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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요고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 속 드루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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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요고
작품등록일 :
2023.05.27 14:42
최근연재일 :
2023.07.07 16:12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1,285
추천수 :
39
글자수 :
69,439

작성
23.05.27 14:44
조회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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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0쪽

3화

DUMMY

소녀의 기준에선 블루홀의 내부에는 신비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번쩍거리는 네온 사인 간판.

자신처럼 꼬질꼬질하지 않고 말끔한 차림의 사람들.

작은 가판대와 고철 같은 물건을 내다 팔고 있는 사람들.

더러운 그릇에 담긴 국물 요리를 갓난 아이에게 먹이고 있는 어머니.

총을 어깨에 매고 피곤한 얼굴로 순찰을 도는 경비대원들.


물론 청년의 입장에서 이들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변한 게 하나도 없네.’


돌연변이 동물들의 고기를 파는 정육점 아주머니의 가게도 그 자리에 있다.

총포상의 위치도 그대로고, 그나마 바뀐 게 있다면 주인 아저씨가 수염을 길렀다는 것 뿐이다.


1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어제 왔다간 듯 모든 게 친숙했다.


청년은 소녀를 돌아보았다.

소녀는 눈을 반짝이며 이 넓은 공간의 모든 것을 눈에 담으려 애쓰고 있었다.

청년은 소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천천히 살펴 봐. 널 버리고 간 그 사람들을 찾아야 하니까.”


“...꼭 그 사람들을 찾아야 하나요?”


쌉니다. 싸요...

물건을 팔 생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청년은 고철을 내어놓고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소리치는 소년에게로 눈을 피했다.

그리고 한쪽 눈을 찡그린 채 냉정한 현실을 소녀에게 가르쳐주었다.


“복수할 생각도 없고, 성격도 착해빠졌고... 너 같은 애가 살아남으려면 어찌됐든 보호자가 필요해. 미끼로서 살아가든, 걸어다니는 비상식량이든... 일단은 살아남아야지.”


일단 살아남아라. 그러면 뭐라도 된다.

소녀에게는 꽤 어려운 개념이었기에 청년이 전하고자 하는 뜻은 소녀에게 닿지 못 했다.


“...그럼 아저씨가 절 미끼로 써주시면 안 될까요?”


소녀는 청년의 셔츠 소매자락 끝을 살짝 꼬집어 잡은 채 칭얼댔다.

하지만 청년은 매몰차게 고개를 저으며 소녀의 손을 직접 때어냈다.


“저 아저씨들이지? 널 버리고 간 사람들.”


소녀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청년이 가리키는 곳에 그의 말대로 소녀를 내다버린 자들이 있었다.

일행들은 무언가 다급하게 찾는 듯 얼굴에 초조함이 가득했다.

청년은 초조함 범벅의 일행-두 남성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고 명했다.


“쫓아 가. 그리고 악착 같이 물고 늘어져. 아무리 그래도 사람 새끼라면 널 당장 어떻게 하진 않을거야.”


그 후 청년은 소녀의 등에 손을 얹었다.

소녀의 등이 어찌나 떨리던지.

마음을 꽤 독하게 먹었음에도 차마 앞으로 밀어낼 순 없었다.

그 대신 청년은 소녀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너무 걱정하진 마. 모든 게 다 잘 될거야. 정말로.”


탁!

청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녀는 뒤를 돌더니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입술을 꾹 문채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 매서운 표정으로 청년을 노려보았다.


“미워요... 아저씨... 미워...”


소녀는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렸다.

그리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자신을 버린 이들에게 비틀거리며 달려나갔다.


* * *


소울스미스.

영혼 땜장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결국 하는 일은 특별한 힘을 지닌 선택받은 자들의 뒤치다꺼리일 뿐.


이 세상에 몇 안 남은 직업인 영혼 땜장이 중 한 명인 ‘은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그리 말해왔다.


하지만 본인의 의견과 상관 없이 다른 직업들은 영혼 땜장이를 구하기 위해 매 년 기를 쓰고 블루홀까지 찾아온다.


이유는 간단하다.

드루이드니, 홀리나이트니 하는 선택 받은 자들은 괴물을 패 죽이고 얻은 경험치를 영혼에 쌓는데, 그 영혼에 쌓인 경험치를 능력치로 변환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영혼 땜장이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틱틱거리는 노란 전구가 전부인 어두운 방 안.


풍성한 검은 머리와 진한 눈썹, 그리고 약간 마른 몸.

드루이드 청년은 자신의 목걸이 위에 손을 포개어놓은 채 은빛으로 발광하는 은주를 두 눈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가끔은 어머니 같고, 가끔은 나이 지긋한 누님 같고... 참 오묘해. 요즘 시대 사람들이란...’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그 느낌이 더 각별했다.

구겨진 연초를 입에 물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청년에게 은주가 말을 걸었다.


“스킬은 늘 올리던 대로 올려뒀어. 이대로면 2년 뒤에 마스터하겠네. 근데 오늘 표정이 좀 안 좋네? 뭐가 문제야?”


은주의 은빛으로 빛나던 두 눈에서 빛이 한 순간에 꺼졌다.


“...누님 앞에선 뭘 못 숨기겠네요.”


청년은 멋쩍게 웃었다.


은주는 순서대로 늑대, 호랑이, 곰, 거목, 뒤엉킨 뿌리 모양의 조각들이 걸려 있는 목걸이를 청년 쪽으로 부드럽게 밀어냈다.


청년이 목걸이를 챙겨 목에 걸고, 스카프로 목걸이를 가린 후.

은주는 허리를 살짝 굽혀 턱을 괴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냥 블루홀에 살지 그러냐. 살기 좋은데 요즘.”


뚝, 뚜둑...

청년은 웃으며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으... 저 같은 놈들은 정착 못 하는 거 잘 아시잖아요.”


“그래. 바쁘시겠지 뭐. 세상을 구해야하는데. 어련하시겠어.”


꿀꺽...

은주는 작은 유리잔 속에 한 입 정도 남은 맥주를 몽땅 털어넣었다.


“크으...”


은주는 입술에 묻은 맥주를 닦고, 입도 대지 않은 청년의 커피잔을 내려다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으엥? 웬 일이야? 커피 귀신이 커피도 안 마시네?”


그 말에 청년은 얼굴에서 완전히 웃음기를 지웠다.

대신 눈썹을 찌푸리고, 입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기묘한 표정으로 자신이 들어왔던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한참 고민하던 청년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누님. 어쩌다가 누님 같은 영혼땜장이의 후계자 같은 아이를 찾았는데요.”


짝!

은주는 가볍게 두 손을 모아쥐고 싱글벙글 웃어보였다.


“나 같은 애가 또 있다고? 게다가 어려? 허이구.”


“네. 많이 어려요. 열댓살 됐으려나.”


“야! 경사네! 그럼! 근데 그게 왜?”


톡. 톡. 톡...

탁자를 손가락으로 일정한 리듬대로 두드리며 청년이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제가 거두려고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분명 그 목걸이에 영혼땜장이의 상징이 달려 있었는데... 그 아이가 후계자가 맞는지도 모르겠고요. 만약 맞다 하더라도 그 아이에게 그런 일을 맡기는 게 맞는가 싶기도 하구요. 또 그 아이가 이런 일을 거부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영혼땜장이라는 직업이 가벼운 건 절대 아니잖아요.”


“가벼운 게 아니긴 하지. 남들보다 세 배 빨리 늙는 걸 알았으면 나도 안 했어. 내가 타고난 동안이라 다행이지... 아휴. 나이 빨리 먹는 여자라니. 내가 생각해도 징그러워.”


나름 농담으로 분위기를 녹여보려했건만.

청년은 웃는 척도 하지 않았다.


‘진짜 심각한가보네.’


흐음...

은주는 팔짱을 끼우고 잠시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


“뭔 상황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미 마음은 정한 거 아니니? 거두기로?”


“아뇨. 제가 그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고, 그래서 약간은... 멀리 밀어내고 왔는데... 또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 후회가 되네요.”


답을 정해놓고 묻는 느낌이 어느정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은주가 보지 못 한 두려움이 청년의 눈에 걸려 있었다.

소녀도 소녀지만, 우선 은주는 그 두려움을 어떻게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처음부터 전부 다 말해 봐. 들어줄게.”


은주의 따뜻한 말에 청년은 서글프게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안해요. 말에 앞뒤가 없었죠. 그러니까 음... 드레센과 누님을 만나러 오는 길에 한 아이를 마주쳤는데...”


청년은 자신이 겪은 모든 일-소녀와 관련된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조용히 듣고 있던 은주는 이야기 내내 어떠한 표정 변화도 보여주지 않았다.

종종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딱히 긍정이나 부정의 의미는 아니었다.


“뭔 소리인지는 알겠어. 네 코가 석자라 아이를 버려두고 왔는데 신경이 쓰인다는 말이지?”


“대충 그래요.”


“흐음...”


톡. 톡...

은주는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잠시 사색에 잠겼다.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늘 내가 생각하던 게 있는데. 들어볼래?”


“그럼요.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그래. 지금은 안 계시지만, 어릴때부터 엄마가 귀에 딱지 앉도록 나한테 그랬어. 세상을 바꾸는 건 작은 선행부터 출발하는거라고.”


“작은 선행부터...”


청년은 끝말을 우물거리며 눈을 반쯤 감았다.

은주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좋은 기회 아니야? 너 술만 취하면 맨날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중얼거리잖아. 스킬도 대부분 마스터했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계기와 용기가 없었을 뿐이지. 안 그래? 영웅 꿈나무?”


“아니 그건 술 취해서 하는 말이고, 영웅 노릇은 이미 하고 있긴 한데... 근데 뭐 제가 딱히 후달리는 건 없긴 하죠.”


“그렇지. 당장 까놓고 말해서 너보다 레벨 높은 애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될 것 같은데?”


벅벅...

청년은 볼을 긁으며 시선을 피한 채 중얼거렸다.


“그래도 열 명은 되지 않을까요?”


“아니. 장담하는데 세 명도 안 될거야.”


탁!

은주는 청년의 굽은 등을 가볍게 후려치고 말을 이었다.


“어차피 마음도 다 먹은 것 같은데, 뭘 이제와서 징징대고 있어? 늘 하던대로 해. 네 꼴리는대로.”


꼴리는대로.

그 말을 듣고 나니 청년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러게요. 하긴. 꼴리는대로 살아야지. 그게 나다운 거지. 음···.”


달그락.

청년은 손에 꼭 쥐고 있던 금빛 5.56MM 소총탄 열 발을 탁자에 올려두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좀 마음이 편해지네요.”


“열 발이나? 왜 이리 많아?”


청년은 벽에 걸린 깨진 거울 앞에 섰다.

스카프에 목걸이가 잘 가려졌는지 확인한 후.

그는 미루어두었던 답을 꺼냈다.


“조만간 신세 좀 질 것 같아서 미리 점수 따려구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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