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ㅇㅅㅇ

던전 안의 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국수먹을래
작품등록일 :
2017.08.08 18:16
최근연재일 :
2017.10.06 20:13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93,365
추천수 :
2,370
글자수 :
400,683

작성
17.09.02 23:19
조회
833
추천
31
글자
12쪽

5----

DUMMY

청영 곳곳에 다리가 생겨났다. 꼭 물 위를 달리는 다리가 아니더라도 숲 위로 아치형 다리들이 이어졌다. 세부 지역을 나누는 벽들 위에 생겨난 다리도 있었다.


그 위를 진영은 조용히 걸었다. 바람이 불어오며 그의 망토를 옆으로 휘날리게 했다. 그는 까마득한 높이의, 부실한 다리 위를 지금 홀로 걷고 있다.


물론 진영은 통보도 없이 청영의 건설 중인 다리 위를 지나다닐 정도로 개념이 없진 않았다. 다리 아래쪽을 바라보던 진영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이 그의 얼굴 옆을 장식하는 배경이 되었다.


그 그림은 오래가진 못했다. 진영은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불빛을 가렸다.

세진은 바이크를 멈춘 채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 진영을 바라보았다.


세진으로서는 처음 보는 다른 테러로드였다. 그렇다고 악수를 청하지는 않았다. 둘은 멈춰 서서 서로를 탐색하듯이 바라보았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진영 쪽이었다.


"나는 좀 편집증 끼가 있어. 평소에도 10만피스 퍼즐 맞추기 같은 것을 즐겨 하는 편이지."


"자신의 증세를 안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


"이 도시를 천천히 살펴보았지. 몬스터들이 비정상적으로 강하더군. 그리고 유저들에게도 엄청난 레벨링을 제공하려는 것처럼 보이고 말이야."


"······."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봤어. 네가 미친놈이나 할일 없어 하는 놈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말이야. 왜 이러는 걸까? 테러로드들 중에서는 별별 미친놈들이 다 있어. 그건 인정할 수 밖에 없지. 내가 아는 놈 중에서는 심지어 위성관측기로 남의 도시를 훔쳐보는 놈도 있어. 그래 봐야 직접 와서 보는 것만 못하지만... 수직으로밖에 못 보거든.


하지만 너는 그들 중 으뜸인 미친놈일까? 괴벽인가? 이상했어. 이상하단 말이야.


있잖아. 앞서 말했듯이 나는 편집증 증세가 좀 있어. 그래서 네 출생카드도 찾아보았어. 원래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야.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거든. 사실 너를 알고 싶다기 보다는...내 마음이 편해지려는 생각밖에 없었어."


세진은 조용히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실린더를 열어 보았다. 총알은 가득 차 있었다. 세진은 총을 들고 물었다.


"결벽증과 편집증은 다른 말이야?"


그 권총을 본체만체하며 진영은 말을 이었다. 그의 얼굴은 긴장보다는 고뇌를 품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더군. 그래 어느날 나는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혔던 거야···."


그는 다시 발아래를 바라보았다. 다리 아래로 검은 바다가 보였다. 나무들은 녹색 더벅머리들을 밀착시키고, 어둡게 모여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 안에는 전등이 켜지고,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어쩌면 노랫소리도 들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네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놀랍지 않아?"


진영은 점점 위험 수위를 높였다. 세진은 총을 빙글빙글 자신의 손안에서 돌렸다. 그리고 제대로 잡으려고 할 찰나였다. 진영이 선수를 쳤다.


"내가 온 것은 이것 때문이야. 너도 테러로드로서 의무를 수행해야지. 의무이자 권리. 공동 던전에 들어갈 때가 되었다. 좌표가 찍힌 초대권이야. 플레이 방법은 알겠지?"


진영의 말뜻을 파악한 세진은 권총을 다시 허리춤에 넣었다. 그리고 보라색 초대권을 건네받았다.


진영은 놀랍게도 테러로드 같지 않은 발언을 남겨놓고 사라졌다.


"멋진 도시를 만들어봐."


세진은 그의 의중을 알 수가 없어,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정작 진짜 이상한 놈은 바로 진영같았다.


****



에리카.


그것이 바로 그녀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혼혈인이다. 그래서 얼굴에 서구적인 부분이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착했지만 어리숙했다. 그런 그녀를 현명하게 만들어 준 게 바로 그의 단짝이었다. 그의 단짝은 언제나 금빛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리고 중학교까지 왕따였다.


그녀와 그가 친해진 이유는 애들에게 일방적으로 맞고 있을 때 편을 들어준 것이 계기였다. 그는 훗날 이렇게 에리카에게 말했다.


"에리카. 너무 고마웠어. 세상에 단 하나 내 편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어. 동아줄을 잡은 기분이었어. 그때 내 심정이 어땠는지 넌 절대 모를 거야. 하지만 에리카. 객관적으로 그건 멍청한 짓이었어. 너무 위험했어. 표적이 너로 옮겨갈 수도 있었어“


"....."



어느날 에리카는 고블린 노인을 만났다. 그리고 그와 면담을 했다. 고블린 노인은 그녀를 청영으로 가는 트럭에 실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신을 믿나요?"


묘하게 고블린 노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건성건성 질문을 던지던 노인은 그 질문을 던질 때 만큼은 정말로 에리카의 내심을 알고 싶어 하던 눈치였다. 왜일까?


고블린 노인은 결국 에리카를 청영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세진이 사는 사람들 목록에 그녀를 넣은 것이다. 물론 그녀가 살던 도시의 허락도 받았다. 헬과 인간의 거래였다. 흔들리는 트럭 안에서 에리카는 절망에 가득 찬 사람들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청영에 실려 간다고 뭔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사실 에리카가 별 탓 없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가는 도시에서도 그것을 바랄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도 그녀와 비슷한 절망감에 흔들리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자신의 손목에 차 있는 금빛 시계를 보았다. 이 시계를 건네주었던 남자아이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마 죽었겠지.'


서글프게도 그 시체를 보지 못한 것에 위안으로 삼으며, 어쩌면..만에 하나 그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상상을 품으며, 그녀는 과거를 회상했다.


'에리카. 내가 군중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줄게.'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왕따를 왜 당하는지 알아? 왕따를 당할 이유란 건 없어. 밉상이라면 그 밉상인 걸 사회화 과정으로 고치려고 학교에 다니는 거거든. 왕따를 당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뿐이야.'


'그게 뭔데?'


'눈에 띄었기 때문이야. 그게 죄야.'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어.'


그는 웃었다. 그 웃음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에리카는 확신했다. 이 아이는 나쁜 아이가 아니었다. 이 순수한 웃음을 보라. 그가 당하는 취급은 부당했다. 깨진 안경으로 집으로 귀가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아니. 방금 그의 말대로 이유란 건 없다. 그냥 부당하다.


'손을 들고 질문하고. 자기의 생각을 말하지 마. 튀지 마. 하다못해 실내화 주머니부터 시작해서, 머리 스타일까지 튀면 안 돼. 자신을 드러내는 데다가 약해 보이기 까지 하면 끝장이야. 그런 의미에서 에리카 너는 위험해. 왜냐면 넌 착하고 상냥하거든. 아이들은 그것을 친절이 아니라 약함으로 인식해.


아이들 하나하나는 나쁘지 않지만, 그들이 모이면 군중이 된다고. 그러면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 개인의 선은 없어지고 악한 인간의 본성이 먹구름처럼 나오지.'


그의 몸에 난 끔찍한 흉터들이 그것을 대변했다.


'에리카. 군중은 말이야 생물이야. 본능적으로 몸을 불리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인간들만 그걸 몰라. 군중이 몸집을 불리고 오래 유지 되려면 인간을 가능한 개인으로 만들면 안 돼.'


'네 말엔 이상한 게 있어. 왕따는 군중이 만들잖아?'


대견하다는 듯 남자아이가 웃었다.


'그 왕따 하나 때문에 군중은 더 강하게 집결되는 거야. 광장에서 화형을 시키는 것처럼, 그것을 보는 대중이 흥분해서 원시시대의 저능한 군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군집은 그렇게나 현명해. 군집도 지능이 있다고. 자신을 유지하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지.'


'......'


'요점은 군집체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야. 군집은 네가 그의 일부가 아니란 걸 깨닫는다면 즉시 공격해 올 거야. 즉 우리의 인생은...'


"술래 잡기지."


에리카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아서 누구도 들을 수 없었다. 컸어도 밤중에 이동하는 트럭이라 다들 졸고 있어서 들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린 같은 옷을 입어. 같은 말을 써. 유행어가 생기면 그건 군집체가 실험하는 거야. 즉 정말로 너는 나와 한 몸이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우린 머리말만 따서 축약한 단어나 초성 놀음 같은 바보짓을 하는거야. 그게 편리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지.


그러나 에리카. 한번 생각해 볼까? 그런 은어들을 습득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 편리하지 않아. 오히려 바뀌는 유행에 따라가려면 따로 공부해야 하지. 더 시간이 걸린다고. 결국, 편리해서 쓴다는 말은 거짓말이야. 버릇이라는 말도 이상해.


처음에 낯선 그건 누가 시작했지? 결국 유행을 만들어 내는 대다수가 앞잡이야. 본인들은 유행을 돌려막기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아. 패션만 봐도 패션은 순환해. 복고풍처럼.


군집은 언제나 우리를 노려보고 있어. 실험하고 있어. 그들은 자신이 아닌 부분을 죽여. 그래서 우린 대중매체든 뭐든 끊임없이 증명해 야해. 우린 너와 한 몸이라고. 너와 같은 지능과 정신. 몸을 가지고 있으니 공격 하지 말아 달라고 말이야. 자유는 머리 안에서만 상상해. '


그리고 그는 덤으로 글을 쓰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결국 그는 에리카의 짝이자 진지한 조언자였다. 그를 잃었다는게 너무나 슬프다.


'글에 너의 생각을 담지 마. 그건 위험해. 개성이란 건 유행 속의 패턴일 뿐이야. 군집은 낯선 생각을 싫어해. 다른 주기의 유행을 넣으라고. 인간들은 군집체와 같아. 네가 너의 생각을 말한다면. 그들은 왜 강의를 하느냐고 욕할 거야. 그게 첫 번째 위험신호야.


그거 알아? 누구나 생각하길 싫어해. 뇌는 생각하기 위해서 존재 하는 게 아냐. 우리 뇌는 생각을 가능한 안 하고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 있는 거야. 그렇게 군집은 말해. 그냥 쉽게 인간은 뇌가 없다고 생각해. 인간은 뇌를 쓰지 않아. 인간은 뇌가 최소한만 있어.


군집이 인정하는 진정한 인간들은 뇌를 아주 조금만 써. 움직일 정도만 말이야. 그러면서 생각을 많이 한다고 뿌듯해 하지. 글쓰기란 네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고, 표현하며 남과 소통하는 게 아냐. 포인트는 그들의 정지된 뇌의 비위를 맞춰주는 거야. 그 심리를 알아야해. 글은 표현이 아냐.'


그녀는 글쓰기 상을 연거푸 받았다. 그녀는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금빛 시계를 준 짝궁의 충고대로 현명하게 굴었다.



그래서 결국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아무리 바보 같은 행동이라도 전체가 하면 개인은 따라 한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현명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기적적으로 살아남거나. 대부분 시대가 죽인다. 아니 시대 속의 군중이 죽인다.


희박한 확률로 살아남아 미래는 그를 영웅으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그의 인생 전체는 비탄과 고통뿐이다. 그게 현실이다. 결국 의미 없는 영광이었다. 무덤 속에서 트로피를 받아봐야 뭘 하겠는가?


우리 모두가 돋보기를 들이댄 살인자였다. 에리카는 그것을 깨달았다. 그 자신도 살인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숨기고, 숨겨서 살아남은 상태로 청영에 도착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무슨 엄청난 가능성과 개성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단지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을 뿐이다.


그녀는 인간들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거대한 괴물이었고. 그 일부인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인간들..


많은 인간들이 팔려져 청영으로 간다. 트럭은 그들을 싣고 도시로 진입했다.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던전 안의 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7 7---- +2 17.09.20 649 20 10쪽
46 인간의 가슴 안에 꽃이 피었다. +3 17.09.19 637 22 14쪽
45 5----- +2 17.09.18 721 24 19쪽
44 4---- +3 17.09.18 707 25 17쪽
43 3------- +3 17.09.17 719 27 12쪽
42 2------ +4 17.09.17 743 26 16쪽
41 1------ +4 17.09.15 739 24 11쪽
40 포성이 울리고 +1 17.09.15 765 25 13쪽
39 해외 직구 +7 17.09.13 773 32 8쪽
38 4---- 17.09.11 733 30 18쪽
37 3---- 17.09.10 779 28 10쪽
36 2---- +2 17.09.07 773 27 10쪽
35 1---- +2 17.09.05 810 25 11쪽
34 해외 +1 17.09.05 812 30 16쪽
33 그들은 그녀를 찾아내고 싶어한다. +2 17.09.04 836 25 15쪽
32 6---- +3 17.09.03 854 27 13쪽
» 5---- +3 17.09.02 834 31 12쪽
30 4---- 17.09.02 849 31 11쪽
29 3---- 17.09.01 864 29 11쪽
28 2---- +2 17.09.01 895 29 14쪽
27 1--- 17.09.01 948 35 13쪽
26 그들은 그녀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2 17.08.31 946 34 11쪽
25 테러나이트, 테러데이 +2 17.08.31 908 43 16쪽
24 9...... +2 17.08.31 890 32 12쪽
23 8..... +3 17.08.30 937 35 11쪽
22 7...... +2 17.08.30 943 33 11쪽
21 6..... +3 17.08.30 1,000 37 8쪽
20 5...... +1 17.08.30 1,017 36 13쪽
19 4...... +2 17.08.29 1,083 40 17쪽
18 3..... +4 17.08.29 1,349 35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