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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래이
작품등록일 :
2016.12.29 16:12
최근연재일 :
2019.10.25 16:11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639
추천수 :
2
글자수 :
122,021

작성
19.09.2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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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1. 본능 (2)

DUMMY

시간은 슬슬 자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모든 도시들의 빛이 사라져 그 자리를 싸늘한 공허가 대신 매웠다. 밤이 되자 한산하던 왕실은 고요함을 잔뜩 품은 침묵으로 감싸져 있었다. 생기를 잃은 왕실은 옛 알현실의 부서져 있는 왕좌만큼이나 보잘 것 없어보였고 성의 생명을 불어 넣었던 햇빛 대신 횃불이 주변을 비추어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춤을 추었다.

잔디가 무성한 중앙을 둘러싼 벽과 천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이 안뜰에 그나마 활기를 불어 넣고 있었다. 안뜰의 작은 담에 걸터앉은 베인은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원래 왕자는 밤에 나오면 안되기에 처음엔 프레드릭이 반대했지만 베인의 마음이 몹시 침울해져있어 오늘만큼은 특별히 허락 해주기로 했다. 대신, 위험할지도 모르니 프레드릭이 따라다니며 호위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오늘은 여러모로 힘든 날이었으리라 베인은 생각했다. 그저 아버지의 곁을 지킬 뿐이었는데도 그랬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으로 아버지를 간호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터였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떠나지 않길 바랐다. 그리고 자신의 무능함이 원망스러웠다.

시야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펼쳐지자 그는 잠시 감상에 젖었다. 정말 이 순간만큼은 모든 근심을 떨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작은 점들이 그를 위로하려 애쓰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순간은 그렇게 오래가진 못했다. 다시금 우울한 기억이 그를 잠식하기 시작 했던 것이다. 그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베인...... 자신을 애타게 부르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워낙 생생해 바로 앞에 오른이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뒤이어 그 소리는 점점 멀어졌고 대신 쿵쿵 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와 주변이 찢어지는 소리로 갑작스레 미어졌다. 마치 전쟁터를 연상캐 하는 소음이었다. 베인이 괴로운 듯 신음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소음들이 귓가를 울리자 그는 바로 눈을 떴다. 주위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거슬렸던 소음은 작은 터벅터벅 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베인은 그것이 발소리라는 것을 뒤늦게 감지했다.


“일탈을 하고 계시군요.”


한 남자가 다가오며 말했다. 베인은 방금 전의 일이 가시지 않은 듯 눈을 끔뻑였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겨우 잡으며 그가 대답했다.


“프레드릭에겐 허락 받았어요.”


“알고 있습니다.”


상당히 부드러운 음색의 남자였다. 그는 예의를 갖춘 후 베인의 옆에 섰다. 인자한 노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표정이 좋지 않네요. 근심에 빠지신 듯 하군요.”


“그래보이나요?”


베인이 대꾸하자 남자의 눈이 빛났다.


“폐하 때문인가요?”


베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남자는 베인을 이해한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심이 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폐하의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왕자님이 떠올랐거든요.”


“내가 어떡하면 좋을까요?”


“아직 때가 온건 아닙니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폐하는 강인한 분이십니다.”


“그게 아니라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요?”


베인은 불안한 듯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남자가 차분하게 말했다.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겁니다.”


“당신은 그 얘길 쉽게 하는군요.”


예민해진 베인이 쏘아붙였다.


“부럽네요. 나도 그런 마음가짐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남자가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


“저도 폐하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만일의 경우라는 게 있으니까요. 이것은 왕자님을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그게 날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요?”


“전 그저 상황을 현실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폐하께서 서거 하신다면........”


“그만!”


순간 이성을 잃은 베인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는 잔뜩 격양된 채 숨을 헐떡였다. 근처에 있던 프레드릭이 놀라며 그를 보았고 남자도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약간 당황했다.

시간이 좀 지나 진정이 된 베인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닫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더욱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정말 미안해요.”


베인이 사과하자 남자는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함부로 말한 것에 사죄드립니다.”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베인은 최대한 자신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안뜰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 사이 선선한 바람소리가 안뜰을 가로 질러왔고 잔디들이 그에 맞춰 몸을 흔들어댔다.


“세자르.”


그것이 그 남자의 이름이었다. 세자르가 베인을 바라보았다.


“말씀하십시오.”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 내가 혼자가 될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세자르가 잠시 뜸 들이다 말했다.


“왕으로 즉위하게 되시겠죠.”


“내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왕자님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계시는군요.”


그러자 베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난 아직 왕이 되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를 보낼 자신이 없어요. 근데 만약 아버지가 잘못 된다면......”


베인이 우울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언제든 회복 될 수 있다고 믿고 싶어요. 근데....... 자꾸 마음이 불안해져요. 돌이 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언젠간 겪어야 할 시련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이별을 하니까요.”


베인이 고개를 숙이자 세자르가 그의 옆에 앉았다.


“제게도 더 없이 소중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저보단 먼저 떠나버렸어요. 덕분에 수없이 많은 죽음의 순간들을 봐왔지요.”


“당신도 괴로웠나요?”


“처음엔 그랬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런 순간마다 절망하기보단 오히려 그들을 축복해줘야 한다는 걸요. 그래서 전 항상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안심하고 평온하게 잠들 수 있게끔 말이지요.

왕자님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게 익숙치 않을 거에요. 많이 힘드실 겁니다. 소중한 사람 일 수 록 미련이 많이 남을 테니까요. 하지만 중요한건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는 거에요. 떠난 사람을 떨쳐 낼 결단이 필요하지요. 그렇지 않고 계속 집착하다간 자신을 잃게 될 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나에겐 이해가 안가요.”


“언젠간 알게 되실 겁니다.”


세자르가 이 말을 하자 베인은 아까 캘버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저 경험의 차이일 뿐입니다. 왕자님께서도 때가 되면 알게 되실 겁니다.’


이런 조언을 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역경을 겪어온 그들에 비하면 베인은 갓난아기 수준에 불과 했다. 어른이 된다면 누구나 이렇게 현명해지는 걸까?


베인이 세자르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 성장한 모습을 상상하는 건 쉽지 않네요. 까마득한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내가 이상한 거겠죠?”


“그건 필요한 고민은 아닌 것 같군요.”


“왜 그렇죠? 어차피 내가 훌륭한 왕이 될 거라서요?”


베인이 의아해하며 묻자 세자르가 미소를 지었다.


“그건 모르죠. 하지만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왕자님이 현재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 되기 때문이지요. 왕자님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훌륭한 왕이 될 수 있고 폭군이 될 수도 있고, 아님 다른 별개의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는 거에요. 왕자님은 그저 자기 자신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이 하나있습니다.”


세자르가 한손을 부드럽게 베인의 어깨에 얹었다.


“왕자님은 혼자가 아니라는 거에요.”


베인이 놀란 눈으로 세자르를 보았다. 이윽고 세자르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하늘을 잠시 응시하더니 다시 베인에게 눈을 돌렸다.


“밤이 깊었군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세자르가 인사한 후 안뜰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다. 베인은 말없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바람소리가 울부짖으며 창가 유리를 두드렸고 그 선율은 자고 있던 베인의 귓속에 파묻혔다. 식은 땀으로 가득한 그의 얼굴은 그 누구보다도 초조한 표정이었다. 분명 그는 꿈을 꾸었지만 멀리서 울리는 메아리처럼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을 안을 수 밖에 없었다. 비몽사몽한 자신이 피곤한지 조차도 의문이었고 잔뜩 짓누르는 두통만이 그의 기분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이상하리만치 하늘은 짚은 어둠으로 그의 마음마저도 어둡게 물들이고 있었다. 잔뜩 우울해진 그는 그저 누워서 자신의 뇌 속을 파고든 환상을 기억 해내는 것 밖엔 도리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꿈은 아니라 확신 했다. 그것이 그가 기억을 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고 그 환상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리라. 순간 그의 온몸이 부르르 떨리며 소름이 끼치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을 추스릴 수 없었던 그는 침상에서 일어나 침실 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그 편이 가만히 눕는 것 보다 나을 것이라 여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람소리는 더욱 매섭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심장도 무섭게 요동치며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감정 아닌 감정을 견뎌내야 했다. 그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갖가지 기억들이 부각 되고 있는 듯 했다. 그의 곁을 떠나 영원한 숙면을 취하고 있는 어머니, 편찮은 국왕인 아버지, 정치 의원들의 압박 등등 온갖 좋지 못한 기억들이 대부분 이었고 하다못해 이런 것들에서 꿈에 대한 단서를 얻으려 노력해봤지만 그것도 허사였다. 이내 그는 침상 언저리 탁자위에 얹어져 있던 작은 나무 물통을 들고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한 많은 물을 들이켰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불안감들이 물로 인해 씻겨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는 구름 한점 없는 검은 하늘을 응시하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날이 밝았다면 감탄 했을 우거진 산맥들이 오늘 따라 처량하게 느껴졌고 이제 안 사실이지만 저 멀리 바람에 안겨 나부끼듯 춤추는 수풀들과 흔들거리는 나뭇가지들 사이로 숨은 둥근 달이 아른 거렸다.

그는 잠시 다른 생각으로 화제를 돌렸다. 꿈 때문에 정신이 없었지만 유일하게 기억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오늘 비교적 일찍 잠을 청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달이 아직 위로 떠오른게 아니었기 때문에 잠을 그다지 많이 자지 못했다고 여겼다. 희안한 것은 오늘 하루 피로를 느낄 만한 일정이 없었음에도 그가 일찍 잠이 들 정도로 고단함을 느꼈다는 점이었다. 그는 시간관념이 또렷했고 그렇기에 잠자는 시간도 정해진 때에 자곤 했다. 어제 까지만 해도 자정 바로 이전에 잠을 잔 것에 비해 유독 오늘은 달랐다. 문득 그는 창문을 열어 굉음을 내는 바람을 맞이 했다. 그의 검은 머리칼이 바람에 거침없이 흩날렸다. 잠시나마 식은 땀이 바람에 스며들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시원해지는 기분과 머리를 찌르는 두통이 번갈아 가며 그를 잠식했다. 더불어 나뭇가지 뒤로 숨은 달이 점점 드러나 베인을 비추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의 불안한 심리가 가중 될 때마다 봐오던 광경이고 열 여덟살이었지만 이런 광경이 아직까진 신비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별이 뜨는 날이면 몰래 방을 빠져 나가 하늘에 펼쳐진 장관을 바라보며 마음을 덜어냈던 추억이 많았다. 감상에 젖은 베인의 표정은 두통조차도 잊게 만들어 보였다.

깊게 한숨을 쉰 그는 내일은 괜찮을 것이라 희망하며 창문을 닫았다. 둥근 달빛이 유리창을 통과해 방안의 실루엣을 형성시켰다. 조금이나마 주위의 어둠이 걷히듯 그의 마음속 암흑도 약간은 사라졌다. 동시에 피로가 밀려들어 오는걸 느낀 그는 조용히 침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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