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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사는 죽어서 던전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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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용은
작품등록일 :
2023.12.04 14:28
최근연재일 :
2024.03.31 18:00
연재수 :
218 회
조회수 :
502,711
추천수 :
14,659
글자수 :
1,181,696

작성
23.12.16 12:44
조회
3,432
추천
72
글자
12쪽

세상 속으로(2)

DUMMY

사내의 왼손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휘면서 레이의 우측 어깨를 잡아갔다.

오른손은 이미 레이의 어깨 관절을 꺾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꼬마야, 어르신이 얘기를 하면···”


순간 레이의 어깨가 사내의 손을 미는 듯 부딪쳤다가 튕겨내며 반대로 빠져나와 회전했다.

가려있던 왼 주먹이 사내의 턱을 올려쳤다.


“헉!!”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젖힌 사내의 턱 바로 앞에서 레이의 주먹이 멈췄다.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날린 공격이었다.


반보쯤 뒤로 물러선 잭이 잠시 황당해하며 서 있다가 뒤늦게 상황을 깨달았다.


얼굴이 일그러진다.

어디 다치지는 않았으나 상처 입은 자존심 때문에 속이 쓰리다.

이런 창피가 없다.


“이런 쥐방울만 한 자식이 미쳤나?”


몸에 밴 동작으로 상대와 간격을 벌린 레이의 눈에 그제야 사내가 들어왔다.


자신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몸집의 사내.

눈은 얼굴에 비해 작은 데다 옆으로 찢어졌고, 오른쪽 눈 아래에는 긴 흉터.

난폭하기보다는 비열해 보이는 인상이랄까.


길드에 오자마자 걱정하던 일이 발생했다.

다툼.

그것도 꽤 닳고 닳은 듯한 거구의 용병과의.


레이의 눈동자 깊은 곳에 두려운 감정이 일렁였지만, 여전히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오래 연습해 온 대로 사내를 향해 사선으로 자세를 틀었다.

그의 왼팔은 하단을 오른팔은 상단을 가리며 근접 격투 자세를 취한다.


잭이라고 불린 사내가 한 발을 내디뎠다.

그의 왼 주먹이 레이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레이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주먹이 바람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얼굴로 다가왔다.


빠르다.

그리고 강하다.


미처 피할 새도 없어 고개를 최대한 틀며, 오른팔로 사내의 공격을 비껴냈다.

미세하게 방향이 바뀌었을 뿐 사내의 주먹은 팔과 어깨를 강타했다.


레이의 상체가 크게 흔들린다.

맞은 부위가 송곳으로 찔린 듯 찌르르하다.

충격으로 팔이 마비되는 듯했다.


다시 자세를 고쳐 잡으려는 찰나.

잭의 발차기가 그의 가슴에 꽂혔다.


주먹은 그의 시야를 가리기 위한 것일 뿐, 발차기가 진짜 공격이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레이의 몸이 뒤로 3-4 미터를 밀려 게시판 벽에 부딪혔다.


배낭 덕에 등의 충격은 완화됐으나, 가슴의 통증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목구멍으로 무언가 비릿한 것이 넘어온다.


“컥, 컥!”


억지로 숨을 내쉬며 배낭을 벗어 던졌다.

재빨리 몸을 일으키는데 통증이 상반신 전체로 퍼진다.


간신히 허리를 펴며 다시 방어 자세를 취한다.

충격에도 불구하고 사내를 쳐다보는 레이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 그대로다.


잭의 눈이 날카로워진다.


‘발에 부딪히는 느낌상 제대로 가격한 것 같은데, 이 자식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이네?’


잭의 화가 더 솟구친다.


“핏덩이 같은 어린 놈이 어디서 기술 한두 자락 배운 모양인데 오늘 버릇을 고쳐주마.”





잭이 다가서려는 순간, 지부장 제이슨이 소리쳤다.


“거기까지! 잭, 더 이상 소란을 일으키면 지난번 유예해 준 강등 처분을 당장 내릴 거야. 애써 레벨을 올려놓고, 다시 C급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으면 자리로 돌아가.”


잭이 힐끔 카운터 안쪽을 쳐다본다.

얼굴이 굳어진 그가 불퉁거렸다.


“아니, 저놈이 먼저 덤비는 걸 못 봤소? 언제부터 우리 길드가 저런 건방진 어린 놈들을 감싸기 시작한 거요?”


‘저 사고뭉치 자식, 저거 언제 한 번 제대로 당해 봐야 되는데··· 경비대장 빽만 없으면, 당장이라도 제명시켜야 할 놈. 으휴!’


제이슨이 그를 달래며 말했다.


“내일부터 몬스터 부산물 처리장 관리 업무 시작 아닌가? 술 적당히 하고 들어가서 준비해.”


화가 풀리지 않아 씩씩거리던 잭이 쥐고 있던 주먹의 힘을 풀었다.


“알아서 할 테니 신경 끄슈. 야, 인마,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여기가 길드 사무실만 아니었으면 어디 한두 군데 부러뜨려 놨을 텐데.”


테이블로 돌아가면서도 레이를 눈에 새기겠다는 듯 잭의 시선은 계속 그를 향했다.

제이슨은 잭을 노려보고 있는 레이에게도 소리쳤다.


“어이, 너도 소란 피우지 말고 이리 와. 또 말썽 피우면 용병 등록 끝내기도 전에 취소해 버릴 테니.”


레이는 잭에게 향한 눈길을 돌리지 않은 채 숨을 골랐다.

여행으로 지친 몸을 고려하지 않아도, 애초에 힘이든 경험이든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마크가 검술을 가르치며 해준 말이 떠올랐다.


- 레이야, 용병 세계는 힘이 전부인 곳이다. 용병은 몬스터와의 싸움이 아니라 용병 간의 시비로 죽는다. 실력이 없을 때는 굽힐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이를 꽉 물었지만, 여전히 몸이 가늘게 떨린다.

잠시 참자.

그러나 잊지는 않겠다.

잭의 얼굴을 기억해두며 짐을 챙겼다.


제이슨은 한숨을 쉬고 자리로 돌아갔다.

케빈도 레이가 숨을 고르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저 잭이라는 골치덩이는 경비대장의 동생이라 어지간한 일에는 우리도 관여하기가 힘들어. 뒤끝이 있는 놈이라 한동안 저 녀석과 부딪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케빈은 몇 가지 더 레이에게 묻고 장부를 작성하더니 서랍에서 목패를 꺼내 주었다.

길드의 표식만 있을 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나무패였다.


“3개월 내에 5개 이상의 공식 의뢰를 무사히 수행하면 철패로 승급할 수 있네. 그 안에 지부의 인정을 받아도 승급할 수 있고. 단, 우리 길드의 레드 베어 검술을 완전히 익히는 것이 자격요건이야. 아까 자세를 보니 이미 배운 것 같더군. 철패부터는 우리 영지 내에서 용병으로 신분을 인정받을 수 있지. 타 영지로 통용되는 것은 최소 C급 동패부터네.”


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가라앉았다.

길드 가입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가 아닌가.


‘개척마을 사람들이 다 그렇듯 신분을 밝힐 증표가 없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오늘 외성문을 통과할 때도 얼마나 까다로웠나.’


경비병에게 몰래 준 20 쿠퍼가 생각나 가슴이 쓰려왔다.


‘대기하는 상단 마차와 상인들이 많아서 통과됐지, 사람들이 적었으면 고생깨나 했을 거야. 다른 영지로 자유롭게 이동하려면 최대한 빨리 동패까지 승급해야 한다. 게다가 다른 왕국까지 움직이려면 적어도 은패를 얻어야 할 테고.’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숙인 후 게시판을 둘러보았다.

목패로 맡을 수 있는 의뢰는 두 가지뿐.

상단의 하차 업무와 몬스터 박피 및 부산물 정리.


얼핏 잭이라는 사내가 몬스터 관련 업무를 맡는다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여전히 바 쪽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

분하지만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하차 업무가 낫겠군.’





서기에게 다가갔다.

케빈이라고 했던가.


“케빈, 하차 업무에 참가하고 싶습니다.”


케빈이 고개를 들었다.


‘응? 이놈 말할 줄 알았네. 웃기는 놈일세.’


케빈이 물었다.


“자네 말을 잘하면서 왜 내내 입을 다물고 있었나?”


딱 그 말뿐이었다.무표정한 레이의 입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케빈은 혀를 끌끌 찼다.


“상단 하차 업무? 흠, 아직 인원이 차지 않았군. 내일 8시경까지 페닌 상단 후문 쪽으로 가게. 페닌 상단은 중앙 도로 좌측 끝에 있네. 큰 건물이라 금방 찾을 수 있을 걸세. 상단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길드에서 왔다고 얘기하게.”


다시 레이가 고개를 숙였다.


‘쯧! 저렇게 말이 없으니. 꼬박꼬박 인사를 하는 걸 보면 예의가 없는 친구는 아닌데···’


돌아서려는 레이에게 케빈이 서둘러 말했다.


“아, 참! 이 건물 바로 뒤에 길드와 제휴한 식당 겸 숙소가 있네. 베어스 태번. 등록 용병에게는 특별히 저렴하게 숙식을 제공하니 아직 잘 곳을 정하지 않았으면 가보게나. 제법 깔끔하다네.”


이어서 케빈은 속으로만 덧붙였다.


‘음식이 맛있지는 않지만···’


레이는 조용히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케빈은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경험없는 전형적인 초짜 신입인데, 표정이나 자세는 또 침착해 보인다.

차분한 걸음 어디에서도 방금 있었던 소란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신기한 녀석이다.


‘에이, 아무러나. 무슨 상관이냐.’


그는 장부로 고개를 돌렸지만, 바의 한쪽에는 여전히 레이의 뒤를 지켜보는 눈길이 있었다.




길드를 나서 긴 담을 따라 후정 연무장을 지나니, 태번이 나타났다.


길이로 거의 20미터는 돼 보이는 꽤 큰 장방형 3층 석조 건물.

새로 칠한 듯 짙은 청색의 목조 여닫이창들이 층별로 늘어선 외관은 산뜻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낡은 느낌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문을 여니 바로 옆 카운터에서 느긋한 눈매에 넉넉한 몸집의 40대 주인이 맞는다.


“어서 오세요!”


대부분 태번이 그렇듯 1층은 식당 겸 펍.

2층부터는 숙소일 것이다.


저녁이라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테이블에 손님은 두엇뿐.


레이는 그에게 목패를 보였다.

익숙한 듯 주인은 곧장 물었다.


“새로 등록하셨구만. 아침 식사 포함해서 1박에 20쿠퍼요. 10일 이상 장기 숙박하면 10퍼센트 할인. 며칠 묵으시려우?”


주머니를 뒤져 1 실버를 건넸다.


“5일치입니다.”


마을을 떠나 중간에 잠시 들렀던 그린힐 타운에서는 훨씬 허술한 태번임에도 1박에 똑같이 20쿠퍼를 받았다.

괜찮은 가격이다.


“방은 2층 끝 220호고 열쇠는 여기 있소.”


짐을 풀고 옷을 벗으니 팔뚝 부분이 약간 부어올랐고 가슴에 멍 자국이 새겨졌다.

길드에서 부딪친 잭이라는 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놈의 고질병 때문에 주먹을 뻗다가 말았다.

한 방 먹여주기라도 했으면 덜 억울했을 텐데.


그냥 침대에 쓰러지고 싶으나 수련을 건너뛸 수는 없다.

마크 삼촌이 되풀이해서 들려주던 말이 아직 생생하다.


- 레이, 수련을 시작했으니 꼭 명심할 일이 있다. 수련을 하루도 빠뜨리면 안 된다. 하루를 쉬면 하루만큼 퇴보한다. 앞으로 나가기는 어려워도 물러서는 것은 쉬운 법이다. 잠시라도 꼭 몸을 풀어라.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베어 검술 18식을 무기 없이 느리게 펼친다.


레드 베어 용병이라면 누구나 익히는 기본 검술.

1년 반의 시간 동안 수천 번을 반복한 유일하게 익힌 검술이다.


몸이 풀리자 오후에 있었던 다툼을 복기했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마크가 강조한 또 하나의 원칙.


싸우고 나면 반드시 내용을 되새겨보라고 했었다.


삼촌과의 대련 외에 다른 사람과 부딪쳐본 것은 처음임을 감안해도 초보 용병의 어설픈 모습 그대로였다.


‘마크와 대련할 때와는 전혀 달랐어. 그와 주고받던 정도의 속도로는 진짜 용병들의 힘과 스피드를 이겨낼 수 없어. 제이슨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호되게 당했겠지. 그뿐인가. 당황하여 연계된 공격까지 무방비로 허용했다.’


부끄러웠다.

조금만 더 침착하게, 상대의 발차기와 같은 방향으로 반보만 물러섰어도 충격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특히 잭이라는 자가 팔 공격으로 시야를 가리면서 연계 공격을 하는 수법은 쓸만해 보였다.’


그의 공격 수법을 따라해 보았다.

단순히 공격들을 이어서 시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볼 수 없도록 상황을 만든 후 후속 공격을 가한다.

재미가 있다.


아픈 것도 모두 잊고 알고 있는 모든 공격에 적용했다.

단순한 기법이지만 실전을 통해 한 가지를 배운 느낌이다.


연습을 마치고 눕는 순간 정신을 잃고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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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세상 속으로(1) 23.12.16 3,704 6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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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던전의 발견(1) +1 23.12.16 3,925 79 12쪽
9 검술 수련(2) +1 23.12.16 3,936 76 12쪽
8 검술 수련(1) +1 23.12.16 4,197 73 12쪽
7 깨어나는 레이 23.12.16 4,295 75 12쪽
6 불어닥친 재앙(4) +5 23.12.16 4,223 73 12쪽
5 불어닥친 재앙(3) +4 23.12.16 4,258 75 12쪽
4 불어닥친 재앙(2) +2 23.12.16 4,474 77 12쪽
3 불어닥친 재앙(1) +1 23.12.16 4,903 75 11쪽
2 개척마을 +1 23.12.16 6,168 99 11쪽
1 최상급 검법서 +6 23.12.04 9,121 1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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