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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안녕히

열등 시민의 만렙 무기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전쟁·밀리터리

TYE
작품등록일 :
2021.11.13 22:53
최근연재일 :
2022.04.27 01:01
연재수 :
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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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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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8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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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쇄

DUMMY

치장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손나인에게 귓불은 본래 아무것도 없어야 맞다.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면 피어싱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무언가가 부착되어 있는데, 이는 실제 피어싱은 아니고 자체적으로 점착 기능이 있어서 붙어있는 것이다. 어색하지 않게 양쪽 귀 둘 다 부착되어 있으나 실질적 기능을 하는 물건은 오른쪽 귀의 것이다. 그리고 그냥 달려있는 채로 송수신을 하면 소리가 새어나갈 가능성이 있으니 미세한 선으로 귀 안쪽과 연결되어 그게 스피커 역할을 한다.

손나인은 이 물건이 얼마나 많은 기능을 탑재하고 있는지 들은 바는 없다. 순전히 도청기이자 수신기라고 생각하여 가만히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두렵다고 느낀다. 이 공항에서 '자신이 누군지 알고서' 행인처럼 접근하던 사람이나, '그걸 감지하는 기능을 가진 물건을 착용하게 만든' 상관이나 그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렇다고 그 점을 지적할 수는 없다.


"뭘-"

("모른 척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그 즉시 손나인은 입을 다문다. 그리고 시선은 더 이상 지나간 쪽을 쫓지 않는다. 자신이 가던 방향, 화장실을 향해서 그녀는 발걸음을 옮긴다.


("쫓는 것도 시간이 임박해서 불가능하고, 이미 수속 절차를 밟았기에 역주행하는 행위는 공항에서 엄격히 금지하므로 계획에 어긋날 겁니다. 제 견해로는 저와 비슷한 물건인 것 같지만, 기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되는 바는 없으므로 섣불리 음성을 내뱉는 건 주의하시는 게 좋습니다.")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다 보니, 가뜩이나 '묻고 싶은 것'도 많은데 손나인은 반강제적으로 입막음을 당한 상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욕망을 억누르기로 한다.


("스캐닝 머신을 지나서 붙인 걸로 봐서는 자신이 없던 모양이지만, 입국 절차 때도 있을 거라는 걸 생각하면 그런 것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감지되는 바로는 코트에 부착되어 있는 걸로 보입니다.")


받은 것은 귀불에 달려 있다. 이 차이점은 옷만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처리하면 저절로 도청이나 도촬이나 불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그 때까지 참는 수밖에 없다.


("혹시 짐 중에 코트를 대신할 만한 물건이 있는지 가서 살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함부로 말하는 건 삼갑시다.")


어차피 말을 하는 일이야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손나인은 그래도 말을 하지 않는 것에 답답함을 느낀다. 평소에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을 안 해야 한다고 인식하는 이상 압박감을 받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평소에 하던 일이 꽤 편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바로 외지로 가는 순간 일이 터져버리니 출장 건에 대해서 앞으로는 좋게 생각할 수 없겠다고 손나인은 다짐한다.









당일 오후 10시


평소라면 자는 시간이긴 하다. 애초에 잘 수밖에 없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무리 훈련을 한다고 날뛰어도 정작 자원이 없었으면 훈련이 되지도 않을 마당이었다. 하소예가 전문 트레이너는 아니었고, 이아담은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없었으니 이 시설에 남은 것은 고작 해봐야 드론 몇 기였을 것이다.

강우성이 기진맥진해지지 않는 이상 훈련 과목이 없다고 변명할 수는 없다.


"손목이 빠질 만큼 힘들어야지?"

"허억, 허억, 힘들다고, 하."


체력 단련은 기본이다. 하지만, 거기에 검도까지 메뉴가 추가된 상황이다. 하지만, 체감상으로는 이아담에게 검도가 가장 지옥이다. 체력 단련은 악을 쓰고 버티면 그만이긴 하나, 검도는 그렇지 않다. 체력+기술이 들어가는 종목인 이상 태생에 재능이 없었던 이아담에게는 난관이다.

당연히 진짜 동거인의 검을 들고 있는 게 아니라 죽도로 연습 중이다. 이에 대해 이아담은 이런 생각도 했었다. 훨씬 배는 무거울 죽도를 드는 것하고 동거인의 검을 드는 것하고 감각 차이가 있을 건데 실전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군소리는 못하였고, 할수록 그게 얼마나 개소리였나 체감하고 있다.

그냥 검을 잘 못 휘두른다. 무거워서 그렇다기보다는 무술 자체에 재능이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스포츠 전체적으로 재능이 없다고 그는 자각하고 있다. 끊어치기를 하지 못한다. 휘두르는 과정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힘을 주는 게 아니라 끝만 살짝 힘을 주라는 강우성의 지시에도 이를 수행하지 않는 건 의도한 바가 아니다.


"아직도 힘이 남아있냐."

"캬악- 퉤."


침이 고이다 고여 입에 머금고 있던 걸 내뱉는 이아담이다. 나중에 청소해야 한다는 생각은 차마 들지도 않는다.


퉁, 투퉁


죽도가 기울어지더니 끝이 땅으로 박힌다. 그토록 팔의 힘이 빠지기를 위해서 근육이 곤두설 때까지 휘둘렀던 것이나 죽도를 들 수 없을 만큼 무력해지는 것도 의도한 바는 아니다.


"글렀다. 그냥 내일해야지."


체감으로는 팔이 이제 자신의 팔이 아닌 것 같아도 의지로 움직일 수는 있다. 죽도를 못 들 뿐이지 일상이 가능하다. 씻는 것도 그렇고 옷을 갈아입는 일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아담은 결국 죽도를 못 든다는 무기력함에 이를 강하게 문다. 그런다고 땅에 꽂힌 죽도가 다시 서진 않고, 최대한 몸을 숙여서 죽도를 수평으로 맞춘 후에 들려고 해도 팔이 응답하지 않는다.


"그 정도면 안 되는 거니까 포기해라."


이아담은 그 말에 기어코 죽도를 손에서 뗸다. 둥근 코등이에 옆으로 굴러가는 죽도는 굴러가다가도 멈춘다. 다행히 자신이 뱉은 침 쪽으로 구르지 않은 것에 위안을 삼는다.


"너희들은 배웠나."


이아담은 강우성에게 묻는다.


"검술을?"

"어."

"배웠지, 만 역시 전쟁에 검은 필요 없으니까 체력 단련으로 배웠지."

"너희들한테 이런 죽도가 체력 단련이 되는 거냐."


이제 강우성은 의도를 알아차린다.


"아, 당연히 되지. 설마 몸이 강화가 되었다고 해서 '전부 미친 초인인 건 아니었으니까.'"

"그럼 훈련을 통해서 선별되었다는 건가."

"그렇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증상을 겪도록 만든다면 그건 신이지. 귀가한 사람들도 몇몇 있었지."

"얼마나?"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있었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나간 사람을 직접 본 적은 없지.' 보통 조용히 처리하겠지. 괜히 나가는 걸 보여줬다가는 군기가 빠진다는 마인드였을 테니까. 뻔한 레퍼토리이긴 한데 그러지 않았을까 이제 생각해 본 거다."

"'부작용'은 없었나."

"그런 게 있었다고 해도 '우리가 알았겠냐?'"

"맞는 말이다."


이제 씻을 생각으로 가득 찬 이아담은 땀 범벅인 얼굴을 옷으로 어떻게든 닦으려고 한다. 이미 옷은 땀으로 다 젖은 상태였기에 의미없는 짓이었다. 오히려 짠 땀을 얼굴에 골고루 펴지게 만들어 이아담의 얼굴은 새빨개진다.


"그래도 열심히라서 좋네."

"칭찬인가."

"이게 칭찬이 아니겠냐. 그런 물건을 쓸 정도라면 그 정도 노력은 해야지."


강우성의 일침에 이아담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우연히 동거인을 만난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그건 확실히 사고였다. 그 이후에 묵인하고 살려고 했다. 그러나 주변이 가만두지 않았다. 얼떨결에 살인도 저질렀고, 불가항력이라고 해도 자신이 동거인을 넘기려고 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일으킨 참사다. 자신 말고 남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동거인의 성능이 강력해서 그렇다. 그렇다면 폭탄을 짊어진 것은 자업자득이며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너는 이걸 넘겨 받을 자신이 있나?"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아담의 기습적인 질문에 강우성은 당황한다. 이것도 이아담이 의도한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그럴 만한 질문이긴 하다. 이아담은 납득한다.


"넘긴다는 소리까지는 아니지만, 가정 말이야."


이아담에겐 진지하면서도 진지하지 않은 농담 같은 말로 전달한 것뿐이다. 강우성에겐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강우성에겐 '현실이 가정 같아서' 곤란한 질문이다. 이를 개발 및 보관하던 시설이 폭발하는 사건만 없었어도 어차피 자신의 수중에 들어올 수도 있었다. 아니다. '들어왔어야만 했다.' 역시 강우성에게 가장 최악은 강진우에게 넘겨지는 것이었으니 자신이 가졌어야만 했다. 동생은 가진다는 의지도 없었으니 그래야만 했다.

사실 그런 점에서 바라보면 '이아담이 자신과 비슷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강우성은 판단할 수 있다. 과연 그 얼마나 의지가 강할지는 몰라도 아직까진 남에게 넘겨주겠다는 약한 소리를 하진 않는다. 지친 목소리에도 농담이라는 억양이 여실히 드러난다.


"뭘 하겠다는 건 똑같이 없겠지. 그렇다고 그 쪽처럼 허당 짓을 보이진 않을 건데."

"뭘 하지 않겠다는 것만으로도 좋네."

"아니면, 그걸로 '카푸라도 절멸시키냐?'"


이 말에 이아담은 의문을 품는다.


"전장을 왕래했던 거 아니었냐."

"그랬지."

"그렇게 악감정이었던 건 아닌 거냐."


잠시 강우성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상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말을 내뱉었음을 깨닫는다.


"아. 그렇지. 나야 그 새끼들이 꼴보기 싫어서 간 게 아니라 '명예벌이'하려고 간 거라서 그러려니 했지."

"군인이면 교육을 받지 않나?"

"그래서 그 좆같은 새끼들은 먼저 족쳐야 하나 생각했지. 뭐, 카푸나 상급자나 죽여도 매한가지 살인인 것 똑같잖아."

"잘도 전장에 있었네."

"진짜 총이나 그 이상의 무기로 죽이는 건 고통을 받을 수 없어. '공감이 되지 않지.' 저 멀리 피를 흩뿌리며 죽는 건 누가 알겠냐고. 솔직히 말해서 총으로 백 번 천 번 죽인 녀석도 칼로 쑤시지는 못할 거야."


점차 땀이 식는 이아담이다. 계절 탓도 있다. 얼어죽지 않게끔, 대신 훈련 중이었으니 센 난방 중은 아니어서 추운 기운에 연기가 이아담의 주변을 감싼다.


"그보다, 언제까지 보고 있는 거냐."


강우성에 볼멘소리를 하는 곳을 바라보는 이아담은 그곳에 '그 분'이 있는 걸 발견한다. 어디에 앉지도 않은 채 서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럴 만도 하다며 공감한다.


"씻지 않습니까?"

"이야기하고 있었잖아. 그리고 궁금한 게, 그 몸이라면 '세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제가 판단합니다."

"그래라."


그렇게 강우성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찰나,


"그리고 알려드릴 사실이 있습니다."

"뭔데?"

"손나인 씨가 한반도를 떠났습니다."

"그래."


이미 들었던 사실에 강우성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이아담도 그렇다. 아무것도 아닌 소식이라 이아담도 일어서서 훈련실에서 나가려고 한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뭔데?"

"이아담 씨가 죽인 암살자의 신원을 파악했습니다."


결단코 여기에서 아무도 궁금해 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문하지도 않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구미가 당기기는 해서 강우성은 멈칫 한다.


"그런데, 그걸 알려주는 이유가 뭐야? 우리가 알아야 할 사항이야?"

"'김은미 씨'라고 합니다."


이아담은 전혀 모르는 이름이라서 가만히 있는다. 그렇게 구체적인 이름을 말해도 자신에게는 해당되는 사항이 없기에, 그래서 그는 강우성을 질문을 던진다.


"아는 사람이냐?"


그러자 강우성은,


"죽'었었'던 자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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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묘연 22.02.18 59 0 11쪽
28 결단 22.02.18 56 0 12쪽
27 일생 22.02.16 5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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