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근처에 있는 나무 아래로 이동해 몸을 가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붉은 구체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슈슈슈슉!
붉은 구체가 계속해서 좀비들을 빨아들였다. 이윽고 좀비는 모두 사라지고, 붉은 구체는 점점 작아지더니, 주먹만 한 크기로 변했다.
저게 저렇게도 변하는 거였구나. 한지한은 신기함을 느꼈고, 그 사이에 그것은 이동을 시작했다.
슉!
붉은 구체는 환성곤의 앞으로 이동하여 멈추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붉은 구체를 향해 손을 뻗었고, 그것을 덥석 쥐었다.
파아앗.
붉은빛이 춤을 춘다. 그의 주먹 사이로 춤을 추던 빛은 이내 사그라졌고, 그는 손을 내렸다.
그 모든 일들을 한지한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저놈.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야? 이 좀비가 나오는 공간도 저놈이 만든 것이 분명할 텐데.
녀석은 자신의 손을 한 번 바라보더니, 그대로 들어 올렸다.
쩌엉!
갑자기 사방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허상 결계라는 게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좋아. 나갈 수 있긴 있구나. 그렇게 안도하는 사이에, 한지한은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흑소환사 환성곤의 모습도 사라져 있었다.
&레벨업을 했습니다.
사람은 종종 예상치 못한 일로
성장을 하고는 한다.
-모험가 제가르고크
“후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더 이상 허상 결계에 걸려들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일들이 꿈이라도 되는 양, 그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문을 열 수 있었다.
방금 전의 일은 그의 ‘일상’이 아니었다.
‘비일상’인 것이다.
학교에 가고, 공부를 하고, 그리고 장래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좋은 직장을 얻는다.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고, 경제적인 부유함을 가진다.
그러기 위한 일상에서 벗어난 그런 것.
어떤 이라면 기뻐했으리라. 남과 다른 특별한 힘을 얻었고, 그를 통해서 평범한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한지한은 기뻐하지 못했다. 사실 이러한 힘을 얻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현실을 맞닥뜨리고 나면 그리 기뻐하지 못할 거다.
죽는다.
그렇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특별한 능력은 확실히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 대가가 괴물들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일이라면 어떨까?
이곳은 현실이고, 게임이나 만화 같은 허구의 세상이 아니다. 주인공은 반드시 살아남는 그런 곳이 아닐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한지한은 기뻐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단지 퀘스트를 해결하고, 그를 통해 더디게 레벨을 올린다.
그렇게 지능을 올려 현대 사회에서 좀 더 나은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면 한지한도 순수하게 기뻐했을 터.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비록 오늘 좀비를 상대하면서 레벨이 1이 올랐고, 스테이터스 포인트가 15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다녀왔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소파에 앉은 어머니가 한지한을 맞이해 주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본 순간 맥이 탁 풀려 버렸다.
저 모습을 뭐라고 해야 할까? 너무 평범하고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라서, 눈물까지 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응. 왔니? 선일이랑 잘 놀았어?”
과자를 하나 들어서 입에 넣는 어머니의 모습. 시선은 여전히 TV에 고정되어 있어서는 아들은 거들떠도 안 본다.
“어. 오늘은 운동 좀 했어.”
맥이 풀린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비척비척 자신의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래. 매번 PC방에만 가는 것도 안 좋은 거야. 가끔은 몸을 움직여야지. 그럼 씻어야겠네?”
“응. 좀 씻을게.”
그리고서 한지한은 우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옷부터 갈아입을 생각이었다.
* * *
“하아.”
옷을 갈아입고, 목욕을 했다. 그러나 감정적인 허탈감, 피로감 그리고 공포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게이머의 정신이라는 스킬은 그의 흩어진 감정을 재조립해 주기는 하지만 그 피로감과 무력감까지 어떻게 해 주는 것은 아니었던 탓이다.
게다가. 공포감도 그렇다. 본능적인 공포는 이 스킬이 막아 주지만, 이성적인 공포는 막을 수 없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눈앞에서 총알이 날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자. 그러면 사람은 감정적인 공포 외에도 이성적인 공포를 가지게 된다.
논리적으로 총알이 정면에서 날아올 경우, 피할 수 없고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의 상태도 그랬다.
“돌아버리겠네.”
물론 말만 그럴 뿐, 실제로 미치지도 못한다. 게이머의 정신이라는 스킬은 그런 힘을 가졌으니까.
“악마나 신 같은 게 있는 걸까나…….”
이런 대단한 힘과 능력이 갑자기 생겼다. 하지만 그 이유는 여전히 오리무중. 적어도 신이나 악마 같은 상상 외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그에게 이런 힘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힘과 함께 위험도 주었다는 것.
그 허상 결계라는 것에 들어가게 된 것은 바로 이 능력을 얻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지 않은가?
즉, 능력과 함께 위험이 생성되었다는 추론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제기랄.”
그는 현재를 직시했다. 지극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환성곤이라는 미친놈이 여기저기에 허상 결계라는 것을 만드는 것 같다는 것까지는 추론할 수 있었다.
그 미친놈이 왜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낮에는 산까지 가는 동안 좀비가 나오는 허상 결계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을 보면, 아마도 그 좀비가 나타나는 허상 결계는 낮에는 생성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낮에는 안전할 것이다. 그때 권시연이라는 여자애와 싸우던 그런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하지만 이것들도 결국은 추론일 뿐. 사실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그 불확실함을 제대로 판별하지 못했다가는…….
죽는다.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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