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최후의 홍보일 거 같습니다. 누구나 태어났으면 한번쯤은 이름을 불려봐야 하는 것이고, 이 작품도 마찬가지겠죠. 그리고 일생에 단 한 번이라는 말은......, 역시 누구에게나 좀 특별한 감수성을 선사하기 마련입니다.
해서 멋들어진 제목을 붙이려고 잠시 골몰했더랍니다. 그런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더군요. 카테고리 홍보에 [정연/현대물 : 진화의 씨앗]이라고 찍어놨으면 이미 알릴만한 정보는 다 알린 거 같고......, 그렇다면 차라리 웃는 얼굴이나 넣어볼까? 했지만 곧 생각을 바꿨습니다. 웃는 얼굴보단 우는 얼굴이 어울리는 인생이니까요. 역시 거짓말은 좋지 않아요. 후후....... ㅇㅅㅇ;;
잡설이 길었습니다. 이만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작품 진화의 씨앗은, 사실 딱히 어떤 재미를 주고자 시작했던 글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느 날 다큐멘터리 하나를 보다가 화두가 떠올라 그걸 표현하고 싶어서 한글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거거든요.
여러분은 진화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가끔 정말로 그게 궁금했습니다. 흔히들 진화를 가리켜 환경에 의한 적응의 소산물이라고 표현하고들 하는데.......그 주장에 입각해 대진화를 한번 살펴보지요. 아주 작은 단세포 생명체가 인간까지 진화하는 그 과정을 말입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세상에는 여전히 단세포 생명체가 가득 존재하거든요. 똑같이 진화를 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 때로는 진화를 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합니다. 어디까지나 진화론의 대진화를 사실로 입각하고 하는 추측이긴 합니다만, 결국 이러한 생명체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차이가 오늘날 세균으로서의 삶과 인간으로서의 삶을 갈랐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래서 그 차이가 무엇일까, 과연 어떤 차이가 있기에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타날까, 그걸 또 생각해 봤습니다.
일단 떠오르는 건 학자들의 말처럼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생물들의 모습이었지요.
그런데 이게 별로 재미가 없더군요. -_-;;
게다가 과연 정말로 그럴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어떤 생명체든 최우선 순위가 살아남는 것이기는 합니다. 죽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그거 정말로 대단한 거죠. 때로는 기적 같은 일도 일으키니까요.
그런데 좀 더 곰곰이 살펴보면, 역시 뭔가를 지나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뭐가 이상할까 잠시 생각해 보니, 이번에도 금세 답이 나오더군요.
그것은 변화의 의지, 그리고 노력이었습니다.
결국 어떤 생명체가 변화한 이유, 즉 다시 말해 진화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환경에 노출되어 죽기 싫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혹독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합당한 노력을 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일례로 똑같은 환경에 직면했다고 해도 어떤 생명체는 살아남지만 어떤 생명체는 죽습니다. 심지어 둘 모두 죽고 싶지 않는 건 똑같았을 텐데 말이죠. 이것은 곧 살아남은 생명체가 보여준 합당한 노력의 흔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한 그 합당한 노력이라는 것은, 바로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것입니다.
오늘이 힘들어 몸부림치는 것에 끝남이 아니라, 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꿈꾸는 것.
단순히 죽기 싫어서, [살아남기 위해]라는 명제에 구애받는 것이 아니라 꿈꾸고 노력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아 마침내 진화에 이른다는 생각을.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진화의 씨앗입니다.
진화의 씨앗은 의지를 품습니다. 변하고 싶은 의지, 나아지고 싶은 의지를.
가끔 웃기는 생각을 좀 해봅니다. 아직 모든 생물이 바다에서 살 무렵, 어떤 엉뚱한 녀석 하나가 육지 생활을 꿈꾸기 시작하는 상상을요. 물 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기도 하고, 뭐 먹을 거 없나 싶어서 찔끔찔끔 수상한 걸 주워 먹기도 하고. 그러다가 결국 양서류로 변해 슬슬 기어 다니는 상상을 말이지요.
물론 알려진 바에 의하면 진화는 그렇게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바이러스 진화설도 있습니다만 일단 예외로 두겠습니다.) 따라서 학자들은 진화를 1세대에 이루어지는 단순한 욕구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라, 꾸준히 어떤 환경에 노출되어 피치 못하도록 갖게 되는 특질 정도로 보는 거죠.
하지만 이때 진화의 씨앗이 개입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진화의 씨앗은 그 씨앗을 품은 생명체가 강하게 바라는 무언가로 형상을 바꿔 줍니다. 땅을 기던 생명체가 씨앗을 품고 하늘을 갈망하여 날아올랐고, 육지 생활이 물린 포유류가 씨앗을 품고 다시 생명의 고향 바다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꿈꾸는 것이 이루어진 거죠. 푸른 별 지구의 주민들에게 선물을 안겨준 겁니다.
여기 주인공 한산들바람이 있습니다. 가진 게 정말 없는 친구죠. 그나마 먹고 사는 문제에서 큰 걱정이 없다는 게 다행이긴 합니다만, 사람이라는 게 호구지책만 갖추어졌다고 행복할 수는 없는 법이죠. 단순히 생존하고 싶은 욕구가 진화로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친구는 가족도 없고, 추억도 없으며, 심지어 친구조차 별로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함께 해온 소꿉친구 두 사람이 있기는 합니다만, 최근에는 그 둘이 사귀고 있습니다. 염치없게 커플 사이에 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건 뭐 진짜 발붙일 곳이 없군요. ㅎ
그런 그에게, 그런 한산들바람에게 진화의 씨앗이 주어집니다.
그는 과연 무엇을 꿈꿀까요? 아니, 꿈꿀 수나 있을까요?
어떠리라 보십니까?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홍보 글은 아직 내용이 절반조차 완성되지 않은 시점에 쓰는 거라서.......만약 주인공이 작품 내내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기만 한다면, 어쩜 비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진화하지 못하고 도태된 생명체들처럼 말이죠.
하지만 전 주인공을 믿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에게 의지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대단하고 위대한 의지는 아닙니다. 지극히 소소하고, 우리 누구나가 갖고 있는 의지지요.
바로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 말입니다.
누구나가, 심지어 그것이 사람이 아닐지라도 현재가 과거보다 불행하기를 바라진 않을 겁니다. 미래는 더 말할 것도 없죠. 미래가 행복하기 위해 기꺼이 현재를 희생하는 동물이 바로 사람 아니겠습니까. 가끔 예외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많은 이들은 내일의 영광을 위해 오늘 하루를 포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에게도 그것이 있습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꿈꾸는 마음이요. 또한 더불에 진화의 씨앗도 있죠. 그래서 저는 그를 믿습니다. 그의 마지막에, 아마도 어제까지의 고통보다 더욱 풍족한 오늘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아감(進)과 달라짐(化)라는 것일 테니까요.
긴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 진화의 씨앗 홍보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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