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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외계행성 적응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가짜과학자
작품등록일 :
2019.04.01 10:44
최근연재일 :
2019.05.08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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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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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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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록스 아일랏을 떠나다

DUMMY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카딘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그간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부발이 노환으로 죽은 이야기, 부발이 새로운 보호자로 그의 딸 부부를 지정한 이야기, 그리고 내가 그들을 따라 알스 플리릿으로 가게 되었다는 내용을 적어넣었다. 그리고 편지의 말미에 아엘바가 알려준 주소를 적으며 그 쪽으로 답장을 달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그런 다음, 목검을 챙겨들고 평소처럼 공터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유엘라와 테타르에게 찾아갔다. 다소 의기소침해 하는 표정으로 부발에게 배운 샤흐라식 제식검술을 연습하고 있던 그들은 내가 찾아가자 바로 반가워 하는 모습을 보였다.

테타르가 말했다.


“마지막 길 배웅해 드리느라 고생했어. 별 일 없었지?”

“없었어. 멀리 가지도 않았는데 뭐.”

“그래도 모르는 일이잖아. 가끔 루파곤들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하고 다른 들짐승들이 나타날 수도 있는거고··· 아무튼 수고했어. 그건 됐고. 연습이나 좀 봐주라. 아구스 할아버지 안계신다고 갑자기 잘 안되는 것 같네.”

“그러면 안되지. 어디 한 번 보자.”


테타르와 유엘라는 내 앞에서 한차례 검술을 펼쳤다. 테타르가 말한대로 조금 움직임에 힘이 빠져 있었다. 마음이 뒤숭숭하니 힘이 들어가지 않아 검 끝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이건 내가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세가 흐트러진거라면 교정해 줄 수 있었지만 의욕이 없는 것까지 내가 어떻게 해 줄수는 없었다.


“오늘은 그냥 쉬는게 낫겠다.”

“이렇게 쌩쌩한데?”

“체력이 남아있어도 생각이 딴데 가 있는데 수련이 잘 될리가 없잖아. 지금 해봐야 춤 연습 하는 것 밖에 안돼. 부발 할아버지가 항상 하시던 말씀 있잖아. 엉성하게 하면.”


유엘라가 중간에서 끼어들어 그 말을 받았다.


“엉성하게 휘두르는 버릇밖에 늘지 않는다.”

“그래. 잘 알고 있네. 그거 꼭 기억해야 돼. 안한 것만 못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유엘라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안색을 어둡게 했다. 내가 이후에 따로 봐 줄 수 없다고 하는 뜻을 넌지시 비춘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 눈치도 좋다. 유엘라는 많이 서운해 하는 투로 말했다.


“가는구나?”

“응. 가기로 했어. 좀 많이 고민하기는 했는데. 너희 부모님한테 폐 끼치고 싶지는 않더라.”


내게 다른 선택지가 있기는 했지만 그건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

유엘라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같이 살아도 괜찮다고 하셨는데···”


말이 그런거지. 실제 지내다보면 너희 부모님이 불편해 할거야. 하루 이틀 재우는거면 몰라도 남의 아이를 어른이 될 때까지 키워야 한다는건 부담이 클 수 밖에 없지.

그러나 굳이 그런 것을 말할 필요는 없다. 나는 분위기를 좀 환기시키기로 했다.


“부발 할아버지가 부탁한 사람이 따로 있는데 너희 집에 신세 지는건 좀 그렇잖아.”

“그건··· 그래.”

“그리고 알스 플리릿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서. 너도 항상 이야기했잖아. 어른 되면 알스 플리릿에 꼭 가보고 싶다고.”

“바보야. 그건 놀러가보고 싶다고 한거였잖아. 사는 거랑은 이야기가 다르지.”


핀잔을 주는 유엘라의 표정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가셔 있었다. 산맥 너머의 대도시 이야기에 흥미가 조금은 끌린 것 같았다. 혹은 그런 시늉을 하고 있다거나. 사실 잘 모르겠다. 워낙에 연기를 잘하는 친구라서.


“사는 김에 놀기도 하는거지 뭐. 내가 거기 일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나중에 놀러와. 그 때되면 내가 다 안내해줄 테니까.”


내 말에 유엘라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눈을 흘겼다.


“뭐야. 벌써 알스 플리릿 사람이 된 것 처럼 말하네?”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렇게 될 테니까. 아. 그 때 너희들이 훈련 제대로 했는지 다 확인할거니까 나 없다고 연습 게을리하지 말고. 알았지?”


유엘라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들었다 사라졌다. 방금까지 보였던 모습이 연기가 맞았나보다. 애써 괜찮은 척 하고 있었던거다.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부발이 죽은데 이어 나까지 자리를 비우게 생겼으니. 아마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지겠지. 마지막 말은 괜히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한 번 NG를 보였다고 하더라도 유엘라는 한 번 시작한 연기는 끝까지 이어가는 아이였다. 그녀는 허리춤에 손을 짚으며 코웃음을 쳤다.


“뭐래니. 어른 되고 난 다음에는 내가 너를 앞질러 있을건데 봐주긴 뭘 봐줘. 너가 나한테 가르쳐달라고 해야할걸?”


그냥 쎈 척을 하는 것 뿐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되면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웃으면서 기대하겠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꼭 찾아와. 제대로 대접해줄 테니까.”

“엉망이면 두고봐. 가만히 안둘 거야.”


유엘라는 그렇게 으름장을 놓다가 테타르를 돌아보며 너도 꼭 기억해 둬. 라고 단단히 말했다. 테타르는 여느 때처럼 건성건성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저렇게 해도 기억하기는 다 할거다. 그런 친구니까.


유엘라는 이어서 마지막으로 내가 가기 전에 연극이나 해보자고 했다. 언제나처럼 나나 테타르의 의사는 별 의미가 없었다. 유엘라가 하자고 하면 하는거였다.

유엘라는 시작하기에 앞서 배역을 발표했다.


“그러면 오늘은 두르 불드르 불딕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으로 해보자. 내가 두르 플랑시랑 마르 갈레르 역할을 할게. 테타르는 두르 불드르 역할을 하고, 유진은 루폴룸의 마지막 사제 브레비테랑 루폴룸 역할을 하면 돼. 됐지?”


평소라면 유엘라는 두르 플랑시 역할만 하고 내게 마르 갈레르 역할도 맡겼을텐데, 마지막이라고 나를 악당 역으로만 돌려버린 모양이다. 사소한 투정을 부리는 것 같다.

유엘라가 크게 소리치며 연극의 시작을 알렸다.


“드디어 만났구나 루폴룸의 주구 브레비테! 이 것이 너의 운명이다! 얌전히 너의 목을 내밀어라!”

“하!하!하! 제 발로 루폴룸의 땅으로 들어오다니 어리석구나! 어디 진정한 루폴룸의 힘을 맛보아라!”


나는 바로 유엘라의 대사를 받았다. 그간 유엘라에게 시달려온 것이 있어 나도 제법 느낌표를 집어넣으며 연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유엘라는 배우의 재능 뿐만이 아니라 지도하는 것에도 제법 재능이 있었고, 그 지도 아래 나는 훌륭하게 제 2의 테타르로 거듭나 있었다.

정말 두르 플랑시처럼 되고 싶다는 꿈, 그러니까 실제로 두르가 되고 싶다는 꿈만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대도시로 가서 배우를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언제나 콧방귀를 뀌며 두르가 될 사람한테 무슨 실례되는 말을 하냐고 한 소리 하기는 했지만.

다음은 테타르의 대사였다.


“두르 플랑시! 로미눔의 은혜에서 등 돌린자와 말을 섞어봐야 소용없소! 저 타락한 자에게는 그저 징벌의 검을 내리는 것만이 최선의 구원일거요!”


언제 봐도 신기하다. 평소에는 그냥 멍한 모습만 보이는 테타르가 이럴 때는 사람이 달라져 열혈 남아가 되어 있는 것이. 유엘라는 그런게 연기의 매력이라고 이야기했었지.

이어서 유엘라가 대사를 받았다.


“그 말이 옳은 것 같군요! 마르 갈레르! 준비는 되었나요?”

“언제든지 좋소! 들어 가시오!”

“좋아요! 가요! 두르 불드르!”


오랜만에 선보이는 1인 2역의 연기였지만 유엘라는 언제나처럼 완벽했다.

역시 대단하다. 나도 제법 실력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유엘라의 연기는 뭔가 더 특별한 것이 있었다. 생생하고 몰입되는. 아마 그런게 재능이라는 것이겠지. 이럴 때면 이 곳의 종교도 제법 맥을 잘 짚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반짝이는 재능만큼 별에 빗대기 좋은게 어디에 또 있겠는가.

그런 감상을 하는 사이에 테타르와 유에라가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나에게 협공을 가해왔다. 이 부분을 진행시키는 것에 있어서는 별달리 정해진 바가 없었다. 처음과 끝을 제외하면 그 사이에는 어떤 수들이 오가도 좋았다. 놀이에 검술 연습이 합쳐진 것으로, 말하자면 대련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미 언급한 바 있듯, 그들은 나와 부발의 교육 아래 제법 뛰어난 검사가 되어 있었고, 우리들이 주고 받는 공방은 첫 연극을 하던 당시의 투닥거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더 날카롭고 더 빠르고 더 화려하고. 아마 밖에서 우리가 놀고 있는 것을 본다면 꽤 멋드러지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처음에는 힘을 빼고 상대하려고 했다. 내가 찾아오기 전에 보였던 무기력한 모습을 생각하면 평소처럼 노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그 것은 괜한 걱정이었다. 막상 검을 맞대어보니 유엘라와 테타르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정련되고 매서운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 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금방 꺠달았다.

얘네들. 지금 나한테 섭섭하다고 투정부리는거구나.

어딘지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칼로 나누는 송별연이라니. 우리다운 작별인사가 아닌가.

나는 나대로 그들을 달랬다. 영영 헤어지는 것은 아니니 너무 섭섭해 하지 말라고. 나중에 다시 봤을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겠다고.

대련이나 다름 없는 그 놀이는 평소보다 두 배는 더 긴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그러는 사이 내 뜻이 잘 전달되었는지, 아니면 풀고 싶은 기분을 다 푼 것인지, 혹은 단순히 지친것인지는 몰라도 차츰 유엘라와 테타르의 공세도 부드러워졌다.

이만하면 될 것 같다. 나는 그쯤에서 아프지 않을만큼 둘의 공격의 기세를 줄여 몸으로 받아내며 바닥에 주저앉으며 당한 시늉을 해보였다.


“크으으윽! 이 곳은 루폴룸님의 땅인데 어째서 네 놈들이 힘을 온전히 쓸 수 있는거지?”


유엘라와 테타르는 잠깐 아쉬워하는 표정을 보였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이렇게 노는 것도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러나 유엘라는 극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아이였고, 금방 다시 플랑시의 가면을 뒤집어썼다.


“흥!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은 로미눔 님이시다! 도적 놈이 제 땅 행세를 한다고 그 분의 은총을 가릴 수 있을 것 같으냐! 마르 갈레르! 지금이에요!”

“그 말을 기다렸소! 사악한 루폴룸의 주구야! 로미눔과 수호성의 이름 아래 너와 루폴룸을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하겠다! 두르 불드르! 당신 차례요!”


이어서 유엘라는 갈레르로 배역을 갈아타 양 팔을 넓게 펼쳤다. 유엘라의 설명에 따르면 그건 마법진 같은 것을 펼치는 것이라 했다.

다음은 테타르 차례였다. 불드르 역을 맡고 있는 테타르는


“맡겨두시오! 브레비테! 이 악의 주구야! 어둠 속에서 영원히 네 잘못을 참회하라!”


라고 크게 외치며 내게 칼을 찔러넣었다. 물론 정말로 찌른 것은 아니고 겨드랑이 사이로 찌르는 척을 뿐이기는 했지만.


“안 돼! 으아아아악!”


나는 뒤로 벌러덩 넘어져 무의미하게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걸로 브레비테는 끝이다. 하지만 아직 루폴룸의 역할이 남아 있어 나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아직 포기하지 않은 악당을 연기해야 했다.


“로미눔! 지금은 물러나지만 내 반드시 다시 찾아오리라! 어둠이 있는 한 나 루폴룸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테타르가 두르 불드르의 대사를 읊었다.


“루폴룸! 너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우리들이 있는 한! 그리고 이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네가 텔라시두스에 설 자리는 다시는 없으리라!”


그리고 그걸로 상황극이 완전히 종료됐다.

나는 잠시 눈을 감으며 그 여운을 느꼈다. 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억지로 시작하게 된 연극이었고 이미 수십차례는 함께 했던 연극이었지만 막상 끝난다고 생각하니 어딘지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된 다음에 이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고 해도 이렇게 놀 일은 없겠지. 마지막이라 그런가 조금 감상적이 된 것 같다.

그런 다음 우리들은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나눴다. 잘 지내라고, 편지 꼭 보내라고. 나는 둘과 한 차례씩 포옹을 주고받은 다음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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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유엘라와 테타르가 알스 플리릿에 놀러오다 +2 19.05.07 300 6 10쪽
56 유엘라와 테타르가 알스 플리릿에 놀러오다 19.05.06 209 9 11쪽
55 아엘바와 테타르가 알스 플리릿에 놀러오다 19.05.05 228 9 10쪽
54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5.04 205 10 11쪽
53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5.03 204 7 13쪽
52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5.02 196 8 9쪽
51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5.01 208 8 9쪽
50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4.30 229 9 10쪽
49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 19.04.29 207 10 13쪽
48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4.28 219 10 9쪽
47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4.27 248 11 12쪽
46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4.26 215 11 7쪽
45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2 19.04.25 246 11 10쪽
44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4.24 227 9 8쪽
43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19.04.23 229 9 10쪽
42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다 +3 19.04.22 276 13 10쪽
41 아엘바가 옛날 이야기를 하다 19.04.22 253 14 17쪽
40 루페르티 루팔의 교습소에 가다 +1 19.04.21 279 14 9쪽
39 루페르티 루팔의 교습소에 가다 +1 19.04.20 220 12 11쪽
38 루페르티 루팔의 교습소에 가다 19.04.19 214 9 11쪽
37 루페르티 루팔의 교습소에 가다 19.04.19 221 10 11쪽
36 루페르티 루팔의 교습소에 가다 +3 19.04.18 232 10 13쪽
35 알스 플리릿을 탐험하다 19.04.18 224 10 10쪽
34 알스 플리릿을 탐험하다 19.04.17 230 10 11쪽
33 록스 아일랏을 떠나다 +4 19.04.16 239 12 11쪽
» 록스 아일랏을 떠나다 +3 19.04.16 225 8 12쪽
31 장례식 +2 19.04.15 233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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