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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래이
작품등록일 :
2016.12.29 16:12
최근연재일 :
2019.10.25 16:11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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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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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122,021

작성
19.09.2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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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정체 (1)

DUMMY

03. 정체




정치 의원들은 각자 개인의 집무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세자르의 집무실은 좁고 왜소했다. 작은 창문 너머로 짙은 암흑이 깔린 밤이 되자 그는 책상에 앉아 선대의 여러 가지 기록들을 읽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에게 새로 생긴 취미 중 하나였다. 과거를 보면 현재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 그는 옛 선조들의 일대기에서 지혜를 찾아보고자 했다. 책장을 넘기던 중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전쟁에 관한 이야기였다. 앰논 국왕 이전 시대에 일어났던 전쟁들을 기록한 쪽이었다. 대표적으로 솔롬국과 동쪽왕국으로 분단되기 훨씬 이전에 월드 대륙에 자리 잡고 있었던 소수 민족들 사이에 벌어진 세력 전쟁과 두 분단 국가들이 등장한 이후 일어났던 1차 전쟁과 2차 전쟁 (영토 전쟁) 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어려웠다. 그의 아버지 세대들도 겪어보지 못한 일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전쟁에는 명분이 존재해야했다. 그게 좋은 의도든 나쁜 의도든 쉽게 정당화를 만들어야 했다. 나라의 상황이 어떻든 간에 상관없이 그저 구실을 만들어 그걸로 밀어붙이면 끝이었다. 그러니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들 전쟁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욕심. 욕망이 그들의 우두머리의 입으로 시작해 군인들의 칼끝으로 전해져 상대를 베어내는데 쓰였다. 그럴수록 욕망은 더 크게 불어나 주변을 덮었고 주위를 맴도는 욕망이 바람을 타고 월드 대륙 전역으로 퍼져갔다. 그 본질을 숨기고 군인들에게 그럴 듯하게 포장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과거 전쟁은 그 시절 사람들에게 있어서 재난과도 같았다. 그가 보는 기록에서도 그렇게 묘사가 되어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끔찍한 시간을 보냈는지 대강 짐작이 갔다. 굳이 상세히 기록 되지 않았더라도 살을 아리는 고통과 함께 피 범벅이 된 군인들, 모든 걸 잃은 채 피난길에 오르는 백성들 모두의 고통이 느껴졌다. 그들이 지금의 평화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희생을 치러야 했을까. 그런데 지금 그들의 희생이 헛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 한 것이다. 그 생각에 그의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숨이 막힐 듯 답답한 마음이 몰려왔다.


정말 전쟁을 피할 순 없는 걸까?


“의원님. 프레드릭 보좌관이 뵙길 청합니다.”


집무실 문 너머로 부관이 말하자 세자르가 서적을 덮으며 대답했다.


“들어오라 하게.”


나무문의 소음과 함께 프레드릭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세자르에게 인사했다.


“이 밤중에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오, 프레드릭. 앉으시오.”


세자르가 앉길 권하자 프레드릭이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이대로가 편합니다.”


세자르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꺼냈다.


“오늘은 꽤나 지치는 날이었소. 이렇게 고달픈 적은 없었는데 말이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잠이 잘 올 것 같진 않소. 내일을 생각해서 자두긴 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오.”


“정말 그들을 설득 시킬 겁니까? 굳이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요?”


“설득이 아니더라도 대화는 해봐야겠지요.”


세자르가 한숨을 쉬었다.


“폐하께선 어떠시오?”


“더 두고 봐야겠지만 예전보다 상태가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세자르가 반색했다.


“다행이구려. 왕자님은 알고 계시오?”


“왕자님께 직접 들은 겁니다.”


세자르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들었던 말 중 가장 희소식이 아닐 수가 없소. 폐하께서 언제라도 쾌유되시길 바랄 뿐이오. 그때 까지 당신이 왕자님을 잘 보필 해주길 바라오. 왕자님의 마음이 절박 해질 테니 말이오.”


“잘 알겠습니다.”


프레드릭이 대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무언의 위화감이 그를 잠식했다.


“그 사람도 왕자님을 잘 돌보라 라고 했었는데........”


“누가 말이오?”


“에버렉 의원이요.”


세자르가 흠칫했다.


“만났었소?”


“5일전 왕자님과 함께 전망대에 가던 도중 만났습니다.”


세자르가 의자에 기대며 미간을 지푸렸다.


“그가 정확히 뭐라고 했소?”


“‘왕자님을 잘 돌봐라.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더군요.”


“단순한 호의로 들리기도 하고 터무니없는 예언 같기도 하구려. 보면 볼수록 수수께끼 같은 자로군. 그를 더 예의 주시 해야 할 것 같소.”


“동감입니다.”


프레드릭이 공감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리저리 낡은 시설물들이 그의 눈에 아른 거렸다.


“아직도 이런 곳에 지내십니까? 거처를 옮기셔야 할 것 같은데요.”


“여긴 내게 있어서 집이나 마찬가지라오. 누구나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하는 법이오. 내겐 이곳이 어울리오. 그만큼 편하고 말이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자신을 과소평가 하고 있군요. 저 밖엔 분수를 모르는 자들도 있습니다.”


“내가 그들보다 낫다는 것이오?”


“의원님 같은 분은 흔치 않아요.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속마음을 꺼내며 프레드릭이 창문으로 몸을 돌렸다.


“이 세상엔 의원님 같은 분이 필요합니다. 아주 많이요.”


“많이라! 그리 된다면 참 재미없는 세상이 되겠구려.”


세자르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이제 늙었소, 프레드릭. 예전의 현명함은 눈 녹듯이 사라졌소. 역시 사람은 한결 같을 수 없는 모양이오.”


“그 노인보다도 못한 자들이 벌여놓은 걸 보십시오. 저들은 앞을 보지 못합니다. 저들의 고집이 이 나라를 어지럽힐까 두렵습니다.”


프레드릭이 한탄하며 말하자 세자르가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보면 우린 감히 저들을 비난 할 수 없소. 어쩌면 정말로 우리가 틀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오. 다 똑같기 마련이고 별 다른 도리가 없소. 분하지만 저들은 절차에 맞게 입장을 내세웠소. 폐하께서 없었을 뿐이지........”


“전 저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럼 나 또한 믿어선 안되오. 지금은 말이오.”


“하지만 의원님 말고는.......”


“당신은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나본데, 그건 큰 착각이오.”


세자르가 말을 가로막았다. 툭툭 소리와 함께 바람이 창문을 두드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늙었소.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말이오.”


무언가 골똘해진 그는 눈을 감았다. 유난히 그의 얼굴의 주름이 짙어져 십년은 더 늙어 보였다.


“회의장에서, 오늘 그들의 말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 여겼을 때 난 분노를 느꼈소. 답답함에 화가 나더군. 그리고 의구심도 들었소. 이것은 에버렉 의원을 보며 느낀 것이오. 그의 반응이 너무도 이상하다고 여겨서 그랬소. 바로 그때부터 정신이 혼란 스럽기 시작하더군. 내 자제력이 사라지며 억울함이 밀려왔소. 그 다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시오?”


그가 어렵게 말했다. 바람이 더 매섭게 불었다.


“차라리 폐하께서 돌아가셨다면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그 말에 프레드릭이 놀란 듯 휙 돌아보았다. 세자르가 착잡하게 말을 이었다.


“하루빨리 왕자님이 왕위를 물려받고 국왕의 권한으로 회의에 참석 했더라면 오늘 같은 갑갑한 상황이 빠르게 결론 나진 않았을까? 아주 짧은 순간 이었지만 그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소. 그때 난 이성을 잃고 만 것이오. 폐하의 목숨을 가지고 실리를 생각한 것이오. 명백한 이기심이지. 그래서 의원들에게 향했던 분노와 의구심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소.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깨달았을 때,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소. 이젠 내 자신을 믿어야 할지도 의심스럽다오. 아이러니하군. 왕자님께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고 조언 했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세자르가 쓴 웃음을 지었다. 눈가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근심어린 그의 마음을 대변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프레드릭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변하기 마련입니다.”


세자르가 창문을 바라보았다. 거친 바람이 두드리는 횟수가 늘었다.


“내가 올바르게 변했다고 볼 순 없소. 어쩌면 나 또한 안일해진 건지도 모르지.”


창문의 요란한 소리가 실내를 가득 매웠다. 바람의 고집이 센 덕분에 둘다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에 집중했다. 마치 그들에게 열어 달라는 것처럼 보였다.


“내일은 좀 바쁜 하루가 되겠구려.”


세자르가 말했다.




“그가 뭐라고 하던가?”


다음날 오후 쯤 시간이 지난 집무실에서 세자르가 부관에게 물었다. 베이트만 의원에 관한 일이었다.


“나중에 자리를 주선 해보겠다고 전해 달라 했습니다. 그 밖에는 없습니다.”


마침 잘됐군....... 어차피 언젠가 찾아갈 생각이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알았네. 일단 오늘은 납세관리장에게 먼저 가야겠군. 아, 머독. 자넨 이 자료들을 글렌에게 갖다주게나. 내가 보냈다고 말하면 그도 알아 들을 걸세.”


그가 대답하며 옷깃을 여몄다. 그런 다음 집무실을 나서기 위해 움직이자 부관이 문을 열어줬다. 밖은 밤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태양에 의해 도성 일부가 눈부신 황금으로 뒤덮인 것처럼 보였고 복도 너머로 왕성을 둘러싼 성벽이 점점 열기에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는 집무실을 떠나 자신의 업무를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따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어제의 일들이 기폭제가 되어 그의 뇌리에 박혀 버린 듯 했다. 무엇이 옮고 그른 건지 확실치 않은 결론을 내린 덕분에 그의 답답함이 더 가중 됐다.

어제 회의장에서 자신이 감정적으로 대처한건 아닌지 후회가 밀려왔다. 자신이 답답했었던 만큼 다른 의원들도 그럴게 분명할 텐데. 서로의 의견이 안 맞자 회의장은 결국 아수라장이 되어버렸었다. 아무런 타협 없이, 성과도 없이 끝나버리지 않았던가. 지금은 서로를 탓 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굳이 싸우고 싶지 않았다. 더더욱 그들과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오히려 베이트만 의원이 자신을 불러 준 것이 고마웠다. 설득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합의점은 찾아야 했다. 그에겐 이것이 유일한 기회로 보였다.

부관을 떠나보내고 그는 복도를 따라 나아 간 다음 계단을 내려갔다. 그 과정에서 납세관리장인 브레들린을 만나 함께 이런저런 얘길 나누며 걸어갔다. 오늘은 급수료 인상에 관련해 논의를 해야 했는데 원랜 브레들린이 혼자 가야 했지만 워낙 중요한 사항이니 만큼 세자르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이번 논의에 주로 언급 될 급수료는 이전부터 시행해오던 ‘물에 세금을 다는 정책’ 으로 시민들에게 민감한 사항이기 때문에 시민 대표가 직접 올 예정이었다. 표정이 채 가시지 않은 세자르에게 브레들린이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고 말을 걸자 그는 별거 아니라고 답했다.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인 것 같구려. 나도 얼핏 들었소.”


브레들린의 말에 세자르가 고개를 저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오. 그냥 잠을 잘 못자서 그런 것 같소. 걱정하지 마시오. 노인에게 흔히 있는 일이지요.”


그러자 브레들린이 혀를 찼다.


“당신 나이도 나이인 만큼 이제 건강을 생각해야 할 때요.”


“그러기엔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소.”


세자르가 웃으며 대꾸했다. 이윽고 둘은 성문 근처의 휴게실에 다다랐고 멀리서 서 있는 채로 기다리고 있는 두 남녀가 보이자 얼른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들이 바로 시민 대표로 성안에 출입을 허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민간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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