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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소봉 님의 서재입니다.

명암대제(明暗大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방소봉
작품등록일 :
2015.06.20 12:01
최근연재일 :
2015.07.06 09:14
연재수 :
9 회
조회수 :
12,805
추천수 :
279
글자수 :
37,755

작성
15.06.26 07:55
조회
1,280
추천
34
글자
11쪽

1장 4) 영원한 목적지

광명정대(光明正大)와 암흑사이(暗黑邪異)는 너희가 정하는 것이야!




DUMMY

4) 영원한 목적지


마지막 남은 힘까지 짜내어서 박극수의 턱뼈를 부순 이준이 누운 채로 몸을 밀고 있었다. 몸을 뒤집을 힘도 없을뿐더러 이럴 때는 차라리 철조망 통과하듯이 누워서 발로 미는 것이 나았다. 다리가 그나마 부상을 덜 입었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제군! 팔이 없으면 다리로! 다리가 없으면 몸을 굴려서! 굴릴 몸이 없으면 이빨로 물고서라도 목적지까지 간다! 알겠냐? 애인이 저곳에서 제군을 기다린다! 애인 이름 큰 소리로 복창하고 뛰어!’


‘인영아!’


가물가물해지려는 의식의 끈을 놓지 않으려 입술을 힘껏 깨물며 나아갔다. 안으로는 수없이 불러대는 인영이 잠자는 선천지기를 깨워서 근육, 혈관과 신경의 길을 따라서 다리로 보내고, 밖으로는 자신의 몸뚱이가 선명한 피의 궤적을 길게 남기고 있었다.


‘인영아! 항상 나의 목적지인 너에게로 간다!’


사흘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한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리고, 진이 모조리 빠져버린 다리를 질질 끌면서 유격훈련의 목적지에 다다랐듯이 안간힘을 다하여 조금씩 서인영에게 다가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의 목적지에는 항상 서인영이 있었다. 인영이 있다고 믿었기에 진이 빠져버린 몸을 질질 끌면서도 가야했고, 인영이 있기에 지금 죽어가면서도 가야하는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을 눈앞에 두고 꼬여버린 인생에 대학도 포기하고 바로 자원입대하여 논산 훈련소에서 철조망 통과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고개를 들면 적의 기관단총에 죽는다! 고압전류에 감전사하기 싫으면 철조망 건드리지 마라! 빨리 움직여라! 네가 꾸물거리면 뒤따르는 전우가 죽는다!”


다른 신병들은 낮은 포복보다 철조망 통과를 싫어하였지만, 이준은 차라리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철조망 통과가 편했다. 옆에서 미리 묻어둔 포탄이 터져서 모래와 흙이 날고, 위로는 공포탄이 수없이 지나가는 가상전투 상황이 좋았다. 그때만은 자신의 돌려차기에 턱이 돌아가면서 바닥에 쓰러지는 대만 선수를 떠올리지 않아도 되었다.


“이준 저 새끼는 철조망 통과를 위해서 태어난 놈이야!”

“그러게 땅개라도 저렇게 빨리 통과하지는 못할 걸!”

‘바보 같은 녀석들! 몸을 좌우로 조금씩 흔들어주면서 리듬을 타라고!’


옛날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띤 이준이 흘긋 바라본 피의 궤적은 과연 직선이 아니었다. 뱀이 지나간 자리처럼 나아가는 방향은 일정하되 궤적은 구불구불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군바리구먼. 죽어가는 마당에도 조교기질을 드러내다니 인영이 보았다면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다.’


드디어 서인영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보지 않아도 어떤 상태로 죽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한 놈에게 어쩔 수 없이 당할 때 진즉 혀를 깨물고 죽었을 것이다. 쥐새끼가 서인영의 가슴을 물어뜯은 것도, 칼잡이 삼형제가 서인영의 얼굴에 난도질한 것도 이미 서인영이 죽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屍姦)을 했으면서도 모르고 있을 정도로 미쳐 있었던 것이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 인영아!’

‘오빠! 군인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거야!’

‘그래 인영아! 사람을 구하지 못한 군인은 군인이 아니다. 인영아! 이제 전역하고 네 곁으로 간다.’


만신창이가 된 몸이라도 덮어주려고 했으나, 천 조각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인영아! 내가 안아주마!’


서인영의 몸을 당겨서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종이처럼 가벼워진 서인영은 쉽게 끌려왔다. 한이 맺힌 눈을 하얗게 뜨고 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혀를 깨물어서 집어 삼켰는지 입안은 피가 가득 고여서 아직도 질질 새어나오고 있었고, 목에 걸린 혀로 말미암아 질식한 목은 어린아이 허리통만큼 부풀어 있었다. 손바닥으로 쓸어내려 눈을 감기고, 자신의 옷 앞품을 벌려서 서인영을 감싸 안았다.


‘인영아! 입안에 쌀 머금지 못하여서 이렇게 퉁퉁 부어 있느냐?’


입술을 맞대고 서인영의 입안에 고인 피를 빨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입안에 괸 피와 목에 걸렸던 잘린 혀가 이준의 입으로 들어왔다. 이준이 피와 혀를 꿀꺽 삼키자 퉁퉁 부었던 서인영의 얼굴과 목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리고 꼭 껴안았다. 가릴 곳을 대충 가린 이준의 두 눈에서 주르르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인영아! 이렇게 안고 저승가면 놀릴 사람도 없고, 우리를 떼어놓지도 못할 것이다. 이제 편히 쉬자!’


그리고 눈을 감았다. 둘의 앞가슴에 매달린 목걸이가 두 사람의 피로 흠뻑 젖었다. 꼭 껴안은 둘의 목걸이가 합쳐지고, 거기에서 파란 빛이 새어나오는 것도 모른 채 그렇게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얼마 후 사이렌 소리도 요란하게 검시관을 대동하고 경찰이 들이닥쳤다. 리조트 외곽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조사가 시작되었다.


“현장 보존 철저히 하고, 특히 촬영할 때 주관에 빠져서 건너뛰는 일 없이 모든 각도에서 찍어!”

“염려 놓으십시오, 반장님! CSI에서 배운 게 바둑판 영상기법입니다.”


“반장님! 외곽에서 죽은 스무 명은 모두 목뼈가 부러져서 죽었습니다. 특공무술이 과연 무섭군요!”


이준의 동선에 따라서 살인현장을 감식하던 김 형사가 스무 명의 시신을 모조리 감식하고 놀란 얼굴로 반장에게 보고하였다.


“김 형사! 특공무술이 아니고 싸움수박이라는 거다. 여자들은?”

“머리카락 한 올 다치지 않고 멀쩡합니다.”


“어이 영상조! 빨리 움직여! 삼층 집 바깥부터 구역을 나눠서 찍어. 사람뿐 아니라 구역마다 번호 매기는 것 잊지 말고!”


곧 영상조가 사건 현장을 일정한 크기로 구획하고 각 구역에 번호가 매겨진 깃발을 꽂고 다면 촬영을 시작하였다. 촬영을 마친 영상조가 삼층집 안으로 들어가자 김 형사를 위시한 감식조가 현장 조사에 착수하였다.


“반장님! 아주 이상한 강철 침이 있습니다. 무엇으로 발사했기에 목을 아주 걸레로 만들었을까요?”

“김 형사! 감탄 그만하고 바깥 감식이 끝났으면 안으로 들어가지?”


이들이 가운데 삼층집으로 수사를 확대했을 때 완전무장한 특전사 군인들이 열 대의 특수 장갑차에서 내렸다. 모두 헤드라이트를 밝힌 채 리조트에 도착했지만, 어떠한 소음도 일으키지 않았다.


“사위경계!”

“충성! 사위경계!”


정해진 위치로 신속히 대형을 유지하고 그 중 일부 계급장도 달지 않은 군인들이 하얀 장갑을 낀 채 바로 삼층집 안으로 들어와서 이준과 서인영을 떼어놓으려고 하는 반장을 만류하였다. 그의 눈을 본 반장이 몸을 부르르 떨며 물러섰다.


‘사람의 눈이 어찌 저렇게 무서울 수가 있어? 개구리를 노리는 살모사의 눈!’

“반장! 위대한 군인이시니 존엄을 지켜주기 바라오. 그리고 이건 이 중사가 그동안 조사한 자료입니다.”


눈빛과 달리 목소리는 온화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반장에게 넘긴 이 중사의 인적사항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의사(義士)

성명; 이준(李俊)

나이; 28세

직업; 특전사 중사

주소; 불명

가족관계; 고아. 서인영과 한 달 후에 결혼할 예정이었음.

학력; 서울 K고교 졸업.

특기; 태권도 5단.

서인영; Y일보 기자. 취재 중 칠일 전 실종.


“정중히 모셔라!”

“충성!”


살모사의 눈이 건네준 USB를 소형 컴퓨터에 꽂아서 보고 있는 반장이 미처 손을 쓸 사이도 없이 이준과 서인영의 시신을 껴안은 그대로 커다란 태극기로 감싸서 자단(紫檀)으로 만든 관에 조심스럽게 안치하였다.


“철수!”

“충성! 철수!”


살모사 눈의 손짓에 따라서 사위경계를 서던 군인들이 올 때와 반대로 질서정연하게 차에 오르자 열 대의 장갑차는 헤드라이트를 밝힌 채 조용히 현장을 떠났다. 떠나기 전에 이름도 소속도 없이 전화번호만 달랑 적힌 명함 한 장을 반장의 손에 쥐어 준 것이 가지였다.


“수고하시오!”


삼층 현장에는 아직 죽지 않은 부상자가 넷이나 있었다. 대형 살인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단서를 놓칠 리 없는 반장이 급히 명령하였다.


“빨리 구급차 불러! 무조건 놈들을 살려야 해!”

“반장님! 아무리 현대의학이 발달했어도 이놈들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는 글렀습니다.”


“입만 살아 있으면 돼! 사건 해결하고 싶으면 빨리 움직여!”

“반장님! 그러고 보니 딱 입만 살려놓았네요.”


명령은 하고 있지만, 사건 현장에서 주요한 단서가 될 시신 두 구를 항의 한 번 못해보고 빼앗긴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울가망한 기분에 휩싸여 있을 때 김 형사가 소리쳤다.


“반장님! 박극수의 주머니에서 이걸 찾았습니다. 이걸 빼앗기 위하여 김상기와 서인영을 죽인 것 같습니다.”

“김 형사, 수고했어! 잘 간수해!”


“현장 감식 완료! 사건 현장 사진은 이미 여러 각도에서 촬영해두었으니 두 사람이 없어져도 수사에는 큰 지장 없습니다. 반장님!”


김형사가 박극수의 몸에서 USB를 찾아서 내밀고, 검시관이 반장이 뭘 걱정하는지 눈치 채고, OK 사인을 보내자 반장이 다시 활기차게 명령하였다.


“김 형사! 현장 정리하고 삼척 경찰서에 수사본부 설치해!”

“예, 충성!”


이준의 바람대로 죽지도 못하게 된 박극수, 도끼, 쥐새끼와 안면이 구급차에 실려 갔다. 잠시 후 반장의 소형 컴퓨터에 메시지 도착 알림이 울렸다. 경찰청 메인 컴퓨터에서 발송된 것이었다.


[이준; 10여 년 전 올림픽 4강전에서 대만 선수를 돌려차기 한 방으로 이겼으나, 대만 선수가 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하여 스스로 기권하였다. 고교를 졸업하고 특전사에 자원입대하여 10년 근무 현재 중사로 근무하고 있다. 특전사 내에서 강하조장, 고공기본, 고공조장, 해상척후조, 유격전문, 낙하산포장정비, 특전의무과정, 항공화력유도 등 여덟 개의 특수교육을 모두 이수한 유일한 사람이다. 해군의 UDT/SEAL과 공군의 공정통제사(CCT)와도 여러 번 합동작전을 한 경험이 있어 삼군의 특수부대에서 이준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진급도 마다하고 무술에 매진한 덕분에 특전사에서 명실상부한 최고의 무술 고수이며, 오로지 무술 수련과 후배들의 교육에 매진하는 가장 존경받는 교관이다. 소속은 707특수부대(백호)이나 일이 없을 때는 자원하여 몸을 아끼지 않고 조교 역할을 할 정도로 후배를 아낀다]


[서인영; 나이 26세, 고아. K대학 국문과 수석졸업. C일보 6년차 베테랑 사회부기자로 주로 마약밀매, 인신매매와 조직폭력 등의 반인륜적인 사안을 취재함. 이준과는 같은 고아원에서 자라서 친남매 이상으로 친밀하고, 곧 결혼할 예정이었음.]


그 외에도 박극수 일당에 대한 자료가 끝도 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곧 이어 반장의 독백만 현장에 남은 채 삼척 리조트는 고요에 잠겼다.


“한 사람이 오십여 명을 도륙해? 이런 사람 열 명만 우리 강력계에 있으면 얼마나 좋아! 지금 경찰은 너무 약골이야!”

globe-205189__180[1].jpg




이준과 함게 신명난 춤을 춥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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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2 악지유
    작성일
    15.06.26 18:36
    No. 1

    잘 읽었습니다.
    문장에 힘이 넘치네요.
    글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합니다.

    혹시 특전사 출신인가요?
    저는 특전산지 혹은 수경산지 차출이 되었었으나 탈출에 성공
    하는 바람에 가지 못하고(?) 최전방 야전부대에서 복무...^^

    마지막 문장,
    가히 압권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방소봉
    작성일
    15.06.26 20:59
    No. 2

    악지유님 댓글 감사합니다.
    소속은 비밀입니다. ㅎ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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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장 3) 선약삼칠 +4 15.07.03 1,450 25 9쪽
7 2장 2) 구명절초 +2 15.07.01 1,463 25 10쪽
6 2장; 李俊 1) 유체이탈 +2 15.06.29 1,424 27 11쪽
» 1장 4) 영원한 목적지 +2 15.06.26 1,281 34 11쪽
4 1장 3) 차라리 죽여 다오! +2 15.06.24 1,485 29 11쪽
3 1장 2) 살을 주고 뼈를 취하다 +2 15.06.22 1,330 30 11쪽
2 1장; 특전사(特戰司) 1) 발차기 +2 15.06.21 1,619 35 11쪽
1 프롤로그 +7 15.06.20 1,828 49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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