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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님의 서재입니다.

마법사는 죽어서 던전을 남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용은
작품등록일 :
2023.12.04 14:28
최근연재일 :
2024.03.31 18:00
연재수 :
218 회
조회수 :
502,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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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81,696

작성
23.12.16 11:53
조회
3,874
추천
76
글자
12쪽

던전의 발견(2)

DUMMY

팔찌는 무언가 비밀이 숨어있을 것 같은데 어떤 방법을 써도 알 수 없었다.


“내가 한번 해보지.”


마크가 팔찌를 손에 꽉 쥐고 눌렀다.

손가락을 안으로 밀어 넣어 밖으로 당겨도 보았다.

소용없었다.


마지막에는 마음을 굳게 먹고 대거로 표면을 긁어보기까지 했는데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


“정말 신기하구나. 처음 보았을 때의 이음새가 완전히 사라졌어. 이렇게 보면 처음부터 통짜 금속으로 만들어진 원통형 팔찌로밖에 생각되지 않는구나. 더 고민해 봐도 당장은 방법이 없겠다.”




비가 멎을 때까지 마크는 마도 시대의 이야기를 레이에게 들려주었다.


당시 황궁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대수림 안쪽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고대 영웅들의 무기나 마도구, 재건을 위한 재화 등을 숨겨놓았다는 비밀 던전.

드래곤에 버금가는 최고위 마법사의 수련 장소이자 비전의 전승 공간인 위저드의 방 등.


동굴 속 밀실도 이런 던전의 일종이라고 추측됐다.


두 사람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밀실을 살펴보기로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밀실에 대한 탐색은 추가적인 소득 없이 시간이 흘렀다.


마크는 밀실에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들자 일단 돈주머니를 가져왔다.

금화 3개에 은화 38개.

1골드가 100실버이니, 상당한 액수였다.


밀실에서 발견한 두꺼운 노트도 꺼내 왔다.


마크가 노트를 앞에서부터 훑어보며 생각에 잠겼다.


‘밀실의 비밀을 푸는 데는 노트가 가장 중요한 단서이다. 게다가 저런 공간을 만들 정도의 마법사라면 레이의 수련에 도움이 될 비전이 적혀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다.

노트에 사용된 문자가 대륙 공용체가 아니다.


천 년 전까지 대륙 제1의 제국이었던 로델리안 시대의 문자인 로델리안체.

역사서나, 귀족과 학자들의 권위를 보이기 위한 공문서에 사용되는 문자로 일반인들은 읽기 어려웠다.


거기에 도형, 숫자, 알 수 없는 문양이 섞여 있고, 전혀 본 적이 없는 이상한 문자도 보였다.


마크의 이마가 저절로 찌푸려졌다.

아마도 마법사의 언어라고 하는 아스칼 문자가 아닐까.


인간의 역사 초기에 고룡 아스칼리온이 마법과 함께 전했다고 하는 고대어.

그의 이름을 따서 아스칼리온 문자 또는 간단히 아스칼 문자라고 부른다.


“휴우!”


마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사의 비전서가 아닐까 기대하고 있었던 노트는 이해의 영역 너머에 있는 것 같다.


“레이, 아무래도 이 노트를 해석하려면 관련 서적을 좀 사서 공부를 해야겠구나.”


결국 두 사람은 가까운 도튼 시에 가서 비싼 값을 치르고 로델리안 서체와 아스칼 어에 관한 책을 사고 필기구도 구입해야 했다.


드래곤 워 이후 폐허가 된 마탑을 재건하려는 마법사들이 마법에 관한 책이라면 금액을 가리지 않고 매입하는 중이다.

그 때문에 표지가 뜯어져 구석에 있던 아스칼 어 책을 구한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




레이는 먼저 낡은 동물 가죽에 그렸던 살인범들의 얼굴을 종이에 다시 그렸다.

펜과 종이가 구비되어 더 섬세하게 얼굴을 표현할 수 있었다.


“잘 그렸구나. 이제 이 초상화만 본다면 놈들을 확실히 알아볼 것 같다. 만일을 대비해서 더 그려놓는 것이 좋겠다.”


다섯 명 모두 두 장씩을 그린 후 굵은 대나무 통에 보관했다.


이어서 로델리안체 문자를 연습하는 동시에, 동굴에서 발견한 노트에 적힌 내용을 종이 패드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흘려 쓴 글자들이 많은데다 도형과 숫자, 알 수 없는 문양도 섞여 있어 똑같이 베끼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마나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전문적인 용어도 많아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저 읽을 수 있는 글자들을 띄엄띄엄 따라가는 정도에 불과했다.


두 사람의 능력으로는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 때 캐비넷에서 발견한 금패에 새겨진 이니셜이 떠올랐다.


“삼촌, 금패에 새겨진 이니셜을 확인해 봐요. 마법사의 이름일 지도 몰라요.”


마크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 왜 그 생각을 못하고 있었을까. 이제는 로델리안체 문자도 읽을 수 있는데 말이야.”


두 사람은 금패를 가져와 뒷면을 보았다.


“레이야, 내가 보기에는 SDA로 보인다. 어때?”


레이가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확실했다.


“내가 아는 유명한 마법사라고 해봐야 서너 명뿐인데··· 최초의 8서클 마법사 케이든 아네카드, 이 양반은 K와 A니 다르고. 드래곤 워 당시 황실 마법사 프란츠도 F니까 아니지. 불의 마탑주 파텔은 P고.”


마크는 계속 중얼거렸다.


“바람의 마탑주. 다른 마법사들은 7서클인데 이 양반이 8서클로 최강자였지. 이름이··· 아르, 아르 뭐더라. 그래 아르디우스. 세리엘 디 아르디우스. 맞다. SDA. 뭐야? 동굴의 던전이 아르디우스의 거처였다고? 오, 세상에!!”


레이가 뭔가를 떠올리더니 말을 이었다.


“아르디우스면 우리 자작령이 고향이라는 소문이 있던 마법사 아닌가요? 지난번 도튼 시의 서점 직원도 자랑스러워했잖아요.”


“그러고 보니, 레이 너도 같이 들었구나. 그 소문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마크가 레이의 팔을 잡고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레이는 이렇게 들떠있는 마크를 처음 보았다.


“인류 역사상 최고 레벨의 마법사 아르디우스. 그가 만든 던전이라니···”


마크의 기쁨과 달리 레이에게는 너무 높은 곳의 인물이라 실감이 나지 않았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100여 년 전 역사상 최악의 대재앙이 있었지. 제국의 고위 마법사와 소드 마스터들이 해츨링을 사냥하면서 드래곤의 분노를 사 인간과의 대전쟁이 일어난 거다.”


레이는 개략적으로만 알던 드래곤 워의 자세한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고룡 아스칼리온을 선두로 복수심에 불타는 드래곤 다섯 개체가 마나의 향기가 느껴지는 도시들을 모두 불태웠지. 당시 황실과 왕가들, 5대 마탑이 드래곤 브레스에 휩싸여 한 줌의 재로 전소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고위급 마법사와 소드 마스터들이 죽거나 회복할 수 없는 부상을 당했고.”


이후 대륙의 마법과 검법은 수천 년 전의 수준으로 퇴보했다.


왕국과 귀족들은 기사들을 양성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도 엑스퍼트 급은 귀한 인재이다.


무너진 마탑은 형태만 다시 복구되었을 뿐, 4서클 이상의 위저드조차 몇 남지 않아 외부 활동은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드래곤도 피해가 없던 것은 아니었어. 고룡 아스칼리온이 앞에서 모든 공격을 막으면서 부상을 입었고, 레드 드래곤과 블루 드래곤 두 개체가 윈드 블래스트 속에 숨겨진 소드 마스터의 검강에 피격돼 바다로 추락했다고 하지.”


두 사람은 다시 동굴로 들어갔다.


“아르디우스는 전쟁 당시 큰 부상을 입은 채, 드래곤의 브레스를 피하지 못했다고 알려졌었지.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고. 실제로 아르디우스는 여기 던전으로 피신하여 부상을 회복할 방법을 찾고 있었던 거야!”


마법사의 던전임을 확신하고 살펴보니 마법으로 숨겨둔 공간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후 며칠간 던전을 더 조사해보고, 노트를 연구해도 진척은 없었다.


거기까지였다.

단기간에 해낼 수 없는 일이라, 아쉽지만 공부 시간을 줄이고, 검술 훈련 시간을 늘렸다.




마크는 단검 투척술을 레이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필드에 있을 때 검술은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지만, 투척술은 내세울 만했지. 흐흐. 가깝게 지내다 은퇴한 용병에게 배웠는데 꽤 쓸만하단다. 그 양반도 검보다는 단검을 다루는 게 능숙했고, 그 기술로 50세가 되도록 살아남아 은퇴했으니 말이다.”


마크는 가죽조끼에 꽂아놓은 표창을 꺼냈다.

표창이라고 했지만, 끝을 날카롭게 하고 무게 중심을 앞쪽에 둔 철제 막대에 가까웠다.


“단검의 투척은 회전 투척과 직선 투척의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각기 장단점이 있다. 단검을 회전시키면 더 멀리 그리고 좀 더 정확한 투척이 가능하다. 다만 회전하다보니 상대의 몸에 비스듬히 맞아 타격이 약해질 가능성도 크다. 직선 투척은 반대로 타격 거리가 짧고 목표점을 맞추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


마크는 오른손으로 검을 들고 베기 공격을 한 후에, 왼손으로 빠르게 표창을 꺼내 과녁에 꽂았다.

실전에서는 상대가 알아채기 어려울 것 같았다.


“어떠냐? 은패 정도 되는 용병이면 모를까, 대부분 동패 이하 용병의 실력으로는 절대로 막지 못한다. 흐흐흐.”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였다.

두어 번의 폭우로 아직 남은 불에 탄 흔적들이 많이 씻겨 나갔다.


나뭇가지에 남은 잎 새가 몇 개 되지 않을 즈음 첫눈이 내렸다.

산속의 겨울은 빨리 다가온다.


꽝꽝 얼어붙은 땅 위로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살을 에는 듯하다.

더욱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밤에는 잠시만 바깥에 있어도 동상이 걸릴 지경이었다.


레이의 수련은 한겨울에도 밤중까지 계속되었다.

비록 털모자에 장갑을 낀 상태라 해도 얼굴로, 옷 사이로 파고드는 얼음 같은 밤공기에 살갗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마크가 아무리 만류하고 설득해도 수련을 위한 레이의 결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을 앞 개울의 얼음이 녹기 시작한 것은 레이가 열감기로 두 번을 쓰러졌다 일어나고, 손바닥이 수없이 터져나갔다가 아문 뒤였다.

크로커스, 대포딜, 베고니아, 릴리 등 봄꽃들이 여기저기 들판과 수풀 가장자리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반달이 산 너머로 서너 뼘쯤 솟아오른 밤이었다.


사방에 설치한 목각인형의 가운데에 레이가 검을 들고 기본자세를 취했다.

눈은 살짝 뜬 상태로 검은 정면 상대의 머리를 향했다.


“합!” 하는 기합과 함께 레이의 몸이 회전했다.


‘쉬익!’ 소리가 들리며 검이 사선으로 그어진 선을 따라 인형을 타격했다.


덜컹하며 인형이 쓰러진다.


몸을 지탱하는 오른발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고 이를 축으로 레이의 몸이 왼쪽으로 솟아올랐다.

아래에서 시작된 검이 위쪽으로 인형을 베었다.


두 번째 인형이 쓰러졌다.


레이의 몸은 멈추지 않고 완전히 뒤로 돌았다.


왼발이 땅을 디디면서 허벅지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사선으로 올라온 검은, 눈앞에 다가온 인형의 목에 그려진 점을 찔렀고 세 번째 인형이 넘어갔다.


레이의 몸은 다시 역으로 회전했다.


인형을 찌르며 속력을 잃은 검이 회전에 따라 가속되며 마지막 인형의 허리를 횡으로 가격했다.

마지막 인형이 ‘퍼억’하는 소리를 내며 뒤로 쓰러졌다.


레이가 검술을 배우기 시작한 지 거의 1년이 흐를 무렵이었다.

레이는 상대를 벤 자세 그대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크가 박수를 쳤다.

베어 검술 기본 동작과 연계 동작, 그에 맞는 보법의 완성이었다.


“레이, 잘했다. 베어 검술을 완벽하게 해냈구나. 축하한다. 보통의 용병들은 단순히 동작의 형태만 외울 뿐, 너처럼 철저하게 사방을 점할 정도로 익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렇게 기본을 철저히 다지는 것이 먼 훗날 더 고급 검술을 익힐 때 큰 도움이 될 거다..”




레이를 칭찬하면서도 마크의 얼굴 한 구석에는 걱정의 빛이 어려있었다.


‘단 하나 레이가 극복하지 못한 약점이 아쉽구나. 부모님의 죽음을 목격한 후유증인지, 검이 상대의 몸에 닿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멈칫거리기 일쑤이니. 하아~’


사람의 몸에 타격을 하지 못하는 레이.

이것은 연습이 아니라 실전에서 서서히 고치는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99 혼돈군주
    작성일
    24.03.31 04:27
    No. 1

    날카롭게 담금질 ... ㅡㅡ> 날카롭게 제작하고(단조하고)
    담금질은 철을 강하게 하기 위해 900도 이상으로 가열했다가 물이나 기름 등으로 급격하게 냉각 시키는 작업.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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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세상 속으로(1) 23.12.16 3,703 67 12쪽
» 던전의 발견(2) +1 23.12.16 3,874 7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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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검술 수련(2) +1 23.12.16 3,935 76 12쪽
8 검술 수련(1) +1 23.12.16 4,196 73 12쪽
7 깨어나는 레이 23.12.16 4,294 75 12쪽
6 불어닥친 재앙(4) +5 23.12.16 4,223 73 12쪽
5 불어닥친 재앙(3) +4 23.12.16 4,258 75 12쪽
4 불어닥친 재앙(2) +2 23.12.16 4,474 77 12쪽
3 불어닥친 재앙(1) +1 23.12.16 4,903 75 11쪽
2 개척마을 +1 23.12.16 6,167 99 11쪽
1 최상급 검법서 +6 23.12.04 9,121 1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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