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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거스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괴사(武林怪史)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데거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1.24 18:15
최근연재일 :
2024.02.2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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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6,954

작성
24.01.2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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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글자
12쪽

하산(2)

DUMMY

고요한 정적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가운데.


스릉!


나는 백곡을 거두고 허리춤에 있던 흑검(黑劍)을 뽑아들었다.


흑검의 이름은 비절(悲絶),

백곡이 괴이와 망자를 베는 검이라면 이것은 산자를 베는 검이다.


비절을 뽑아 마차 뒤에 숨어 있던 길잡이 노인에게 겨누었다.


“유소협??”


“헙! 가,갑자기 저한테 왜 그러십니까?”


“몰라서 묻나?”


나는 선천적으로 사람의 혼백을 볼 수 있었다.

혼백의 색은 저마다의 업(業)에 따라 달라지는데,


평범한 양민들의 경우 업(業)이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의 백색을 띄지만, 무림인들은 살생을 행하여 붉은 빛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 노인은 길잡이라면서 여기 있는 누구보다 짙은 적색(赤色)을 지니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혼탁한 기운을 풍기는 게 수상했다만, 아귀를 만들어 사람들을 습격할 줄은 몰랐군.”


“스,습격이라니 얼토당토 않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그러자,


캉!


기괴하게 변한 노인의 손이 검을 막아냈다.


“크흐흐흐.”


이미 완전히 들켰다는 걸 직감했는지,

노인이 괴소를 터트리며 잔뜩 충혈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본다.


“웬 미꾸라지 하나 때문에 모든 게 다 허사가 되었구나.”


그의 짐승과도 같은 손톱을 본 제갈성문과 무인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저 흉측한 손은···”


“설마 괴사노(怪邪老)!?”


노인의 정체를 알아차린 제갈성문이 노호성을 터트렸다.


“괴사노(怪邪老) 여율!! 사혈련의 주구가 무슨 낯짝으로 얼굴을 들어낸 것이냐!”


사혈련(邪血聯)은 사도문파들의 연합체이자 백도회와 대착점에 있는 세력으로, 세간에 들리는 소문으론 비정하고 간악한 이들이 모여 있다고 한다.


냉랭한 눈빛으로 놈을 훑어보았다.


“보아하니 탈혼(奪魂) 당한 것은 아닌 듯 하고 사술을 다루는 모양이군.”


사술(邪術)이란 술법 중에서도 그 과정이 악독하거나 인륜에 벗어난 것들을 뜻했다.


술법은 고대시절부터 음지를 통해 전수된 것이라 쉽게 찾아볼 수 없고 기원에 대해서도 자세히 밝혀진 바는 없었다.


다만, 스승님께선 과거 인간이 괴이의 힘을 흉내 내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술법이라는 말씀을 자주하셨고, 나는 이 가설이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무공도 사람이 동물을 비롯한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을 본 떠 만든 것 아니던가?


무공의 기원이 이러하니 술법도 비슷한 이유로 만들어졌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정작 무림인들은 몇몇 술법을 제외하곤 다 사술이라 취급하고 있는 것 같지만,’


터놓고 말하면 나는 술법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역시 하나의 비전이라 여겼으니까.


다만,

이것도 어느정도 선을 지켰을 때의 이야기다.


“제아무리 사술이라 해도 아귀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지. 아귀는 다른 괴이들과 달리 혼백을 통해 탄생하는 존재니까.”


“어린놈이 별걸 잘 알고 있구나.”


아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면,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하나뿐,


그건 바로 한창 혼백이 짙어질 나이인 5~10살 정도의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일부러 굶겨 죽이는 것이다.


“···몇 명이었지?”


“흘흘, 글쎄, 서른? 쉰? 솔직히 잘 생각은 안 나는군. 천하에 부모에게 버려진 것들이 한둘이어야지. 물론 그것도 네놈 때문에 다 그르쳤지만 말이야.”


그가 품속에서 부적을 내 던지고 방울을 흔들었다.


“영영결(影影結)”


놈의 손짓에 맞춰 바닥에서 검은 그림자 같은 것들이 솟구친다.


‘미리 준비해놓았던 술법 중 하나인가?’


뭐라 경고 해주기도 전에 제갈성문과 대원들은 알아서 잘 대처했다.


“무슨 사술인지 알 수 없으니 모두 조심해라!!”


“예!!”


섣불리 나서지 않으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

사술을 상대해본 경험이 제법 많은 모양이다.


‘그래도 이토록 빠르게 펼칠 수 있는 걸 보면 크게 위협적인 술법은 아닌 것 같은데,’


속으로 계산을 마치고 땅을 박찼다.


“이놈!!”


여율의 주변에 일렁이던 그림자들이 나와 제갈성문 일행을 덮친다.


‘몸에 달라붙는 그림자라, 예상대로 공격보단 속박에 가까운 술법이었군.’


그림자를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 쓰는 제갈성문과 무인들을 살피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달아나고 있는 여율의 뒷모습이 보인다.


‘애초에 아귀를 잃었을 때부터 도망칠 생각이었나,’


어쩌면 내가 아귀를 단칼에 처리하는 걸 보고 예상외의 고수라 생각해 싸움을 피한 것이 수도 있다.


“흘흘흘, 아무리 실력이 출중한 무림인이라 해도 그것들을 떼어내는 건 쉽지 않을 게다.‘


나름 확신과 오해가 뒤섞여 저런 수를 택한 것이겠지만,

내 눈엔 쓸데없는 발악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심호흡을 하고 기운을 끌어올려 다리를 붙잡은 그림자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마치 비단처럼 쉽게 잘려나가는 그림자,

놈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첫번째는 내겐 이런 술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두 번째는 바로 도망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내가 단칼에 그림자를 모두 베어버리자 그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무슨?!”


“낮에 했던 말을 벌써 잊어버렸나?”


“지금 무슨 헛소리를···”


나는 분명 그가 있는 자리에서 똑똑히 말했다.


“애석하게도 난 무림인이 아니야.”


“이,이익!!”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느낀 걸까?


그가 숨겨왔던 비장의 수를 꺼냈다.


“이건 네놈이 다 자초한 일이다!!”


그가 품속에서 낡은 목패 하나를 꺼내 내게 던졌다.


그리고,


“귀중옥(鬼中獄).”


기이한 손짓과 함께 술식을 읊자,

목패가 부서지고 검은 안개 같은 것이 나를 덮치며 시야가 완전히 암전되었다.





*****





어두운 공간,

주위를 살펴봐도 고요한 적막만이 가득했다.


‘환계의 술인가?’


환계(幻界)의 술(術)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상에 빠트려 환영, 환각 등을 이용해 상대의 정신을 잠식하는 술법을 통칭하는 말이다.


‘환계는 술법 중에서도 다루기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몇 번을 생각해도 방금 전 노인의 실력으론 마땅한 준비 없이 환계의 술을 펼치는 건 불가능하다.


‘그 목패(木牌), 평범한 목패가 아닌 목부(木符)였나 보군.’


목부란 나무로 만든 부적에 술식을 적어 사용하는 사술로 목패를 제물로 삼아 사람의 몸으로 다루기 힘든 술법을 펼칠 수 있게 해준다.


뛰어난 술사만이 만들 수 있고, 그마저도 과정이 까다로워 술사들 사이에선 손에 꼽힐 정도로 귀한 물건이라 들었는데, 설마하니 목부를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혀를 차며 주변을 둘러봤다.


‘킥킥킥킥!’


‘끄르르르···’


괴성을 내지르며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악귀들,

아무래도 이 환계는 악귀가 가득한 환영을 보여주는 모양이다.


‘별다른 파훼법은 보이지 않고.’


술법을 막아주는 주구(呪具)나 해주(解呪)의 술이 아닌 이상 일반적인 방법으론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았다.


‘술법에 해박한 이가 아니고선 반드시 죽는다고 봐야겠군.’


지고한 경지에 오른 고수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이런 환영 속에 갇혀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피폐해지고 금세 이성을 잃을 것이다.


허나,

그건 평범한 무림인에게나 해당하는 말.


나에겐 통용되지 않았다.


내 팔을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악귀들을 떨쳐낸 뒤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본디 음(陰)의 존재인 악귀는 영력이 아닌 내공으론 별다른 피해를 줄 수 없었으나,


서걱!


‘끼에에엑!’


내 검에 베인 악귀들은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형체가 없는 악귀도,

탈출할 수 없는 환각도,

복잡하기 그지없는 술법도,


내겐 통하지 않는다.


요광(搖光), 파군성의 힘 덕에 나는 남들이 볼 수 없는 걸 보고, 남들이 벨 수 없는 걸 벨 수 있었다.


음(陰)과 양(陽), 산자와 망자, 괴이와 영물,

내겐 모두 똑같이 베어낼 수 있는 존재에 불과했다.


‘후우···’


기수식을 취하고 가볍게 횡베기를 펼치자,


콰지직!!


검기가 악귀와 함께 공간 자체를 갈라버렸다.


그러자 당황한 표정을 짓는 여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귀,귀중옥은 초절정의 고수조차 일각 안에 백치로 만들어버리는 술식이거늘···”


그가 현실을 부정하듯 소리쳤다.


“어떻게···어떻게 벗어난 것이냐?!!”


“베었다.”


“뭐라? 그,그럴 리가 없다! 이건 무려 목부를 이용한 환계의 술이란 말이다!!”


말하는 걸 보니 방금 전 술법이 그의 비장의 한 수였던 것 같다.


그에겐 목부를 만들 정도의 실력이 없으니 스승이나 사문에서 물려받은 게 아닐까 싶다.


스윽.


멍한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은 놈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달빛이 칼날에 반사되어 놈의 얼굴을 비춘다.


“혹시나 해서 묻는다만, 이대로 투항하고 죄를 뉘우칠 의향은 있나?”


“다,닥쳐라! 네놈만, 네놈만 아니었다면···!!!”


울분에 가득 찬 외침과 함께 마지막까지 조법(爪法)을 펼치는 여율,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냉랭한 눈빛으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런가···”


캉!


검면을 이용해 놈의 손톱을 가볍게 흘려냈다.


음양천기공(陰陽天氣功)

평범한 사람은 몸에 담는 것이 불가능한 음기와 양기를 동시에 품어내는 무공이다.


본래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 건 양천기공(陽天氣功)으로 양기만을 담는 무공이었으나, 내 체질로 인해 음기와 양기를 모두 담아낼 수 있게 되며 나만이 익힐 수 있는 비전절학이 되었다.


“크윽!”


일반적인 내공보다 더욱 농후하고 짙은 기운에 놈이 신음을 흘린다.


“어,어린놈의 내공이 어찌···”


“훌륭한 스승님 밑에서 사사한 덕분이지.”


점점 수세에 몰리자,

이대론 안되겠다 생각했는지 그가 내력을 끌어 올리며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동귀어진을 펼치는 것처럼 위장해 방심을 유도하려는 건가?’


뻔히 보이는 수에 당해줄 생각은 없다.

차라리 이렇게 된 거 그의 수법을 역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죽어라!!”


여율은 전력을 다해 손을 뻗었지만,

나는 허초로 그의 일수를 부드럽게 흘려냈다.


스르륵!


당혹스러워 하는 얼굴,

그가 미처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발을 내디뎠다.


양천검(陽天劍) 유수(流水)

물 흐르는 듯한 검격이 그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서걱!


달빛을 머금고 반원을 그리는 검,

그것이 여율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가볍게 칼을 휘둘러 피를 털어내곤 짧게 숨을 내쉬었다.


‘하산하자마자 피를 묻히게 될 줄은 몰랐는데,’


참으로 짓궂은 운명이다.


‘술사의 실력이 형편없어서 다행이군.’


그보다 실력이 더 뛰어난 이가 저 목부를 다뤘다면, 나뿐만이 아닌 저 뒤에 있는 무인들까지 모두 환각에 갇혔을 것이고 그럼 필히 목숨이 위태로웠을 것이다.


‘그나저나 아무리 사술에 능통하다 해도 괴이, 그것도 아귀를 만드는 방법은 어떻게 알고 있던 거지?’


평범한 사술사가 알만한 정보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배웠다면 그것도 문제고, 스스로 알아낸 거라면 더더욱 문제로군.’


전자는 아귀를 만들고 있는 사람이 또 있다는 뜻이고, 후자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희생되었다는 소리였으니까.


차가운 눈빛으로 여율을 응시하다 서서히 형체를 잃어가고 있는 아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것으로 너희들이 넋이 조금이라도 위로받았으면 좋겠구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안 보여도 내 눈엔 똑똑히 보였다.


‘끼이이익···’


‘그으으으···’


소멸해가는 와중에도 여율의 육신과 흩어져가는 혼백에 들러붙어 있는 굶주린 아이들의 모습이 말이다.


‘부디 이승의 고통을 잊고 그곳에선 평온을 찾을 수 있기를,’


피비린내와 역한 사기가 들끓는 땅 위에서,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희생된 아이들의 혼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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