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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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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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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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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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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80. 가족 망쳐놓기 下 - 12

DUMMY

민아 어머니를 비롯해 민아네 가족 일동이 내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민아 어머니는 내게 다가와 가볍게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이유로?"


나는 양손을 들어 손가락들을 이리저리 꼼지락댔다.


"선의든 악의든 서로 주동적인 자세를 갖추면 입장이 바뀔 수 있잖아요. 서로 동일한 목표를 가짐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면 각각의 선의와 악의를 본연이 드러낼 수 있을 거예요. 누구든 간에 선의와 악의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나는 손가락을 접어 오른손 엄지만 추켜세워봤다. 왼손처럼 마디마다 이곳저곳을 구부릴 수 있는 같은 부류의 손가락이었다. 민후 형과 민아 아버지는 서로 시선을 맞추는 중이었다. 민아 아버지의 머쓱한 표정에 민후 형은 가볍게 콧김을 내뱉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민아가 또다시 나를 노려볼 즈음, 민아 아버지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인 뒤 민아 어머니께 가까이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아까와는 다른 무안한 미소로 민아 아버지의 얼굴을 가득 채웠다.


"당신, 내가 잘못했어."


민아는 놀란 듯 '아빠!'라 크게 소리쳤다. 민아 아버지는 아랑곳 않고 민아 어머니의 손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애아빠."


"가족에 무심한 아버지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 그래서 민후와 민아를 이용해 당신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놓았던 거야. 당신을 밉보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


"그럼 웹튼 먼가는 대체 뭐야?"


"당신 드라마 많이 봐서 알잖아. 웹툰은 어디까지나 창작에 불과해. 작가의 손에 흘러가는 단순한 스토리일 뿐이라고. 민후가 쓰는 웹툰이 사실을 표방했다면, 과연 강연이가 나와 우리 가족을 중재해주는 장면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민후는 이미 강연이를 만나기 훨씬 전에 웹툰의 마지막 부분을 그려냈는 걸."


민아 어머니는 잠깐 동안 벙찐 표정을 짓다 고개를 저어 댔다.


"왜 안돼? 당신이 이런 계획을 꾸몄단 걸 모자 쓴 학생한테 말했으면 가능한 일이잖아!"


민아 아버지는 오달진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안타깝게도 민후가 생각한 결말은 이런 게 아니야. 빗겨나가도 너무 나갔어."


"그럼 대체 결말이 뭔데?"


이에 민아 아버지는 민아 어머니께 양손을 내며 살짝 거리를 두었다.


"아직은 말해줄 수 없어. 할 일 끝내고 나서 다시 얘기해줄게."


민아 아버지는 몸을 돌려 민아 앞에 자리를 잡았다. 민아는 고개를 들어 민아 아버지와 눈을 맞춰갔다.


"아빤 잘못한 거 없어. 나한테 사과하지 마!"


이에 민아 아버지는 민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왜 없겠어? 맨날 일 바빠서 우리 딸 생일날마다 제때 있어주지 못했잖아. 늘 가슴속에만 담아뒀지, 민아에게 행동으로 보여줄 수 없었잖니."


"상관없어. 아빤 최선을 다한 거야. 내가 먹고 싶은 케이크를 아빠가 항상 사줬잖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민아의 다소곳한 자세를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옆에 민아 어머니가 있기 때문에 표출할 수 없었을 뿐이다. 미로에게도 보였던 저 소박한 자세는 언제 봐도 매치가 안 되어 신물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그저 가족애라는 생각에 진득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민아 아버지는 발걸음을 옮겨 민후 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민후는 뭐 다 미안하지. 웹툰 그릴 때 더 많이 밀어줬어야 했는데."


"괜찮아요. 제가 당시에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았고, 아마 그때 밀었어도 제 몸이 따라주질 못했을 거예요."


"말은. 성공해서 망정이지."


"그러니까요."


민후 형과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동안 많은 대화를 나눈 덕분에 서로 입이 트인 것이다. 민후 형은 주변 눈치를 보며 몸을 들썩였다. 자신의 차례가 왔단 걸 직감한 듯 보였다.


"아버지..."


민후 형은 잠시 민아 어머니 쪽으로 시선을 흘겼다. 그 후 고개를 애써 젓는 듯한 뉘앙스를 취했다.


"진열장, 그때 깨부수지 말았어야 했는데."


'잠깐!'


나는 예상치 못한 접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열장은 민아에게만 꽁꽁 숨겨두었던 비밀 중에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민아 어머니는 창백해진 혈색으로 민후 형을 바라보았다. 민아 아버지의 반응도 어떨지 몰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으이그. 다 커선 정말."


민아 아버지는 민후 형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이어갔다. 분위기에 맞춰가는 게 아닐까 생각하던 중 민아 아버지가 아까처럼 민후 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양손으로 거칠고 빠르게 휘저은 탓에 민후 형의 머리가 이리저리 산발이 되어갔다.


"분당에서 치킨 뜯어먹을 때랑 똑같은 표정이네 참. 회의하면서도 계속 마음속에 쟁여놨던 거야?"


'뭐?'


내가 놀랄 새도 없이, 민후 형은 양손으로 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민아 아버지와 시선을 맞춰갔다.


"아버지께서 먼저 그 얘길 나누실 준 몰랐으니까요. 깜짝 놀랐다구요."


"그걸 모를 리가 있겠어? 됐어! 다 지난 일인걸. 그때 이상으로 진열장이 꽉 차있으니까 여한도 없고. 그냥 잊어버려."


"네."


얘기를 다 듣고 나서야 나는 맥락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 있었다. 분당에서 얘길 했다는 것은 곧, 민후 형이 민아 아버지와 다시 만나 웹툰 제의를 받았을 즈음일 것이다. 그때 민아 아버지가 진열장에 관한 얘기를 꺼냈고 민후 형이 예기치 못한 반응을 보여 흐지부지되었던 것이다. 결국 진열장에 관해 몰랐던 건 민아 어머니 혼자였던 것이다. 머지않아 민아 어머니가 발 벗고 나서려는 걸 민아 아버지가 다가와 말리려 들었다. 나는 오른손 검지를 왼손 손바닥에 얹어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엄지만 빼고 다른 모든 손가락들이 검지를 감쌀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틈을 타 민후 형은 민아에게 다가가 나긋한 미소를 지어 보냈다. 민후 형의 보라색 컬러렌즈가 민아의 초록색 컬러렌즈와 대치되어 묘한 느낌을 주었다. 민후 형은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민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한 부탁은 너무나 이기적이었어."


"그렇지 않아."


"아니. 소원이란 명분을 이용해 민아 너를 불편하게 만들기만 했어. 정말 미안해."


민후 형은 자세를 꿇어 민아의 왼손을 양손으로 가볍게 감싸 안았다.


"앞으로는 민아한테 부담 주는 부탁은 하지 않을 거야. 약속해."


"오빠..."


민후 형은 민아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지난번 민아와의 부탁을 연상케 하는, 그러면서도 다른 기로에 놓인 순간이었다. 민아는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내어 민후 형과 다시 한번 약속의 고리를 만들어냈다. 민아는 조금씩 굳은 표정을 풀어가며 민후 형과 대면해갔다.


"소원, 이뤄줘서 고마워."


"아직이야. 이제 앞을 봐야지."


그렇다. 이제 가장 큰 고비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저 숨죽인 채 민후 형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민후 형은 망설임 없이 민아 어머니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중이었다. 아직 민아 어머니의 화가 제대로 풀리지 않을 터라 긴장감은 더욱 배가되어갔다. 민후 형과 민아 어머니가 시선을 마주친 순간 나는 민아 아버지 바로 뒤쪽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민아도 발걸음을 옮겨 어느새 민아 아버지 우측 뒤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민아 어머니가 민아 아버지의 손길을 뿌리칠 동안, 민후 형은 이전처럼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는 중이었다. 신중함도 필요할 상황이긴 하나 좀 의외의 반응이었다. 어머니의 행실을 포용하고 사과한다면 자신의 신념이 헛되었단 걸 인정하는 꼴이 될 거라 생각하는 걸까 싶었다. 그것도 잠시, 민후 형은 가볍게 심호흡을 이어가다 짧게 실소를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와 어머니는 보류해야 될 것 같아요."


'?'


내가 눈을 수시로 깜빡일 동안 민후 형은 민아 어머니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허리춤에 손을 얹은 당당한 모습으로 말이다.


"제가 어머니께 사과를 드리면 어머니의 행실에 반한 제 잘못이 될 테고, 어머니께서 제게 사과를 드리면 제 행실에 반한 어머니의 잘못이 될 테니까요. 어찌어찌 말해봤자, 서로의 상반된 의견만 나누는 꼴이란 거죠. 그럴 바에 서로 시간을 두고 다시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나를 비롯한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민아 아버지는 아예 민후에게 가까이 붙어 언짢은 표정을 짓기에 이르렀다.


"민후야, 갑자기 그게 무슨 뜻이니?"


"말 그대로예요. 어차피 이사할 때 저 부를 거잖아요. 그때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서로의 생각이 좀 맞아떨어질 때 사과를 하는 게 질적으로도 더 좋지 않을까 싶은 거죠. 물론 저와 어머니 간의 사과만 해당되도록 말이죠."


민후 형은 찰나에 나와 대면해 가볍게 눈짓을 보여주었다. 분위기에 익숙해진 걸까? 나는 단박에 민후 형이 사사하는 바가 뭔지 알아챘다. 어차피 민후 형이 원하는 목적은 민아에 국한되어 있을 뿐, 현시점에서 민후 형과 민아 어머니가 괜히 어정쩡한 상황 속에서 언쟁을 벌일 이유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양손 엄지와 검지로 가위 모양을 만들어 다른 손의 다른 손가락끼리 연결해 네모난 직사각형 모양을 만들어보았다. 마치 카메라 동작을 연상케 하는 구도에 나는 직사각형 빈 공간을 얼굴에 가까이 붙여 앞에 보이는 장면을 카메라로 찍는 듯한 시늉을 보였다. 민후 형은 장면 안에서 클로즈업되더니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강연이 네가 생각하기엔 어때?"


나는 바로 손동작을 푼 뒤 민후 형과 제대로 대면해갔다. 틀을 깨보니 민아네 가족 모두의 시선이 내쪽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음, 어머님도 괜찮다고 하시면 요건 넘어가도록 할게요."


이후 일동의 시선은 민아 어머니 쪽을 향했다. 민아 어머니는 서로의 시선에 인상을 쓰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축 늘어뜨렸다.


"그러든가. 나도 얘 하고 힘 빼긴 싫으니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머님이 아버님께 사과하는 걸로 재개하도록 하죠."


"뭐?"


민아 어머니가 어찌할 새도 없이 민아 아버지는 팔짱을 낀 채 민아 어머니를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민후만 넘어간 거니까. 이제 당신 차례야."


"아니 내가 당신한테 뭘 사과할 게 있다고..."


민아 어머니는 민아 아버지의 변치 않는 표정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눈 하나 깜빡임 없이 민아 어머니를 지그시 바라보는 모습이 진지하면서도 부담스러워 보였다. 결국 민아 어머니는 고개를 살짝 숙이는 시늉을 보이다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양팔을 살짝 들어 의연한 표정을 지어갔다.


"가벼운 걸로 하셔도 돼요. 속죄한다는 느낌이 아니니까요."


"말이 쉽지. 애들 보는 앞에서 어떻게 말하니?"


"사과가 뭐 대수입니까? 그저 서로 얘기를 나누는 것뿐이에요. 마음 편히 가지고 말씀해보세요."


민아 어머니는 제자리에 경직된 채 살짝 고개를 숙여 입을 오물거렸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는 걸까 싶던 순간, 민아 어머니는 어렵게 몸을 돌려 민아 아버지와 대면했다. 입술을 헐뜯는 것과 양손 꽉 쥔 주먹을 떠는 걸로 봐선 아직도 사과에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진 못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곁을 오랫동안 지켜온 배우자에게조차 말이다. 그럼에도 민아 아버지는 변함없는 미소로 다소곳이 민아 어머니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중재 역할에 가까운 실정이라 그저 팔짱 낀 채 둘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바깥쪽 시야로 선유가 조금씩 비쳤다. 선유는 이 상황을 멀리서 덤덤히 지켜볼 뿐 조금의 미동조차 보이질 않았다.


민아의 소원이 왜 이렇게 복잡한 전개를 밟아야 했는지 이제나마 조금은 공감이 되었다. 벌써 10분째, 민아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민아 아버지와 마주 보며 서있을 뿐 조금의 진전도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너머를 보니 밤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졌고 주변 사람들은 제갈길을 청해 하나둘씩 원형 스테이지 주변을 떠나갔다. 민아 어머니는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불규칙한 호흡을 이어갔다. 이 전개라면 그냥 모든 일이 흐지부지되길 기대하는 것밖에 되질 않았다. 민아가 도중에 나서 성내려던 걸 민후 형이 애써 제지하는 중이니 말이다. 나는 자세 변동 없이 주변을 둘러보는 데 집중해왔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이도 저도 못할 거라 직감했다. 팔짱을 풀어 행동에 나서려던 도중, 민아 어머니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학생, 이건 잘못된 생각이야."


"왜, 왜죠?"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냔 말이지. 내가 한 모든 것들은 다 가족들을 위해서 한 거지 내가 원해서 한 건 없으니까. 그런 나한테 사과를 주진 못할지언정 내가 또 사과를 하라고?"


'네?'


입으로 내뱉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 말은 즉슨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을 거의 묵살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단 뜻이었다. 민아와 민후 형도 반응에 경악한 나머지 방금까지 실랑이를 벌이던 걸 멈춘 채 민아 어머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애써 이성을 잡고 민아 어머니께 의연한 표정을 지어갔다.


"그래서 서로 사과를 주고받고 그러는 거잖아요. 가족끼리 서로 불편했던 점들을 얘기하고 바꿔가잔 뜻에서요."


"아니, 난 잘못한 게 없으니까 사과할 필요가 없단 거지. 내가 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가족들한테 사과를 해야 되는데? 나만 바보 되라고?"


'헉...'


나는 결국 말문이 막힌 채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그 순간 우측 바깥 시선 너머로 누군가의 주먹이 우는 걸 발견했다. 눈동자를 굴려 확인하니 민아 아버지가 보이는 행동이었다. 배려가 무참히 짓밟혔단 걸 몸소 보여주는 꼴이었다. 하지만 민아 아버지가 여기서 화를 내면 안 되는 구도였다. 그렇게 되면 진짜 이 방식은 도중에 완전히 끝장나는 꼴이었다. 가족 간에 해를 끼치는 행동은 반드시 막아야만 했다.


민아 어머니가 조금씩 자리를 뜨려는 모습에 민아 아버지는 벌어지는 만큼 민아 어머니에게 다가가려 했다. 이에 나는 한 발 앞서 민아 어머니 바로 앞으로 다가가 가던 길을 막아섰다. 민아 어머니는 내게 고개를 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됐어. 지들 알아서 잘 살라 그래."


"진짜 재수 없네요."


내 언성 높은 발언에 민아 어머니는 놀란 듯 제자리에 멈춰 섰다. 뒤에서 손을 꼼지락대던 민아 아버지는 물론, 민아와 민후 형마저 내 행동에 놀란 표정이었다.


"하, 학생? 지금 뭐라고 했니?"


"진짜 재수 없다구요! 망할 아줌마!"


나는 미간을 거세게 찌푸리며 민아 어머니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맥락을 피하려 드는 민아 어머니도 내 살의 깃든 시선은 피하려 들지 못했다. 내가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전진할 때마다 민아 어머니는 당황한 몸짓으로 뒷걸음질 칠 뿐이었다. 멀리서 선유가 보고 다가오려 하자 나는 검은색 모자챙을 왼손으로 가볍게 쳐댔다. 스스로 해결하겠단 사인이었다.


"장난쳐요? 남들 다 진지하게 임하는데 혼자 잘났다고 아주 난리를 치시네요. 제가 분명히 가볍게라도 사과해보자 얘기했어요? 안 했어요? 네에?!!"


내가 발걸음을 멈춰 서야 민아 어머니는 매서운 눈초리로 나와 대면할 수 있었다.


"얘가 어디서 어른한테 큰소리야! 어렸을 때 교육 잘못받았어?"


"그건 제가 할 소리인 걸요."


나는 더욱 가까이 붙어 모자챙으로 민아 어머니의 이마를 힘 있게 눌러댔다. 민아 어머니는 내 돌발 행동에 당황한 나머지 제자리에 경직되어 내 시선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민아 어머니의 시선상, 마스크로 인해 눈매 쪽에 시선이 더욱 강조되어 보일 것이다.


"선의랑 악의도 구별 못하시는 거예요? 남한테는 악의로 보일 수 있는 일들이 아줌마 선의로 치부되면 다인 줄 아세요? 지만 좋고 남이 안 좋으면 남이 잘못한 거겠네요? 그렇겠네요? 안 그래요?"


내 역동적인 눈동작에 민아 어머니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눈두덩을 심하게 떨며 입을 다물지 못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언성을 낮춰 공깃소리로 짧게 '하나 둘 셋'을 여러 번 읊어갔다.


"아줌마가 저지른 악의, 제가 말해볼까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안다고..."


"말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요. 아니, 아마 가족들은 다 알고 있는데 아줌마만 모를 껄요?"


민아 어머니의 창백해진 얼굴색과 함께 내가 입을 열려는 순간, 양쪽에서 나와 민아 어머니를 떨어뜨리려 안간힘을 썼다. 내쪽은 민후 형이, 민아 어머니 쪽은 민아 아버지가 자리 잡은 상태였다.


"민후 형?"


민후 형은 곧잘 내게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어댔다.


"그만해 강연아. 이건 아닌 것 같아."


"하지만."


"내 실수야. 서프라이즈를 이용한 방법이 신통지 못했던 것 같아."


민후 형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내 팔을 놓으려 하질 않았다. 너머로는 민아 아버지가 다시 의연한 표정을 지으며 민아 어머니와 가벼운 실랑이를 벌였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겨우 이성을 차렸던 것이다.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 왜 내가 사과까지 해야 돼?"


"진정해 당신. 당신이 억울하게 나서면 괜히 우리만 더 무안해지잖아."


"아니 억울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걸 말하는 거라니까? 왜 나만 갖고 그래..."


민아 어머니는 급기야 제자리에서 눈물을 터트렸다. 아예 얼굴을 가려 흐느끼는 모습에 민아 아버지는 민아 어머니를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이렇게까지 해도 민아 어머니의 사과를 진정성 있게 받을 수 없단 게 내게 있어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떠한 전개든 간에 민아 어머니에게 치사하게 보이도록 재구성되어 찝찝한 사과를 받는 결말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마음 같았다면, 나는 민아 어머니에게 도박장 얘기를 면전에 내뱉었을 것이다. 그게 가장 효과적으로 문제를 인지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 순 없었다. 그랬다면 이 모든 작전이 산산조각 나 돌이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잠깐의 소강 시간 동안, 나는 자리에서 빠져나와 선유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자세히 보니 선유도 우리가 지었던 표정과 별반 다를 거 없이 상황을 두루 보는 중이었다.


"강연아, 아까부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하, 이젠 나도 모르겠어. 당최 마무리가 되질 않아."


나는 모자챙을 살짝 들어 이마에 맺힌 땀을 손으로 가볍게 털어댔다. 더운 날에 내뿜는 열기는 내 모자와 마스크 주변을 적시기 충분한 양이었다. 선유는 민아네 가족이 있던 곳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민아 부모님 배치는 그대로인 채 민아와 민후 형이 가볍게 얘기를 나누는 듯 보였다. 선유는 손에 턱을 괴며 어렴풋이 인상을 썼다.


"이게 민후 형이 원했던 웹툰 결말인, 거겠지?"


"아니. 저건 완전히 잘못 빠진 케이스야."


나는 모자챙을 가다듬으며 선유 옆으로 다가섰다.


"원래 생각한 건 다른 거였는데 진행이 안되니까 내가 나서서 손 좀 보려 했었거든."


"그럼 왜 웹툰 연재 시간이 늦춰진 거야?"


"민후 형이 아직 결정이 서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래도 이번 일만 잘 마무리짓고 올릴 생각이었던 것 같아."


그 후 나는 휴대폰을 꺼내 화면에 띄워진 21시 정각 폰트를 확인했다. 이 피 말리는 싸움도 어느새 한 시간이 넘게 소요되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부터 몸 전체를 스트레칭하며 선유와 대면했다.


"또 가려는 거야?"


"응, 마무리지을 건 짓고 와야지. 오늘 완전히 녹초가 되겠는걸."


"나도 좀 나서서 얘기해볼까?"


이에 나는 모자챙을 다시 한번 가볍게 쳐냈다.


"곤란해져도 내 선에서만 곤란해지고 싶어. 갔다 올게."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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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73. 가족 망쳐놓기 下 - 5 20.12.26 35 1 15쪽
73 72. 가족 망쳐놓기 下 - 4 20.12.20 29 1 12쪽
72 71. 가족 망쳐놓기 下 - 3 20.12.12 38 1 15쪽
71 70. 가족 망쳐놓기 下 - 2 20.12.11 3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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