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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사래 님의 서재입니다.

보통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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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래
작품등록일 :
2016.12.01 20:40
최근연재일 :
2019.03.02 20:28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11,861
추천수 :
105
글자수 :
163,954

작성
19.01.17 07:37
조회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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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12쪽

알고 있었어. 아주 오래전부터

DUMMY

그저 휴무였지만 2과 사람들은 모두들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 예상하고 있었다. 정인이 일본에 다녀오리라는 것을.

스미토모...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의 정인의 표정이 말해주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정인의 표정.. 눈만 살아있고 나머지 신체는 얼어붙는 듯한 그 표정.. 그 차가움이 주위 공기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정인은 출근을 하자마자 갑자기 성준을 불러 뭔가를 지시한다. 성준의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다. 입도 다물어지지 않는지 침까지 흘릴 기세다. 정인은 본인 할 말만 다하고는 어디론가 쌩 사라진다. 성준은 정인이 나가고도 한참을 그렇게 더 있다가 수첩을 챙기고 핸드폰을 챙기고 차키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 초췌한 얼굴로 들어온다. 그러나 정인은 하루 종일 코빼기도 안 비친다.


2과도 본연의 업무가 있어서 정인에게 온 신경을 쏟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다들 다른 업무를 보면서도 마음은 온통 정인에게 쏠려 있었다. 김 팀장도 눈치를 보아하니 정인에게서 아무런 언질도 못 받은 모양새다. 하루 종일 전화기와 눈싸움을 하거나 문소리만 들려도 고개가 저절로 문을 향하는 것을 보니. 퇴근시간이 되어도 정인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들 미적거리며 퇴근을 미루고 있을 때 드디어 김 팀장의 핸드폰이 반응을 한다. 심각한 얼굴로 듣기만 하던 김 팀장은 잠시 앉아 있더니 퇴근하겠다고 나간다. 종배는 아직 병가중이고 그때까지 멍하게 있던 성준과 동석은 갑자기 활기를 띠면서 일을 하는 척 한다. 누가 봐도 어색한 연기를 하면서.

“ 잉? 그랴? 잉 알겄어.. 가야제..잉 후딱 마무리하고 갈팅께 쪼매만 기둘리”

갑자기 성준이 주위에 있는 사람 모두 들릴만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뭐 물론 전화가 온 걸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와따메 이 썩을 놈덜은 꼭 퇴근시간 맞춰감시롱 사람 염장을 지르는 구만. 아야 동석아 니도 채비혀라잉.. 이 문딩새끼덜이 시방 쩌그 찜질방에 떴단다.”

눈치 없는 동석이 눈만 껌벅거리면서 밍기적 거리자 성준의 목소리가 한옥타브 올라간다. 기어이 돼지 멱을 딴다.

“ 와따 안즉도 말귀를 못알아묵냐 잉? 그랑께 맨날 정인이헌티 터지제... 아이고.. 속터져 죽겄네... 싸게싸게 옷입고 나오랑께.. 그놈덜이 나 한가항께 잡아가쇼 하고 기다린다냐.. 언능 가도 잡을똥말똥인디...”

그러더니 주섬주섬 외투를 걸치고 있는 동석의 뒷덜미를 잡아끈다. 질질 끌려나가는 동석을 바라보며 다른 과 사람들이 키득거린다.

순식간에 2과의 의자는 텅 비었다.


마지막으로 손계장이 들어오며 문을 닫자 정인이 커튼을 닫고 그 위에 보드를 턱하니 건다.

이미 준비해 온 듯 보드에는 사진과 여러 이름들이 써져있다.

언 듯 봐도 안유근의 가계도 이다.

맨 위칸에는 안유근의 부모, 옆에는 처 그리고 밑에는 딸.. 그런데 하나가 더 있다.. 딸 이름 옆에 물음표?

안유근에게 자식이 하나 더?


“ 에헴..음...음...”

성준이 의자에서 의기양양하게 일어서면서 목소리를 다듬는다.

“ 채서린.. 살아있음 현재 나이는 45? 아무튼 19년 전에 죽어분거로 추정됨.. 막 1집을 내고는 바로 잠적 해부러갔고 안즉꺼정 소식을 모림.. 그때 찌라시에 잠깐 안유근과의 스캔들이 났었심.. 뭐... 아조 감깐 났다가 사라져비맀응께 아는 사람도 거의 없제.. 찌라시를 쓴 당사자 정도..아주 애럽게 얻은 정보구만.. 내니께 가능혔제.. 음.. 음...”

성준은 허리를 꼿꼿이 편채로 의자에 앉는다. 그리곤 정인을 향해 손짓을 한다.


다음은 정인 차례

“ 박윤서.. 나이 스물.. 만 열 여덟.. 군인이었으나 최근에 의가사 제대. 훈련 도중 다리를 다쳤다고 함. 골프 특기생으로 입대..”

여기까지 정인은 얘기를 하고 주위를 쓱 둘러본다. 다들 동공은 최대로 확장되었고 입은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손계장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다. 정인은 하던 걸 계속한다.

“ 문경 군인 체육대회에도 참가했었고 사경위님 아들과 형석군과는 군대 동기. 아버지는 박지만... 그리고 박 지만의 여동생 이름은 박 지영... 사라진 채서린의 본명.”


정인은 보고있던 종이 쪽지를 탁자에 놓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등을 돌린다. 팔짱을 끼고 탁자에 엉덩이를 걸친 채 보드를 바라보며 감정 없는 목소리로 얘기를 계속한다.

“ 여기까지가 밝혀진 팩트.. 다음은 내 추론.. 안유근은 의도적으로 채서린에게 접근해서 임신을 시킨다. 내 말은 고르고 골라 채서린이었다는 의미. 채서린 입장에서도 가수 생활을 하자면 스폰서가 필요했을테니 거부는 하지 않았을 듯.. 아니 젊고 돈 많은 스폰서라 어쩜 진짜로 좋아했을 수도 있고. 아무튼 그렇게 채서린은 모처에서 아이를 낳을 준비를 했다. 어차피 안유근이 의대를 졸업했으니 다른 의사는 필요치 않았을거고. 물론 은신처에 장비까지 전부 갖춰져 있었을 것이고. 채서린은 꿈에 부풀어 있었겠죠. 아이만 낳으면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걸로 믿고..”


잠시 정인은 얘기를 멈춘다. 다른 사람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정적이 길어진다. 정인이 하기 힘든 얘기라는 의미이다. 이제는 모두들 알고 있는 정인의 습관인지라 성미 급한 성준마저 입을 다물고 기다리고 있다.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린다. 뭔지는 모르지만 뭔가 거대한, 예상치 못한 것, 아니 두려운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정인이 탁자에 걸쳐져 있던 엉덩이를 뗀다. 그리곤 허리를 곧게 핀 다음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다. 여전히 시선은 보드만을 바라본 채로. 그리곤 계속한다.

“산달이 다 되어갔을 때 안유근은 한 가지 제안을 해요. 아마 채서린도 처음엔 반대를 했을 거예요. 두려웠겠죠. 그러나 안유근이 끈질기게 설득했을거예요. 결국 안유근의 설득에 넘어갔겠죠. 그리고..”


갑자기 정인이 고개를 홱 돌리고 사람들을 쳐다본다. 아니 정확히는 문을 쳐다본다. 그리곤 정신없이 뭔가를 찾듯이 주위를 둘러본다. 순식간이었다. 정인이 보드를 떼어내고 커튼을 잡는다. 그리곤 소리 나게 북 찢는다. 다들 일어나서 허둥 지둥 하는데 밖에서 갑자기 불이야 소리가 들린다. 그리곤 창문을 열어젖히곤 커튼을 아래로 내린다.

“ 빨리요.. 어서 내려가요.. 어서..”

“ 아니 멀쩡한 문을 놔두고 여기로...아야”

성준이 문을 열려고 하다가 손이 데인 듯 뒤로 물러선다.

그제서야 다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일사불란하게 커튼을 붙잡고 아래로 내려간다. 다친 종배를 동석이 끌어안고 먼저 내려가고 그 다음은 정인, 김계장, 손팀장순으로 내려간다. 맨 마지막에 성준이 채 내려오기도 전에 커튼에 불이 붙는다. 다행히 운동 신경이 좋은 성준이라서 크게 다치지는 않고 땅에 발을 딛었다.

성준이 바닥을 구르듯이 겨우 땅에 착지했을 때 정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이 방금 빠져나온 곳을 쳐다보고 있다. 두 주먹을 꽉 쥔 채로. 그리고 그 모습을 김팀장과 손계장은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날 밤 정확히 밤 12시 갑자기 안유근 차기 대선 후보의 홈피에는 알 수 없는 노래가 바탕 화면에 깔리고 있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그 노래를 듣고 어리 둥절해 있는 동안 안유근 캠프에는 큰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노래를 삭제하는 데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아직도 찾아보고는 있지만 아직 파악이 안되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들어오고 있어서.... 어떤 놈인지 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는 것 밖엔...”

어두운 방안 쩔쩔매면서 보고를 하는 사람을 누군가가 한 손을 들어 저지한다.

“어쨋든 삭제는 시킨거죠”

“ 네.. 간신히... 그런데 이미...”

다시 계속되는 변명을 저지한다.

“ 됐습니다... 누군가가 장난 친겁니다.. 그냥 그렇게 처리하세요..”

보고자가 물러나자 안유근이 돌아서 책상을 쾅 내리친다.

그리곤 동물이 으르렁 거리듯 뭔가를 낮게 웅얼거린다. 분명히 일본어다.


“아야 미친겨? 아무리 꼭지가 돌아비리도 그라제 거... 거...거기를 그라고 바로 직접적으로다 건드려불면 어쩐다냐? 어짤라고 그란겨? 너제? 너밖에 음써... 도대체 으짤라고... 잉? 잉?... 갸들이 가만 있겄냐? 니가 어짤라고....”

성준은 방에 들어오자 마자 정인을 붙잡고 퍼붓고 있다.


“ 이번엔 진짜 홧김에 한 거 아냐.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젠 더 이상 우리 목숨까지 건드리는 짓은 안 할거야. 아니 못해”

한참 동안, 존댓말만 쓰던 정인이 이젠 스스럼없이 반말도 섞는다. 그만큼 친해졌단 의미이리라. 그리고 그만큼 화가 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무튼 정인이 꽤 단호하게 주장을 피력했지만 이번에는 모두들 불안을 완전히 지우진 못한 얼굴이다.

“ 한꺼번에 우릴 전부 죽일려고까지 한 사람이다. 어떻게 그렇게 장담해? 그 사람한텐 우리들 목숨쯤 대수롭지도 않을거야. 절대로 용의자로 몰리지도 않을거고. 아니 의심조차 받지 않겠지.”

김 팀장이 모두를 대변해서 차분하지만 확고한 어투로 묻는다.

“ 죽일려고 한 거 아니에요. 경고를 보낸 거지. 진짜 죽일거였으면 그렇게 떠들썩하게 화재로 위장하지도 않았어요. 알잖아요 모두. 얼마나 쉽게 사람 죽일 수 있는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일부로 화재로 한거에요. 우리가 죽지 않을 정도로만. 우리가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만.”

정인의 어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침착하면서도 차가운 그 말투로.

듣고 보니 수긍이 간다. 그렇다. 진짜로 전부 죽일거였으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는 않는 표정들이다.

“ 듣고봉께 일리는 있는디 그랴도 그라고 해불면 가만 있겄냐? 잉? 이번에야말로 참말로 우덜을 한꺼번에 어치케 해부는거 아녀? 어치케 고로코롬 장담하는겨? 뭐 딴 것이 있제? 니만 알고 있는.. 뭐시여? 도대체 뭐시 있길래 고로코롬 니가 자신만만한것이여?”

어수룩하고 성미만 급한 성준이 너무도 정곡을 찌르자 정인이 오히려 당황한다.


정인은 의자에 앉더니 팔짱을 끼고 그저 멀리만 바라보고 말이 없다.

어느 누구도 그 정적을 깨진 않는다. 모두가 익숙한 정적이고 또한 그 정적을 끝내는 건 어차피 정인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기에. 이젠 기다림에 익숙하다. 그동안 겪은 일들이 엄청난지라 남아 있는 일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도 안 된다.

어찌 보면 이젠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에 더 말을 못하고 있는 편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어마어마한 일이 남아있는지...


한참을 그렇게 침묵 속에 있었는데도 정인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열심히 쳐다볼 뿐 말할 기미가 없다. 그러더니 툭 뱉는다. 그때까지 넓게 퍼지고 있는 몽글몽글하고 보드라운 안개를 차가운 광풍이 불어와 단숨에 날려버리듯 그렇게 급작스럽게. 단칼에 베어버리듯 냉혹할 정도로 뜬금없이 그렇게.


“ 안유근, 날 알고 있었어. 아주 오래전부터. 날 낳아준 부모님까지 알고 있었어. 내 생부의 친구였어. 아니 친구라고 믿게끔 했어. 그 사람은 실패했는데 내 생부는 성공을 했어. 내가 그 성공의 결과물이고.”

한 글자 한 글자에 정인의 분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흡사 안유근에게 말하듯이 한다.

모두들 눈만 껌벅거리고 있다. 아무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한다. 이건 뭐 청천벽력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것 같다.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정인이 뱉은 단어들이 분명히 뇌 속으로 흡수는 됐는데 결과물이 도출이 안 되고 있다. 오류가 났다. 뇌가 버퍼링을 일으켰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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