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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요고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 속 드루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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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요고
작품등록일 :
2023.05.27 14:42
최근연재일 :
2023.07.0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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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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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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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글자수 :
69,439

작성
23.06.21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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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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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1화

DUMMY

드르륵!

누군가가 바로 옆 의자를 잡아당겨 청년의 기분 좋은 시간을 깨트려버렸다.


“엣···.”


한 손으로 잡기도 힘들어 보이는 거대한 가슴.

살짝 색이 바랜 하얀 가운과 셔츠, 검은 스타킹과 짧고 검은 치마.

건강미 넘치는 몸.

하지만 그 몸매와는 다르게 다크서클이 쭉 늘어져 있는 두 눈.

길게 늘어져 얼굴을 듬성듬성 가리는 은빛 머리카락.

마지막으로 은빛 눈동자에 박힌 검은 십자가.


소녀가 놀라 고개를 돌리니, 옆자리엔 누가 봐도 드루이드 청년처럼 ‘특이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에에···. 엣···.”


그런 거대한 여성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으니 소녀는 손을 벌벌 떨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뭐에요? 왜 왔어요?”


청년이 말을 걸었음에도 강제로 합석한 여성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왜 왔냐니까요?”


“그냥 소문이 사실인가 확인하러 왔어. 그리고 받을 게 있으니까 왔지?”


“아니 뭐 그건 제가 찾아가면 되는데···. 근데 소문이라뇨? 무슨 소문?”


“드루이드가 파티를 꾸린다. 그리고 어디에 숨겨둔 딸내미를 꺼내 데리고 다닌다. 그런 소문.”


“참나···. 난 또 뭐라고. 괜찮아. 먹어. 이 누나 착한 사람이야.”


“아···. 안녕하세요오······.”


소녀는 겁을 먹은 채 부들부들 떨면서도 인사는 꾸벅 잘 해냈다.

그 모습에 여성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깊은 눈웃음과 함께 소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아으···. 귀여워. 인사도 잘 하네. 언니가 누구게?”


소녀는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순한 고양이처럼 눈을 감았다가 떴다.


“잘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아냐. 죄송할 건 없어. 그럼 우리 귀여운 친구가 맞춰볼까? 언니가 누구게?”


소녀는 고민 없이 단번에 답했다.


“의···의사 선생님이요.”


“음. 음. 맞아요. 언니는 블루홀의 유일한 의사 선생님. 그리고 세상에서 유일한 홀리나이트. 드레센이에요. 만나서 반가워!”


드레센은 아이만큼이나 순수하게 웃으며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소가 얼마나 강렬했던지.

드레센의 어깨에 왜인지 날개가 한 쌍 보이는 것 같았다.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청년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초를 치기 시작했다.


“누나···. 환자들 맨날 그렇게 대해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


“미치겠네.”


드레센은 청년에게 고개를 돌렸고, 그 짧은 시간 동안 평소의 ‘죽은 얼굴’로 돌아왔다.


“왜? 질투 나냐? 너도 해 줘?”


“아뇨. 제발 하지 말아주세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한테 그러시면 안 되죠. 전 누나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어?”


달그락, 달그락!

드레센은 청년의 스테이크 그릇을 빼앗더니 뒤이어 포크와 나이프도 빼앗아 버렸다.

그리고 자연스레 자신의 것이라는 듯 우아한 표정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뭐에요?”


“너야말로 뭐니? 처먹지도 않을 고기는 왜 시켜?”


“레스팅 몰라요. 레스팅?”


“레스팅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나 같은 프랑스인 앞에서 음식 지식 과시하지 마.”


“아. 맞다. 프랑스인. 그랬지.”


“그래. 그리고 다음부터 또 고기 시켜놓고 안 처먹으면 내가 어디선가 나타나서 다 먹어버릴 거야. 잘 알아 둬.”


“아이···. 나도 배고프구만···.”


달그락, 달그락···.

청년은 드레센의 빠른 손놀림 속에서 조각나는 고기들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친딸이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요즘 경비대도 들락거리고 아주 바쁘시더라? 뭐야? 본격적으로 블루홀에 정착하려는 거야?”


“그럴 리가요.”


꿀꺽.

청년이 단호하게 답하자 드레센은 입안에 욱여넣은 고기를 빠르게 삼켰다.

그리고 청년의 물잔까지 빼앗아 단숨에 비우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뭐. 너도 생각이 있겠지. 언젠가는 정착할 테고. 부탁한 물건은 구했니?”


“그럼요.”


톡톡.

청년은 테이블을 손가락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서 ‘후두둑’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굵은 나무줄기가 하나 올라왔다.

서로 포옹하듯 베베 꼬인 줄기에 놀랄 틈도 없이 줄기는 곧 회전하며 꼬임을 풀었다.

둥그런 둥지 같은 모양이 된 줄기의 속에는 조금 찌그러진 종이상자가 들어있었다.


“우와앗...”


소녀는 눈을 반짝였고, 드레센은 종이상자에 쓰여 있는 ‘50mL’라는 글자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청년이 직접 줄기 속에서 상자를 꺼내니 줄기는 자연스레 다시 청년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여기요.”


“아이···. 10mL면 더 좋았을 텐데.”


“이것도 구하기 힘들었어요. 제가 몇 군데를 돌아다녔는지 알아요?”


“그러니까 여기서 끝내는 거야. 아무튼, 고생했어. 다친 곳은 없지?”


“있었으면 우리 여기서 안 만났죠.”


“맞지. 사실 그냥 예의상 해 본 질문이었어.”


흐흐.

드레센은 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 웃음소리를 끝으로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드레센과 소녀는 고기에 집중했고, 청년은 무대 위에서 간드러진 목소리를 자랑하는 여가수에게 집중했다.


흐흥... 흥...

콧노래를 부르기를 몇 분.

이십 분 정도 쉬고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여가수는 박수갈채 속에서 사라졌다.

즐거웠던 무대가 끝나고 드루이드가 뒤를 돌아보니, 고기를 절반 넘게 남긴 아이가 보였다.

하지만 드레센은 깔끔한 접시만을 남긴 채 사라진 뒤였다.


“뭐야? 어디 갔어?”


청년이 묻자 소녀는 출구 쪽을 가리키며 눈치를 보았다.


“흠···. 많이 바쁜가 보네.”


“그···. 돈···. 못 받으신 거 아니에요?”


소녀는 순수한 호기심과 걱정을 반씩 섞어 청년에게 건네었다.

청년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돈 못 받으니까 이상해?”


“네. 일하면 반드시 돈을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누가?”


소녀는 눈을 한 번 껌뻑이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녀의 입이 열리기 직전에 청년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대화의 순서를 가로챘다.


“아냐. 말 안 해도 돼. 너도 이 아저씨처럼 크면 이해가 될 거야. 이 세상엔 돈 안 받는 일도 있다는 걸.”


일 더하기 일은 이다.

그 정도로 청년과 다른 어른들에겐 간단한 말이었다.

하지만 소녀의 관점에서 청년의 말은 가히 우주의 진리에 관한 이야기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눈을 데록데록 굴리는 모습이란.

청년은 피식 웃으며 슬슬 일어나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한번.

누군가가 비어 있던 옆자리를 차지했다.


“뭐야? 웬 여자애랑 같이 다녀? 누구네 집 딸내미인데 이런 극진한 대접을 받아?”


탁.

앉자마자 컵에 물을 따르고, 시원하게 들이키는 여성.


『 보통 일 아니긴 한데 그렇다고 날 의심하면 안 되지. 잘못 보지 않았어. 금발. 이상하게 생긴 모자. 갈색 탄띠. 찢어진 청바지. 속옷 같은 윗옷. 검은색, 은색 리볼버 두 자루. 큰 가슴. 하얀 피부. 검은 눈동자. 가슴골에 은색 십자가 목걸이. 눈동자에 조준선. 발광 마스크. 여자치고는 근육이 좀···. 』


소녀는 자리에 앉은 여성을 보자마자 숨을 들이켜고, 이전에 네크로맨서가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청년도 마찬가지로 그때의 대화를 떠올리며, 그녀의 검은 눈동자 속에서 붉게 빛나고 있는 십자 모양의 조준선을 노려보았다.


눈동자에 박힌 조준선.

그리고 허벅지 양쪽의 홀스터에 박혀 있는 두 자루의 리볼버.

타이트한 가죽 재킷 속 속옷 같은 윗옷.

스타킹, 그리고 핫팬츠.

언제 보아도 파격적이고, 거친 매력이 있는 여성.


“그래. 이런 네가 아니면 누가 건슬링어겠어. 내가 아니면 누가 드루이드겠고, 드레센이 아니면 누가 홀리나이트겠고···. 그치?”


청년은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티잉···!

그의 혼잣말에 건슬링어는 물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때렸다.


“뭔 개소리야 갑자기? 뭔 일 있어?”


“그렇잖아. 목에 건 조각상 목걸이. 눈동자 속에 박혀 있는 십자가. 붉게 빛나는 조준선과 시대착오적인 총기. 시체와 두개골에 환장하는 시궁창 속 여자. 이런 어딘가 하나씩 특이한 게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누가 그 ‘괴물들’이니 ‘선택받은 자’들이라느니 그런 유치한 별명으로 불리겠냐고.”


흐음···.

건슬링어는 턱을 괴고 오른손을 탁자 아래-허벅지 위로 내렸다.


“인사는 어디로 가고 그런 말을 해? 좀 서운한데?”


“좀 있으면 이유를 알게 될 거야.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그러니까 일단 좀 조용히 하고 들어 봐.”


“그래? 그렇게 하지 뭐 그럼. 더 말해 봐. 다 들어줄게.”


건슬링어는 옆으로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하아···.

청년은 눈을 감고 미간을 엄지로 꾹꾹 누르며 말을 이어갔다.


“대충 이백 년 전에 하늘이 갈라지고, 괴물들이 튀어나오고, 인간들 사이에서도 괴물에게 대항할 수 있는 괴물이 탄생하고, 핵이 떨어지고, 세상이 망가지고···. 그런데도 지금까지 살아남았던 게 우리야.”


“그랬지. 별로 생각하고 싶은 시절은 아닌데.”


“그래. 백 년 동안 우리가 해온 일을 생각해봐. 참 좆같고 그래도 참을 수는 있었지. 극소수만이 남은 인류를, 망가진 문명을 다시 한번 일으켜 세우겠다는 숭고한 목표가 있었어.”


“맞아. 솔직히 지금의 블루홀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언제 이렇게 다들 컸는지···.”


건슬링어는 작은 미소와 함께 눈을 껌뻑였다.

추억에 젖은 그 얼굴을 노려보던 청년은 질린다는 듯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블루홀이 처음 개방되고, 정착민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그때. 저 밖에서. 사람들이 북적이던 야구장 안을 관람석에 앉아 내려다보면서···. 유빈이랑. 너랑. 나랑. 이렇게 셋이 약속했잖아. 앞으로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격납고를 지켜야 한다고. 25번 격납고를 넘보는 놈들은 누가 됐든 반드시 찾아서 죽여버리겠다고.”


“...그랬지.”


“유빈이가 그때 분명히 경고했잖아. 우리 셋 중 누구든 배신하면 모든 걸 걸고 패죽일 거라고.”


“알지.”


“25번 격납고 속에 뭐가 있는지 너도 알잖아.”


“잘 알지.”


“근데 왜 그랬어?”


건슬링어의 얼굴도, 청년의 얼굴도.

같은 회색빛으로 빠르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무섭지 않다는 건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유빈이만큼은 무서워해야 하는 거 아니냐?”


중간에 끼어 눈치를 보던 소녀는 본능적으로 뭔가 큰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스으읍···.

청년은 얼굴을 밀가루 반죽을 치대듯 거칠게 문지르더니, 소녀를 노려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가까이 다가오라는 신호를 못 알아들은 건 아니었지만, 소녀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만난 지 며칠밖에 안되긴 했지만, 그동안 저 아저씨의 이런 무서운 표정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청년이 보여준 얼굴은 감정을 덜어낸 듯했지만···.

지금 청년의 얼굴은 감정을 덜어낸 수준이 아니라 아예 깡그리 도려낸 수준이었다.


“으···.”


소녀는 신음하며 청년에게 다가왔고, 청년은 소녀를 번쩍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그리고 그녀의 금발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손길이 어찌나 부드럽던지.

몇 년 안 되는 소녀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떠오를 만큼 기분이 좋았다.


“꼬맹아. 저 언니가 말이야. 평소엔 말이 아주 많아.”


“네···.”


“그런데 왜 지금은 저렇게 조용한지 알아?”


“...모르겠어요.”


소녀는 고개를 들어 청년을 올려다보았다.

청년은 누군가 입꼬리만 꼬집어 올린 듯 어색하고도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뭔가 죄책감을 느끼거나, 긴장하면 저리 조용해져. 주로 거짓말을 하고 있을 때 그랬지.”

“아···. 거짓말···. 알겠어요.”


소녀는 건슬링어를 향해 눈을 돌렸다.

푸른 눈동자에는 악의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푸르고 작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건슬링어는 그렇지 못했다.

그녀의 눈뿐만 아니라 얼굴 전체에는 뜨거운 감정이 가득하다 못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저 누나 몸에서 막 흘러넘치는 저 냄새. 어때?”


청년이 싱긋 웃으며 물으니, 소녀는 두 눈을 감고 작은 코를 움찔거렸다.


킁킁···.

그 작은 소리에 건슬링어는 숨을 멈추었다.

그녀의 떨리는 십자선을 유심히 청년이 지켜보고 있으니, 소녀는 금방 해맑게 웃으며 답을 내어놓았다.


“진한 꽃향기가 나요! 전에 아저씨가 구하러 오셨을 때 났던 냄새에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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