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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요고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 속 드루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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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요고
작품등록일 :
2023.05.27 14:42
최근연재일 :
2023.07.07 16:12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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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9,439

작성
23.05.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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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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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7화

DUMMY

쾅!

밤비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탁자 위에 누런 종이를 내리쳤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그의 눈치를 보던 경비대원들은 일제히 어깨를 움츠렸다.

그중 가장 움츠림이 심한 건 밤비노에게 직접 보고서를 올린 중년 경비대원이었다.


“하아···.”


밤비노는 한숨을 푹 쉬고, 의자를 뒤로 젖히며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눈치 보던 탁자 앞의 젊은 경비대원은 침을 몰래 삼키고 물었다.


“그 드루이드 놈을 잡아 올까요?”


“왜?”


“예? 그야···.”


젊은 경비대원은 자신이 보았던 시체 둘의 모습을 먼저 떠올렸다.


블루홀 바로 앞 무너진 건물.

‘GX25’라는 간판의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 1층 건물 안에 널브러져 있던 두 시체의 모습은 어땠나.


정체를 알 수 없는 큰 짐승이 베어 문 자국이 얼굴, 팔, 다리, 옆구리···.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신분을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처음 발견한 당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냄새도 심하지 않았으며 내장은 따뜻하기까지 했다.


괴물들에게 먹혔다면 시체가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리고 당연히 그 시체를 그곳에 둔 것은 사람일 것이다.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사람.

혹은 괴물을 수족으로 부릴 수 있는 사람.


젊은 경비대원이 생각하기에 이런 일을 벌일만한 사람은 딱 그 드루이드 청년뿐이었다.

하지만 밤비노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놈을 잡아?’


드루이드를 잡는 건 그렇다치고.

만약에 드루이드를 잡아 온다 해도 어쩔건데? 증거라도 있나?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저 ‘반드시 드루이드 그놈이어야 해’라는 말투가 너무나도 신경 쓰이는 밤비노였다.

목 끝까지 차오른 분노를 밤비노는 힘겹게 씹어 삼켰다.


“...근데 왜 그리 화가 나셨습니까?”


밤비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세웠다.

청년을 노려보며 밤비노는 중얼거렸다.


“너희들 때문은 아니야. 그냥 사람 두 명의 시체를 블루홀 근처에 흩뿌려놓은 게···. 너무 같잖아서 그랬어. 미안하다. 다들.”


눈에 분노가 가득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흔들림 하나 없이 고요했다.

소파에 앉아 눈치 보던 경비대원들의 경직된 어깨가 풀렸다.


“그래···. 그래서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은데. 여기 적힌 내용이 정말 거짓 하나 없는 거지?”


밤비노가 누런 종이를 두꺼운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묻자 젊은 경비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두 구의 신원 확인이 불가한 시체는 일단 천으로 가려두었고, 목격자는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꽃냄새가 났다고. 시체에서. 그것도 아주 진한 꽃냄새.”


“예. 피비린내 사이에서 이상하게 향긋한 꽃냄새가 났습니다.”


“그래···. 그럼 성기는 왜 손상된 것 같냐?”


“글쎄요. 그렇게까지 시체가 훼손되는 건 보통 뭐···.”


경비대원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잠시 말을 쉬었다.


“복수 아닐까요?”


“복수지.”


밤비노와 젊은 경비대원의 타이밍이 정확히 일치했다.


“그래. 뭐. 사실 복수니 뭐니 한다 해도 블루홀 외곽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 알 바가 아니야. 하지만 블루홀 코앞에서 일어난 일은 이야기가 또 다르지 않겠냐?”


“그렇죠.”


“그래. 그래서 화가 난다고. 누가 봐도 우리한테 뭔가 메시지를 전하는 거잖아. 너. 머리는 제법 잘 돌아가는 것 같은데, 그런 네가 한번 생각해봐라. 도대체 왜 거기다가 시체를 뿌려놓은 걸까?”


“...거기서 사건이 일어나서요?”


드르륵!

밤비노는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상체를 살짝 숙인 채 코 앞의 경비대원을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아니지. 이 새끼야. 어디서 뭔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모르는 거지. 그러니까 용의자 싹 추려서 데려와 심문해야 하는 거고. 드루이드 그놈은 데려올 수 있으면 좋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어야···.”


끼이익.

밤비노의 말을 끊고 누군가가 문을 부드럽게 밀고 들어왔다.


시선이 하나둘 쏠리고.

쏠린 눈들 위 눈썹들이 모조리 찌그러지고···.

일련의 과정 후.


그 모든 시선을 사로잡은 주인공-드루이드 청년은 꼭 쥐고 있던 소녀의 손을 이끌고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아···안녕하세여···. 안녕하세여···.”


금발 소녀는 청년의 손에 이끌려 총총거리며 들어와서는 지나치는 모든 경비대원에게 바쁘게 고개를 숙였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약간씩 생각하는 건 달랐지만, 전체적으로 그 생각의 결이 같았다.

밤비노와 경비대원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청년은 그 침묵을 신경 쓰지도 않고 소파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 그 옆에서 우물쭈물하던 소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그녀까지 소파에 부드럽게 앉혔다.


“오옷···.”


소녀는 푹신한 소파에 엉덩이가 닿자 약간 놀라며 신음했다.

그러더니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장난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 신기한 건 이해하지만 지금은 잠깐 얌전히 앉아 있어 봐.”


청년은 소녀의 팔목을 부드럽게 당겼다.

소녀는 아쉬움에 입꼬리를 살짝 내리고 자리에 앉았다.


“궁금한 게 많으시겠죠. 그러니까 절 보자마자 다 그런 표정으로 입을 꾹 닫고 계시지.”


드루이드 청년은 늘 이런 식으로 주도권을 휘어잡는 대화를 좋아했다.

경비대원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밤비노는 그가 원하는 대로 대화가 흘러가면 안 된다는 것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 궁금한 게 참 많아.”


쾅!

밤비노는 탁자를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체를 살짝 기울인 채 자신을 노려보는 모습이란.

쉽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는 밤비노의 뜻이 강하게 전해져왔다.


드루이드 청년은 피식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자세를 고쳐앉았다.

밤비노와 드루이드 청년 사이에서 튀기는 불똥에 경비대원들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조사에는 성실히 임하겠습니다만···.”


“시끄럽고. 네가 그랬냐?”


밤비노의 갈매기 모양으로 구부러진 두꺼운 눈썹. 그리고 꿈틀거리는 전완근.

두 가지를 흘겨본 드루이드 청년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제가 싫어도 그렇지 다짜고짜 그렇게 물으시면 제가 어떻게 압니까? 제가 뭘 했는데요?”


“그래. 네가 싸질러 놓은 게 한둘이 아니긴 해. 인정한다. 내 실수야. 더 정확히 물어볼게. 저 블루홀 입구 밖에 있는 시체 두 구.”


밤비노는 깨지고 누렇게 뜬 창문 너머 블루홀의 출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성기와 팔, 다리, 복부가 뜯어먹힌···. 정확히는 훼손당한 시체 두 구가 저기 앞에서 발견됐어. 이거 설마 네가 한 짓이냐?”


“아···. 난 또 뭐라고.”


드루이드 청년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길바닥에 껌 종이라도 버린 게 뭐가 대수냐.

그리 생각하는 듯 드루이드 청년은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네. 제가 그랬어요. 그런데 이번 일은 미리 경고도 하고, 허락도 받은 일 아니었습니까?”


“사람 둘 죽이는 걸 눈감아주겠다는 거였지, 밖에 시체 뿌려놓는 걸 용납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어. 이 쌍놈의 새끼야.”


“걱정하지 마세요. 안 그래도 그거 제가 알아서 치우겠다고 이야기하러 온 거니까.”


“그런 새끼가 왜 이리 늦게 와?”


드루이드 청년은 옆자리의 소녀를 흘겨보았다.

소녀는 두 손을 꼭 모아쥐고 두려움에 떨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머리 위에 손을 얹어주어야 하나?

청년은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피로에 찌든 퀭한 눈을 밤비노에게 돌리고 늦게 답했다.


“그야 이번엔 제가 혼자가 아니었으니까요. 이 아이와 함께···. 아, 맞아. 얘가 걔예요. 전에 말했던 아이. 영혼 땜장이의 아이. 내가 얘 납치된 거 구해주고 달래주느라 얼마나 애먹은지 알아요?”


“음... 그렇군. 그건 네 말이 맞다. 아이와 함께 움직이면 피곤하지. 그러고 보니 우리 처음 보는구나. 꼬맹아.”


밤비노는 꽉 쥐고 있던 주먹과 눈썹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그리고 최대한 밝은 얼굴로 소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드리우는 거대한 그림자에 소녀는 약간 겁을 먹고 말았다.


지켜보던 청년은 소녀의 반응을 이해했다.

저렇게 흉악하게 생긴 사람이 다가오면 당연히 무서울 수밖에.

얘는 오죽할까.


“반가워. 블루홀의 경비대장 밤비노 아저씨야.”


밤비노는 소녀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두꺼운 주먹을 들어올렸다.


“히이···.”


소녀의 촉촉한 눈에서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드루이드 청년은 소녀의 손목을 부드럽게 감싸 들어올리며 오해를 다잡아주기 시작했다.


“저건 주먹 인사라는 거야.”


“어른들, 그중에서 강한 사람들의 인사지. 우리 경비대원들처럼.”


그저 앞뒤 꽉 막히고 소리나 치는 무서운 인간인 줄 알았건만.

청년은 밤비노의 이런 따뜻한 모습에까지 차마 딴지를 걸 수 없었다.


“주먹···인사요?”


“그래. 주먹 인사. 이렇게 주먹을 쥐어봐.”


“네···.”


밤비노는 직접 소녀의 주먹을 쥐여주었고, 청년은 주먹을 그대로 살짝 밀어 밤비노의 주먹에 부딪혀주었다.


“아저씨···. 손 엄청 크시네요.”


조금은 밝아진 소녀의 표정에 밤비노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하는 일이 모두를 지키는 일이니까, 이 정도는 되어야지 않겠어?”


“헤헤···.”


소녀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밤비노도 순수한 미소가 전하는 선한 기운에 저도 모르게 눈웃음을 지었다.

청년은 이 아름다운 광경을 조금은 더 맛보고 싶었지만, 그보다 더 급한 일은 따로 있었다.


“오해가 있는 것 같아 드리는 말씀인데, 저는 경비대원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그곳에 시체를 둔 게 아닙니다.”


청년의 말에 밤비노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조금은 시큰둥한 듯 보이기도 하고, 얌전한 불곰 같아 보이기도 하는 오묘한 표정으로 밤비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그 의도라는 걸 정확히 말하라고. 괜히 말 안 하다가 욕 처먹지 말고. 나도 너한테 뭐라 하고 싶지 않아.”


밤비노의 차분한 목소리에서 진심이 묻어나왔다.


“하. 싫지 않아요. 그런 남자들만의 서투른 애정표현.”


“지랄하네.”


청년도 그 진심에 맞추어 자신의 진심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이전에 말한 거. 이 세상을 조지려는 세력. 진짜 그런 게 있나 확인해보고 싶어서 미끼를 뿌린 거예요. 그 시체를 확인하러 온 게 누구든···.”


탁.

청년은 무릎을 짚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소녀의 머리맡을 슬며시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 근처에 머무른 게 누구든 반드시 꽃향기가 날 거예요. 아무리 씻어도, 뭔 짓거리를 하든 피부를 벗겨내지 않는 이상 절대 지워지지 않는 그런 꽃향기요. 사실 여기 온 것도 그 꽃향기를 따라온 건데···. 쩝. 허탕이네요.”


청년은 주변을 슬그머니 둘러보았다.

자신과 눈을 마주하는 경비대원들 대부분이 얹짢아 하는 게 보였다.

그 반응에 안심하는 한편, 청년은 진심으로 그들에게 경고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부디 제가 조사하는 이 일에 여러분들 중 한 명이라도 관여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우리는 시체 확인 차 나간 것뿐이야.”


“알죠. 아는데, 제가 하는 말은 그런 게 아니에요.”


“무슨 말인데 그럼?”


청년은 밤비노의 껌뻑이는 두 눈동자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입꼬리만 살짝 올리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조만간 알게 되실거에요. 제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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