵향 교주님과 신선계에 있는 장삼봉 진인을 부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묵 교주님은 귀찮다고 아르티어스라는 아버지를 대신 데려가라고 하시고, 장삼봉 진인께서는 대뜸 조상의 기운이 끊겨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치성을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시간만 질질 끄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할 수 없이, 제일 만만한 삼룡이를 불렀습니다.
뭐, 삼룡이는 아시는 분만 아시는 인물이긴 합니다만(허허실실이라는 제 전작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심검을 뛰어넘은 놈이기에 제법 세답니다. 흠, 흠.).
어쨌거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정말이더군요.
이 녀석은 김 선생님 핏줄과는 다르게 제 한 몸 돌보지 않고 적지 한 가운데 뛰어들어 순식간에 뱀파이어들을 처리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드디어 뱀파이어 한 놈만 남은 순간이 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곧 가위가 풀리겠구나 싶었습니다. 뭐, 지 놈은 한 놈뿐이고 이쪽은 동사, 서독, 남제, 중신통, 전진칠자까지 남아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뿔싸!
삼룡이 놈이 싸우던 중간에 물렸던 모양입니다. 갑자기 그 놈 두 눈에 혈광이 줄기줄기 쏟아져 나오는가싶더니 옆에 있던 중신통을 물어버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놀라 당황한 순간, 나머지 김 선생님 핏줄이 삼룡이에게 당해서 죄다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삼룡이가 그러는 동안 드디어 그 녀석이 누워 꼼짝도 못하고 있는 제게 점점 다가오더군요.
뭐, 그래봤자 가위를 누르려는 거였죠. 게다가 저에게는 가위 인생 삼십 년 동안 쌓아온 내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니 마음대로 실컷 눌러라, 누르다 지치면 가겠지.' 라는 의연한 마음가짐으로 놈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꽤 오래 누르더군요. 다른 놈의 한 열 배 정도. 그렇다고 이놈 갈 시간이 영영 오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어느 순간, 그놈이 시간에 쫓기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저는 곧 가위가 풀리리라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 썩소를 날려줄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놈이 그것을 눈치 챘는지, 불쑥 제 귀에 대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내 얘기 차기작으로 안 쓰면 내일 또 온다."
그리곤 이놈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물론 그 순간 가위는 풀렸습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다른 공포가 엄습하더군요. 매일 찾아온다니?!
그 순간 이 녀석의 말이 출판사 마감 독촉전화보다 더 무서웠더랬습니다. 적어도 담당자 전화는 자는 동안은 전화 안 받을 수 있는데, 이놈은 그마저 제일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겠다고 하니 어떤 작가가 안 무섭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주저 없이 놈의 얘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에 그 녀석이 꿈에 나타나서 자기 얘기를 좋게 써주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협박도 종종 했었지요. 그래서 대협 자도 붙여주고 애써 달래고 있는 중입니다.
※ 포탈 준비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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