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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외계행성 적응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가짜과학자
작품등록일 :
2019.04.01 10:44
최근연재일 :
2019.05.08 22:31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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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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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7
글자수 :
306,453

작성
19.05.08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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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유엘라와 테타르가 알스 플리릿에 놀러오다

DUMMY

유엘라는 눈을 샐쭉하게 좁혔다.


“그럴 생각이 없다는 말이구나.”

“그런 말은 안한 것 같은데.”

“안하긴. 그거 너 버릇이잖아. 거절하기 애매할 때 생각해 보겠다고 이야기하는거.”


그랬나. 그런 버릇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앞으로는 주의해야겠다. 나는 난감함을 감추려 괜히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유엘라는 그 것도 버릇이라며 눈을 흘기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추궁하던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럼 다른 생각이 있는거야? 록스 아일랏으로 올 생각이 없다면 혹시 다른 방법 생각해 뒀어?”

“아니. 없어.”


사실대로 말하자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병역을 회피한다고까지 말하기는 힘드나,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을 방법이 있기는 했다. 바로 군납품을 만드는 대장간이나 공방에 들어가 군역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 역시 12년의 의무가 지워지지기는 했지만 장인의 길을 걷고자 마음먹은 사람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일부 군수품을 만드는 지정 대장간이나 공방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전쟁터 인근으로 징발되어 물자들을 만들거나 파손된 물품들을 수리해야 하는 문제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이 작업하는 공간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했고, 전쟁터 인근이나마 기술을 갈고 닦을 수 있으니 대부분은 불만없이 일을 한다고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군수물자를 만드는 대장간이라는 말,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맞다. 바로 아엘바와 구스트의 대장간이 그러한 지정 대장간 중의 하나였다.

사실 나는 원하기만 한다면 그 덕을 볼 수 있었다. 대장간에 적(籍)을 올리는 것으로 병역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아엘바와 구스트도 은근히 권하기도 했다. 위험하게 전쟁터에 나가는 것보다 생산적인 일을 해보는 것은 어떻느냐. 하고. 내 검술 실력이 빼어나는 것은 알지만 전쟁터에 선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니 안전하게 대장간에서 일을 배워보는 것은 어떻느냐고.

친동생처럼 걱정해주는 두 사람의 마음이 고맙기는 했다. 하지만 12년 동안 한 장소에 메여서 사는 것이 싫어 록스 아일랏으로 이주하는 선택지를 지웠던 것 처럼, 나는 알스 플리릿에서도 계속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 것을 어떻게 눈치챘는지 유엘라가 의심스러워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어딘가에 숨는다던가 하는 방법은 아니겠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거야? 그럴 생각 없어.”


유엘라가 말한대로 도망치는 것도 제 3의 선택지로 주어져 있기는 했다. 괜히 근방에 숨을 필요 없이 아예 록스 아일랏 너머, 라디 루파곤 너머의 드라자트나 그 너머의 나라들로 도망친다면 샤흐라의 병역법 같은 것은 신경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샤흐라 이외의 텔라시두스의 국가는 모병제라고하니 샤흐라만 벗어난다면 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기도 할테고. 나 개인만 생각한다면 그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이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그 것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샤흐라의 병역법은 징집대상자가 징집을 피해 달아날 경우, 무거운 벌금형과 더불어 그 의무를 부모나 보호자에게 지우도록 되어 있었다. 즉, 내가 징집을 피해 도망치게 된다면 아엘바와 구스트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셈이었다. 구스트와 아엘바 모두 인정받는 대장장이인만큼 병사로 종군하게 되는 일까지는 없겠지만, 지정 대장간 지위를 잃게 한다든지, 대다수의 다른 대장장이들처럼 종군 대장장이로 부린다든지 하는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이 선택지는 사실상 없는 것이라고 봐도 좋았다. 나 좋자고 나를 친동생처럼 대해준 아엘바와 구스트에게 피해를 입힐 수는 없는 일이다.

소문 뿐이기는 하지만 위의 세가지 이외에 다른 방법도 있다고는 들었다. 바로 돈을 이용해 병역을 대신 치뤄줄 사람을 구하는 방법으로, 고위층 사람들이 종종 이용한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확실하지도 않고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닌 것 같아 제외하고 봤다. 그런게 한두 푼으로 가능하지는 않으리라.


“정말로 아무것도 없어. 그냥 운에 맡기려고.”

“운에?”

“어. 추첨으로 징병여부가 결정된다고 했잖아. 운이 좋으면 면제일테고 운이 나쁘면 군대에 가겠지.”

“너답지 않은데? 너는 불확실한건 싫어하지 않았어?”


겨우 3년 남짓 나하고 같이 지냈으면서 어디까지 나를 잘 알고 있는건지. 나는 괜히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기는 한데,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전쟁터에 가게 되면 그 것도 그 것대로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


나는 여전히 그 종교전쟁이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전쟁터에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에는 내가 이 세계, 텔라시두스에 보내진 목적인 영혼의 눈에 대한 단서를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던 이유가 컸다.

분명히 알스 플리릿에 왔을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검술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안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당시에 비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지가 올라갔음에도 실마리조차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것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 곳에서 말하는 24단계 가호의 끝자락에 달하는 경지에 오른다면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기는 했으나, 그게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비록 지금은 벽에 부딪힌 상태이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순조롭다는 것도 의심에 불을 지피웠다. 글로리아가 다시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겠다고 이야기했던 것을 생각하면 검술이 답이 아닐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간 외면하고 있었던 영혼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깊이 파고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영혼이라는 것이 실재하고 있다면, 언제 그 것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 순간이 사람이 죽었을 때라고 생각했다. 영혼이 몸과 분리되는 순간만큼 영혼을 확인하기 쉬운 때가 어디있겠는가. 하지만 사람이 죽는 순간을 그렇게 쉽게 확인할 수 있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사람을 죽는 순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자면 일상이 일그러져 버린다. 연쇄살인범이 되어 주변 사람들을 사냥하고, 인체실험을 자행하지 않는 이상 내가 목적한 바는 이루기 힘들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삶을 파괴하면서까지 그런 일을 자행할만큼 망가지지는 않았다.

거기서 떠올린 것이 전쟁터라는 환경이었다. 대단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그 곳이라면 실험까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영혼이라는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죽는 순간에 영혼이 보인다면 내가 죽였던 마쿠이들이나 라디 루파곤에서 기사들이 루파곤들을 죽였을 때 충분히 보고도 남았지 않았겠는가. 인간중심적으로 생각해 인간에게만 영혼이 깃든다는 가능성도 있기는 했으나 그렇게 간단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죽는 과정을 본다. 영혼을 본다. 영혼의 눈을 뜬다. 성공!

그렇게 간단한 과제라면 글로리아가 나를 이곳까지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가설에 불과했다.

나는 그 대립하는 두 가설을 두고 한동안 고민했었다. 가설이 맞는지 틀린지 확인하려면 직접 실험해보는 것이 최선이겠으나, 12년이라고 하는 긴 복무기간을 생각하면 쉽사리 나서서 전쟁터에 가겠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을 확인하는데 걸려 있는게 너무 컸다.

그래서 나온 결정이 운에 맡기자. 라는 것이었다. 징병되면 가설을 확인할 기회를 얻을 수 있어 좋고, 면제되면 괜한 시간낭비를 하지 않아서 좋고. 어느 쪽이건 나쁠 건은 없다.

유엘라는 내 대답을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갔으면 좋겠다. 징병되서 가는 사람들 중에 살아온 사람들이 거의 없다던데.”


전쟁이 소모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환경이라고 하던가. 그래서 더 흥미로울 것 같기는 하지만 그건 말하면 안되겠지.


“결정될 때까지 아직 2년은 남았는데 뭘.”

“걱정되니까 그렇지. 잘못하면 2년 후에 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잖아.”

“죽지 않을 자신은 있어.”


내 말에 유엘라의 양눈썹이 미간에서 135도를 그릴만큼 찌푸러졌다. 화가 난 것 같다.


“이제보니 네 능력을 과신하고 그러는거구나? 네 실력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면 안돼. 혼자 싸우는거랑 여러 명이 함께 싸우는거랑은 다르단 말이야. 너보다 못한 사람이라도 여럿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너를 상대할 수 있어. 그런 방법을 아는 적들하고 싸우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만약 두 사람이 네 손을 봉쇄하고 나머지 한 사람이 너를 공격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건 예전에 오르드와 조사관들하고 싸울 때 이미 느꼈었다. 나보다 못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그보다도 더 못한 보조를 데리고 나를 막아냈었지. 하지만 그 것도 정도껏이다. 실력 격차가 커지면 보조를 한들 의미가 없어진다. 숫자가 많아져도 마찬가지다. 지금이라면 예전의 그 둘은 물론 나머지 셋까지 순식간에 제압할 자신이 있다. 그리고 알려진 바로는 일반 정예병들은 그들보다 못하다.

이만하면 내가 자신을 가질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런 상황 자체를 안 만들어야지.”

“그게 쉬운 줄 알아? 여러 사람이 함께 싸우면 몸 움직일 공간도 거의 없거든?”

“너, 마치 집단전을 직접 익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한다? 혹시 누구한테 배웠어?”


유엘라의 설명이 묘하게 구체적인 것 같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하기 힘들 것 같은 내용들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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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43 DIONI
    작성일
    20.04.20 13:10
    No. 1

    전작 횡하다ㅜㅜ 이번작 성공하시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잼난것만
    작성일
    20.04.21 10:59
    No. 2

    철수 구하기 보고 찾아왔습니다. 이것도 재밌는데 설정을 많이 창조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컸겠네요. 계속 건필 해주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 gl***
    작성일
    20.05.25 22:09
    No. 3

    작가님 응원하고 있습니다. 철수에서 후원이 막혀 이쪽에서 후원드립니다. 건승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애정결핍
    작성일
    20.08.21 17:17
    No. 4

    여기서 끝나다니 아쉽네요. 철수 완결 후에 리메이크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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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유엘라와 테타르가 알스 플리릿에 놀러오다 +2 19.05.07 300 6 10쪽
56 유엘라와 테타르가 알스 플리릿에 놀러오다 19.05.06 209 9 11쪽
55 아엘바와 테타르가 알스 플리릿에 놀러오다 19.05.05 228 9 10쪽
54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5.04 205 10 11쪽
53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5.03 204 7 13쪽
52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5.02 196 8 9쪽
51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5.01 208 8 9쪽
50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4.30 229 9 10쪽
49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 19.04.29 207 10 13쪽
48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4.28 219 10 9쪽
47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4.27 248 11 12쪽
46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4.26 215 11 7쪽
45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2 19.04.25 246 11 10쪽
44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4.24 227 9 8쪽
43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4.23 229 9 10쪽
42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3 19.04.22 276 13 10쪽
41 아엘바가 옛날 이야기를 하다 19.04.22 253 14 17쪽
40 루페르티 루팔의 교습소에 가다 +1 19.04.21 279 14 9쪽
39 루페르티 루팔의 교습소에 가다 +1 19.04.20 220 12 11쪽
38 루페르티 루팔의 교습소에 가다 19.04.19 214 9 11쪽
37 루페르티 루팔의 교습소에 가다 19.04.19 221 10 11쪽
36 루페르티 루팔의 교습소에 가다 +3 19.04.18 232 10 13쪽
35 알스 플리릿을 탐험하다 19.04.18 224 10 10쪽
34 알스 플리릿을 탐험하다 19.04.17 230 10 11쪽
33 록스 아일랏을 떠나다 +4 19.04.16 239 12 11쪽
32 록스 아일랏을 떠나다 +3 19.04.16 224 8 12쪽
31 장례식 +2 19.04.15 233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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