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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스토리

사방신의 수호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운(woon)
작품등록일 :
2013.06.16 13:43
최근연재일 :
2013.09.29 22:31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42,546
추천수 :
1,055
글자수 :
286,264

작성
13.06.22 03:27
조회
860
추천
32
글자
17쪽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7)

DUMMY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멍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꿈이라도 꾼 것일까. 분명 방금 전까지 생생했던 것들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머릿속에 암막이라도 처진 것처럼 조각나버린 기억의 파편은 아주 희미하게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것이나마 다시 잡아보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무언가 슬픈 꿈이라도 꾼 듯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왔다. 문득 투명한 물방울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 야옹 소리와 함께 고양이가 나타나 그녀의 품으로 안겼다.


“넌….”


그녀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그 소리에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있는 거 다 알아! 어서 문 열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가게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그 남자였다. 어떻게 그가 자신의 집을 알아낸 걸까. 그녀의 머릿속에 윤 마담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한순간이나마 윤 마담에게 연민을 느낀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녀의 생각을 눈치라도 챈 것인지 문을 두드리는 그의 손길이 한층 더 거세졌다.


“이 문 좀 열어봐! 할 말이 있어!”


그녀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고양이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야옹 소리를 냈다.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걸쇠를 걸고 문을 열었다. 전자음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자 남자가 그녀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녀는 남자를 보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이것도 좀 열어줘.”


남자가 걸쇠를 보고 말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문을 완전히 열어주었다. 그녀가 문을 열자 남자가 뛰어 들어와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는 몸이 얼어버린 듯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네가 가버리고 심장이 멈춰버리는 줄 알았어. 이젠 다신 안 놔줄 거야.”


남자가 그녀의 가녀린 몸을 더욱 힘주어 끌어안았다. 그녀는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남자는 그녀의 몸을 안은 채 벌겋게 충혈 된 눈으로 집안 곳곳을 살폈다. 역시 영현이 말한 대로 그 어린놈은 이곳에서 나가고 없었다.


‘감히 나 말고 다른 남자를 사랑해?’


남자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으나 아무런 내색 하지 않았다. 겨우 손에 넣은 그녀였다. 오물 구덩이에서 가까스로 찾아낸 그의 보석이었다. 이제 그의 손에 쥐어진 것과 다름없었다. 비록 더러워지긴 했지만, 앞으로 자신의 색과 향기로 그녀를 길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야옹.”


이때 그의 상념을 깨고 나지막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날카로운 두 눈을 빛내며 그와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쩐지 그 시선에 조롱의 빛이 담겨있는 것 같아 남자는 기분이 나빠졌다. 마치 남자와 그 어린놈을 비교하는 것 같은 불쾌한 시선이었다. 남자는 이 집이, 저 짐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묘진아, 나랑 살자.”


남자의 말에도 그녀는 아무 대꾸가 없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 중인 것 같았다.


“거부해도 상관없어. 억지로라도 데리고 갈 거야. 이제 다시는 놓치지 않을 거야.”


남자가 말을 마치며 그녀의 가녀린 몸을 으스러지듯 껴안았다. 그녀를 절대 보내지 않겠다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그녀는 그의 말과 행동에서 언뜻 무언가가 떠오르는 듯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가슴이 시리듯 아련한 느낌이 몰려들어왔다.




* * *




“은하가 대형의 영을 흡수했다고요?”


기성의 말에 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성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으로 영현을 바라봤다.


“그럴 리가 없어요. 왜 대형 같은 놈의 영을…. 그것도 은하가….”


그의 중얼거림에 영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예상대로 기성은 크게 동요했다. 그의 의식이 불안해지는 것이 영현의 눈에 들어왔다.


“절대 그럴 리가 없어. 날 이렇게 만든 놈의 혼을…. 은하가….”


기성의 눈이 붉게 변하고 있었다. 이 녀석은 악마가 되었음에도 수호자였던 친구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 녀석이 그렇게 대단한 놈인가. 영현은 새삼스레 그 은하란 놈에게 흥미가 생겼다. 분명 그 녀석의 인연은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수호자임에도 사자인 창림과 연결이 되어있었고 황룡은 물론이거니와 사방신과의 인연도 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그의 흥미를 끈 것은 녀석의 인연에 반수호자와의 연결도 보였던 것이다. 비록 그것이 기성과의 인연이라 할지라도 분명 아주 특이한 연을 지닌 놈이 틀림없었다. 현 수호자들 대부분은 반수호자들을 직접 만나는 경우가 드물었다. 물론 반수호자가 암흑 속에 숨어서 활동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황룡이 철저히 세력을 구분하여 그들을 감시하는 무리를 따로 둔 것이 가장 컸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아직 정식으로 수호자로 활동을 시작하지 않은 자가 반수호자와 인연을 맺을 확률은 거의 드물었다. 물론 영현이 있는 이상은 앞으로 달라지겠지만 그 시발점이 되는 선상에 그 녀석이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가 별 볼일 없게 생각한 수호자가 그런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것과 기성이 그에게 집착하는 것은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주목을 끈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지금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오대 악마를 모두 깨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 그릇 중 하나인 기성은 아직 악의 기운이 부족했다. 게다가 나머지 악마들의 적합한 그릇도 아직 찾지 못한 상태였다. 인간이면서도 사회에서 버림받았다. 그러나 같은 인간들에게 버림받아 놓고도 인간의 온기를 완전히 잊지 못하고 그들을 여전히 갈망한다. 게다가 죄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본능을 억누를 수 없어 그것으로 괴로워한다. 이 모든 것을 갖춘 자가 바로 그가 찾는 ‘그릇’이었다. 눈앞의 이 녀석은 그릇으로서 완벽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아직 본능에 충실하지 못했다. 하지만 영현은 전혀 걱정 하지 않았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곧 시작될 것이다….’


영현이 기성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웃음을 띠었다.




* * *




그녀는 남자의 아파트로 짐을 옮겼다. 자신의 그녀의 작은 방은 더 이상 자신의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의지대로 반 강압적으로 그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그는 자기를 사랑한다 말했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녀를 대할 때 그의 행동은 조심스러워 이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항상 그녀를 존중해주고 소중하게 대했기에 이제는 그녀 스스로도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아직 그녀를 직접적으로 원한 적이 없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그는 그녀가 원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다짐하곤 아직 한 번도 그녀를 취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보아도 분명 그는 자신을 아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때때로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일까. 자신은 도저히 그를 사랑할 수 없었다. 그녀가 세상에 태어난 이례로 처음 받아보는 사랑이었다. 한 여자로서 늘 꿈꿔왔던 사랑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하는 남편과 귀여운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이 그녀 평생의 꿈이었다. 그와 함께 이렇듯 살아간다면 이룰 수 있는 꿈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꿨었던 생생했던 꿈이,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 그 아련한 기억이, 자신의 감정을, 꿈을 서서히 변화시키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아침마다 가식적인 미소로 그에게 화답하는 자신이 싫었다. 늘 자신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그의 눈빛을 바라보는 일이 힘들어졌다. 그녀는 점점 지쳐갔다. 그는 아무 대가 없이 그녀에게 사랑을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보답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노력 해봐도 도저히 그를 사랑할 수 없었다. 그가 일을 하러 나가면 그녀는 하루를 꼬박 눈물로 보냈다. 그를 사랑할 수 없는 현실이 슬펐고 그의 사랑을 이용하는 자신이 싫었다. 그럴 때마다 이곳을 떠나려했지만 밤마다 자신의 품안에서 자신의 체온을 느끼며 잠드는 그를 내버려두고 갈 수 없었다. 그녀는 어렴풋이 그가 자신을 닮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받길 원하며 그녀를 원하지만, 그녀는 절대 그의 사랑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오늘 그가 나간 후 그녀는 자신의 옛집으로 향했다. 이곳을 떠난 지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꽤 오랜만에 다시 보는 정겨운 풍경은 그녀의 울적한 기분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이런 들뜬 기분을 느낀 게 얼마만일까.


“야옹.”


그녀가 살던 건물 근처에 오자 지저분한 고양이가 그녀의 다리께로 와서 몸을 부볐다. 그녀는 한 눈에 그 고양이가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였단 걸 알아보았다. 그의 반대로 근처 동물병원에 장기로 맡겨놨는데 이렇게 거리를 활보하고 다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세상에! 길고양이가 다 됐네!”


그녀가 고양이를 안아들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곳곳에 상처가 나있는 것이 거리로 나온 지 꽤 된 듯했다. 엉망인 고양이를 보자 그녀는 화가 났다. 그녀는 곧장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모퉁이를 돌아 공원이 나오자 그녀는 가슴이 세차게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분명 이곳에 살 때 고양이와 함께 여러 번 오가던 길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가슴이 미어져 올까. 그녀는 공원 구석의 벤치에 앉아 목 놓아 울어버리고 말았다.


“안 돼!”


고양이를 보고 그가 소리쳤다. 그녀가 이곳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그가 큰 소리를 냈다.


“이집은 절대 안 돼! 그냥 동물병원에 다시 맡겨. 아니면 애완동물호텔이라도 알아볼게. 여기선 못 키워.”


고양이를 부둥켜안고 있는 그녀를 보고 남자가 달래듯이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미동도 않고 있었다. 남자는 저 요망한 짐승을 절대 들일 수 없었다. 그 어린놈의 흔적이 베인 짐승을, 그 놈의 사랑을 받고 자랐을 저 짐승을, 절대 안 될 말이었다.


“그럼 내가 예쁜 고양이를 사줄게. 굳이 그렇게 이름도 모를 고양이를 키워야 돼?”

“……. 나도 이 고양이와 같아.”

“당신은 달라! 그런 짐승과….”

“뭐가 다른데! 나도 길에서 굴러먹던 건 마찬가지잖아!”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그녀의 뺨을 거세게 쳤다. 짜악 소리와 함께 그녀의 볼이 순식간에 벌겋게 변했다. 남자는 그녀의 불거진 볼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잖아! 당신은 달라. 그런 여자들이랑….”

“못 키우게 한다면 나도 나갈 거야.”


그녀는 그가 말을 하고 있는 도중에 딱 잘라 쐐기를 박았다.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음대로 해. 대신 오늘부터 당신을 안을 거야.”


그의 말에 그녀는 멈칫했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다급했다. 그 녀석에게로 다시 가버리기 전에 그녀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녀는 아직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아마 그놈을 사랑하리라, 하지만 그녀가 여기 있는 이상 자신에게 가망은 있었다. 그러나 저 짐승은 어쩐지 거슬렸다. 그녀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부신 나신이 그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는 그동안 억눌렀던 욕망이 뜨겁게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그녀를 향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쾌락의 소용돌이가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우연일까. 땀으로 범벅된 그녀의 얼굴이 문득 고양이에게로 향했다. 고양이는 가만히 앉아서 엉겨 붙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왜 또 그런 짓을 하는 거지?’


문득 낯익은 목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녀는 쾌락으로 인해 그 목소리가 귓가로 들리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없었다. 쾌락의 축포가 그녀를 뒤흔들었다.


‘정말 그 남자를 사랑하나?’


축 늘어진 그녀의 뇌리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그녀의 바로 곁에 있음에도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금 당신 모습을 봐.’

‘당신이 사랑하는 그 애도 당신의 이런 모습을 보고 좋아할까?’


순간 그녀의 몸이 멈칫했다. 사랑하는 그 애라니 그녀는 그것이 누굴 뜻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쓸데없는 짓을 했군. 기억을 지우다니….’


그 말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기억을 지우다니, 그렇다면 정말로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그녀의 의문에 화답하듯 그 목소리가 다시 흘러들어왔다.


‘잘 생각해봐. 정말 그 애를 모르는가. 그토록 사랑했었는데…. 당신의 마음도 과연 그 애를 완전히 잊은 것일까?’


그녀는 하마터면 그 말에 그게 무슨 뜻이냐고 큰 소리로 대답할 뻔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난 바로 당신 곁에 있다. 그리고 그 애와 당신을 계속 지켜봐왔다.’


그녀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고양이를 바라봤다. 그녀의 물음에 화답이라도 하듯 고양이가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왜 그 애의 바람대로 하지 않는 거지?’


고양이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그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애는 당신이 진정한 사랑을 찾길 바라며 떠나갔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어떠한가. 그 남자가 과연 당신의 진정한 사랑인가.’


고양이의 말에 그녀는 멍한 느낌이 들었다. 고양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그녀로선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 전에 고양이와 대화를 하다니, 그녀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 고양이가 다시 말을 건넸다.


‘내 말은 오직 당신만 들을 수 있어. 그리고 난 당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지.’


그녀는 아주 잠깐 신기한 생각이 들었으나 중요한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 있었고 기억을 지웠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야 했다. 고양이가 눈을 빛내며 그녀의 생각을 읽었다.


‘감당할 수 있겠어?’

‘기억이 되돌아오면 저 남잘 용서할 수 없을 텐데…. 차라리 지금이 행복하지 않겠어?’


그녀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왜 저 남잘 용서할 수 없다는 거지? 그리고 왜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떠나가야 했는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당신에게서 저 남자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저 남자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떠나간 것이다.’


그녀의 눈이 그를 향했다. 곤히 잠든 그의 모습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떼놓고 감히 그녀에게 사랑을 바라다니…. 그가 뻔뻔스럽게 생각되었다.


‘다시 기억을 되찾고 싶은가?’


고양이의 물음에 그녀는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여태껏 해온 가식적인 사랑을 벗어나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었다.


‘내 눈을 응시해라. 당신의 기억을 돌려주겠다.’


그녀가 고양이를 바라보자 고양이의 두 눈이 핏빛처럼 붉게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번쩍이는 낙뢰가 그녀의 머릿속에 떨어졌다. 그녀는 폭포수와 같이 밀려오는 기억에 그 어떤 미동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고양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문득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 두 방울씩 흘러내리던 눈물은 이내 강을 이루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었을까. 그와의 기억을. 어떻게 그의 체온과 숨결을 잊었던 것일까. 그녀는 조용히 눈물 쏟아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저 남자 때문이다.’


그의 말에 그녀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자신에게서 그의 기억을 지우고 남자를 사랑하게 만들려했다니. 그녀는 그의 가증스러움에 치가 떨렸다.


‘그를 죽여라. 그러면 그 애를 다시 볼 수 있다.’


그녀는 고양이의 말에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지금 그는 자신에게 살인을 저지르라 하고 있다. 아무리 남자가 밉다고 하더라도 살인은, 그것만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고양이는 예상했다는 듯 그녀에게 말했다.


‘넌 과거에 낙태를 했지. 그것은 살인 아닌가.’


그녀는 그의 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저 고양이가 알고 있는 것인가. 그녀는 고양이가 무서웠다. 그녀의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오들오들 떨렸다. 붉은 고양이의 두 눈이 악마의 그것처럼 느껴져서 그녀는 너무나 두려웠다. 그때 고양이의 눈동자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를 다시 보고 싶지 않은가. 남자를 죽이지 않으면 그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잊고 살았던 그였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일깨워 준 존재였다. 그녀의 유일한 사랑인 그가 자신에게 남자를 죽이라 말하고 있었다.


‘남자를 죽여라. 그를 다시 보게 해주겠다.’


작가의말

이번주 내로 3장을 끝내려 했는데 힘들 수도 있겠군요.

이번달 내로는 끝날 것 같습니다.

항상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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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9) 13.09.29 692 39 18쪽
38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8) +4 13.08.26 667 12 21쪽
37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7) 13.08.13 331 7 19쪽
36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6) 13.08.05 693 27 16쪽
35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5) 13.07.20 304 4 16쪽
34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4) 13.07.12 463 6 14쪽
33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3) 13.07.10 1,310 16 16쪽
32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2) +2 13.07.08 892 16 17쪽
31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1) +5 13.07.01 675 7 16쪽
30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8) 13.06.24 1,975 36 23쪽
»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7) 13.06.22 861 32 17쪽
28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6) 13.06.16 580 9 16쪽
27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5) 13.06.16 549 8 15쪽
26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4) 13.06.16 502 8 18쪽
25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3) 13.06.16 1,201 31 25쪽
24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2) 13.06.16 548 14 14쪽
23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1) 13.06.16 1,028 29 11쪽
22 제 2장 네 개의 세력(11) 13.06.16 644 8 12쪽
21 제 2장 네 개의 세력(10) +3 13.06.16 1,138 36 18쪽
20 제 2장 네 개의 세력(9) 13.06.16 975 50 14쪽
19 제 2장 네 개의 세력(8) 13.06.16 691 16 15쪽
18 제 2장 네 개의 세력(7) +3 13.06.16 1,020 26 14쪽
17 제 2장 네 개의 세력(6) +2 13.06.16 1,203 17 14쪽
16 제 2장 네 개의 세력(5) 13.06.16 713 8 16쪽
15 제 2장 네 개의 세력(4) 13.06.16 1,354 29 13쪽
14 제 2장 네 개의 세력(3) 13.06.16 785 12 18쪽
13 제 2장 네 개의 세력(2) +5 13.06.16 816 14 16쪽
12 제 2장 네 개의 세력(1) 13.06.16 670 9 13쪽
11 제 1장 시작의 장(10) 13.06.16 930 1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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