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 남정환의 웃음
“형님···.”
난 놀란 눈으로 남대표를 바라보았지만 남대표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술을 마셨다,
“왜 그런 표정이야? 하하”
“아...하하. 형님도 참... 깜짝 놀랐잖아요.
저 나름 잘 속는 편이란 말이에요.”
난 남대표의 웃음에 안도해 따라 웃음 지으며 술잔을 들었다.
남대표는 계속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는듯한 모습이었다.
“끄윽..끅.크크크큭...파하하. 아... 진짜 웃겨서 더는 못 참겠네.
그래 잘 속는 것 같더라.
그동안 너랑 놀면서 참 재미있었어. 푸흡 크크..큭”
“예?”
남정환은 계속 웃더니 가까스로 웃음을 추스르며 말했다.
“처음에는 니가 대단한 놈인 줄 알았는데 만날수록 어떤 인간인 줄 알겠더라.
나약하고 한심하고 머리 나쁜 놈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거머쥔 건지는 모르겠지만.”
“형님?”
“왜? 이해가 안 가? 지금 상황이?”
“농담이시죠? 자꾸 이러시면 저 삐져요···.”
“이래서 난 머리 나쁜 놈들이 싫어.
그래서 동건이 놈도 어릴 때 확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내 미래를 위해 살려 놨더니 날 방해나 하고.”
“...”
“이해가 안 가겠지만 니가 자꾸 칭얼 델까 봐 한 번만 말해줄게.
잘 들어.
기한 내로 돈 꼭 갚아라.
아니 못 갚아도 돼 원래 내 목적이 코스모 제약이었으니까.
아무리 바보라도 이 정도면 알겠지?
그 머리로 이해 가냐?”
머리를 세게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남정환이... 여태껏 날 속여 왔다는 건가? 정말?
“지금 장난..하는거죠?”
“장난? 맞아 장난이야.
널 가지고 노는 장난.
이제 남은 돈으로 아껴 가며 적당히 놀고먹어라.
하등한 서민새X~”
남정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에서 나갔지만 난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왜... 왜···.”
그동안 형처럼 따르던 남정환에 배신에 잠시 멍했던 난 점점 몸속에서 뜨거운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난 앞에 놓은 술들을 미친 듯 들이키기 시작했다.
한 번씩 주먹을 꽉 움켜질 때마다 힘을 너무 주었는지 나에 손이 부르르 떨리며 터질 것 같았다.
술 때문인지 얼굴은 벌게져 갔고 머리에 심한 두통이 느껴졌다.
-코스모아이 커넥트 일부 오류 발생.
-코스모아이 커넥트 오류 내용 전송 실패.
-코스모아이 커넥트를 재부팅 합니다.
-슬립 모드를 작동합니다.
아침이 되어 난 집에서 깼다.
어제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아마 내 경호원 빡빡이 들이 옮겨 주었을 것이다.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타 주신 꿀물을 먹고 정신을 차렸더니 어제 일이 생각났다.
‘꿈이었을까?’
난 내 머리를 쳐대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아니야···. 정신 차려.
남정환이 배신한 거잖아!’
난 믿었던 남정환에게 배신을 당한 만큼 더 충격적이라 믿고 싶지 않았지만, 어제 술집에서 했던 대화는 진짜였다는 걸 알고 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이대로 남정환 그 개새X 한 테 코스모 제약을 뺏기는 건가?
설마... 그 사채업자도 한패였나?’
이 상황이라면 사채업자와 남정환이 한패일 가능성이 컸다.
둘이 내게서 빼앗게 될 지분을 합치면 코스모 제약에 대한 지배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안돼···. 이대로 뺏기기 싫어···.
그까짓 회사들 잃어도 내 능력 부족인 걸 누굴 탓하겠냐만...
남정환... 이 인간은 절대 용서 못 해.
절대 그 인간한테는 안 뺏길 거야!’
남정환에게만은 절대 회사를 뺏기지 않으리라 다짐한 나는 바로 샤워를 하고 밥을 먹었다.
“의장님 천천히 드세요···.”
내 식사를 챙겨주던 가사도우미는 내가 허겁지겁 먹는 걸 보고 당황해하며 걱정해 주었다.
“어서 많이 먹고 힘내려구요.
힘내서 때려주고 싶은 인간이 생겼어요.”
“때..때려요?”
남동건도 한 방 먹이고 동춘이라는 조폭도 때려봤더니 내 안에 짐승 같은 폭력성이 생겨났나 보다.
남정환 이 자식에게 꼭 한 방 날려 주고 싶어졌다.
난 최변호사의 로펌 건물에 있는 시크릿 바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었다.
최변호사가 다른 업무로 회사에 없었는데 마음이 급한 내가 약속 시간보다 너무 일찍 와서 일단 여기서 기다리던 차였다.
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기에 술은 먹지 않고 음료수를 먹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혹시 반은성 의장님?”
“네···. 그런데 누구신지···?”
난 그가 최변호사 로펌에서 일하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기억이 나는 얼굴은 아니었다.
“아. 처음 뵙겠습니다. 중앙지검 차도민 검사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난 검사라는 말에 잠깐 멈칫했다.
원래부터 평범한 소시민인 난 공권력에 약했으니까.
인사를 나눈 그는 떠날 생각은 안 하고 내 앞에 앉았다.
“꼭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네요.”
“저를요?”
‘뭐지? 날 왜? 혹시 코스모 엔터 때문인가? 코스모 뱅크? 코스모 공업? 아니면 조폭일? 국정원?’
떠오르는 혐의가 너무 많았다.
최근에는 코스모 엔터 배우가 마약과 연루되어 있다느니 하는 찌라시 때문에 코스모 엔터에 기자들이 쳐들어왔고 코스모 뱅크도 코스모 공업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조사를 받고 있다.
거기다 내게 벌어진 온갖 사건을 생각하면 여태 검사 한번 안 본 게 용했다.
“무... 무슨 일 때문에···.”
“제가 앞으로 모실 분 아닙니까. 당연히 인사드려야죠.”
‘날 모신다고? 깜빵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런 건가?’
기운 내서 남정환을 잡으려던 내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의장님”
난 절망감에 빠져 대답도 못 해주었다.
“아이고 벌써 두 분이 인사를 하고 계셨군요.”
타이밍 좋게 최변호사가 왔다.
“최..변호사님.”
난 이제 깜방에 가야 하는 건가 하는 걱정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심정으로 최변호사를 봤지만 최변호사는 그런 날 본 건지 안 본 건지 신경도 쓰지 않고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앉았다.
“따로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두 분이 만나버리셨네요. 하하”
“의장님 사진을 본 적이 있어서요. 단번에 알아봤습니다.”
“뒷조사 하신 건 아니구요?”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제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의장님 앞으로 의장님께 이런저런 도움을 주실 차도민 차장검사님이십니다.”
“도움을 주신다고요?”
“예. 지난번 웹하드 업체 압수수색에도 크게 도움을 주셨습니다.”
“제가 뭘 한 게 있나요.
헤비업로더를 바로 찾아주셔서 굉장히 수월했습니다.”
“의장님께서 굉장한 정보망들을 가지고 계시죠.
겉보기완 다른 분입니다.”
“역시. 천하를 얻으시려 잠시 몸을 웅크리고 계신 거로군요.
그 정도 분은 돼야 저도 이 판에 낀 보람이 있겠죠.”
‘무슨 소리 들을 이렇게 하는 거야···.
내가 끼어도 되나? 그냥 집에 갈까?’
“의장님께서 요즘 곤욕을 치르시는 일들을 여기 차검사님께서 도와주실 겁니다.”
“정말요?”
“예. 반의장님. 그렇지 않아도 코스모 엔터 일은 금방 정리 될 겁니다.
관련 마약 사건에서 코스모 엔터 소속 연예인이 관련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난 속으로 굉장히 기뻤다.
그렇지 않아도 이 사건 때문에 코스모 엔터 이미지가 너무 부정적이라 고윤아의 광고촬영 건도 몇 건인가 날아갔고 다른 소속 연예인들 사정은 더 안 좋았는데 한방에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다른 건들은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지만 여기 차검사님도 계속 알아봐 주실 테니 너무 염려 안 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계속 안 좋은 소식뿐이었는데 한시름 덜었네요.”
“이대로 계속 수사를 질질 끌면 회사를 팔기도 어려워지실 겁니다.”
“그렇겠죠···.”
걱정하는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차검사가 말했다.
“의장님이라면 생각해 두신 복안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런 거 없는데···.’
솔직히 나야 아무 방법도 없다.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 머리가 있었다면 애초에 남정환에게 뒤통수 맞는 일도 없었을 거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잠시 고민하던 난 최변호사에게 말했다.
“저···. 사우디로 가겠습니다.”
사우디로 직접 가기로 한 나는 잊고 있던 게 하나 생각났다.
‘홍영감탱이 한 테 그림 받기로 했는데···.
깜박하고 있었네···.
지금 받으러 가면 괜히 혼만 나려나?’
예전에 사우디 왕자에게 선물한 짝퉁 춘화도를 만회할 그림을 홍선생에게 다시 주문했었는데 완전히 잊고 있었다.
하지만 이왕 가는 거 왕자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심정으로 홍선생의 가게로 찾아갔다.
“아니 기껏 그림 구해놨더니 이제야 나타나!”
예상대로 홍선생이 화를 냈다.
“죄송해요. 제가 그동안 일이 좀 많아서···.”
“먼저 준비한 건 이미 딴 놈한테 갔어.”
“그럼 새로 구해 주실 수 있을까요? 최대한 빨리···.”
“아니 매번 뭐 그리 급하게 그림을 구해.”
“사정이···.”
“좋은 그림을 그리 쉽게 구하는 건 줄 알아!”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어르신”
“그리 사정해도 갑자기 그림이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난 실망해서 고개를 푹 숙였고 그런 내 모습을 곁눈질하던 홍선생이 말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고···.”
“네? 방법이 있어요?”
“자네한테 그림을 팔만한 사람이 하나 있긴 한데···.”
“그림을 파실 분이 있어요?”
“팔지는 모르겠고. 한번 찾아나 가봐.”
난 홍선생이 알려준 주소로 찾아갔다.
경호원은 한 명만 데려왔다.
괜히 여러 명 데려왔다가는 위화감만 조성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오만원권 현찰 3억이 든 가방을 들게 하고 난 초인종을 눌렀다.
‘전화는 왜 안 알려주는 거야? 헛걸음이면 어쩌지···.’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보아도 대답이 없었기에 홍선생이 원망스러웠다.
‘홍선생 이 영감탱이가 또 사기 친 거 아냐?’
난 아직 춘화도로 나에게 사기 친 걸 잊지 않고 있다.
“누구 십니까?”
다시 초인종을 누르려던 때 정장을 입은 한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저···. 이 집에 볼일이 있는데···. 혹시 여기 사세요?”
“네. 누구시죠?”
“아···. 저는 그림 때문에... 홍선생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남자는 날 유심히 보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듯 대답했다.
“혹시 지난번에···.”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