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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스토리

사방신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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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woon)
작품등록일 :
2013.06.16 13:43
최근연재일 :
2013.09.29 22:31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42,672
추천수 :
1,055
글자수 :
286,264

작성
13.06.16 20:34
조회
1,141
추천
36
글자
18쪽

제 2장 네 개의 세력(10)

DUMMY

검은 구름을 해치고 태양의 그것과도 같은 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학교의 운동장도, 수업을 받는 교실도, 은하가 서 있는 옥상까지, 학교 구석구석을 환하게 비추었다. 운동장에는 어느새 아이들이 나와 노을처럼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남자는 빛을 보고 이를 부득 갈았다.


"허, 등장 한 번 요란하군."


그의 말에 정신이 든 은하는 문득 이 빛이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반수호자가 내 구역에 들어오다니 감히 겁도 없는 겐가.]


공기가 웅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소리의 주인은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의 용이었다. 구름 사이로 똬리 튼 그의 몸뚱이는 그가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메기처럼 긴 수염은 은하 네들이 서 있는 옥상까지 길게 내려와 있었다. 그의 온몸에선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와서 차마 범접할 수 없는 기세가 느껴졌다. 은하는 커다랗게 뜬 두 눈을 깜빡이며 하늘을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큭. 오늘은 날이 아닌 듯 하군. 그만 가자."


남자가 기성을 돌아보며 말했다. 기성은 용의 등장에도 개의치 않는 듯 충혈된 두 눈을 대형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가자. 지금 황룡을 상대하기엔 힘이 부족하다."


남자가 다시 이를 갈았다. 기성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강한 힘을 준다면서요? 황룡에게도 대적하지 못하면서 무슨 강한 힘이죠?"

"황룡은 다르지. 특별하니까. 아직은 때가 아니다. 곧 기회가 올 거야."


그의 대답에 기성도 인정한 듯 몸을 돌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은하에게 물었다.


"정말 함께 가지 않을 거냐?"


그의 목소리는 절실해 보였다. 은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 어쩐지 처량한 생각이 들으나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기성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다음에 만나면 너와 나 둘 중 하나는 죽는다."


기성이 싸늘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더는 친구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그리고 이건 내 마지막 선물이다."


기성이 말을 끝마치자마자 그에게서 검은 물체가 날아왔다. 그리고 막을 틈도 없이 바닥에 누워있는 대형의 가슴을 꿰뚫었다.


"으아악!"


대형의 비명과 함께 그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바닥에 누워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기성!"


은하가 날카롭게 외쳤지만, 기성과 남자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은하가 달려가 대형의 몸뚱어리를 끌어안았다. 그의 가슴팍 정중앙에 검은 물체가 박혀 있었다. 끄으윽 하는 피 거품이 올라오는 소리와 함께 미약한 숨소리를 내는 대형은 이미 더는 살 수가 없어 보였다. 그의 눈동자는 검게 죽어 생명의 빛이 사라지고 있었다.


"차대형."


창림이 그의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그의 창백한 손에는 피로 물든 것 같은 붉은 명부가 들려 있었다.


"차대형."

"형!"


은하가 그를 저지했다. 은하의 두 눈에 맑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대형은, 대형은 죽는 건가요?"


그의 물음에 창림이 붉은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


"그럼 내가 왜 여기에 왔다고 생각하는가."


은하는 순간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죽음과 늘 함께 다니는 저승사자였다. 그 말인즉슨, 그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반드시 누군가가 죽는다는 의미였다. 은하는 자리에 가만히 서서 창림을 슬픈 눈으로 응시했다. 비는 어느새 그치고 하늘에는 검은 먹구름만이 그들을 내려 보고 있었다.


"잠시 기다려 주게."


백색의 금발, 금빛 눈동자, 눈부시게 하얀 정장을 입은 이는 바로 황룡이었다. 그는 인간의 모습으로 대형과 은하의 앞으로 걸어왔다.


"아무리 황룡님이라 하더라도 죽음을 거스를 순 없습니다."


창림의 붉은 눈동자가 싸늘하게 느껴졌다. 그의 창백한 얼굴은 평소보다 더욱 딱딱해 보였다.


"잠깐이면 되네.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 정도는 줘도 되지 않은가?"


황룡의 부탁에 창림은 마냥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대형을 내려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자,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이던데."


황룡이 은하를 향해 말했다. 은하는 품 안의 대형을 바라보았다. 힘겹게 호흡을 이어가는 그는 지금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대형은 흐릿한 눈으로 은하를 올려다봤다. 은하는 그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으나 대형의 팔은 이미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은하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왜 아까 날 구해준 거야?"


물기 어린 은하의 목소리를 들은 대형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은하는 대형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금 그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네. 육신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하고 차갑게 굳어버렸어."


황룡이 대형을 살피더니 은하에게 말했다. 그는 창림을 바라봤다.


"어떤가? 조금만 더 호의를 베푸는 건?"


그의 시선을 느낀 창림은 미간을 좁혔다. 표정이 없는 그 나름대로 인상을 쓰는 듯이 보였으나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곤 손을 뻗어 대형의 머리에 살며시 얹었다.


「한 번의 숨을 쉬면 영혼이 다시 올 것이오,

두 번의 숨을 쉬면 심장이 다시 뛸 것이오,

세 번의 숨을 쉬면 숨을 다시 쉴 것이오,

네 번의 숨을 쉬면 기운이 다시 날 것이오,

마지막 숨을 쉬면 두 눈이 다시 세상을 비출 것이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리던 그는 대형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대고 그의 코에 자신의 숨결을 후하고 불어넣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꺼멓게 죽어가던 대형의 눈동자에 빛이 깃들기 시작했다. 은하는 신기한 눈으로 창림을 올려다보았다.


"사자가 가끔 명이 남은 자들을 실수로 데리고 가기도 하지. 그럴 때를 대비하여 다시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단다."

"하지만 이번은 아주 약간의 생명 줄만 늘여놓은 것이오."


사실 사자가 다시 사람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다섯 번의 숨을 불어넣어야 했다. 지금으로선 단 한 번의 숨으로 시간을 조금 이어놓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기엔 충분했다. 대형은 밝은 눈을 들어 은하를 바라보았다. 그는 전혀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듯해 보였다.


"죽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군."


대형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아까의 경험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우스운 꼴이 됐군그래."


대형이 피식 웃었다. 은하의 품 안에 안긴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듯 보였다.


"왜 아까 날 구해준 거야?"


은하는 처량한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이미 대형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고 그 누구도 그것을 바꿀 수 없었다.


"이건 그 새끼와 내 일이야. 죽든 살든 그놈과 나 둘이 해결해야 할 일이지."


대형이 당당한 태도로 얘기했다. 그의 눈은 맹수의 그것처럼 날카롭게 바뀌었다. 은하는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대형은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고개를 돌리며 정색했다.


"이 꼴이 됐다고 너까지 날 동정하는 거냐?"

"너, 대체 왜 기성을 괴롭힌 거야?"


대형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운용과 다윤, 서호와 택우, 황룡에 이어 무심한 듯한 창림까지. 모두의 시선이 대형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대형은 그들의 시선을 느끼고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그 녀석한테 내가 보였어."


대형이 멀리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회상하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번 들어볼래?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라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형의 눈이 가늘어지는가 싶더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우리 가문은 아주 오래전부터 수호자의 활동을 하고 있었어. 정말 우습게도 첫 수호자인 나의 선조는 사냥꾼이었어. 그게 왜 우스우냐고? 하하, 들어봐. 그는 짐승을 사냥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었어. 사냥감의 경로를 파악하는 솜씨는 가히 천부적이었지. 그에겐 마누라와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두 번째 수호자가 돼. 각설하고 사냥꾼이 어떤지 알아? 항상 배고픔과 두려움이 동반되는 개 같은 직업이야. 아무리 천부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올라가서 덫을 살펴야 하지. 거기다 곰이나 호랑이 같은 맹수라도 마주하는 날엔 꼼짝없이 저승사자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어. 지금의 나처럼.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어. 그날도 그는 사냥감을 찾고 있었어. 며칠 전 봐둔 사슴 가족을 잡으려고 수풀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얼마 전에 새끼를 낳아 멀리 갈 수 없는 상태였거든. 예상대로 그는 사슴 어미와 새끼를 잡을 수 있었어. 태어난 지 보름도 안 된 새끼를 다시 죽이려니 속이 쓰리긴 했지만, 집에서 배를 곯고 있을 가족 생각에 크게 죄책감이 들진 않았어. 그 때문이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산적 무리를 보게 되었어. 사실 그때는 산적을 만나도 딱히 위협이 되진 않았어. 가진 사냥감을 모두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니까. 산적이래 봤자 원래 농민들이 도저히 먹을 게 없어서 하는 짓이라 그렇게까지 악랄하진 않았거든. 그래서 선조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 그래도 오랜만에 잡은 사냥감을 뺏기기 싫었던 그는 그들을 피해 산속으로 빙 돌아서 집으로 왔어. 그것이 화근이었지.

집에 도착하니 평소와는 달리 자신을 반겨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어.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 집 안은 물론이오, 근처에도 아무도 보이질 않는 거야. 마누라도, 아들도. 그는 한참동안이나 망연자실하게 방 안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작은 핏방울을 발견했어. 그것은 뒷산으로 연결되어 있었지. 그는 사냥감을 손질할 때 쓰는 길쭉한 칼을 집어 들고 천천히 뒷산으로 향했어. 산짐승이라도 온 건가 싶어서. 산속에 사는 그들 가족은 종종 그런 일을 겪었거든. 핏방울은 뒷산의 공터까지 이어져 있었어. 공터에는 역시 마누라가 있었지. 그는 뛰어가서 마누라를 살펴봤어. 마누라의 모습을 본 그는 자신의 눈을 파내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어. 그녀는 벌거벗은 채로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어. 부릅뜬 두 눈엔 핏줄이 서 있고 벌려진 입에는 혀가 잘려 나가 피가 가득 고여 있었어. 손목과 발목이 온통 벌겋고 그녀의 가랑이에 피가 흥건한 것으로 보아 여러 사람에게 겁탈당한 듯싶었어. 그녀는 치욕을 못 견디고 스스로 자결해버린 거야. 그는 눈에 불똥이 튀는 것 같았으나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어. 그의 아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야. 문득 그의 눈길이 공터의 끝에 있는 개울로 향했어. 예상대로 아이는 개울 위에 둥둥 떠 있었어. 그는 아이를 끄집어내서 숨을 불어넣고 계속 불어넣었어. 아이의 몸은 너무나 차가웠지만 숨은 미약하게 쉬고 있었지. 몇 차례 숨을 불어넣자 물을 토해내더니만 이내 정신을 차렸어. 그는 아이를 아무 말 없이 껴안고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아이는 산적들이 자신들을 그렇게 했다고 했어. 그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으로 복수를 하리라 결심했지.


그날 이후, 그의 인간 사냥이 시작되었어. 산적들이 갈만한 곳에 덫을 두고 그들을 잡아 고기를 잘라 사람들에게 내다 팔았어. 그는 그날 그들의 얼굴을 봤기에 주로 밤늦게 습격해서 하나씩 제거했지. 사냥이 잘될 때는 그냥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어. 굶주림이 당연한 시기라 사람들이 마다할 리 없었지. 가끔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곰이나 호랑이의 고기라 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어. 사실 가난한 백성이 그런 고기를 맛보는 일이란 거의 없었거든. 그런 면에서 그는 사람들에게 영웅과 같은 존재가 돼가고 있었어.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관에서는 그의 행동을 탐탁지 않아 했어. 그들보다 더 존경받는 그가 못마땅했던 거야. 한편으론 어떻게 사냥하기에 그렇게 많은 고기를 얻어낼 수 있는지도 미심쩍었지. 그래서 그에게 미행을 붙인 거야. 그리고 사람을 잡고 손질하던 그 모습을 본 그들은 충격에 휩싸였어. 관에선 당장 그를 잡아들였지. 당연히 그는 죽음을 면치 못할 상태에 이른 거야. 모두가 그를 비난했고 손가락질했어. 자신들마저 타락하게 했다고 그를 질책했지. 그의 편은 아무도 없었어. 사실 그 자신도 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어. 마누라가 죽은 그때 그의 영혼도 망가진 거나 다름없었지. 그는 죽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보름이 가도록 그에게 아무 죄도 묻지 않는 거야. 그렇게 많은 이들을 죽였는데도. 날이 계속 흘러가자 혼자 남을 자식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 아이러니하게도 죽는 날만 기다리던 그가 살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은 지 알 수 없게 되자 삶에 미련이 생긴 거지. 그는 하루하루를 괴롭게 살았어. 특히 남겨질 자식을 생각하니 차마 죽을 순 없다는 생각도 들었어. 그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에 점차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들이 그를 찾아왔어. 한 젊은이와 함께. 그 젊은이는 꼭 그를 봐야 한다며 아들을 대동하고 온 거였어. 젊은이는 그를 보자마자 그에게 자신과 함께하지 않겠냐고 물었지. 그리곤 선조에게 그것만이 죄를 속죄할 길이라고 했어. 만약 이대로 죄를 씻지 않고 죽는다면 그는 물론 이고 그의 가문 대대로가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했지.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그 자신은 상관없었으나 그의 아들만큼은 절대 고통 받게 둘 순 없었던 거야. 그는 젊은이를 따라가기로 했어. 젊은이가 무슨 신분인진 모르겠으나 관에서는 순순히 그를 풀어주더군. 우습게도 그렇게 수호자가 된 거야. 그 젊은이가 바로 주작의 수호자였고, 그 덕에 우리는 주작의 수호자를 구원으로 여기고 항상 그를 원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어. 우리 가문은 본래 암흑의 가문이라 항상 속죄하며 살아야 하거든. 그래서인지 모르지, 주작이 없어서 내가 선조처럼 미쳐버린 걸지도."



대형의 말에 은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긴 이야기를 마친 대형의 눈동자는 다시 흐려져 있었다.


"은하야,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지?"


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형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문득 흐려진 눈동자에 한 줄기 빛이 떠올랐다.


"수호자가 뭔지 알아? 수호신은 원래 인간을 지키기 위한 존재야. 그 수호신을 위해서는 수호자란 희생양이 필요하지. 수호자의 영혼은 죽어서도 저승에 가지 않아. 아니 가지 못한다고 해야겠지. 대신 수호신에게 힘을 더하기 위해 흡수당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수호자가 죽으면 그 사람의 영혼, 즉 존재가 사라진단 뜻이야."


그의 말에 은하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대형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도망갈 수 없게 저승사자가 보는 앞에서 수호자의 영혼은 수호신에게 흡수당하지. 그래서 수호자와 사자는 사이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지. 일방적으로 수호자가 사자를 두려워하는 거지만 말이야."


우연인지 대형의 시선이 창림을 향했다. 은하 역시 창림을 힐끔거리며 봤다. 창림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네게 부탁이 있어. 영혼을 수호신에게 흡수당하기 전에."

"무슨 부탁인데?"

"내 영혼을 네 수호신이 흡수할 수 있게 해줘."

"뭐?"


은하는 놀란 눈으로 대형을 바라보았다. 수호신이 영혼을 흡수하면 사라지게 된다고 그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대형은 예상한 듯 담담한 표정으로 은하를 향해 웃어 보였다.


"내가 조금이라도 기성을 상대할 수 있게 해줘. 그는 너를 노리고 있으니 반드시 다시 널 찾아올 거야. 이건 내가 뿌린 씨앗이야. 내가 거둘 수 있게 해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야."


대형의 간절한 부탁에 은하는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황룡이 그의 곁으로 왔다.


"그의 부탁을 들어줄 건가?"


황룡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부드럽게 물었다.


"잘……. 잘 모르겠어요."


은하가 바닥을 보며 말했다. 황룡이 금빛 눈동자를 빛냈다.


"선택은 네가 하는 거란다. 다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이 이상 지체하면 창림도 곤란해질 거야."

"은하야, 기성이를 그렇게 만든 건 나야. 내 손으로 끝낼 수 있게 해줘."


대형이 다시 한 번 절박하게 말했다. 은하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눈을 돌려 대형을 바라봤다. 그리고 주변 이들을 모두 한 번씩 돌아봤다. 모두가 그의 대답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은하의 얼굴에 굳은 결심의 빛이 떠올랐다.


"그래. 함께 기성이를 다시 돌아오게 하자."


은하가 그를 보며 말했다. 대형 역시 그를 마주 보며 흡족한 듯 씨익 웃었다.


"차대형, 차대형, 차대형."


그의 말이 끝나자 창림이 낮은 목소리로 대형을 세 번 불렀다. 대형은 몸에 힘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다시 뜨자 자신의 육신이 내려다보였다. 몸이 너무나 가벼워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는가?"


황룡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놀랍게도 황룡의 온몸에선 빛이 났다. 그의 옆에서 빛을 받은 은하 역시 빛이 나 보였다.


"구원. 구원을 받은 것 같아요."


황룡은 대형의 영혼을 향해 싱긋이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는 은하에게 손을 뻗어 그의 수호신을 끄집어냈다. 하얗고 조그마한 타원형의 물체가 그의 손 위에 떠 있었다.


"구원을 좇는 아이여, 그의 숭고한 희생으로 가문은 이제 영원한 안식이 이어지리라."


황룡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대형의 혼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황룡은 그의 앞에 은하의 수호신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대형의 혼이 은하의 수호신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대형의 혼이 완전히 사라졌다. 황룡은 은하에게 다시 수호신을 내밀었다. 은하는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수호신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작가의말

다음 화면 2장이 끝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 작성자
    Lv.40 수원꿀주먹
    작성일
    13.06.24 17:50
    No. 1

    은하를 구해주는 것은 차대형의 심리가 크게 변화 했다는것인데 심경 변화 묘사가 부족해 보입니다.
    처음 읽고 느낀것은 "얘 갑자기 왜 저래?" 였고 마지막 까지 읽어 봐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원인과 결과는 있는데 과정이 없다고 할까요?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차대형은 기성에게 당하고 나서 후회하는게 아니 오히려 분노를 하는게
    더 일관된 성격일것 같았거든요. 예를들어 "너 같은 놈이 감히 나를 이렇게 만들어? 죽여버릴테다" 랄까요

    기성을 괴롭힌 이유가 주작이 없어서 집안 내력으로 미쳐버렸다 가 되는데 좀 쌩뚱 맞아요.
    가문선조 이야기도 죽어가면서 남길 말로는 서술이 너무 길고 그 부분은 작가시점에서 설명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0 수원꿀주먹
    작성일
    13.06.24 17:55
    No. 2

    계속 지적 댓글만 다는데 작가님을 싫어하고 글이 별로라서 쓰는게 아닙니다.
    재미있어요.

    다만 한명의 독자로서 아쉬움에 쓰는 그냥 한 개인의 작은 의견일 뿐이에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운(woon)
    작성일
    13.06.24 23:36
    No. 3

    댓글 감사합니다.
    제 글에 애정이 있으시기에 지적도 해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시는 거라 믿고 있습니다.
    사실 아무 관심이 없으면 그냥 뒤로가기 누르시고 안 보시겠지요.
    한자한자 댓글을 다시는 것에 그만큼 글과 제가 발전하라는 의미인 줄로 알고 세겨 듣고 있습니다.
    제가 블로그가 아닌 이곳에 글을 올리는 이유도 이런 말씀을 놓치지않고 꼭 이번 작품이 아니더라도 다음 작품에서는 좀 더 나은 필력으로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홀로서기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처음 글을 쓸 때는 누가 내 글을 보겠나 싶은 우려도 있었는데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하나씩 댓글을 달아주시는 게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댓글에서도 글을 정독하셨다는 게 묻어나구요. ㅎㅎ

    아직 필력도 형편 없고 글 쓰기가 미흡한 저이지만 은하와 수호신이 성장을 마칠 즈음이면 좀 더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남몰래 꿈 꿔보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요. ^^;
    지적해주시는 말씀은 담아두었다가 퇴고를 할 때 다시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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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신의 수호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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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9) 13.09.29 697 39 18쪽
38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8) +4 13.08.26 670 12 21쪽
37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7) 13.08.13 334 7 19쪽
36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6) 13.08.05 696 27 16쪽
35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5) 13.07.20 307 4 16쪽
34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4) 13.07.12 466 6 14쪽
33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3) 13.07.10 1,313 16 16쪽
32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2) +2 13.07.08 895 16 17쪽
31 제 4장 반수호자와의 조우(1) +5 13.07.01 679 7 16쪽
30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8) 13.06.24 1,979 36 23쪽
29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7) 13.06.22 865 32 17쪽
28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6) 13.06.16 584 9 16쪽
27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5) 13.06.16 552 8 15쪽
26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4) 13.06.16 508 8 18쪽
25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3) 13.06.16 1,206 31 25쪽
24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2) 13.06.16 554 14 14쪽
23 제 3장 어둠에 물든 이들(1) 13.06.16 1,031 29 11쪽
22 제 2장 네 개의 세력(11) 13.06.16 647 8 12쪽
» 제 2장 네 개의 세력(10) +3 13.06.16 1,142 36 18쪽
20 제 2장 네 개의 세력(9) 13.06.16 978 50 14쪽
19 제 2장 네 개의 세력(8) 13.06.16 694 16 15쪽
18 제 2장 네 개의 세력(7) +3 13.06.16 1,023 26 14쪽
17 제 2장 네 개의 세력(6) +2 13.06.16 1,206 17 14쪽
16 제 2장 네 개의 세력(5) 13.06.16 717 8 16쪽
15 제 2장 네 개의 세력(4) 13.06.16 1,359 29 13쪽
14 제 2장 네 개의 세력(3) 13.06.16 788 12 18쪽
13 제 2장 네 개의 세력(2) +5 13.06.16 821 14 16쪽
12 제 2장 네 개의 세력(1) 13.06.16 676 9 13쪽
11 제 1장 시작의 장(10) 13.06.16 933 1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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