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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수™ 님의 서재입니다.

조선 백정 영의정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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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한만수™
작품등록일 :
2024.05.20 21:29
최근연재일 :
2024.06.30 07:43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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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7
추천수 :
547
글자수 :
218,253

작성
24.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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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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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화, 1만 냥 벌기(3)

DUMMY

진호 귀에는 하응백의 말에 서운하게 들리지 않았다.

단순한 급제가 아니다.

2등 방안으로 급제를 했으니 정신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낙방한 점도 서운하지 않았다.

조선 시대 과거를 너무 쉽게 본 탓이다. 최소한도로 공자의 사경을 한 번 정도라도 읽어 줬어야 했을 것이다.


하응백이 2등 방안 급제자 답게 가장 오른쪽에 섰다.

낙방한 과시생들을 바라보는 얼굴에는 거만한 기운이 가득 묻어 있다.


마지막 장원급제를 앞두고 사정전 앞에는 개미 기어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침묵이 감돌았다.


눈알 굴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가운데 하응백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누가 장원급제자가 될지는 모른다.

누가 장원급제가가 되더라도 장원과 방안은 평생 동지처럼 지내게 될 것이다.

그 평생의 동지는 누가 될지 궁금해서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장원에는 수험번호 257번 정진호!”


영의정 고양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정전 앞에는 다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급제자를 발표했을 때의 침묵은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썼을 때의 어쩔 수 없는 침묵이다.

장원 발표를 동반한 침묵은 자발적인 침묵이다.


정승과 대감들이 매의 눈으로 빠르게 진호를 찾아서 과시생들을 더듬었다.

과시생들도 무릎을 세워 일으키고 장원급제자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진호는 얼른 일어서지 않았다.

천하디천한 백정 출신이다.

급제하고 장원급제는 다르다. 장원급제하면 다른 관리들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장원을 자축해야 할지, 독배가 되어 사약을 마시는 계기가 될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다.


“도대체 장원급제자가 누구야?”

“놀라서 혼절해 버렸나?”


진호가 얼른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과시생들이 웅성웅성거렸다.


하응백은 진호가 장원이 될 줄은 상상조차 안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패옥을 달아주면서 헛소리로 장원급제 될 것이라고 했더니 진짜 돼버렸다.


이 자가 그렇게 머리가 좋았나?

머리 좋은 놈치고 인성 좋은 놈 못 봤다.

머리도 좋고 마음도 착한 놈하고 이틀을 보냈단 말이지?


질투가 온몸을 뒤덮어서 입술이 달싹달싹 거리는 것을 느끼며 진호를 바라봤다.

놈도 믿어지지 않는지 번호를 불렀는데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장원급제는 꿈도 꾸지 않고 있었다는 증거다.

“장원급제를 한 257번 정진호는 일어서서 어전으로 나오시오.”


좌랑 김윤식의 말에 웅성거리던 과시생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고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수험번호 257번 정진호 부름을 받고 나왔습니다.”


진호는 문득 포졸들에게 맞아 죽은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나서는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며 일어섰다.

막상 일어서니까 행정고시 합격증을 받을 때와 또 다른 느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행정고시도 수석으로 합격을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슴이 떨리도록 감격스럽지는 않았다.

비록 수석으로 합격을 하기는 했지만, 알성시 때처럼 특별대우를 받지 않았다.


“그대가 257번 정진호가 맞느냐?”

“예. 맞습니다.”


진호를 확인한 정랑 두 명이 재빠르게 진호를 승정원으로 데리고 갔다.

장원급제한 응시자가 입는 관복을 내밀었다.

진호는 푸른빛이 감도는 옥색 도포를 걸쳤다. 허리에는 파란색 사조대를 매고 머리에는 대감들이 쓰는 감투를 썼다.

어사모라 부르는 감투에는 종이로 만든 살구꽃 가지가 길게 허리를 숙이고 있다.

왕을 향하여 나갔을 때 충신을 맹세하는 뜻으로 어전을 향해 활처럼 휜 형태다.


“나를 따라오너라. 절대로 용안을 바라봐서는 안된다. 전하게 고개를 들라 해도 고개를 번쩍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왕의 비서실인 승정원 승지는 진호에게 단단히 주의를 시키고 사정전 안으로 들어갔다.


사정전 안에는 용상 앞에는 용이 그려져 있는 용보가 깔렸다.

용상에는 조선의 22대 국왕 정조가 문무백관을 내려다보고 있다.

축대 앞에는 문무백관들이 양쪽으로 도열해서 곁눈질로 어전으로 들어서는 진호를 바라봤다.


장원급제 관복을 입은 20대의 청년의 눈빛이 총명하다.

꽉 다문 입술하며 짙은 눈썹을 한 얼굴이 아우라로 환하게 빚을 내고 있다.


“전라도 설천에서 올라온 초시 정진호라 하옵니다.”


진호는 무릎을 꿇고 엎드리며 고개를 숙였다.

전라도 설천이 어디쯤 붙어 있는지는 안다.

차중식을 통해 대략적인 정보는 주워들었다.

하지만 가 본 적은 없다.

백정의 신분을 감추고 벼슬을 하려면 앞으로는 숱하게 설천을 운운해야 할 것이다.


“장원급제자 정진호는 고개를 들라.”

“변변찮은 유생에게 장원의 영광을 하사해 주시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진호는 고개를 반쯤만 들었다.

승지의 말처럼 용안을 마주 바라보는 것은 왕에 대한 엄청난 불충이다.

왕이 앉아 있는 용상의 손잡이쯤에 시선을 두고 어깨를 조아렸다.


“너의 출생을 말해 보아라?”

“저는 전라도 설천 출신으로 전라감영 서리로 역임하시다 일찍이 병사한 조부가 있사옵니다. 부친은 과거에 응시하러 상경하는 길에 거리에서 급사하였고, 소인은 모친의 뜻에 따라 소년 시절부터 공부에 임했사옵니다.”


진호는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지금부터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운명을 판가름한다.

누가 들어도 구구절절 지독히도 운이 나쁜 집안의 자손이다?

너무 오버해서 혹시 모두들 기억하는 거 아냐?

평범한 집안의 자손으로 해야 한다.

기억에 남을 정도로 지지리도 운이 없는 집안이라면 쉽게 기억할 확률이 높다.

다시 말을 정정하고 싶은 싶었지만, 이미 언어의 배는 떠났다.

말 한마디를 잘못하면 백정의 청룡도 이슬이 되어 새남터 귀신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는 말 한마디라도 신중하게 하리라 결심을 했다.


“기특하구나. 서리로 재직하던 조부가 일찍 병사했다면 집안이 곤궁하지 않았느냐?”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약간의 재산이 있어서 풍족한 살림은 아니지만, 모친의 배려로 열심히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진호는 족보를 더듬어 볼 수 없도록 차단해 버렸다.


홀어미 밑에서 공부를 했다고?


진호의 말에 딸을 가진 정승이며 대감들의 귀가 일제히 열렸다.

진호는 급제한 것이 아니고 장원급제다.

지금까지 지방 출신이 장원급제한 경우는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문제를 출제할 때 성균관 출신이 유리하도록 배려를 한다.

지방 출신으로 장원급제를 했으니 보통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다.

사위로 맞아들인다면 가문의 영광이 될 것이다.


“장원급제를 한 너에게 한 마디 묻겠다. 목민관으로 사회적 위치를 어찌 생각하느냐?”


정조의 질문이 떨어졌다.

과거시험 관계자인 영의정을 비롯하여 홍문관, 대제학, 등은 일제히 진호를 바라봤다.

정조가 묻는 질문의 알성시에 출제가 되었던 시재와 비슷하다.


“아뢰옵기 황송하옵니다만, 목민관은 아래로는 백성들이 농사를 잘 짓게 장려를 해서 굶는 백성들을 줄이는 일이며, 위로는 농사를 잘 지은 백성들의 조세를 눌려서 국고를 넘치게 채우는 위치라 생각하옵니다.”


정조가 묻는 질문의 요지는 지난해 알성시에 나왔던 시재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유창한 목소리로 대답했디.


“대단하구나. 아래로는 백성들이 굶지 않고, 위로는 국고가 넘친다면 태평시대이지 않겠느냐?”


정조는 10년 묵은 체증이 확 뚫리는 것 같아서 용안에 저절로 웃음이 번졌다.

백성들을 부자로 만들고 국고를 넘치게 한다.

바꿔 말하면, 백성들에게는 훌륭한 목민관으로, 왕에게는 충성을 한다는 말이다.

자신도 모르게 양쪽에 도열해 있는 중신들을 쓰윽 흝었다.

조정의 중신이라는 것들이 노론과 서론으로 패가 갈려서 서로 헐뜯고 시기만 할 줄 알았지, 진호처럼 백성을 위하고 왕을 위할 줄은 모른다.


“이판 대감은 들으시오. 장원급제한 정진호에게 홍패를 수여하고, 상으로 정 5품의 통덕랑에 제수토록 하라.”


정조는 진호가 앞으로 크게 될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왕은 원래 정 3품 벼슬까지만 임명을 한다.

정 3픔 이하 벼슬은 이조와 의정부에서 논의를 해서 발령을 낸다.

정조는 준호에게 힘을 실어 줄 생각으로 종5품보다 한 등급 올려서 정 5품으로 직접 임명했다.


정 5품의 통덕랑는 행정부서의 과장급이다.

검상(檢詳)이라는 직책으로 사령장을 받으면 사법부의 고등 관원으로, 형사 사건을 담당한다.

정랑(正郎)으로 발령이 나면 중앙 관청의 6조(吏曹,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에서 문서 처리 및 업무 감독을 담당한다.

사의(司議)라는 직책을 맡게 되면 의정부의 하급 관원으로, 정책 논의 및 문서 처리 업무를 하게 된다.


“이조판서 이진생 전하의 어명 받들어 정진호에게 홍패를 수여하고 상으로 정 5품 통덕랑에 제수토록 하겠습니다.”


홍패는 붉은 천에 쓴 장원 합격증서다.

집안에서는 홍패를 받으면 가보로 삼고 자손대대로 물려 줄만큼 영광의 상징이다.


“정진호는 일어나서 전하가 내려 주시는 홍패를 받거라.”

“황공무지로소이다.”


진호는 경박스럽지 않게 천천히 일어섰다.

도승지가 홍패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양손으로 붉은색 종이에 쓰여 있는 장원급제 증서를 받았다.


지금부터다.


행정고시를 수석으로 패스한 것과, 3만대 1로 장원 급제를 한 것은 차원이 다르다.

반드시 아래로는 백성들을 위하고, 위로는 나라의 기틀이 되는 벼슬아치가 되겠다고 결심하며 양손으로 홍패를 받았다.

장원급제 홍패를 받으니까 보은 동헌 뜰에서 본 이방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방의 이름은 모른다. 하지만 이방은 향리라서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

동헌 방에서 유지들과 술을 마시던 현감도 뜰에서 백정들이 개처럼 얻어맞으며 지르는 비명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 탐관오리들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판은 들으시오.”

“신 이조판서 이진생 전하 어명 받들고자 하오니 하명해 주십시오.”


이진생은 진호를 조만간 초대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던 중이다.

갑자기 정조가 부르는 말에 얼른 앞으로 반 발자국 나서서 고개를 숙였다.


“이판은 삼정승과 상의를 해서 장원급제자 정진호를 궐내 각사에서 근무토록 조치하시오.”


정조는 생각 같아서는 진호에게 몇 가지 더 묻고 싶었다. 하지만 왕으로 체통이 있다.

궐내각사면 궐 안에서 근무를 한다.

궐내에 근무하면 틈틈이 불러서 정사를 논할 기회가 많을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판 이진생 어명 받들어 수일 내에 궐내 적당한 직에 발령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이진생이 다시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전하의 하애와 같은 은혜 뼈골 깊숙이 간직하겠나이다.”


진호는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허리를 숙여 절을 했다.

궐내각사는 왕의 정치적 자문기관이자 비서실인 승정원, 홍문관, 예문관, 교서관이 있다.

***

진호는 경북궁을 나서서 곧장 이조로 들어갔다.

이조는 관원의 임명, 승진, 파면, 고과(考課), 봉급 등 인사에 관한 모든 업무를 담당한다.


“자네가 이번에 장원급제한 정진호라는 사람인가?”


인사담당 좌랑 김윤식이 진호를 반갑게 맞이하며 물었다.


“예. 정진호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진호는 김윤식이 초면은 아니다. 사무실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까 사정전 앞에서 봤을 때보다 느낌이 다르다.

사정전 앞에서는 내로라하는 대감들을 세워 놓고 진행 사회를 봐서 엄청나게 높은 벼슬로 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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