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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마법사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한 검신은 악역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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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5.12 22:47
최근연재일 :
2023.05.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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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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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화. 1차 겨울원정(2)

DUMMY

3화


한 차례 전투가 쓸고 간 아쉬트 평야엔 깊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우뚝 선 한 마리의 늑대와 독수리.

자랑스레 휘날리는 깃발은 켈트족이 패배했음을 알리고 있었다.

켈트족의 족장인 트할은 발가벗겨진 채로 포박당해 있었다.

‘······꼴불견이군.’

그는 로웬과 마주한 순간 패배를 직감했다.

너무나도 드높은 존재.

그것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하여 자결하려 했다.

하지만 언젠가 날아온 칼날에 그의 검이 산산이 부서졌다.

다가온 흑안의 사내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대륙의 멸망이 다가올 것이다. 지금 나의 힘으론 어쩌지 못하는. 내겐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다. 너와 네 부족은 그것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죽음을 면친 못할 것이니.’

“제국의 개가 되라니······.”

트할은 걸쭉한 핏물을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그도 느끼고 있었다.

방금 핏물을 뱉는 순간도 입술이 떨렸음을.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건가.’

제국이 구태여 야만족들을 살려줄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귀족으로 보이는 애새끼가 자신에게 보인 태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내게 말을 건넬 때 놈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 괴물 같던 놈도 두렵게 만드는 멸망은 뭘까.’

정말 이 대륙 전체가 달려들어도 막지 못하는 거대한 악이 있는 거라면······.

스윽.

트할이 묵묵히 뒤를 돌아봤다.

무릎이 꿇려 죽음을 기다리는 동족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우리의 터전.

‘웨스턴 대륙.’

눈을 질끈 감았다.

과연 영광스런 죽음이 있을까.

괴물이 말했던 멸망을 막지 못한다면 남아있는 동족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우리 삶의 터전은······ 사라지는 것인가.’

무수히 많은 의문이 그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하지만 생각이 이어지진 않았다.

괴물, 아니 로웬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은 정했나.”

“······우리의 목숨은 보전되는 게 맞겠지.”

“약조하지. 제국은 그대들을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다.”

스릉.

로웬이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그리곤 검 날을 내밀어 트할의 머리맡에 올렸다.

“충성을 맹세하라.”

그러자.

“안됩니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이건 북부의 수치입니다!”

바바리안들의 격렬한 저항.

악에 받힌 외침에 트할이 머뭇거렸다.

로웬은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몸부림치는 바바리안들을 바라봤다.

그들의 머리 위로 표시된 영혼의 무게.

‘총 2천 개 인가.’

입을 닫고 있는 바바리안들을 제외한 영혼의 숫자 말이다.

로웬이 묵묵히 그들을 주시하며 마력을 끌어 모았다.

명백한 살기가 담긴 행동.

스윽.

로웬이 손을 펼쳐며 마력을 흩뿌렸고.

“······그만.”

지켜보던 트할이 끝내 입을 열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듯 여전히 소리치고 있는 바바리안들.

트할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향해 일갈했다.

“닥쳐라!”

“······.”

고조되어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생각에 잠긴 그를 보며 로웬이 마력을 거두어들였다.

짧은 순간이지만 트할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도달한 한 가지의 결론.

그것은 여명께서 바라시는 죽음의 결사도, 비굴하게 자비를 구해 생을 연장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제국(Empire).


그 거대한 태산의 품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충성을 맹세하라.”

“······.”

그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생사의 기로에 놓은 부족원들.

그들의 처우는 지금 이 순간 트할의 단 한 마디로 결정될 것이었다.

개인이 아닌 부족장으로서의 결정.

눈앞에 들이밀어진 검을 말없이 바라보던 트할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주시자, 북부의 여명께 서약합니다. 나 트할 칼라리는 검신 아발론의 후예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부족장이 맹세를 읊조리자 부족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로웬은 기다렸다는 듯 손바닥을 베어 흘린 피를 트할의 머리 위로 떨어뜨렸다.

“나 로웬 폰 크라이시스, 그대의 맹세를 받아들이겠다.”

마나 계약서도 없는 그저 말이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이제 ‘트할 칼라리’라는 이름의 사내는 군주에게 복종해야한다는 것을.

말 자체로 힘을 가지는, 그것이 ‘언약’이니까.

로웬은 검으로 트할의 양 어깨를 쳐 주었다.

그리고 다시 머리.

이제 트할은 더 이상 켈트족의 족장이 아니었다.

트할 칼라리.

“그댄 나의 기사이니라.”

그는 신성제국의 한 명의 기사가 되어 있었다.



***



북부의 차가운 눈보라를 헤치는 10만의 대공군.

제국에서도 황제 다음가는 권력자인 대공이기에 가능한 숫자였다.

철의 뱀이 움직일 때마다 일대가 진통을 일으켰다.

아쉬트 평야, 네메르 언덕, 델리아 평원.

하얀 늑대가 지나간 전장은 붉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야만족 중 살아남은 부족은 오직 하나.

트할이 이끄는 켈로족 뿐이었다.

로웬은 세 전장을 거치며 쌓아온 죽음의 탑을 확인했다.


[영혼 : 4,258]


‘생각보단 많지 않군.’

켈트족이 북방야만민족 중 ‘가장’ 강할 뿐 다른 부족들도 만만치는 않다 여겼었는데 시스템이 측정한 그들의 가치는 상당히 형편없었다.

영혼을 살펴보던 로웬은 짤막한 인상을 남겼다.

‘이방인들에게 대적할 수 있는 존재들은 가치가 높다.’

하지만 로웬이 쓸고 간 저들은?

‘이방인들의 경험치 밖에 되지 않는단 소리로 봐도 무방하겠지.’

로웬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군세를 이끌고 있는 햄튼 폰 크라이시스.

그에게 책정된 영혼의 무게는 무려 [2,000,000]이었다.

‘아버지를 흡수한다면······ 아.’

로웬은 생각을 멈췄다.

자신이 경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무게는 바꿀 수 없는 고유의 영혼.

즉, 햄튼이라는 중년이 영혼의 총량이 200만에 달하는 이방인들과 홀로 맞설 수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런 그의 영혼을 지금 거둔다?

‘후일엔 사방에서 이방인들이 소환될 거야. 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지.’

로웬의 시선이 트할에게로 향했다.


[4,500,000]


햄튼보다도 두 배 이상 더 많다.

‘비록 지금은 각성하지 않았지만 미래의 가치를 반영한 숫자겠지.’

현재 트할의 경지는 많이 춰줘야 기사의 자격을 목전에 둔 상급 소드 유저였다.

그러나 그의 진가는 무력뿐만이 아닌 전장에서의 전략에 있었다.

그런 트할을 비교적 초기에 얻었다.

로웬의 입장에선 덧없이 좋은 상황이란 것이다.

“지도를 가져와라.”

“옙!”

로웬은 병사가 내민 지도를 살폈다.

‘역시 지금은 499년이군.’

1년 뒤, 대격변이 일어나며 달이 태양을 가리는 개기일식이 일어난다.

‘그날, 이방인들이 대륙에 강림한다.’

이방인.

불멸의 축복으로 수없이 죽여도 다시 되살아나는 논외의 존재들.

그러나 그들도 약간의 약점이 있었다.

로웬이 오랜 기간 싸우며 터득한 이방인들의 아킬레스건은 ‘죽음’엔 무한하지만 ‘시간’과 ‘능력’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방인들은 죽게 되면 일정시간 재생되는데 시간이 필요했고, 이 다음에 만날 땐 성장이 더뎌지거나 처음보단 약해져 있었다.

로웬은 이 점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 쪽에서 미리 공간을 선점하고 압도적인 전력차이로 초반부터 밀어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끝없는 학살극.

일명 무한PK(Player Kill).

같은 자리에서 태어나는 것을 알고 있는 로웬은 상시 병력을 배치해 이방인들이 태어나면 곧바로 죽일 계획이었다.

‘이방인들이 성장할 시간 자체를 주지 않는 것.’

그것이 로웬이 그들과 맞서며 얻은 강렬한 교훈이었다.


<제국력 500년 1월 1일. 강림의 날>


불멸자 메르세데스의 자식들이 억겁의 시간을 넘어 태초의 땅으로 돌아오는 날.

‘그날 그들에게 잊지 못할 악몽을 선사해주겠다.’

로웬이 이를 갈자 곁에 있던 트할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잠시 옛날 일이 떠올라서.”

로웬은 말을 이끌며 다시 앞으로 나갔다.

멀어지는 그를 보며 트할은 좀 전에 자신이 보았던 장면을 상기했다.

‘분노하고 계시는구나.’

그 분노가 어딜 향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우린 아니라는 거야.’

트할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부족민들을 바라봤다.

다들 겁에 질려있긴 했지만 그것은 로웬의 무위와 대공군의 존재 때문이지 죽음 때문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 죽음이란 공포에선 벗어나 있었다.

“이럇!”

생각을 마친 트할도 뒤따라 말을 달렸다.

평원을 지나친 뱀의 머리는 이제 거대한 협곡에 당도하고 있었다.



***



테르메르 협곡.

대륙 최북단인 만년설산으로 진입하기 전 마지막 관문.

이 말은 북방야만민족이 정말 끝까지 밀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천혜의 자연요새인 테르메르 협곡 주위로 연합한 야만족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시각 협곡 위의 큰 막사로 부족장들이 한데 모였다.

상석에 앉은 거구의 룩카르 부족장인 칼리쉬.

곰 가죽을 뒤집어 쓴 그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제국군에 협조한 부족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켈로족이겠지.”

“뭣!”

“정, 정확한 정보인가?”

부족장들은 동요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야만족 중에서도 최강의 부족이 적군의 편에 섰다는 뜻이었으니까.

칼리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델리아에서 패주하며 분명히 보았다. 하얀 사신 트할, 그가 제국군에 있다.”

“아.”

“사실이라면 큰일이군.”

누군가는 탄식을 내었고 다른 누군간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켈로족을 받아줬다는 건 우리도 받아줄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적에게 목숨을 구걸할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눈을 빛내는 투칸 부족장인 노겔.

그를 향해 칼리쉬의 진노가 담긴 음성이 막사에 퍼졌다.

“하! 반역자가 되겠다는 건가? 그럼 일찍 말해라. 여명께서 바라보시는 지금 네 목을 날려 줄 테니.”

칼리쉬는 으르렁거리며 대검을 뽑아들었다.

노겔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나자빠졌다.

“하, 한 번 해본 말이네!”

“두 번은 하지 않겠군. 네 목이 달아난다는 걸 알게 됐으니.”

노겔은 목을 매만지며 뒤로 물러났다.

“킁!”

칼리쉬는 콧소리를 내며 검을 거두었다.

“뒤로는 동토, 만년설산이고 앞으로는 제국군이다. 아직 오지 않은 다른 부족들을 기대하진 마라. 어차피 여기가 뚫리면 그들도 전부 죽는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만년설산에서 얼어붙을 것이냐.

아님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이곳에서 제국군과 맞서 끝장을 볼 것이냐.

제국의 군대는 야만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전 지역에 침공을 감행했다.

만약 대공군에게서 도망친다 하더라도 후작군을 만날 수도 있고, 황제직속의 제국군을 만날 수도 있다.

칼리쉬는 이미 결정을 내린 것이다.

최후의 저항.

적어도 자신들의 분노를 적에게 보인다면 헛된 죽음은 아니라는 것이 룩카르 부족의 의지였으니까.

잠잠해진 막사.

스릉.

“나도 동참하겠다.”

하나를 시작으로.

촤앙!

“우리 부족도 함께하겠다!”

“칼리쉬! 네 의지에 나의 목숨을 걸겠다!”

“침입자들에게 북부의 힘을 보여주자!”

“여명께서 그것을 바라신다!”

모두가 죽음의 맹세를 다짐했다.

막사에서 부족장들의 결의가 울려 퍼지자.


-여명께서 그것을 바라신다!!!


우!우!우!우!

와아아아아!!!

일대를 가득 메운 북부의 전사들이 부족장들의 결의를 받들었다.

협곡을 꿰뚫는 용기의 함성소리.

그들의 의지는 가히 침입자들에게 닿기 충분했다.

둥둥둥둥-!

“놈들이 옵니다! 테르메르 협곡으로 놈들이 몰려옵니다!!”

눈보라가 치는 와중에도 시야에 보일정도로 가까워진 두 군세.

같은 하늘에 다른 깃발이 펄럭였고.

“아발론이여, 영원 하라!”

“여명께서 그것을 바라신다! 가자! 전사들이여!”

마침내 곰과 늑대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



일단의 무리가 테르메르 협곡의 작은 골짜기를 내려오고 있었다.

“저, 부족장님. 정말로 괜찮은 겁니까? 여명께서······.”

“씨발, 등신같이 개죽음 당할 바엔 목숨을 보전하는 게 났지 않나? 너도 죽고 싶은 게냐?”

스릉.

노겔이 칼을 뽑자 사내는 기겁하며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빨리 걸어라. 혹여 제국군이 먼저 협곡을 점령하게 되면 국물도 없어질 테니.”

노겔이 걸음을 재촉하며 앞으로 달렸다.

멍하니 그를 보던 사내는 두 손이 떨려오는 걸 느꼈다.

“이게 맞는 겁니까, 아버지?”

사내는 알고 있다.

지금 자신의 부족장이 무엇으로 제국과 거래하려 하는지.

“아, 저들을 다 죽일 작정이신 겁니까······.”

협곡을 올라다 보았다.

공포를 덮기 위해 힘껏 포효하고 있는 북부의 전사들.

노겔은 지금 그들의 후문을 열어주려 가고 있는 것이었다.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그는 멀어지는 노겔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차갑다.’

아마도 검 집의 쇠붙이일 것이리라.

투칸 부족장의 아들. 베른.

냉기서린 그의 눈동자가 자신의 아버지인 노겔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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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깨어난 검신 23.05.23 9 0 15쪽
12 12화. 미래의 반역자 23.05.21 12 0 11쪽
11 11화. 인류의 존속을 위해 죄인을 즉결 처형한다 23.05.20 15 1 14쪽
10 10화. 웨폰마스터, 그리고 지구의 생환자 23.05.20 19 1 16쪽
9 9화. 몰락귀족 제피르 드 루트비히 23.05.19 18 1 16쪽
8 8화. 악역이 되겠다 23.05.18 18 1 15쪽
7 7화. 무주(無主)로의 신격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23.05.18 23 1 22쪽
6 6화. 대공성 빌레펠트 23.05.17 23 1 14쪽
5 5화. 군주를 다스리는 군주 +1 23.05.16 29 2 14쪽
4 4화. 광신 레벤톤 회귀하다 23.05.15 29 1 15쪽
» 3화. 1차 겨울원정(2) 23.05.15 34 1 13쪽
2 2화. 1차 겨울원정(1) 23.05.14 46 2 17쪽
1 1화. 회귀, 그리고 복수 23.05.13 8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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