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 점소이로 굴러 먹은지 8년, 천진난만하고 순진했던 모습도 이제는 퇴색된 과거의 잔상으로 남았다. 어릴적 그렇게도 두려웠던, 역병으로 인한 부모님의 죽음도 누구나 때가 되면 겪어야 하는 인생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세상은 밝고 정의롭지만은 않다는 것도,
권력과 탐욕과 이기심이 세상을 굴리는 커다란 원동력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물론 협과 정의를 부르짖으며 거침없이 세상을 질타하는(그러다 단명하는) 영웅호걸들이 있어 세상이 더 가치있어진다는 것도 안다.
이제는...나도 제법 안다.
점소이 생활 8년차 '세상의 이치를 엿보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나...크캬캬캬캬...
'아차차!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생각에 잠겨 혼자 키득거리던 고무판객잔의 일급점소이 판무광은 주위를 둘러보다 양손으로 가볍게 뺨을 두드리곤 힘차게 일어났다. 근무시간이 끝난 것이다. 야간반 점소이들과 교대한 후 즐거운 마음으로 객잔을 나섰다.
'그럼, 오랜만에 문피아서림으로 왕림해 보실까나?'
서림안으로 들어서자 언제나 처럼 반듯한 모습으로 뭔가를 쓰고 계시는 주인아저씨가 보인다.
"금강아저씨! 안녕하셨어요? 요즘 이야기가 잘 풀리시나봐요. 편안한 표정을 짓고계시는 건 오랜만에 보네요."
"판무광이 왔냐~ 글쎄다. 신년초라 그런지 나쁘지는 않구나. 이제는 서림일보면서 글쓰는 것도 조금은 적응이 된 것 같구나. 별일이 없다면 조만간에 다음 권을 볼 수 있을게다. 기대하거라. 허허허"
"네~네~ 그렇게죠.『별일이 없다면』말이죠......"
한 동안 어색한 침묵이 주위를 감싸고 돌았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 헤픈 웃음을 흘리며, 쓴웃음을 짓는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도망치듯이 걸음을 옮겼다. 뜨고 있는 작품이나 선호도가 높은 작품을 모아 놓은 책장에 도착해 책들을 둘러보던 중,
'응?'
나도 모를 이끌림에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작가:박선우 작품:정벌
자랑스러운 대한국인을 보고 싶으면 오라.
진정한 사나이들의 가슴벅찬 뜨거움을 느끼고 싶으면 오라.
들어라. 소리없이 온 세상을 뒤흔드는 침묵의 노래를...]
'좋았어! 이걸로 선택했다. 이거이거...대어를 낚은 느낌인걸?'
흐뭇한 마음으로 그 책을 구입한 판무광은 그날밤 독서삼매경에 빠져 밤을 하얗게 불태우다 늦잠으로 지각해 객잔 총관에게 호되게 야단맞고서 감봉까지 당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무광의 머릿속엔 작가에게 '글을 좀더 빨리! 많이! 쓰라' 는 독촉 서신을 보낼 생각만으로 가득차 있었으니... 쯧쯧...
사족1, 이미 출판되었던 작품인건 알고 계시죠?
사족2, 금강문주님 그냥 우스개이니 애교로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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