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일반소설

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4,843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1.01.02 23:30
조회
36
추천
1
글자
12쪽

74. 가족 망쳐놓기 下 - 6

DUMMY

양호실에서 상처를 치료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상처 난 부위에 커다란 밴드를 붙인 뒤 조심히 양호실을 나왔다. 미로는 근처 복도 쪽 벽에 붙어 발을 동동 구르며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양호쌤이 뭐래요?"


"원체 약했던 부분이 터져서 그냥 여드름 연고 덕지덕지 바르고 왔어."


미로는 내게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양호실 옆 벽거울을 보며 밴드가 어떻게 붙었는지 살펴보았다.


"선배 괜찮겠어요? 다음 주면 그, 코스프레잖아요."


"꼴이 안 된다면 흑기사 투구만 죽창 쓰고 있을 거야. 그래도, 나름 관리하고 있으니까 경과를 지켜봐야지 뭐."


이런 결과가 될 걸 어렴풋이 예견하곤 있었다. 여름날 차는 검은 면 마스크는 땀을 그대로 먹어 내 피부의 악영향을 끼치기 바빴다. 이제는 턱 라인마다 하얗게 곪은 여드름으로 가득했다. 미로는 내 옆으로 다가와 거울 우측 부분을 바라보았다.


"선배 아직도 마스크 재활용하시는 거예요?"


"응. 같이 빨래하기 편하니까."


이에 미로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는 당분간 면 마스크 쓰지 말아야겠어요."


"그래서 민낯이잖아. 그 망할 계집들 때문에 이게 뭔 난리인지."


나와 미로는 그렇게 얘기를 주고받으며 강당 쪽으로 발을 맞춰갔다. SD카드를 다시 CCTV에 넣는 동안도 우리는 SMK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기 바빴다.


"그냥 이렇게 된 거, 얼굴을 확 까발리는 건 어떨까요?"


"어차피 관계 여론 생기면 들키니까? 근데 그러고 싶질 않네."


나는 CCTV 커버 나사를 모두 조인 뒤 잘 붙었는지 손으로 가볍게 툭툭 쳐보았다. 그 순간, 나는 예전 기억들에 우후죽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미로야."


"왜요 선배?"


"SMK 계집들, 아직도 은정이 싫어하고 그러나?"


"은정이요? 아마, 그럴걸요?"


미로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SMK 채팅창을 둘러보았다.


"최근에 얘기한 적도 없네요. 그런데 은정이는 왜요?"


"은정이 걔, S&M 시절에도 미움받고 그랬어?"


"아뇨?"


미로의 대답은 무척이나 단호했다. 미로는 희번덕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색해진 분위기에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피하려 들었다.


"딴 건 아니고. 내가 은정이 완장 뺏는 거 본 목격자들 있잖아. 걔들은 은정이를 싫어하지 않았으니까 날 상대로 덤볐을까 싶어서."


이에 미로는 푸흡 소리를 내며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더 머쓱해져 아예 얼굴을 옆으로 돌려버렸다.


"죄송해요 선배. 그건 S&M 시절 종특이에요, 종특."


"종특이라고?"


"네. 그때 S&M, 선유 선배 파하고 제파로 채팅창에서 맨날 싸워댔는데. 정작, S&M 일원이 위협을 당하면 단체로 나서서 따지려 드는 거 있죠?"


"그때나 지금이나 계집들은 계집들이었단 거네."


나는 잠깐 시선을 틀어 강당 정문을 향했다. 저 안에선 윤미 선배가 회장 선배와 개표지를 분류하고 있을 것이다. 해가 중천에 뜬 터, 나는 상황을 마무리짓고 학교 본관으로 향했다. 미로는 잠깐 내 모습을 지켜보다 내 옆으로 다가왔다.


"왜요 선배. 은정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그냥. 불현듯 떠올라서 물어봤어."


미로라면 은정에 관한 얘기를 긴밀하게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은 아니다. 여름방학 전까지 이어지는 스케줄은 오직 내게만 주어진 걸림돌이다. 정해놓은 방식대로 밀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2층에서 미로와 헤어진 뒤 나는 중간 계단에 올라 창가 너머로 떠오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뭉게구름이 강한 바람을 타고 빠르게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다음 날, 학교 공지 채팅방에서 1번 후보가 전교 회장에 당선되었단 교지가 올라왔다. 동수가 전교 회장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표 차이는 불과 20표 차. 엄청난 접전 속에 나도 2번 후보를 투표해 불을 붙여놓았으나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이걸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난 건 아니었다.


"오늘 샌드위치 잘 구워졌는데?"


내가 냉장고 문에 몸을 기대 휴대폰을 볼 동안 아버지는 식탁에서 막 구운 계란 베이컨 샌드위치를 한입 크게 먹는 중이었다. 맞은편에는 구운 식빵에다 민트 초코 스프레드를 발라먹는 누나가 있었다. 아버지는 입 주위에 빵가루를 한껏 묻힌 채 몸을 돌려 부엌을 둘러보았다.


"강연아! 아침 안 먹어?"


아버지는 혀로 입 주위를 닦으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아까 미숫가루 타 먹었어요."


"에이, 무리하게 몸 관리하면 탈 나."


"식욕이 없어서요. 피부가 이러니까 자꾸 거울만 보게 되네요."


나는 아버지 옆 의자에 앉아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상처 부분은 조금씩 흉터가 딱지지고 있었다. 누나는 빵을 오물오물 씹으며 날 지그시 바라보았다.


"강연이 얼굴 소보로빵 같아."


"누나가 봐도 그래? 하, 여름방학이나 빨리 왔으면 좋겠다."


얼굴에는 손댈 순 없어 나는 고개만 뚝 떨군 채 휴대폰 카메라로 내 얼굴을 둘러보았다. 잠시 뒤 누나는 주변 자리를 정리한 뒤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우유를 담은 머그컵에 살짝 탄 인스턴트 아메리카노를 들이 부었다. 방식은 다르지만 참으로 많이 본 것만 같은 장면이었다.


"아버지 오늘도 오후 근무예요?"


"응. 저녁도 먹고 올 거야."


"그럼 카레 만들어 놓을 게요. 냉장고에 있는 소고기 따로 먹을 거 아니시죠?"


"우리 주방장이 있는데 내가 그러겠니?"


아버지는 오달진 미소를 지으며 나와 대면했다. 오늘따라 곱슬기 강한 머리가 이리저리 까치 져 앞머리가 오른쪽 눈을 대부분 가려댔다. 잠시 뒤 아버지는 손을 입 쪽에 대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강연아."


"왜요 갑자기."


"다연이랑 아정이 보러 간다며?"


"?!"


듣자마자 나는 놀란 나머지 의자 뒤로 넘어갈 뻔했다. 아버지는 곧잘 내 의자 등받이를 잡아주며 내 반응을 지켜보았다. 본능적으로 굴었던 터라 얼버무릴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걸, 어떻게..."


"하여튼. 강연이는 앞만 보고 다닌다니까."


나는 입을 꼭 다문 채 아버지의 머그컵 쪽을 바라보았다. 머지않아 아버지는 누나와 있었던 일들을 내게 말해주었다. 무더위로 미용실에서 쩔쩔맸던 시절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중요한 자료를 깜빡해 집에 돌아올 시점, 누나는 식탁에서 음식들을 둘러보았단 전개였다.


"뭐야? 다연이 지금 밥 먹는 거야?"


그때 누나가 뭣도 모르고 방으로 뛰쳐 들어가는 바람에 아버지의 의심을 사고 만 것이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누나를 상대로 집요한 접근을 이어왔던 것이다. 내가 시험공부로 방에 틀어박힐 때, 아버지는 누나와 가볍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연이가 미운 거야?'


'응. 자꾸 엄마한테 못되게 구니까.'


'아빤 강연이가 나쁘다고 생각 안 하는데. 그렇지 않고서 저리 열심히 공부하는데 빨래에 청소에 밥까지 빠짐없이 다 해주잖아. 몸져눕지 않은 게 기적일 정도야.'


'하지만...'


'강연이를 너무 미워하지 마.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나는 그제야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교문 근처에서 현기증으로 쓰러질 때 누나가 이를 봤기 때문에 거대한 촉매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근래까지도 누나가 아버지를 반기지 않았던 이유도 내게 최대한 시선을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아버지는 누나와 마주칠 때마다 나와 화해하도록 툭툭 건드려봤다 내게 말해주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던 거군요."


나는 허탈함에 몸을 뒤로 젖힌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말대로 나는 내 시야에서만 집중했을 뿐, 그 이외의 변수를 생각해내지 못했다. 해를 쫓다 그림자를 둘러보지 못한 격이었다. 아버지는 커피를 마무리지은 뒤 내 등을 토닥였다.


"강연이는 최선을 다했어. 애초부터 아정이가 광교에 입주할 줄 누가 알았겠니? 세상살이가 정말이지 순탄치 않아."


"그때 만나서 알게 된 거예요?"


이에 아버지는 조금은 창백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였다.


"우리 집 입주 절차 밟고 있을 때 알았어. 너랑 누나가 꼭 가고 싶었던 호수공원 쪽 아파트 있잖아. 거기 신규 입주자 명단 보니까 지헌이 이름이 딱 있더라고."


조지헌, 망할 아줌마의 현 남편 분의 이름이다. 아버지께서 입주 관련 얘기를 꺼냈단 건 망할 아줌마의 집이 호수공원 앞에 위치한 SS 클래스 아파트란 뜻이었다. 그곳은 오래전부터 나와 누나가 점찍어놓은 꿈같은 아파트 중 하나였다. 2년 전 가을, 누나는 집에서 SS 클래스 아파트의 조감도를 보며 나와 여러 환상에 찬 얘기들을 주고받았었다.


'강연아. 겨울이 되면 호숫가에서 스케이트 탈 수 있는 거지?'


'누나 그건 위험해.'


'잉, 왜애애. 이렇게 넓은데.'


'안 된다니까. 그래도, 한번 가보고 싶긴 하다. 아버지께서 어디로 계약하실까?'


아버지는 당시 기억들을 돌이키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과적으로 망할 아줌마 때문에 우리가 꿈꿔왔던 집 대신 차선책을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억하기론 당시 우리 집과 그 집의 가격대가 비슷하게 책정되어 있었다. 나는 뭐라 성질을 내보고 싶었지만 침울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금방 이성을 되찾아갔다. 그 후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주변을 둥글게 누벼댔다.


"어차피, 부동산 싸움으로 보면 우리가 이긴 장사잖아요. 이것도 나쁘진 않은 걸요?"


아버지는 내가 이리저리 맴도는 모습을 잠자코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어렸을 적 자주 했던 막춤을 이어갔다. 손동작을 가볍게 다루면서 새가 나는 것만 같은 동작은 어렸을 때나 변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는 익숙한 내 동작에 가볍게 손뼉을 쳐주었다. 망할 아줌마가 떠난 직후,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시작했던 이 춤이 다시 효력을 발휘할 때였다.


"가격, 좀 많이 오른편이야?"


"지금 11억대 돌파한 상태예요. 부동산 분들이 말하시길 이 페이스면 작년에 찍었던 12억 5천도 돌파할 수 있을 거래요."


말이 차선책이지, 이 도박 같은 아파트 구매는 우리 인생을 크게 바꿔놓았다. 부동산 장사꾼의 입담에 눌려 3억 5천이라는 무거운 대출금을 딛고 8억 5천에 매매 아파트를 구매한 아버지께 차익 시세 0을 넘어 흑자의 벽에 올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에 반해 SS 클래스 아파트는 근래 부진을 연이은 끝에 10억 선마저 붕괴되었단 정보를 듣게 되었다. 호수공원 특유의 습한 환경이 아파트에 영향을 끼친단 이유 때문이었다. 부동산 분들도 SS 클래스 아파트 거래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안 좋은 전망을 점쳐댔다. 나는 흥에 겨워 춤을 이어가다 갑자기 빈혈 증세를 보이며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직 시험 후유증이 제대로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아버지는 내 모습을 보며 까르르 웃어댔다. 나도 텐션이 올라가 아버지께 오달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마 누나도 문 근처에 숨어 웃음을 참고 있을 것이다. 누나 방 문에서 작게 툭툭 치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제 미련으로 담아둘 일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 뜨는 달에 맞설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민후 형으로부터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마지막 약속 장소는 호수공원 전망대야. 가서 뒤풀이나 해보자고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2부작이 완결될 시, 작품이 전체적으로 재조정될 예정입니다. 모든 화수마다 배경 이해에 좋을 라스트 카드를 기재할 예정입니다 ^^ 변변치 않은 작품을 봐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배같은 동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소설 외전 삭제 및 3부 작품 연재 계획 안내입니다. 23.02.01 8 0 -
공지 통산 100화 연재까지 봐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1.08.25 17 0 -
공지 연재 조정 안내드립니다. 21.08.09 16 0 -
공지 금일 연재 조정 안내드립니다. 21.06.14 13 0 -
공지 외전 방식 변경 안내 드립니다. 21.05.13 22 0 -
공지 몇 주간의 수정 작업이 있겠습니다. 21.03.04 22 0 -
공지 연재 조정 안내 드립니다. 21.02.15 21 0 -
공지 라스트 카드 작업에 대한 안내입니다. 21.01.30 22 0 -
공지 '배같은 동생' 작품 개시까지 어언 1년이 지났습니다. 21.01.15 25 0 -
공지 조회수 2000 돌파 감사드립니다. 20.12.12 24 0 -
공지 금일 연재 조정 안내드립니다. 20.09.14 25 0 -
공지 금일 연재 조정 안내드립니다. 20.08.17 25 0 -
공지 연재 보류에 관한 안내 드립니다. 20.04.10 37 0 -
공지 연재 차질 안내드립니다. 20.02.22 40 0 -
공지 연재 방식에 대한 안내입니다. 20.01.17 36 0 -
85 84. 가족 망쳐놓기 下 - 16 21.02.27 41 1 22쪽
84 83. 가족 망쳐놓기 下 - 15 21.02.26 29 1 15쪽
83 82. 가족 망쳐놓기 下 - 14 21.02.26 30 1 14쪽
82 81. 가족 망쳐놓기 下 - 13 21.02.21 27 1 17쪽
81 80. 가족 망쳐놓기 下 - 12 21.02.21 37 1 20쪽
80 79. 가족 망쳐놓기 下 - 11 21.02.09 27 1 21쪽
79 78. 가족 망쳐놓기 下 - 10 21.01.31 29 1 14쪽
78 77. 가족 망쳐놓기 下 - 9 21.01.23 33 1 13쪽
77 76. 가족 망쳐놓기 下 - 8 21.01.18 38 1 12쪽
76 75. 가족 망쳐놓기 下 - 7 21.01.09 29 1 11쪽
» 74. 가족 망쳐놓기 下 - 6 21.01.02 37 1 12쪽
74 73. 가족 망쳐놓기 下 - 5 20.12.26 35 1 15쪽
73 72. 가족 망쳐놓기 下 - 4 20.12.20 29 1 12쪽
72 71. 가족 망쳐놓기 下 - 3 20.12.12 39 1 15쪽
71 70. 가족 망쳐놓기 下 - 2 20.12.11 37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