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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나스의 서재입니다.

나린신공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엘라나스
작품등록일 :
2015.08.01 16:46
최근연재일 :
2015.08.13 14:5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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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1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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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一章. 무림출도Ⅳ

DUMMY

토실토실하게 살찐 토끼를 보는 호랑이처럼 입맛을 다시는 희우의 속삭임에 파락호들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아니, 그 실력을 갖고 이런 싸구려 검을 탐해?’

‘미친 거 아냐?’

‘제길. 무림고수란 종자들은 하나같이 괴짜에 별종들이라더니!’

솔직히 어이가 없을 수밖에. 그들이 가진 검은 대장간에서도 ‘잘못 만들었다.’라며 헐값에 판 것들이다. 이류 무인들도 코웃음을 칠 싸구려 중의 싸구려. 최소 일류로 추정되는 희우 정도 되는 실력자라면 어디 아무 곳이나 대충 취직해도 이런 검 따위는 마차에 그득하게 채울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어이가 없어도 어쩌리. 한 명이 벽에 처박힌 순간부터 칼자루를 쥔 건 희우인데. 결국 파락호들은 흑도방파 최후의 절초를 발휘했다.

“아이고, 소협.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검으로 말하자면 싸구려 중의 싸구려, 소협께 어울리는 검이 아닙니다요!”

그 절초란 바로 언제 기세등등했냐는 듯 비굴하게 무릎을 꿇으며 비는 것. 여섯이나 되는 장정이 거의 인격을 바꾸는 수준으로 태세를 바꾸면서 구차하게 비는 꼴은 조금 전까지 협박당하던 사람조차 무심코 동정심을 가질 정도로 애달픈 모습이었다.

대체로 무림인, 그중에서도 고수라는 족속들은 자존심이 하늘같으며 자만심과 허영으로 몸을 채운 종자들이라 제 품위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애처롭게 비는 상대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특히나 자부심이 누구보다 뛰어날 어린 기재라면 더더욱 그렇다.

기껏해야 비웃음 정도나 들을까? 어쨌든 죽을 상황에서도 제 몸 온전히 돌아갈 수 있는 비책이라 의리라곤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흑도방파에서 자그마치 기술공유(!) 씩이나 하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는 기술이기에 그 효과는 무림고수를 넘어 평범한 사람이라도 무심코 돌려보낼 만큼 굉장했다.

당장 백이건과 백사희마저 쯧쯧 혀를 차며 동정하고 있을 정도니 말이 더 필요할까?

콰득!

“너희들은 이 칼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디?”

하지만 희우는 오히려 짜증난다는 듯 검을 내리쳤다. 번개같이 내리쳐진 석검이 무릎을 꿇고 비는 파락호 우두머리의 머리 옆을 지나 바닥을 일거에 꿰뚫어버리니, 석검을 본 파락호들은 부들부들 떨며 말도 못했다.

하기야 말이 싸구려지 바위를 갖다가 희우가 대충 무공으로 깎아다 만든지라 날도 없이 생긴 것만 그럴듯한 석검과 비교하면 철검은 어떻게 만들어도 천하의 명검이다. 무게중심이니 강도니 날카로움이니 아무리 해도 날이 아예 없지는 않을 테니까!

“조잡한 동정심 유발하지 말고 빨리 칼 내놔라. 돈은 얼마나 있냐?”

“아이고, 소협…… 이 검은 우리 밥벌이 수단입니다요. 가져가시면 저희는 굶어죽기도 전에 형님들한테 맞아서 죽을 것입니다요. 흑흑.”

어째 자신들이 피해자인 양 눈물까지 찍어내는 모습에 희우는 안면을 실룩이며 이마를 짚었다.

“아니 하지 말라니까 그러네? 후. 됐다. 그냥 내가 수거하고 말지.”

어째 가만히 두면 자기만 더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그냥 받아내기보다 직접 수거하기로 결정한 희우의 머릿속으로 사부가 했던 말이 슬며시 지나갔다.

[자고로 흉악한 가해자일수록 더 피해자 행세를 잘 하는 법이란다. 원체 많은 피해자를 만들다보니 아예 피해자들이 어떻게 하는지 다 꿰고 살거든. 그런 놈들은 돌려보내주면 패거리를 끌고 오거나 고개 돌렸을 때 칼침부터 놓을 놈들이니 속옷까지 싹 뒤져주렴.]

“역시 사부의 말은 틀리지를 않아.”

하는 모양새가 아주 희우 쪽이 악인처럼 보일 정도니, 미리 사부의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희우도 당황해서 그냥 놔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일단 안 이상 희우에게 자비는 없었다.

스르륵!

“억?”

“엇!”

그들을 가리키며 희우의 손가락이 까딱하니 재빨리 번쩍거리는 칼날을 감추기 위해 검집에 꽂아뒀던 검들이 검집째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둥둥 떠서 희우에게로 천천히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강호는 넓고 기사가 많다 하나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하나뿐이다.

“허, 허공섭물…….”

“내공마저 고강하단 말인가.”

허공섭물. 내공을 통해 몸을 쓰지 않고도 멀리 있는 물건을 움직이는데 사용하는 기예다. 경지보다는 내공의 수위에 영향을 많이 받는 기예로, 그럭저럭 어렵지 않다는 평가의 난이도와 달리 돌멩이 하나만 옮겨도 오 년이 넘는 막대한 내공을 소모하기에 허세용 기예라고 평가받았다.

‘무슨 반로환동한 고수야?’

‘그런 것치곤 가족이 있잖아. 진짜 저 나이에 내공마저 많다고?’

나름 무림에 대한 상식이 풍부한 파락호들은 희우의 나이를 보고 고수여도 내공은 적으리라고 생각했었다. 내공이란 것이 원래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고강하게 쌓고, 많이 다룰 수 있게 되는 힘인지라 아직 약관도 한참 못 미치는 소년이 많이 가질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우는 달랐다. 자그마치 일곱 자루의 검. 심지어 거리마저 제각각인 검을 동시에 끌어오는 것은 척 보기에도 소모되는 내공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면서도 희우는 땀은커녕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았으니 파락호들의 등으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디. 돈주머니는 어디쯤에 있으려나? 아빠! 누나 눈 좀 가려주세요.”

“어, 응.”

뱀 앞에 선 개구리가 이러할까. 아니면 여우 앞의 닭이 이러할까? 꼼짝도 못하는 파락호들에게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막 생각났다는 듯 희우가 말했다. 이미 객잔 내부는 희우에게 완벽하게 지배당하고 있었기에 백이건은 아들의 말에 무심코 백사희의 눈을 가렸다.

투둑! 툭!

“허, 허억! 잠깐!”

“이러지 맙시다!”

백이건이 백사희의 눈을 가린 순간, 가장 앞에 있던 파락호의 옷이 벗겨진다. 허공섭물의 힘으로 단추가 뜯어지고, 허리춤이 끊어지며 순식간에 근육질 장정이 탈의되는 모습은 사내들의 입장에서 끔찍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어… 저, 희우야? 그건 좀 심하지 않느냐.”

오죽하면 희우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이 분위기에서 백이건이 아들을 말릴 정도였으니까. 다른 사람의 말이었으면 사뿐히 무시했겠지만 가족이라면 사정이 다른 희우는 아버지의 말에 잠시 허공섭물을 멈추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요?”

진짜 심하냐는 듯 묻는 희우에게 객잔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상인들이 얻어맞는 꼴도 하루 이틀 본 게 아니라 무력으로 협박하는 광경이야 통쾌하게 봤다지만 강제탈의는 그조차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었다.

심지어 예전에 그들에게 얻어맞고 보호세를 내게 된 여관주인마저도 어느새 나와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파락호들도 애처로운 눈으로 간절히 희우를 바라보았다.

“근데 이러면 돈 안내놓고 계속 피해자인양 절 나쁜 놈으로 몰 것 같은데요.”

모두가 반대하니 잠시 ‘심했나?’하고 고개를 갸웃하던 희우는 자신들이 불쌍한 사람들인 양 쳐다보는 파락호들을 보고 기분이 나빠져서 말했다. 그러자 파락호들이 대경실색했다.

“아, 아닙니다!”

“드, 드리겠습니다!”

절그럭절그럭!

근육질 사내놈들이 스스로를 거칠게 애무하는 것처럼 온몸을 더듬으며 제 돈주머니를 찾는 모습은 꽤나 더러운 광경이었지만, 평소 당한 게 많은 도시 사람들의 입장에선 그보다 재미있는 일이 없을 정도로 즐거운 광경이었다.

좀 심한 강제탈의에서 적절한 조롱거리로 내려오니 모두가 즐거워졌다. 파락호들도 강제탈의보단 그냥 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흐음. 은자로 다섯 냥에 동전으로 팔백 문이라. 야, 진짜 더 없냐?”

그렇게 파락호들이 벽에 여전히 처박힌 나머지 한 명의 주머니까지 죄다 털어낸 돈은 동전으로 오천팔백 문. 돈을 뜯고 다니는 인생이다 보니 현금보유량이 많았다.

희우네 여행자금이 다 합쳐서 동전 삼백 문 정도였으니 열 배를 훨씬 넘는 돈. 하지만 희우는 그런 거금도 꽤나 불만스러운지 인상을 찌푸리며 파락호들에게 숨긴 돈 없냐고 으르렁댔다.

“없습니다!”

“지, 진짜로요. 그거 형님들한테 드릴 상납금도 다 드린 겁니다!”

파락호들도 억울했다. 은자 다섯 냥이 어디 뉘 집 개 이름인가? 어지간한 양민들의 월수입이 동전 팔백 문 정도다. 한 가구가 한 달 먹고 사는 데 드는 돈은 그보다도 더 적어 오백 문으로 근근이 살아갈 정도는 되는데 은자 다섯 냥이면 평범한 양민들은 구경도 힘든 액수다.

“흐으음. 사천까지 가긴 한참 모자라는데.”

그러나 그건 양민의 기준이다. 빈부격차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 천하에는 은자 하나 보기 어려운 사람이 있는 반면 동전이라는 화폐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은 법. 괜히 숙박비가 은자 단위인 호화로운 객잔이나 금자를 뿌려야하는 고급 기루 같은 것이 성행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이야 작은 도시인데다 아버지 단골이라는 이유로 동전 이십 문에 방을 내주는 객잔에 자리 잡았다지만, 여행의 즐거움이나 백사희의 건강을 생각해보면 고급 객잔에서 호화롭게 여행하는 쪽이 당연히 월등히 좋다.

식사의 수준, 청결함, 안전, 하다못해 침상의 푹신함마저 다르니까. 물론 실제로 가본 적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사부가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 연유로 희우는 다음 도시부턴 좀 좋은 객잔에 자리 잡을 예정이었는데 이정도 돈은 너무 적다. 불만스러운 기색으로 턱을 쓰다듬던 희우는 이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무릎을 꿇고 있는 파락호들에게 말했다.

“아, 그래. 너희 아까 형님이 어쩌고 했지?”

“예, 예. 있습죠.”

“걔는 돈 좀 많냐?”

“…예?”

파락호들은 희우의 말에 잠시 굳었다. 순간적인 상황변화에 미처 대응하지 못해 멈춰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굳어있을 수 있는 시간도 많지는 않았다. 희우가 새로 얻은 일곱 자루의 진검 중 하나를 휙휙 휘저어보는 것으로 그들을 깨웠기 때문이다.

“저… 저희가 말한 형님은 진짜 형님이 아니라 문주님을 말씀드린 겁니다만.”

“오. 그냥 상관이 아니라 두목이야? 잘 됐네. 걔한테 다 상납한댔으니 돈 꽤나 많겠지?”

희우는 번쩍거리는 칼날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쓸어보며 말했다. 싸구려긴 해도 번쩍거리는 검이 마음에 드는 모양인데, 어째 하는 자세가 협박처럼도 보인다. 석검으로도 한 명이 벽에 처박혔는데 이제 진검을 들었으니 목이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에 파락호들이 황급히 장단을 맞췄다.

“예. 그렇습죠. 듣는 바로는 비자금까지 조성했답니다.”

“검도 저희 것보다 훨씬 좋은 걸로 차고 있고요.”

그들의 대답에 희우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그래? 그럼 가서 걔… 아니, 너희 패거리 죄다 데려오라고 해라. 돈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솔직히 너희만 털리는 거 억울하지 않냐? 같은 문파니까 다 같이 나눠야지?”

그러면서 희우는 첫 일격으로 객잔에 처박힌 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파락호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리고 무공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둥실~ 꿀꺽!

사람. 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게를 지닌 물체가 허공섭물로 둥둥 떠서 날아온다. 파락호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떨었다. 이젠 실력이 어쩌고 할 단계가 아니다. 저 내공만으로 희우는 이미 괴물이었다.

“그래도 동료라고, 이것도 가져가면 더 쉽게 가져올 수 있겠지?”

아예 그들이 이젠 돈주머니나 그것을 가져올 도구 정도로 보이는지 사람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말에 파락호들은 허공섭물로 날아온 파락호를 받아들며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객잔 밖으로 달려갔다.

희우는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웃었다. 그들이 희우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문주를 말릴 가능성도 있지만… 아마 그들이 말리건, 부추기건 결과적으로 문주를 비롯한 패거리는 찾아올 것이다.

사부가 말했던 대로라면 수하가 말린다고 오지 않을 정도의 참을성을 가진 놈은 흑도 두목이나 하고 살지 않을 것이고, 애초에 흑도나 하고 사는 놈들은 희우가 말한 대로 자기들만 당한 게 억울해서라도 데려올 놈들이었으니까.

흐뭇하게 돈을 가져올 미끼들(?)의 뒷모습을 보던 희우는 ‘아차!’하고 깜빡했다는 듯 소리쳤다.

“아! 야! 대륙전도 하나 챙겨서 와라!”

꽤나 멀리 간 상황이었지만 희우는 그들이 지도를 꼭 챙겨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 날, 흑룡파는 문을 닫았고 문주를 비롯한 문도들은 모두 귀농했다. 희우는 대륙전도 하나에 객잔 수리비를 제하고 총합 은자 백삼십이 냥에 철전 삼백칠십 문, 괜찮은 검 한 자루와 싸구려 검 스물일곱 자루의 전리품을 획득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들을 멸문시킨 희우의 이름이 명성이라는 형태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작은 흑도방파긴 해도 혼자 객잔에 앉은 채로 부숴버렸다는 점에서 나름 화려한 무림출도였다.


작가의말
사부님의 교육은 세계제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일!!

올바른 교육이 참된 무림인을 길렀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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