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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룡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가 마물을 떠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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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룡
작품등록일 :
2022.05.11 19:50
최근연재일 :
2022.09.0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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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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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 여뀌꽃성

DUMMY

철수가 자유기사활동을 시작한지도 몇 달이 지났다. 그 사이 계절은 겨울을 지나 봄이 되었고, 철수는 조금 더 일에 익숙해졌다.


“날씨 좋군.”


철수는 의뢰를 받기 위해 대구부(大邱府) 자유기사조합을 방문하였다. 굳이 조합을 통하지 않고도 일거리를 찾을 수 있지만 조합을 통하는 것이 가장 간편하였다. 조합에 일정한 중개수수료를 지불하게 되지만 오히려 그러는 편이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길이었다. 특히 철수처럼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자체적인 영업력이 부족한 경우는 더욱 그러하였다.


“이 프로님,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철수를 담당하는 김 주임이 반갑게 인사한다. 참고로 조합의 직원들은 자유기사를 ‘프로’라고 호칭한다. ‘프리랜서님’ 이나 ‘자유기사님’ 혹은 ‘기사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잘 없다. 업계의 관습 같은 것이다.


“김 주임님, 안녕하세요. 괜찮은 의뢰가 있나요?"


“장거리호송의뢰가 들어 온 것이 있는데 그것부터 설명을 드릴까요?”


“좋죠.”


장거리호송이라 함은 대구부 인근이 아닌 멀리 떨어진 타지방의 성읍으로 물자나 사람을 호송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시일도 오래 걸리고 위험성도 컸다. 반면 그 만큼 의뢰보수금이 높았다. 하지만 들어가는 시간과 위험에 노출되는 정도를 고려한다면 마냥 높다고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지역 내 의뢰를 여러 개 수주하는 것이 훨씬 돈벌이에 유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자유기사에 따라 아예 일정거리를 넘어가는 호송의뢰는 안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철수는 유독 장거리호송의뢰를 선호하였다. 장거리호송의뢰 수행에 따른 위험도는 철수에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비록 철수가 아직은 신출내기 자유기사이지만 그 실력만큼은 진짜였다. 그 드물다는 -실제로는 아니지만- ‘반각성자’이지 않는가. 소요시간이 길다는 점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성도 철수에게 문제되지 않았다. 철수는 장거리호송을 갈 때 마다 조합의 의뢰와는 별도로 자기의 계산으로 직접 내국무역을 하였다. 그 운용금액이 꽤나 커서 제법 이문이 많이 남았다. 이동 중에 상품이 망실되거나 판매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재고가 쌓여 손실이 날 위험이 있었으나 철수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매번 과감하게 상품매매를 하였다.


김 주임 역시 이를 잘 알기에 보통의 경우 주니어 자유기사에게는 잘 권하지 않는 장거리호송의뢰를 철수에게 가장 먼저 안내한 것이다.


“... 이상입니다. 하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건들을 안내해 드릴까요?”


의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마친 김 주임이 철수에게 의뢰수락 여부를 물었다. 김 주임이 생각하기에 철수는 수락할 것이다.


“이 건으로 하죠.”


아니나 다를까 철수는 즉각 수락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트럭형 호송차가 필요하시죠? 차량담보금과 비용은 전과 동일합니다. 대여 진행할까요?”


조합에서는 자유기사에게 필요한 장비를 대여해줬다. 의뢰중개수수료와 더불어 조합의 주 수입원 중 하나였다.


“네.”


철수는 이번에도 겸사겸사 상품매매를 할 생각이었다. 이에 적당한 크기의 트럭 호송차를 선택하였다.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신지요?”


“없습니다.”


“그럼, 의뢰인과 최종 조율해서 오늘내로 통보 드리겠습니다.”



***



늦은 오후, 철수는 조합 주차장 앞에서 의뢰인과 만났다.


“이철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몽룡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철수가 호송해야 할 인원은 이몽룡 단 한 사람이었다. 듣자하니 고향에 급히 갈 일이 생겨 조합에 의뢰를 넣은 것이라고 했다. 혼자서 보수금을 마련했으니 꽤나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기 조수석에 타시면 됩니다. 불편하신 것이 있다면 언제라도 말씀해주세요.”


“네.”


이몽룡은 자신의 의뢰를 맡아준 이철수라는 자유기사가 마음에 들었다.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거들먹거리는 자유기사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세간의 인식이다. 자유기사가 은근히 의뢰인을 깔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철수에게서는 그런 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담당직원이 꽤나 이 사람을 칭찬한 게 으레 하는 말이 아니었어.’


“자, 다시 한 번 목적지를 확인하겠습니다. 여뀌꽃성(城) 맞습니까?”


“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



여뀌꽃성은 지리산 서쪽에 위치한 곳으로 대구부에서 차량으로 이동해도 하루 안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마물이 나타나기 전의 세상이라면 두 시간 정도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마물을 피해 빙 둘러서 가야했으며, 예전의 관리가 잘 되어있고 시원하게 잘빠진 도로는 더는 존재하지 않아 속도를 낼 수가 없을뿐더러 무리하게 운행하면 차량이 퍼질 수가 있었다. 그리되면 정작 급한 상황에서 도망가지 못하게 된다.


“오늘은 이만 여기에서 정차하겠습니다.”


어느 덧 날이 저물었다. 철수는 적당한 곳에 차를 멈춰 세웠다. 철수와 몽룡은 미리 준비해둔 음식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눈을 붙였다. 하지만 몽룡은 영 잠이 오지 않았다. 이틀 전 몽룡은 고향에서 온 전보를 받았다. 몽룡의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내용이었다. 전보의 발신자는 여비를 함께 보내왔다. 이에 몽룡은 급히 조합에 의뢰하였다. 대구부에서 광주부로 가는 정기노선이 여뀌꽃성을 경유해서 지나가나 이를 이용할 수는 없었다. 정기노선은 한 달에 한 번만 있었고 이미 이번 달은 발차했다.


몽룡은 몇 해 전 고향을 떠나 대구부에 자리를 잡았다. 몽룡은 사실 여뀌꽃성의 어느 한 엘더 가문의 도련님이었다. 조부는 어느 날 몽룡에게 정략혼을 강요하였다. 몽룡은 이를 끝까지 거부하였다. 조손 사이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조부는 크게 노하였다. 친손자인 몽룡 대신 외손자, 그러니까 몽룡의 고종사촌동생을 후계자로 지목하였고 결국에는 몽룡을 집에서 쫓아내었다.


이제껏 철부지 도련님으로 살아 온 몽룡은 생활력이 전혀 없었다. 거기에다 조부는 몽룡이 쉬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도록 지역유지들에게 은근히 압력을 넣었다. 조부는 몽룡의 고집을 꺾을 셈이었다. 몽룡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보수도 적고 몸도 고된 일이었다. 그마저도 일정하지가 않았다. 몽룡은 점차 고립되어 갔다. 몽룡은 버티다 한 여인을 찾아갔다. 그녀라면 자신을 외면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그녀는 집에서 쫓겨난 몽룡을 매몰차게 대했다.


- 끈 떨어진 도련님을 제가 반길 것 같습니까? 이제 그만 쓸데없는 고집은 꺾으시고 집으로 돌아가시지요.


몽룡은 그 길로 여뀌꽃성을 떠났다.


“몽룡 씨, 일어나십시오.”


철수는 상념에 빠져있던 몽룡의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네. 무슨 일이신지? 혹시 마물입니까?”


“아니요. 산적인 것 같습니다. 몽룡 씨는 일단 안에서 대기하고 계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이 밤중에 천천히 포위하듯 은밀히 접근하는 모양새를 보았을 때, 좋은 의도를 가지고 찾아오는 손님은 아닐 것이다.



***



철수가 차 밖으로 나간 지 10분 정도되었다. 몽룡은 차창을 통해 밖을 살폈으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벌컥. 갑자기 운전석 차문이 열렸다.


“헉”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터라 몽룡의 입에서 헛바람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 나왔다. 다행히 철수였다.


“아 미안합니다. 놀라셨군요. 여하튼 상황종료, 이제 괜찮습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놈들을 포박했는데, 얼굴 좀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


“단순 강도이겠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간혹 의뢰인님과 관계가 있는 자들인 경우가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 그렇다고 가까이 갈 필요는 없습니다. 차안에서 확인하십시오.”


철수는 차량의 헤드라이트를 키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철수는 포박된 일단의 무리를 차 앞으로 데리고 왔다. 그들의 복면을 벗긴 철수는 차안으로 눈짓을 보냈다.


“!”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던 몽룡은 깜짝 놀라 벌컥 차문을 열고 내렸다. 괴한 중 한명과 몽룡의 시선이 교차하였다.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괴한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


어둡고 고용한 산중에 몽룡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



“가주님.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오? 그래? 몽룡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엘더 이의안이 반색하며 집사에게 물었다.


“그게... 지금 집안 마당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왜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저는 여기에 있겠습니다!”


마침 마당에서 몽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몽룡의 말이 이어진다.


“할아버지께서 건강하신듯하니 직접 밖으로 나오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런 고얀 놈. 저 놈의 성격은 여전하구나.”


“위독하다고 속인 것 때문에 저러시는 것 같으니, 가주님께서 너그러이 참으시고 나가보시죠.”


“...”


집사의 권유에도 이의안이 한 동안 꾸물거리고 있으니, 밖에서 몽룡이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오지 않으시면 어쩔 수 없죠. 인사는 드렸으니, 비록 얼굴은 뵙지 못했으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의안은 그런 몽룡이 괘씸했으나 결국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다려라.”


이의안이 마당으로 가보니 손자 이몽룡과 그 옆에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해들은 바와 달리 그간 강녕히 잘 계신듯하니 정말로 다행입니다.”


비꼬는 것이었지만 이의안은 참았다.


“옆의 분은 누구신가?”


“대구부의 자유기사로 여기까지 저를 무사히 데리고 오신 분입니다.”


“이철수라고 합니다.”


철수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오, 고맙고 반갑소. 다만 가족끼리 긴히 할 얘기가 있어 그런데 자리 좀 피해주시겠소?”


“죄송합니다. 원래라면 그래야하겠지만, 제 의뢰인께서 끝까지 자리를 지켜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어허?”


철수의 답변에 이의안이 불편한 내색을 비쳤다.


“이 분이 아니었으면 저는 이미 죽은 목숨이겠지요.”


몽룡이 끼어들었다.


“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이의안은 깜짝 놀랐다.


“그건 지금부터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하튼 앞으로 제가 드릴 말씀에 이 분의 증언이 꼭 필요하니 내쫓지 말아주십시오.”


“으음. 알겠다. 철수 씨라고 했나? 동석을 허락하겠소.”


철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한 발 물러서서 가만히 몽룡의 뒤편에 섰다.


“몽룡이 왔다면서?”


그때 마당 밖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저 왔어요. 그래 몽룡이 너 왔구나? 그간 잘 지냈니? 이게 얼마만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중년 여인이 장내로 들어오면서 몽룡에게 반갑게 인사하였다.


“고모님도 오셨군요. 마침 잘 됐습니다. 어? 학도도 왔군?”


중년 여인을 뒤따라 한 청년이 들어왔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냈습니까?”


“덕분에 잘 지내고 있었는데 조금 심각한 문제가 생겼네?”


“예?”


“이제부터 마음 단단히 하고 내 얘기를 들어야 할 것이야.”


그러고는 몽룡은 자신의 고모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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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019. 원님재판 22.05.29 67 3 12쪽
» 018. 여뀌꽃성 22.05.28 74 3 11쪽
18 017. 면허취득 22.05.27 75 3 12쪽
17 016. 네가 왜 여기에? 22.05.26 96 2 12쪽
16 015. 돌대가리와 팔수생 22.05.24 88 3 11쪽
15 014. 운도 실력이라며?! 22.05.22 88 4 11쪽
14 013. 토너먼트 22.05.21 87 3 12쪽
13 012. 지덕체 22.05.20 112 3 12쪽
12 011. 프리랜서 22.05.19 125 4 12쪽
11 010. 영웅의 추락 22.05.18 155 5 12쪽
10 009. 독낭독목어(毒囊獨目漁) +1 22.05.17 163 5 12쪽
9 008. 누이와 아비 +1 22.05.16 179 7 11쪽
8 007. 투량환주 22.05.15 172 5 11쪽
7 006. 신(新) 골품제 +1 22.05.14 197 7 12쪽
6 005. 개새끼와 칼춤을 22.05.13 212 8 11쪽
5 004. 꽃 피는 봄이 왔건만 22.05.12 233 12 12쪽
4 003. 별빛바라기성 22.05.11 301 20 12쪽
3 002. 기연과 감옥 +2 22.05.11 352 26 12쪽
2 001. 세월이 하 수상하니 +1 22.05.11 524 33 12쪽
1 프롤로그 +3 22.05.11 679 37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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