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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라이드11
작품등록일 :
2024.09.0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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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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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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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4화. 우리가 외면한다면

DUMMY

"그래, 많이 먹어."


강다수가 상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와,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많이 했어요. 이 정도면 열 명이 먹어도 남겠는걸요."

"많이 먹어둬라. 전기가 끊겼으니 앞으로 이런 음식은 구경하기 힘들 거야."

"아, 이거 알고 보니 최후의 만찬이구나. 그럼 더 맛있게 먹어야지."


말을 끝낸 강다수는 슬쩍 한결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그의 눈길이 장식장의 고급 양주로 향했다.


희연이도 있고 하니 지금은 술을 마실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침부터 술을 먹자고 말하려니 좀 미안해서였다.


한결이 강다수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계획은 배 터지게 음식과 양주를 즐기며 뻗는 거였다.


희연이의 등장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잠만 잤었다.


“그래, 한잔하자. 당장 출발하는 건 힘들 거 같으니까. 오늘 하루는 쉬어가자. 결정해야 할 일도 많고.”


강다수는 한결의 말 중에 하나의 단어에만 꽂혀 있었다.


한결이 처음 말한 '한잔하자'라는 말만이 귀에 들어온 것이다.


그는 신중히 진열장 앞을 살폈다.


양주 가짓수가 너무 많아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난감할 지경이었다.


다 먹을 수가 없으니 선택을 잘해야 했다.


"뭐 해? 밥 식는다. 얼른 와."


한참을 장식장 앞을 서성이던 강다수를 더는 못 기다리겠는지 한결이 그를 불렀다.


"아니, 그게... 양주가 너무 많아서 못 고르겠어요, 인생 마지막 양주가 될 수도 있는데, 도저히 고를 수가 없네요."

"그럼 다 들고 와. 전부 맛보고 제일 맛있는 걸 먹으면 되지. 뭘 그런 걸 고민해."

"와, 형 천잰데요?"

"조금 전에는 단순 무식이라더니."

"하하, 농담이죠."


환하게 웃는 강다수와 달리 한결은 씁쓸하게 웃었다.


친척들에게 부모님의 유산을 모두 뺏긴 강다수는 가난하게 살았다.


그렇다 보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알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강다수가 대충 챙겨 온 것만 해도 열 종류였다.


모두 처음 보는 양주였는데 병의 모양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이야, 기대된다. 소주만 먹다가 이런 고급 양주도 다 먹어 보네."


강다수가 조심스럽게 양주를 오픈하자마자 고급스러운 향이 확 퍼져 나왔다.


"와, 이거 냄새 죽이는데? 무슨 양주에서 달콤하면서 상큼한 과일 냄새가 나지? 정말 신기하다."


강다수가 물컵에 가득 양주를 따르자 한결이 주방으로 걸어가 냉동고를 열어봤다.


"역시."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엔 반 정도 녹은 얼음이 있었다.


전기가 끊어진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건 아닌 듯했다.


한결은 물을 따라 버리고 얼음만 가지고 왔다.


"와우! 생각지도 못한 얼음까지. 좋은데요? 태어나서 아침에 술을 먹기는 처음인데, 이 처음을 이렇게 좋은 양주로 하니 기분이 꽤 괜찮네요."

"하여간, 별걸 다 좋아하네.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마시기나 해. 이 얼음이 마지막이야. 아마 앞으로는 얼음 먹기 힘들 거다."

"일단 원액으로 한번 먹어 보고."


살짝 맛을 본 강다수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역시 다를 줄 알았어. 입에 착착 감기는구나."


술을 좋아하는 강다수는 연신 감탄사를 뱉어냈다.


한결은 강다수를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본 후 희연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희연아, 맛있어?"

"네, 맛있어요."


희연이는 입 안에 음식이 가득한데도 계속해서 음식을 밀어 넣었다.


방 안에서 굶었던 경험이 아이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 듯 보였다.


"희연아, 천천히 먹어. 체할라. 먹을 거 많으니까 천천히 먹어도 돼."

"네, 삼촌."


희연이가 입 안에 음식을 밀어 넣으려다 한결의 눈치를 보며 막 입에 들어가려던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여기 있는 거, 희연이 혼자서 다 먹어도 되니까 천천히 먹어. 알았지?"


희연이는 한결의 다정한 말에 마음이 풀렸는지 음식을 먹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아이는 자신이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왔다.


"삼촌. 근데 아빠는 어디 있는지 알아요? 여기에 있었는데······."


양주를 가득 부은 잔에 담긴 얼음을 녹이려 가볍게 잔을 돌리던 한결의 손이 그대로 멈추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순간, 뇌가 정지된 거 같았다.


하지만 말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도움을 요청하려 강다수를 봤으나, 그도 자신과 같이 굳어 있었다.


강다수의 표정도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아무리 좀비라고 하지만 희연이 아빠였다.


그런 그의 머리를 망치로 내려쳤다.


그것도 몇 번이나.


그 뒤 쓰레기 버리듯 치웠으니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으리라.


한결이 크게 숨을 한번 들이시고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희연이는 아빠가 많이 아픈 걸 봤지?"

"네······."


아이는 변한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금세 침울해졌다.


"아빠가 많이 아파서 멀리 치료받으러 갔어."

"그럼 언제 와요?"

"그게 나으려면 오래 걸릴 거야."


한결의 말이 끝나자마자 희연이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눈물방울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아빠가 좀비로 변한 무서운 모습을 봤으니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오랫동안 볼 수 없다는 이야기는 커다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겨우 7살 여자아이에게 이건 너무 큰 시련이었다.


"으아아앙!"


희연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우는 희연이를 안아 들고 한결은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는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작은 두 손으로 옷을 꽉 쥐고는 그렇게나 서럽게 울었다.


희연이의 눈물에 옷이 축축해져 올수록 한결의 마음속에도 쓸쓸한 비가 내렸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아이는 지쳐서 잠이 들었다.


잠이 든 희연이를 침대에 눕히고 돌아온 한결은 가슴이 답답했다.


화도 치밀어 올랐다.


이따위로 변한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이 괜히 서러워졌다.


자리에 앉자 강다수가 곧바로 양주병을 내밀었다.


그 마음 다 안다는 듯이.


식사 자리는 대체로 무겁게 이어졌다.


희연이의 영향도 있었지만, 이들은 고민이 많았다.


"걱정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다."


한결이 푸념 같은 말을 늘어놓은 뒤 양주가 가득 찬 잔을 들어 마셨다.


한 모금에 술잔에 담긴 술의 반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머리가 터질 거 같았다.


티를 내고 있지는 않았으나, 희연이의 문제로 그의 머릿속은 사실 더없이 복잡했다.


'이 아이를 어떡해야 하지? 우리가 외면한다면 이런 세상에서 하루도 살아남기 힘들 텐데.'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아이를 놔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좀비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아이를 데리고 머나먼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자신들도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상황에서 아이를 보호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여기는 시골의 작은 마을이니까, 조금 더 큰 곳으로 가면 혹시 캠프 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 일단 희연이가 깨면 근처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부터 물어봐요."


강다수가 나름대로 생각한 방법을 말해 보지만, 말하는 자신도 썩 자신 없었다.


그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고민해 봐야 답이 나올 것도 아니고, 일단 고기나 먹어. 잘사는 집이라 그런지 고기 맛도 끝내준다. 언제 이렇게 좋은 고기를 또 먹어 보겠냐?"


한결이 애써 웃으며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그래요. 답도 안 나오는데 고민해서 뭐 하겠어요. 다른 양주도 열어볼까요? 오늘이 바뀐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일 수도 있으니까요."


강다수가 얼른 새 양주를 따서 한결의 잔을 채웠다.


그가 술잔을 내밀자 한결도 마주 내밀었다.


마주치는 잔 속의 술에 물결이 생겼다.


"좋다. 좋은 술에 맛있는 음식까지. 이런 게 진짜 캠핑이지. 죽은 나무 엮어서 움막 비슷하게 만들어서 징그러운 벌레랑 같이 자는 게 캠핑이 아니라. 그렇지 않아요. 한결 형?"


독한 술에 강다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혀도 살짝 꼬부라졌다.


취기는 그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현실의 무거운 짐도 잠시 잊게 해주었다.


"자식이, 낭만을 모르는구나! 산이 주는 낭만이 얼마나 큰데.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 생활하는 낭만. 좋은 공기에 자연이 주는 낭만. 이런 걸 모르다니, 네가 지금까지 너무 삭막하게 살아서 그래."

"그건 낭만이 아니라 거지 생활이라는 거에요. 큭큭큭. 내가 그런 건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힘들게 살아온 강다수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술이 한잔 두잔 늘어가자 걱정, 근심 등으로 가득 찼던 자리에 술이 채워졌다.


취기가 올라오자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왠지 웃음이 나왔다.


"어쨌던 우리도 꽤 잘하고 있는 거네요. 좀비한테 상처를 입어 어젯밤으로 인생이 끝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살아나고."

"뭐, 틀린 말은 아닌데, 이런 세상에 살아있는 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취기가 올라온 한결이 술잔을 흔들자 잔 속의 얼음이 달그락거리며 청아한 소리를 낸다.


그가 녹아가는 얼음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세상이 너무 조용하다. 마치 거대한 무덤 안에 있는 것 같아."


전기가 끊어진 별장 안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너무 조용해서 마치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말을 할 때마다 이 공간에 존재하는 소리가 자신의 목소리뿐이라는 느낌이 낯설게 다가왔다.


마치 집 안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듯한 느낌이랄까.


두 사람은 오른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어느새 잠이 들었다.


쥐 죽은 듯 자고 있던 한결은 의식의 저 멀리서부터 작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차츰 커졌다.


어느 순간 희연이의 다급한 목소리라는 것을 깨닫고 한결은 잘 떠지지 않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어, 그래. 희연아, 무슨 일이야?"


희연이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삼촌이 불러도 움직이지도 않고, 죽은 줄 알았어요. 엉엉."


아이가 잠에서 깨어난 한결을 보고 울었다.


"삼촌은 밥을 먹다가 배가 불러서 잠든 거야. 죽은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한결은 희연이를 꼭 안아 주었다.


한결의 온기가 희연이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의 품 안에서 희연이의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얼마나 잔 거지?'


시계를 보니 4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이것 참. 자도 자도 피곤하네.'


별장에 오기 전에 쌓였던 모든 피로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분명 밥을 먹다가 잠들었는데, 눈을 뜨니 또다시 배가 고팠다.


'하, 이건 식충이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 배가 고픈 자신이 왠지 한심해졌다.


그러고 보니 희연이도 배가 고플 거 같았다.


"희연아, 배고프지?"


희연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이 맛있는 거 해 줄게. 잠깐만 기다려 봐."


이제는 제법 친해진 듯 맛있는 음식을 해 준다는 말에 희연이의 얼굴에 기대감이 감돌았다.


"다수야, 일어나 봐."


한결이 강다수를 흔들어 깨웠다.


"어, 잠들었었네. 우아아아흐함!"


강다수가 일어나며 크게 하품하며 기지개를 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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