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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ㅇ

던전 안의 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국수먹을래
작품등록일 :
2017.08.08 18:16
최근연재일 :
2017.10.06 20:13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93,344
추천수 :
2,370
글자수 :
400,683

작성
17.08.31 18:53
조회
945
추천
34
글자
11쪽

그들은 그녀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DUMMY

크리스털 방벽 너머에는 초록색 화염이 몰아치고 있었다. 다 젖혀두고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다면 시각적으로 아름다웠다. 세진은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그렇게 느꼈다. 그는 시동을 끄고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헬멧을 벗고 바라보니 영이었다. 그녀의 안색은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져 있었고 경직되어 있었다.


찰싹.


그녀는 대뜸 손부터 날렸다. 세진의 뺨이 돌아갔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의 얼굴을 연거푸 때렸다. 세진은 말없이 계속 맞았다. 영이 행동을 멈추자 그는 오토바이의 시동을 끄고 내렸다.


그리고 영의 뺨을 후려갈겼다.


짜악!


듣기 거북한 소리가 나고 그녀의 상체가 크게 휘청거렸다. 그러자 세진은 그녀의 팔을 잡아 주었다. 물론 도와주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더 잘 뺨을 때리기 위해서다.


짜악! 짜악!


영의 작의 얼굴이 날아가다시피 화끈해졌다. 그녀는 눈에서 별이 튀는 것을 느꼈다. 휘청거리는 영을 세진은, 강하게 걷어찼다.


영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다시 고개를 쳐든 그녀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지금 상황이 분이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꼭 그렇게 다 죽여야 해? 장난처럼? "


세진은 그녀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서 많은 말을 할 수도 있었다. 조롱. 혹은 설득. 이해. 폭로. 기타 등등. 하지만 그냥 입을 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감정을 충실하게 따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는 영을 죽이고 싶을 때도 있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녀가 미워서가 아니라 그냥 죽이고 싶기도 했다. 이따금 말이다. 충동이 불쑥불쑥 일어났다. 정말로 그녀를 죽이고자 마음먹으면 안될 것도 없겠지. 세진의 마음도 복잡했다.



영은 앉은 상태로 세진을 욕했다. 세상이 망가지기 전이라면 그녀의 그런 비난은 타당했다. 아니, 법은 무너졌어도 윤리나 도덕적인 가치는 계속 품을 수 있었다. 어떤 존재들은 그것마저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하겠지만, 과연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에게 빼앗을 수 있는 가치인 걸까.


세진은 영의 욕설을 듣다가 헬멧을 집어 던졌다. 그것을 맞고 뒤로 쓰러지는 그녀가,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때는 세진은 이미 학교 쪽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코에서 피를 흘리는 영은 입을 다물고, 그런 세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음 날 아침 이태진은 정말로 정말로 아침 식사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피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늦게 식사를 했으므로, 따로 먹어야 했는데 결국 실패였다.


그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심정으로 세진과 영의 사이에 끼어서 아침을 먹었다. 그런데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눈치라면 태진이 남에게 뒤처질 리가 없었다. 영의 부어 있는 얼굴. 유난히 무표정한 세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딱 견적이 나왔다.


'아 좋지 않아. 이건···. 좋지 않아. 매우 매우 좋지 않아···.'


속으로 중얼거리는 그는 수저를 덜덜 떨었다. 이러다가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질 수도 있었다. 싸운 게 분명한데 불똥이라도 튀어 봐라. 자신만 죽어난다.


"이봐 태진."


"예! 네! 말씀하십시오."


"젓가락을 거꾸로 들었어."


"아하! 그렇군요!"


태진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마구 쌀밥을 퍼먹었다. 여기 와서 쌀밥 먹을 수 있다고 감동한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물을 먹다가 목이 메 캑캑거리는 태진을 영은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나가듯이 세진에게 말했다.


"어제는 미안했어."


세진은 눈을 깜박이며 대답했다.


"아니···. 아직도 감정이 더럽게 남아 있는 얼굴로 섣불리 사과할 필요는 없는 거 같은데···. 이봐 내면의 앙금이 사라지지 않았어. 그게 얼굴에 묻어 있어."


"나는 지금 사과하는 거야. 정중하게."


사과할 일은 아니었다. 인간이 인간다운 반응을 보이는 게 사과할 일인 걸까? 어찌 되었건, 사람들이 몰살을 당했다. 그걸 보고 무감정이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세진은 그냥 밥만 먹었다. 그리고 양치질과 식후 운동 후에 영과 태진을 불러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물론 간단하게였다.


"몬스터들을 이곳으로 가둘 거다."


그는 스크린을 짚어가며 도시의 변두리 네 곳을 지정했다. 던전이 무너지고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은 거리를 잔뜩 메우고 있는 상태였다. 세진의 지역을 제외하면 청영 전체가 개판이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위험했다.


"네곳의 지역 이름을 지어봐."


"......."


그가 지역 이름을 짓기 귀찮아 한다는 사실은 이번에 정석으로 굳어졌다.


"나머지는 안전지역으로 만든다. 그리고 안전지역에 거주자들을 주저앉힐 거다. 일단 안전지역이 공고해지면 외부에서 끌어모으거나 해야겠지. 몬스터들을 한곳으로 모으지 않는 까닭은 접근성을 좋게 하기 위해서야. 어차피 계속 잡아야 하니까. 외진 지역을 만들어 두면 아무도 안 가려고 하겠지. 그리고 이 네 곳은 도시 바깥과도 연결하게 해서 외부의 몬스터들이 들어오게 할 요량으로서.."


어떻게든 영과 세진 사이에 흐르는 서먹서먹한 분위기에서 탈출하고픈 태진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의욕 있게 질문했다.


"열과 성의를 다해! 이 몸 바쳐!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데 영님과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시켜만 주십시오!"


눈을 깜박인 세진은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은 얼굴로 대답했다.


"응? 뭐···. 그냥 하던 대로 학교에서 애들 가르치면 되겠지? 평소대로 넌 가르치고. 영은 여기 지키고..."


"........"


결국 별 의미 없는 브리핑이었다.



****


-테러로드 공개 채널.

-모두 주목해 주십시오.

-분쟁 해결 의원이 접속했습니다.


테러로드들이 휴대폰으로 보는 채널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정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취미는 오지랖 떨기였다. 인공위성으로 다른 지역을 훔쳐보는 것은 공공연한 취미였다. 그래도 이렇게 나대는 테러로드가 있으니까 지금 같이 사건이 터졌을 때엔 도움이 되긴 했다.


"이번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몇몇 연륜 있는 동료들과 의논을 거친 사실을 발표하려 한다."


그는 헛기침하며 탁자 위의 종이 뭉치를 뒤적거렸다. 그것을 화면으로 보는 진영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 거드름 피우는 것 좀 봐. 즐기고 있군."


아마 동시간대의 이 화면을 보고 있는 다른 테러로드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정래는 먼지도 보이지 않는데 탁자를 탁탁 털더니 다시 뜸을 들였다. 그러다가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댔다.


"일단 이번에 청영의 주인이 고위험 폭발물을 터트린 사실은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 위에 있는 송신기에 불빛이 반짝거렸다. 붉은 불빛이 쉴 새 없이 깜박이는 게, 청영에서 부하를 잃은 테러로드들이 항의 메신저를 보내는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라고. 그곳의 주인이 지하의 던전에 테러나이트를 쓴 게 아냐. 지상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경계하는 부분인, 분쟁에 있어서 테러나이트를 섰다고 보기도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자신의 도시에서 터트린 거라고."


대체 왜 자신의 도시에 터트릴까? 그건 정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지금 청영의 몬스터들은 엄청나게 수준이 높아졌을 것이다. 던전안의 것들이 쏟아져 나왔으니까. 죽은 놈들도 많지만 산 놈들이 더 많았다.


그놈들을 죽이면 엄청나게 많은 헬과 좋은 재료를 드랍한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런 상태에서 도시의 난이도를 낮출 방법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도시의 목적은 생존이다. 풍요로운 생존이 아니라 그냥 생존이었다.


풍요는 테러로드들만 누려도 된다. 아무리 막살아도 테로로드는 혼자 좋은 집과 시설을 차지할수 있었다. 결국, 테러나이트를 터트린 일은 장기적으로 볼 때 힘만 들고 이득이 적은 것이다.


주기적으로 피를 바쳐야 하는데 몬스터들이 저렇게 강해져 버리면 죽일수나 있을까?


대체 그 후폭풍을 다 감당하려고 저러지?


이번에 세진이 한 짓은 다른 테러로드들이 보기에, 그냥 막장 짓이었다.


"그만! 그만 메신저 보내고 마저 들어라. 어떤 경우에도 분쟁조정 위원회는 남의 영역에 멋대로 침범한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입장 바꿔서 침략당하는 쪽이 되면 기분이 아주 더럽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영역침범은 아주아주 악랄한 범죄다. 이번에는 고의성이 없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아무런 조율 없이 장기체류했잖아!"


서서히 송신기의 불빛이 잦아들었다. 정래는 종이 뭉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모니터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공동체를 유지하게 하는 근간은 무엇인가? 상대에 대한 권익 보호이다. 그래서 각자 자신들도 권리를 침해받지 않을 수 있다. 물론 테러나이트는 굉장히 민감한 사항이긴 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공격용으로 쓰였다고 보긴 어렵다. 게다가 트럭은 청영 쪽에서 돌려보냈다."


그렇다. 실종되었던 경매 트럭은 세진이 찾아서 서울 쪽으로 돌려보냈다. 그 과정에서 아무런 터치도 하지 않았다. 그가 만약 트럭을 꿀꺽했으면 뭔가 저의가 있었다고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아무리 급했다곤 하지만 주인에게 허락도 없이 도시를 침범한 쪽이 이상한 놈들이었다.


"우리는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는 공동 목표가 있다. 그것은 우리 전체를 위한 일이다. 그런데 몇몇 동료들이 한 일은, 그런 공공 의식을 저해하는 비상식적인 일이다. 트럭은 무사히 인계되었다. 저쪽에서는 충분히 상식적으로 대응했다고 생각한다."


정래는 결국 힘을 모아야 한다는 말로 방송을 끝맺었다.


"바다 건너에도 테러로드들이 있다. 당장 한국의 근처만 해도 다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아무리 같은 처지라고 해도 경계선을 기준으로 은근히 경쟁하고 있잖아. 그런데 다퉈도 하필 가까운 지역의, 친밀한 쪽이라고 할 수 있는 동료와 다투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일이다. 서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다퉈서 되겠나?"


화면을 끈 진영은 중얼거렸다.


"침입은 좋지 않아."


정래의 훈계조 연설은 짜증 났지만 그가 생각해도 이번 일은 유저들을 급파한 쪽이 문제가 있었다.


테러로드들이 질색하는 것 중 하나가 도시의 지배권에 간섭받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예고 없는 침입도 포함된다.


결국 사건은 그렇게 매듭지어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세진은 동료들 사이에서, 수틀리면 도시를 날려버리는 미친놈이라는 인식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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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그녀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2 17.08.31 946 3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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