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 첫 오디션을 보다
6. 강우 첫 오디션을 보다.
송지원은 장규리에게 강우가 `진실의 가면"의
`강철봉` 역으로 오디션 본다고 전달하고
대표실로 돌아갔고 강우와 장규리는 3일밖에
남지 않는 오디션을 위해 강우의 연습실로 향했다.
"저.. 강우 배우님.. 저 코디인데요?"
키가 작은 장규리가 강우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래서요? 처음 인사 할 때 보니까 로드도 했던 거
같던데 아닌가요?"
"2년..정도.."
"그럼 됐네요."
"저.. 사실 일 못 해서 로드에서 쫓겨나고.
코디 팀에 가서도 구박받는데요..?"
장규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장규리는 강우가 고마웠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말했듯
자신이 강우의 앞길을 막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또 그렇게 자신이
상처받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강우가 눈높이를 맞추며 똑바로 바라봤다.
`와...무슨 눈빛이 이렇게 깊어..`
장규리는 움찔하면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강우의 말에
왠지 모르게 희망이 생겼다.
"전 제가 본 것, 제가 들은 것,
제가 느낀 것만 믿습니다."
3일 뒤 오디션을 보러 가는 차 안
"강우 배우님! 옆에 옷이 두 개 있어요~
하나는 슈트 하나는 그냥 캐주얼!
아무리 사이코패스지만 미친놈처럼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사이코패스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오히려 더 정상인 같은 사람이 많더라고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장규리는
강우를 향해 조금도 소홀함을 보이지 않았다.
반지하 원룸을 보고서도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았고
집과 연습실을 오가는 와중에도 강우가 불편함이 없었다.
연습하는 도중에 목이 마르면 어김없이 생수병을 건넸고
조금 출출하다 싶으면 어디서 났는지 간식을
꺼내 건네주었다.
그런 모습에 강우는 장규리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있었다.
"장 매니저님 죄송해요.. 제가 옷이 없어서..
일만 더 늘게 했네요.."
옷을 사고 극에 맞는 옷을 고르는 것에 익숙하지 않던
강우는 장규리에게 현금을 주며 오디션 때 입을
옷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었다.
"에이~ 아니에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하는 일인데요~
연습하신 대로만 하면 다들 놀라서
벌떡! 일어날 거예요!!"
장규리는 연습하는 강우를 보면서
진심으로 놀랬다.
`진짜 사이코패스인 줄.. 으윽..`
사이코패스를 연기하던 강우의 모습이
떠오르자 온몸에 소름이 올라왔다.
"참! 강우 배우님! 오늘 오디션에 심사를 PD랑 작가
그리고 조연출이랑 주연 배우로 확정된 김도훈 배우가
심사한대요!"
"그렇군요"
룸미러로 힐끗 본 강우의 담담한 모습에
장규리는 의아했다.
`뭐지..전혀 안 놀라지?`
김도훈 그는 데뷔 5년 만에 천만 배우가 되었으며
드라마만 했다 하면 평균 20프로의
시청률을 내는 배우였다.
그런 배우가 심사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신인은
걱정하거나 기대를 하는 것이 기본인데 강우는
그저 평온할 뿐이었다.
"김혜란 작가는 이번에 입봉 하는 건데 이철식 PD는
KJH 방송국에서 알아주는 PD래요.
`사랑의 악마` PD 였고요
PD님이나 김도훈 배우 앞에서 긴장만 하지 않고
우리 배우님 연기만 보여주면 분명 합격할게욧!"
"괜찮아요. 셋 다 누군지 몰라서"
강우의 무심한 말에 장규리가 잡은 핸들이
살짝 흔들렸다.
"모른다..구요..?"
"네"
`어? 어떻게 모를 수 있지? 배우 한다는 사람이
김도훈 배우를 모르고.. 25프로 찍은
드라마 PD도 모르고..아..`
"도..도..착했어요"
장규리는 여러 배우들과 몇 번을 오디션장에 오면서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긴장감이
온몸에 깃들기 시작했다.
KJH 방송국 내 제4 소회의실 옆에 마련된 대기실에는
오디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인해 후끈한 열기가 맴돌았다.
오디션장으로 지정된 제4 소회의실에는 4명의 남녀가
저마다의 생각들을 하면서 오디션을 보고 있었다.
이철식 PD, 그는 KJH 방송국 PD 7년 차로 주로 평타만
치던 드라마만 찍다가 저번 `사랑의 악마` 에서
25프로라는 수목 드라마 1위를 달성한 후 방송국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다.
`어차피 강철봉 역은 S&M의 젝슨이 맡기로 한 건데..
입봉 작가 하나 때문에 오디션이라니..
그냥 쉽게 쉽게 가지..`
다른 주·조연은 의견 차이가 없었지만, 김혜란 작가는
`강철봉` 역 만큼은 얼굴이 알려지지 않는 사람으로
하고 싶다며 오디션을 고집했다.
캐스팅에서 대부분 제작사나 감독의 의견을 들어주던
작가였기에 제작사나 방송국 측에서는
한발 양보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철식 PD와 주연 배우 김도훈은 이미
김도훈의 사촌 조카인 S&M 엔터의
인기 남자 아이돌 `카오스`의 젝슨을
`강철봉` 배역으로 입을 맞춘 상태였다.
김혜란 작가는 이번에 입봉 하는 작가로 30살의
나이에도 20대 중반처럼 보이는 여자였다.
`강철봉 만큼은.. 제발..`
김혜란 작가는 주연도 조연도 아닌 4화 동안
단 두 장면 나오는 사이코패스 `강철봉` 배역에
공을 들였다.
그의 전반과 후반을 나누면서도 임팩트 있는..
심지어는 그녀는 `강철봉` 연기하는 배우의
역량에 따라 4화 이후 대본을 두 종류를 준비했다.
원하는 배우를 못 찾으면 4회에서 끝으로 주연이 극을
이끌어 가게 되겠지만, 드라마 속의
`강철봉`에 맞는 배우가 나타난다면
극 중반부터는 `강철봉`은 단역이 아닌
주연과 조연 중간쯤의 위치가 될 것이었다.
드라마의 극적인 반전을 위해 제발 잘 알려지지 않는
배우 중에 `강철봉`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도훈은 무관심한듯 하면서도 김혜란 작가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예쁘장하게 생겼네..입봉 작가라..
크크크 나에게 고맙다며 매달리겠네. 크크크`
"오디션 시작하겠습니다."
이석 조연출의 말에 오디션이 시작되었다.
김혜란 작가는 십여 명의 배우들을 심사하는 동안에도
자신의 욕심을 채워 줄 만한 배우가 없자
아쉬운 한숨만 삼켰다.
`하.. 너무 욕심부렸나..`
"이제 한 명 남았는데 마음에 드는 배우가 없나 보네요?
정 없으면 제가 괜찮은 놈 하나 소개해 드릴게요"
옆에서 계속 김혜란을 힐끔거리던 김도훈이 말했다.
"네..뭐.. 그때 가서 생각하고 마지막 배우 볼게요"
김혜란은 김도훈이 오디션 동안 배우들에게 관심도
가지지 않고 무성의한 모습에 실망했고
한 번씩 눈이 마주칠 때마다 왠지 모를
소름이 느껴졌다.
"17번 참가자 들어오세요."
조연출의 말에 김혜란은 제발 제발 하는 마음으로
두 주먹을 꾸욱 쥐었다.
강우는 오디션장에 들어가자마자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고개도 들지 않고 눈을 반쯤 감고 있는 남자,
다리를 꼬고 앉아 휴대폰만 만지고 있는 남자,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을 자신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여자
무신경하게 카메라만 만지고 있는 남자.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 이였지만
강우는 그 모든 것을 무시했다.
"안녕하십니까. 강우입니다."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는 강우의 목소리에
김혜란의 더욱 눈빛이 강렬해 졌지만 반대로
이철식 PD는 표정이 좋지 않아 졌고
김도훈은 눈썹이 올라가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다야? `잘 부탁드립니다`
이건 어디에 말아 드셨나?
내 드라마 하고 싶어서 온 거 아냐?
내가 누군지 몰라? 신인 주제에 말이야!"
"워워 진정하세요. PD님 그래 그쪽도
너무 좀 버릇없는 거 아냐?
좀 더 깍듯하게? 응?"
김도훈은 강우에게 말하면서도 매니저 석에
앉아있는 장규리만 쳐다보고 있었고
이철식PD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주제에라... 그쪽... 이라...`
강우는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자신이 살아온 동안
겪었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누군지도 모르고
깍듯하게 대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철식 PD와 김도훈은 그 말에
죽일 듯이 강우를 쳐다봤다.
그리고 좀 전의 PD와 김도훈의 말에 망했다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김혜란은 고개를 획 들었다.
"뭐? 뭐? 나를 몰라? 하 어디서 이런 게..
그리고 김도훈 배우 몰라? 천만 배우 김도훈?
너보다 까마득한 선배에게 깍.듯.하.게.
예의 차리는 게 기본 아닌가?"
이철식이 버럭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르는 사람을 모른다고 하고 천만 배우든
만만 배우든 제가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무슨 선배입니까?
그냥 연예인과 일반인 아닙니까?"
"아니 이런 씨발놈을.."
이철식이 뭐라고 더 말을 하려고 하자
김도훈이 말렸다.
"그럼 여기 뭐 보고 오디션 보러 왔어?"
"극본이 좋아 왔습니다."
강우의 말에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이철식이 책상을 쾅! 내려쳤고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나가! 내 드라마에 너 같은 새끼 필요 없어!"
"네"
김혜란의 아쉬워하는 모습을 발견한 김도훈이
다시 이철식을 말렸다.
"얼마나 연기에 자신이 있어서 저러는지
한번 보기는 하죠.
우리 작가님이 원하는 거 같은데"
"그래요 강우 씨 여기까지 왔는데
연기 한번 해봐요. 부탁할게요."
강우는 김혜란과 눈을 마주치고셔야
오디션장에 있는 사람들이 누가 누구인지 알았다.
다른 배우들은 작가가 누구이며 감독이 누구이며
주인공이 누군지 조연들은 어떤지를 많이 따졌지만
강우는 그런 것도 상관없었다.
강우는 박주미와 장규리와의 대화에서 드라마는
작가빨 영화는 감독빨 이란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하지만 강우의 생각은 달랐다.
잘나가는 감독도 좋은 시나리오를 만나지 못하면
망하는 법이고, 잘나가는 작가라도 대본이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작가도 사람인지라 실수는 있는 법, 강우는 감독의 명성,
작가의 머릿속에 맴도는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완성된 시나리오, 대본만 믿었다.
그래서 강우는 감독이 누구인지 작가가 누구인지
누가 주인공인지 관심 없이 오직 `강철봉`이라는 배역이
마음에 들어 오디션을 보러 온 것이었다.
`그냥 나가려고 했는데.. 저 여자가 작가인가 보구나..
그래 뭐.. 좋은 작품 만나게 해준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자..`
강우는 돌아와 오디션을 위해 준비해둔
테이블에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강우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자 오디션장의
분위기가 왠지 스산하게 변했다.
강우가 입을 열었다.
"크크크 그래 내가 했어 캬~ 칼이 쑥 들어갈 때
그 쾌감! 이봐 형사님? 그 기분 알아?"
김혜란의 온몸이 소름이 돋았다.
고개를 숙이고 속삭이듯 말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강우의 눈빛은 살인자의 눈빛 그 자체였다.
`아.. 미쳤다..`
"김신욱은 멈칫하다 다시 강철봉을 쳐다본다"
조연출의 지문에 다시 강우의 대사가 이어졌다.
"하하하 내가 그렇게 말하길 기다리고 있었죠?
왜? 내가 범인 이였음 하니까? 어쩌나 난 아닌데?"
강우의 대사는 지극히 가벼웠지만 눈빛만큼은
오디션장을 얼어버릴 만큼 차가웠다.
"모든 증거가 너를 가리켜! 네가 범인이야!
어서 불어! 이 새끼야! 손가락들은
어디에 숨겼어?!"
조연출의 건조한 대사 이어졌지만 강우의
감정선은 끊어지지 않았다.
"아! 내가 살인자는 아닌데 그건 알지!"
강우는 수갑에 묶인 듯 두 팔목을 붙여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를 바라보며 놓여 펜을 들었다.
강철봉이 그림을 그려가며 김신욱을 놀려는 장면
강우가 펜을 주먹으로 움켜지며 집을 하나
그리는 와중에 펜이 더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강우가 오디션 대본에도 없는
말을 툭 꺼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행동에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
"펜도 지랄이네"
강우는 오른쪽 검지 끝을 이로 깨물어
흘러내리는 피로 나머지 그림을 마저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마치 안창호 선생님의
손도장처럼 검붉어진 자신의 손을 흰 종이에
박아 넣듯 쾅! 테이블을 치며 고개를 들었다.
"여기 이 집 익숙하지 않아?"
이로써 모든 연기가 끝나고 강우는 김혜란을
향해서만 고개를 숙여 인사 하고
침묵만이 내려앉은 오디션 장을 등지고 밖으로 향하자
멍한 표정의 장규리가 부랴부랴 강우를 따라 나갔다.
"가..가..강...강배우님!"
장규리는 너무 놀란 나머지 강우의 이름만
불렀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매니저님 저 손 좀 씻고 올게요."
살짝 웃어 주고 화장실로 향하는 강우의
뒷모습을 보자 이제야 장규리의
정신 돌아왔다
"아! 손!!!! 왜왜왜왱!!"
다리에 힘이 풀려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장규리는 오디션장에 들어가자마자 감독의
말도 안 되는 트집과 김도훈의 느끼한 눈빛에
불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일개 매니저인 자신이 어쩌겠는가..
PD가 왕이고 인기가 갑이 이곳에서
강우는 새파란 신인이요
자신은 일 못한 다고 구박만 받던
매니저 이지 않았는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들어갈 만큼 주먹을 꽉 쥘 뿐
장규리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PD의 양 싸대기를 날려주고
김도훈의 두 눈을 엄지로 푹 찔러 주고 싶었던
장규리였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강우의 은근히 PD와
김도훈을 까는 말에 장규리의 멘탈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고 강우가 연기 시작하자 점점 더
금이 커졌다.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
장규리의 멘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강우가 회장실에서 나오자 장규리는 쪼르르 달려가
강우의 손가락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안 아파요? 왜 그랬어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거 같은 눈으로 손가락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가방에서
밴드를 꺼내 붙여 주었다.
강우는 나를 위해 눈물을 꾸역꾸역 참으며 걱정해주는
장규리가 고마웠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왠지 `강철봉`은 그랬을 거 같아서요?"
그 말에 장규리는 작은 주먹을 꽉 쥐더니
강우의 팔을 퍽 쳤다.
"악! 왜 때리는 내가 아픈 건데!"
자신이 때리고 자신이 아파하는 그 모습에 피식
웃고는 강우는 대기실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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