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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단장

내 파티만 던전에서 무한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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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단장
작품등록일 :
2024.03.21 08:05
최근연재일 :
2024.03.27 13:48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1,017
추천수 :
15
글자수 :
97,405

작성
24.03.21 09:55
조회
49
추천
1
글자
12쪽

나이는 숫자일뿐 그런데 그 숫자가 ㅈㄴ 큰

DUMMY

 잘못 봤나? 루시의 눈동자는 금색으로 되돌아왔다.


 -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 하면 어떻게 되는지...이런 걸 묻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군요.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는 그녀.


 - 행벅, 내 나이가 몇일 것 같나요?


 뜬금없이? 어려 보인다는 말 듣고 싶은 건 아닐테고. 

 ‘그게 내 질문과 무슨 상관이냐’라고 물으려다 참는다.


 “외모만 보면...스물 일고여덟로 보입니다만. 당신은 엘프이니 실제 나이는 훨씬 많겠죠. 백오십? 이백?”


 서른쯤으로 보이는데, 두 살 정도 깎아줬다. 대충 장생종의 나이는 ‘겉보기 나이 x 10’  공식이 불문율이니, 실제 나이는 300살 정도일까?

 루시는 싱긋 웃는다.


 - 내 나이는 530입니다.  

 “...네?”

 

 이 아줌마, 아니 할머니...동안이었네.


 - 내가 막 태어날 무렵부터, 모험가들이 이 <가운데섬>에 찾아와 던전 등반을 시작했죠.


 나는 그녀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린다. ‘나때는...’도 단위가 500년이니 들어볼만하겠지.


 - 등반 시작은 500여년 전이지만, 이 던전 자체는 훨씬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내 어머니의 어머니가 태어나셨을 때도요. 어쩌면 그 이전부터 죽.


 무슨 얘길 하나 했더니 겨우.


 “말을 돌리시는군요.”


 한쪽 눈꼬리만 올라간 웃음으로 내 시선을 받아내는 엘프.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수백 아니 수천년 동안 이 던전은 멀쩡했으니...앞으로도 그럴 거다, 이 말씀인가요? 퍽 안이···.”


 퍽!

 퍽 안이하다 말하는 순간 뭔가 날아왔다. 테이블에 올린 내 손가락 사이로 단도가 꽂혀있다.


 - 언사를 주의하라 인간!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단도를 날린 건 시가톤지 토가신지 하는 시종.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 나는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 먹는다. 어차피 한 번 죽을뻔한 목숨. 아니, 여기선 몇 번 뒤지든 살아난다며?


 “그쪽이야말로 입조심해야겠는데.”

 - 뭐라고?

 “시종이면 주인의 뒤에 얌전히 기다릴 것이지, 함부로 나서서 주인에게 창피를 주다니.”


 내 말에 벌떡 일어난 루시. 지팡이를 높이 치켜든다. 마법을 쓸 셈인가? 오냐, 해봐라!


 - 건방진 것!


 한껏 각오하고 있었는데, 그대로 시가토를 후려치는 지팡이. 어?


 - 행벅의 말이 옳다. 네놈이야말로 어느 안전이라고 입을 놀려대드냐!


 휘두를 때마다 살이 찢겨나가는 위력. 아...그냥 법사가 아니라 힘법사였구나.

 시종 엘프남의 아름다운 얼굴이 흉측하게 부어오를 때에야 매질, 아니 지팡이질을 멈춘 루시. 와, 저 정도쯤 되니 쟤한테 좀 미안해지네. 아프겠구만.


 - 결례를 범했군요. 다친 곳은 없으신지?

 “아뇨, 괜찮습니다.”


 속으론 좀 쫄아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단도를 돌려준다. 물론 손잡이 방향으로.

 그런데 그녀는 칼은 본체만체 내 반지에 있는 보석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뭐지?


 - 그럼, 어디 한번 끝까지 말해 보시죠.

 - 크아악!


 루시는 받은 단도를 그대로 뒤로 던졌다. 불쌍한 시종의 어깨를 꿰뚫고 벽에 박힌 칼날.


 - 시가토는 내 허락이 있기 전까지 침묵하라. 한번 더 허락없이 입을 열면 다시는 입을 열 수 없게 될 것이다.


 흠, 이건 날 협박하는 건가? 물러설 순 없지.


 “당신은 나를 필요로 하고, 나 또한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서로 솔직해지는 게 어떨까요?”


 그 말을 들은 루시는 갑자기 몸을 떤다.


 - 크···. 

 “...루시님?”


 이 할머니, 지팡이 휘두르다 오십견 아니 오백견이라도 왔나싶어 불러보는데


 - 크크크크킄. 크하하하하하하!


 갑자기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린다. 뭐야, 미쳤나?


 - 정말 재미있는 인간이야. 이렇게 웃어보는 게 몇 십년만인지 모르겠어.


 흑막같긴 했는데, 흑화가 너무 빠르지 않나요?


 - 아, 실례. 행벅, 확실히 당신은 달라요. 좋아, 당신 말대로 솔직해지도록 합시다.


 그래, 어설픈 미소보단 광기에 찬 폭소가 낫구나.


 - 하이스트 던전은 천사 살리아드가 만들었습니다. 당신도 이 세계의 역사에 대해 알았으니...내가 여기서 관리자니 인도자니 하는 감투를 쓴 까닭을 알겠죠?


 살리아드, 이 세계에서 엘프를 빚어낸 천사의 이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는 만족한 표정으로 광소를 멈추었다.


 - 왜 살리아드께서는 던전을 이 <가운데섬>에다 만드신 걸까요? 네 대륙의 한 가운데라서?


 아까 뇌 속으로 흘러 들어온 정보를 열심히 뒤져 보지만, 여전히 가운데섬과 이 던전에 대해서만큼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 이곳은 이 세계 가장 가운데 있으면서도 멀고, 가장 크면서도 작은 섬입니다. 파도는 험하고, 바닷속엔 온갖 괴물이 살죠. 천운으로 이 섬에 상륙하면? 해안선 빼곡히 괴물들이 서식하고 있는걸요.


 관대한 현자 노릇이 어지간히 답답했던지 신나게 설명하는 그녀. 진작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 그런 이 곳에! 왜 하필 이 곳에 던전을 만드셨을까요?


 갑자기 분위기 시험. 저 질문하는 성격만은...타고 난 거구나.


 “자격을 갖춘 자만 오기를...아니, 이곳에 오는 자들이 자격을 갖추기를 바라셨을 테지요.”

 - 호오. 계속해 보세요.


 눈을 감고 이 세계 인간의 역사에 대해 떠올려 본다. 동방, 서방, 북방, 남방 할 것없이 야만인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원숭이나 유인원같은 모습이 아닌 게 특이하다.

 그 뒤로 각 대륙은 각각 기공, 마법, 기술, 주술을 발전시켜 왔다···면

 

 “뛰어난 영웅만이 아닌, 이 세계의 모든 인간이 이 던전에 올 수 있을만큼 발전하기를 기다린 거라고 생각합니다. 즉, 바닷길과 바닷가에 널려 있던 괴물과 역경은···던전을 지키는 수호자, 아니 ‘시험자’였던 거죠.”


 루시는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친다. 아까의 건조한 박수와는 완전히 다른, 열성적인 움직임.


 - 대단해. 정말 대단합니다. 인간, 그것도 당신처럼 보잘 것 없는 배경을 지닌 자가 이런 통찰력을 발휘할 줄은 몰랐어요. 


 칭찬하는 거냐 비꼬는 거냐.


 - 보았나, 시가토!


 칼에 꽂힌 채 벽아일체 중인 시종에게 다가간 루시. 단도를 홱 잡아빼니 피가 솟구친다. 음, 여기 엘프는 피가 파랗구만.


 - 무가치한 놈! 네가 낮잡아 본 이 인간을 보아라. 성골 엘프라 뻗대는 네가 이 인간보다 우월한 점이 무엇이더냐?


 루시는 발끝으로 시종의 턱을 들어올린다. 


 - 낯짝? 이젠 오크처럼, 아니 오크만도 못할만치 추악해졌구나.


 이미 잔뜩 부어 오른 얼굴을 발로 짓밟는 그녀. 콰직, 하는 불쾌한 소리가 들렸다. 


 - 세월을 그저 흘려 보내며 똥오줌만 더 오래 흘러내리기?


 라임 한번 오졌다. 


 - 고작 숲지기로밖에 못 써먹을 천치 같으니.


 그녀는 이제 손바닥으로 시종의 머리를 마구 때리고 있다. 불쌍한 엘프남은 엎드린 채 얻어맞을 뿐이다.


 루시가 분노를 담아내 쏟아내는 말들은 사실, 우리 세계 노가다꾼의 욕에 비하면 시 한편이라 봐도 될만큼 강도가 약했다.

 하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그녀는 엘프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증오와 경멸을 입에 담고 있는 것을.

 

 “그만 하시죠.”


 나는 그녀의 팔을 잡아 끌었다.


 - 음?


 나로서는 잔뜩 힘을 주었지만, 팔을 조금 움직이는 게 고작이다. 여자면서 힘이 왜 이렇게 센 거냐.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의 손에는 반지가 없더군요. 저러다 죽기라도 하면 부활할 수 없지 않나요?”

 - 그대는 영명함뿐 아니라 자비와 관대함까지 갖췄군요. 자신에게 칼을 날린 자를 용서하다니, 과연 내가 점찍은 인간. 그릇이 크군.


 다시 차분해진 루시. 인격이 휙휙 바뀌니 무섭다.


 - 나는 전이자들의 기억을 읽던 도중, 문학에 관한 흥미로운 금언(金言)을 보았습니다.


 뜬금없이 문학? 나도 이제 뜨악한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 ‘소설속 등장인물은 결코 작가보다 똑똑할 수 없다.’ 나는 그 구절을 들은, 아니 들춰 본 순간부터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곳 인간을 빚어낸 것이 누군지 아십니까?


 그냥 할머니가 말해주면 안 돼요? 왜 계속 물어보냐고.


 “신...<아이아>죠.”

 -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유기하고, 자신의 사자에 불과한 천사들에게 책임을 맡기는 신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나는 잠자코 있었다. 이제 그녀의 심리 패턴을 알 것도 같았으니까.


 - 병 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발음하는 그녀. 

 뭐야, 발음 잘 하네. 근데 내 이름은 왜 그따구로 틀렸냐? 이 참에 다시 시도해봐? 자, 따라해 보세요  ㅎㅐㅇ  ㅂㅗ


 - 병든 신은 필요없어요. 쓸모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신이 만든 인간들의 수준 또한 알만하죠.


 낯선 엘프에게서 익숙한 차별주의의 향기가 난다.

 자신의 사상에 취해 열변을 토하다 겨우 냉정을 다잡는 루시.


 “이곳 신에 관함 건 몰라도, 인간에 대해서라면, 네. 제 세계에도 분명 병신같은 인간들이 많습니다.


 그녀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착각하지 마라. 더 이상 네 말 듣기 싫어서, 말문 좀 닫고 시작하는 거니까.

 더 이상 이 할머니의 개소리를 듣고 싶진 않다.


 “루시님, 당신 말씀대로 이 던전이 수 천년간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일 이 던전이 무너지지 않으리란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쿡쿡 거리며 듣는 루시.


 - 이래서 눈치 빠른 인간은···

 “싫다는 거 잘 압니다.”


 빠르게 말을 끊자 루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필요하죠.”


 나는 확신하게 됐다.


 “제 생각에...이 던전의 클리어 기한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한이 지나면 뭔가 심각한 일이 일어나겠죠.”


 아까까지의 기세는 어딜 가고 한숨을 쉬는 루시. 어쩐지, 이 표정이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 같다. 뭔가 모르게 슬픔을 담은 얼굴...아니, 내가 이런 여자한테 연민을 품을 때가 아니지.


 “당신은 그 ‘뭔가 심각한 일’이 무엇인지 아시겠죠? 설마 이번에도 모른다고 하실 건가요?”


 그녀는 웃지도, 화내지도, 울지도 않았다. 그저 천장에 달린 끈을 잡아당길 뿐.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 치워라.


 다른 시종들이 와서 시가토를 끌고 나간다. 죽지는 않았지만 정신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정신을 잃어 듣지 못 하는 시종을 굳이 내보낸 건, 그만큼 엄청난 비밀이란 거겠군요. 그리고 그 비밀은 당신만 알고 있고요.”

 

 루시는 내게 성큼 다가왔다.


 - 그만.


 순간 굉장한 압박감이 들었다. 그녀가 나보다 키가 크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인간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몇 십배 오래 살았기 때문은 아니다. 이 압박감의 정체는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루시는 검게 변한 동공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 입은 충분히 놀렸나?


 표면상으로 하던 존대마저 집어치운 엘프.


 - 열등한 단생종치고 머리를 좀 굴리는 건 인정하지. 


 내 머리를 툭툭 치는 손가락. 나는 거세게 쳐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프는 말을 잇는다.


 - 그렇게나 알고 싶다면 알려주마. 100번째 전이자가 온 뒤로 100주 뒤, 이 던전은 붕괴한다.


[6화 - 나이는 숫자일뿐. 그런데 그 숫자가 ㅈㄴ게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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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뽑아든 의지 24.03.26 17 0 11쪽
18 재회 24.03.26 20 0 10쪽
17 강화는 신중히 24.03.26 2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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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평판의 중요성 24.03.22 36 0 11쪽
14 칙칙한 초콜릿보다는 24.03.22 35 1 10쪽
13 뼈는 잘 발라먹자 24.03.22 39 1 10쪽
12 원딜의 민족 24.03.22 32 1 11쪽
11 듀얼! 24.03.22 44 1 11쪽
10 내분 24.03.22 38 1 10쪽
9 던전 안내자가 힘을 숨김 24.03.21 48 1 10쪽
8 가챠 시간 24.03.21 48 1 10쪽
7 반전 24.03.21 41 1 10쪽
» 나이는 숫자일뿐 그런데 그 숫자가 ㅈㄴ 큰 24.03.21 50 1 12쪽
5 검은 막 24.03.21 53 1 13쪽
4 자 연습해 볼까요, 행복 24.03.21 63 1 14쪽
3 행복할 수 없는 남자 24.03.21 80 1 12쪽
2 이세K 푸드 체험 24.03.21 107 1 11쪽
1 전투 시작 24.03.21 206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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