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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요고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 속 드루이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프렌치요고
작품등록일 :
2023.05.27 14:42
최근연재일 :
2023.07.07 16:12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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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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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글자수 :
69,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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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7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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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13화

DUMMY

봄의 향기가 가득하고, 어디로 눈을 돌려도 보이는 것은 그저···.


대자연.

딱 그뿐이다.


하지만 보기만 해도 가슴부터 정화되는 듯한 이 엄청난 광경이 드루이드는 참 싫었다.

제아무리 드루이드라 한들 한국인이기 때문이었다.


푸르고, 또 푸르며 물감으로 칠해놓은 듯 선명한 초록빛의 넓은 잎이 가득하고, 커다랗고 맑은 호수를 품은 숲.

물 냄새 하나 나지 않으며, 마치 이쪽으로 오라는 듯 나 있는 길의 끝에는 은빛 테이블에 제법 키가 큰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것뿐이랴.

여성의 머리카락 길이는 어찌나 긴지 나무의 뿌리라도 되는 듯 바닥까지 늘어져 사방에 흩어져있고, 그녀의 머리카락에는 이름 모를 하얀 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지저귀고 있기까지 하다.


과연 한국의 어딜 가서 이런 판타지스러운 숲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초월한 여신을 볼 수 있을까?


“...씁.”


드루이드는 볼을 긁으며 테이블에 앉아 찻잔을 기울이고 있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왔니?”


여성은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며 드루이드에게 물었다.


“난 이 숲이···. 그리고 당신이 참 싫어요.”


“전에도 그러더니. 오랜만이라 그런가? 갑자기 왜 또 그런 말을 하니?”


“그냥···.”


드르륵.

청년은 테이블의 하나 남은 의자를 빼 드러눕듯 건방지게 앉았다.

여성과 청년의 시선은 호수의 중앙으로 향해 있었다.


호수는 너무나도 고요했다.

보통 사람과 다르게 청년은 잔잔한 호수에 돌덩이를 던져 그 잔잔함을 깨부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달칵.

여성은 배시시 웃으며 새하얀 손가락 끝에 걸린 찻잔을 천천히 내려두었다.


“음···. 넌 항상 저 호수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더구나. 왜 자연을 못 괴롭혀서 안달이니?”


“아시잖아요. 여기 오면 제가 어떤 느낌인지. 그리고 자연은 무슨···. 그냥 뭐 꿈 같은 공간이면서···.”


“그래.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정확하게’ 말해보자면, 여긴 네가 죽었을 때만 올 수 있는 곳이야. 근데 오랜만에 네 입으로 직접 말하는 걸 듣고 싶구나. 내 사랑스러운 아들아. 왜 여기가 싫은지 말해주지 않으련?”


“아들은 무슨···. 이런 아들이 퍽이나 좋으시겠어요. 맨날 말 안 듣고 좆대로 하는데. 봐요. 가끔 이렇게 욕도 하고, 피도 안 이어져 있으면서 왜 아들이라 그러는지 난 도저히 모르겠네요.”


“피는 이어져 있지 않지만, 우린 늘 너를 비롯한 모든 이들과 함께 해 왔단다. 신화. 전설. 동화. 민담. 설화. 옛이야기. 옛말···. 형태는 다르지만 그렇게 늘 너희 곁에 머물러 있었지. 특히나 나 같은 경우엔 ‘자연’이라는 형태로 너희를 품에 안았는데. 서운하게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죄송한 말이지만, 저희의 시대는 과학의 시대였어요. 신이니 마법이니 하는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믿는 시대였으니 아무리 말씀하셔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거예요.”


“과학이라는 것도 결국 자연의 일부 아니겠느냐. 그럼 지금 네 옆에 앉아 있는 나. 너희 모두의 어머니인 가이아는 뭐라고 할 테야? 그리고 네 목에 걸린 조각상 목걸이랑 네가 스킬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그 기적들은?”


“알았어요. 그만 하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전부 말해드릴게요. 왜 여기가 싫은지. 근데 벌써 세 번째 말한 것 같은데 질리지도 않으세요?”


치사하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가이아는 화사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웃었다.


“사랑스러운 내 아들이 하는 말인데 질릴 리가 있겠니? 흐흥.”


“말을 말자. 아휴···.”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눈을 감고, 미간을 오른 검지로 꾹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일단은 이 숲의 느낌이 싫어요. 전 한국인이고요. 어디 가서 이런 숲 볼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이 판타지스러움이 주는 괴리감 때문에···.”


청년은 말을 끊고 눈을 떴다.

그리고 옆에서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옥빛 눈동자를 자신에게 맞추고 있는 여신을 돌아보았다.


“때문에?”


“제가 죽었다는 게 너무 선명하게 느껴져요.”


대화는 잠시 끊어졌다.

가이아는 우선 눈을 한 번 천천히 깜빡였다.

그 후 초록빛 드레스의 늘어진 소매를 잘 정돈해 무릎 위에 올려두고, 그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포개었다.

옷매무새도, 마음의 매무새도 깔끔하게 정리한 가이아는 조금은 옅어진 미소와 함께 물었다.


“여기가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란다. 정확히는 네가 함께 있는 이곳이 정말로 싫어.”


“어? 그거 말 안 해주신다면서요?”


“아니. 그저 아직 때가 이르다고 했을 뿐이지.”


“...그럼 지금이 그때에요?”


가이아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드루이드 청년이 아는 여성 중 침묵이 어울리지 않는 여성이 바로 가이아였기에 그의 마음속에 작은 불안감이 싹을 틔웠다.


“그때는 아니지만, 그래도 거의 다 왔구나.”


달그락, 달그락···.

가이아는 가녀린 손가락을 찻잔에 걸었다.

그러나 들어 올리기는커녕 오히려 찻잔이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어머니?”


가이아는 조금씩 일그러지더니, 눈물까지 한두 방울 떨어트렸다.

그 모습에 청년은 적잖이 당황했고, 고개를 살짝 숙여 그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녀와 만난 지 어언 이백 이십 년.

그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정말 가끔은 어머니와 다름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존재가.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의 모습으로 울기까지 하고 있으니 청년의 마음속 불안감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


청년은 말 없이 눈을 감아주었다.

그녀에게서 자신의 과거가 겹쳐보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느낌이었을까.’


과거에 있었던 추억들을 나란히 정리해두고 천천히 살펴보니, 가아이 앞에서 이렇게 울음을 터트렸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때 마다 그녀는 어떻게 해주었나.

그 따스했던 그녀의 품에 안겼던 순간.

농축된 사계절의 향기가 가득하던 그 순간에 답이 있었다.


“왜 울고 그래요, 무섭게...”


청년은 가이아의 손을 다정한 연인처럼 천천히 감싸 쥐었다.

그리고 검은 눈동자를 잔잔한 호수의 중앙에 맞추고는, 그녀의 손등을 엄지로 천천히 쓰다듬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얼마 안 남은 거죠?”


“그래. 영원한 것은 그 무엇도 없다지만···. 너만큼은. 내 일부인 너만큼은 정말로 영원하길 바랐단다. 이건 진심이야.”


“알죠. 덕분에 제가 여기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제 기회는 얼마나 남았나요?”


“세 번. 앞으로 세 번이야.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가이아는 말을 끝내지 못 하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녀의 치맛자락에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란.

인간과 함께 교감하더니 인간이 되어버리기라도 한 걸까.


하아···.

청년은 착잡한 마음을 한숨에 담아 털어내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예. 잘 할게요. 앞으로.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청년은 뽀얗고 부드러운 손등을 쓸어내리던 엄지를 멈추었다.

그리고 눈을 천천히 감고 심호흡했다.


스으읍···.

하아···.

긴 호흡이 끝나니 가이아의 울먹임도, 손의 떨림도 멈추었다.


“세 번···.”


부활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세 번.

가이아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세 번.


청년은 가이아의 손을 놓았다.

눈은 뜨지 않았다.

다시 깨어나기 위해서는 눈을 감아야 했으니, 마음을 먹은 이상 눈을 뜨지 않는 게 좋았다.


“아가야... 나는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관여할 수 없다는 게 너무나도 가슴 아팠는데···. 너는 서운하진 않았니?”


흐흥···.

가이아의 말에 청년은 코웃음을 가볍게 쳤다.


“전혀요. 오히려···. 아니다. 다음에 와서 말해드릴게요.”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뒷말을 삼켰다.

그 후 입으로 꺼내지 않고, 속으로 그녀에게 인제 그만 돌려보내 달라는 뜻을 전했다.


찌르륵···. 찌르륵···.

풀벌레 우는 소리와 비 온 날의 질척한 냄새.

아들을 먼 길로 돌려보내는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선사한 이 냄새는···.


과연 충만한 자연의 기운을 예고하는 봄비의 냄새일까.

만연했던 자연의 열기를 꺾으면서도, 인간을 조금은 괴롭게 하는 우중충한 한여름의 장마일까.


부디 전자이기를.

청년은 속으로 그리 빌며 입을 열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엔 최대한 늦게 올게요. 죄송해요. 늘. 모든 게요.”


* * *


삐빅···. 삐빅···.

몸에 달린 것이라곤 조금은 조잡하게 만들어진 심전도 기계의 라인뿐.

기초적인 환자에게 꽂는 링거조차도 없다.


청년은 한쪽 눈에 느껴지는 이물감과 가려진 시야가 조금 불편했지만, 구시렁대지 않고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청년은 입원실 입구에 있는 탁자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 탁자의 벽면에 걸려 있는 거대한 은빛 플레이트 아머 세트, 2M는 넘어 보이는 은빛 날카로운 랜스 한 자루, 정사각형의 네모난 은빛 방패를 천천히 훑어보며 감탄했다.


‘언제봐도 참 살벌하다. 살벌해.’


십자가가 이곳저곳 각인된 갑옷과 랜스, 방패.

이제는 더 쓰지 않아야 할 유물들.

이렇게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걸 보니 여기도 꽤 오랜만이구나 싶었다.


턱.

청년의 인기척에 작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는 드레센이 무언가를 적던 노트를 접었다.

통통한 허벅다리와 이곳저곳 찢어진 스타킹을 둘러보던 청년은 피식 웃으며 농담을 건네었다.


“주사기보다는 그 스타킹부터 새로 구해야겠는데요.”


뭐가 그리 좋은지 청년은 한쪽 눈을 가리는 붕대를 풀면서 웃고 있었다.


“하···. 진짜 보면 볼수록···.”


드레센은 혀를 내두르며 그의 회복력을 혐오하는 동시에 경외했다.


“왜요?”


흉터 하나 없이 말끔한 얼굴.

이게 스물네 시간 전에 머리에 총을 맞고 터져나간 사람의 얼굴이라니.


“근데 붕대는 왜 해뒀어요? 전에는 이런 거 안 해줬잖아요. 이런 거 없어도 알아서 잘 회복하고 일어나는데.”


“머리 반이 날아갔는데 어떻게 그 상태 그대로 널 호텔에서 여기까지 끌고 오겠어?”


“아. 보는 사람이 많아서?”


“그래. 그리고 내가 블루홀 유일 의사인데 아무리 시체라고 해도 그렇지 뭐라도 하는 척은 해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러면 누가 날 믿고 찾아와?”


“그건 그렇네요.”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고 딱딱한 침대에서 내려오려 하니, 드레센이 그의 가슴을 살짝 밀어 저지했다.


“뭐가 그리 급해? 할 이야기 많아. 우리.”


“무슨 이야기요?”


“우선 어떻게 된 거야? 네 머릿속에 박힌 파편을 조사해보니까 네 딸내미 총알이던데.”


“딸내미···. 아휴.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몰라. 몰라. 내 눈엔 그냥 그래 보였어. 그 어린애가 널 그리 졸졸 따라다니는 게 얼마나 귀여웠는데. 그래서 왜 그랬는데? 아무리 크게 싸워도 이렇게 죽일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야?”


“그냥···.”


딸내미.

그 말을 듣자마자 청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드레센도 청년의 곁에 이백 년간 맴돌던 이들 중 하나였으니, 그 일그러짐만 보고도 대충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냥···. 제가 이제 안 무섭데요. 그리고 그 꼬맹이가 일곱 번째가 될 것 같으니까, 파티를 채워서 게이트를 열려나 봐요.”


“...우리가 정말 평생 일어나지 말라고 기도하던 게 이렇게 찾아왔구나.”


“기도도 하셨어요?”


“난 의사이기 이전에 나름 홀리나이트야. 다 듣고는 계시더라. 들어주지 않으실 뿐.”


어둑한 드루이드의 표정을 펴보겠노라 한 농담이었다.

그러나 효과는 아주 미미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청년은 웃는 척을 하려 했지만, 입꼬리가 좀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툭···. 투둑···.

청년은 침대 위를 손가락으로 일정하게 두드리며 물었다.


“혹시 유빈이 소식 들은 거 있으세요?”


“유빈이?”


“네.”


“...유빈이를 찾을 정도의 일이야?”


드레센은 창백한 표정으로 묻는 동시에 상황이 더 심각함을 깨달았다.

청년은 쓴 약을 삼키는 아이처럼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빈이가 늘 노래를 불렀잖아요. 건슬링어가 배신하면 자기가 두들겨 패주겠다고.”


“그게 진심이었어?”


“그럼요. 유빈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걔였어요. 저 때문에 참고 있던 거지.”


“유빈이가 왜···?”


청년은 뒷머리를 긁으며 질린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대충 알잖아요? 유빈이 성격 지랄 맞은 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빈이는 공격당한 횟수를 딱딱 세고 있다가 딱 그만큼만 되돌려서 패줘야 직성이 풀리는데요. 건슬링어가 옆에 있으면 그 숫자 세는 게 방해되고, 그게 진짜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싫었데요. 루틴 같은 느낌이 아니고 걔는 그게 거의 신념에 가까웠거든요. 좀 좋게 말하면 강박증 같은 거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미친년인 거고.”


“하이구···.”


자기가 공격당한 횟수까지 세는 독한 아이가 이백 년 동안 벼르고 있었으니···.

드루이드의 입장도 이해가 되긴 했다.


“그래서 정말 유빈이까지 불러서 네 딸내미 같은 애를 조지려고?”


“저만 건드린 게 아니잖아요. 일단은.”


“너도 참 웃긴다. 너만 건드렸으면 뭐 참으려고 했어?”


“네. 저야 뭐 봐줄 수 있었어요. 죽이기까진 안 했겠죠.”


“하하! 지랄.”


탁!

드레센은 웃음을 터트리고 들고 있던 작은 노트로 청년의 앞머리를 가볍게 때렸다.


“지랄 말고 가서 확실히 조져. 유빈이는 옛날 송파구청 근처에 있을 거야. 그리고 너. 내가 경고하는데, 만약 정말 걔가 게이트를 열려고 그러는 거면 이번엔 정말 그냥 넘어가지 마. 딸내미고 뭐고 없어야 해. 알겠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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