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엘라나스의 서재입니다.

나린신공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엘라나스
작품등록일 :
2015.08.01 16:46
최근연재일 :
2015.08.13 14:59
연재수 :
6 회
조회수 :
361,304
추천수 :
16,646
글자수 :
30,882

작성
15.08.06 13:00
조회
11,883
추천
336
글자
12쪽

一章. 무림출도Ⅰ

DUMMY

나린은 독특한 스승이었다. 무공을 가르쳐주겠다고 꼬드겨서 제자로 만들었음에도 무공을 전혀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대신 그녀는 일 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무림이나 무학에 대한 지식을 희우에게 가르쳤다. 희우가 무공을 익히게 된 것은 우습게도 둘이 만나기 딱 일 년이 되기 하루 전이었다.

그것도 희우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한 지 한 시진 만에 무공전수를 끝낸 나린은 조금 미안하다는 듯 희우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시간이 충분히 있었으면 내 진신절학을 가르칠 방법을 찾아냈을지도 모르는데. 아무래도 가르치는 데는 재능이 없다보니 일 년으론 조금 부족하더구나. 그래서 급한 대로 천기(天氣)를 느낄 수 있는 너와 어울리는 나의 초식 하나에 이것저것 괜찮은 무공들을 섞어서 만들어봤단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십 년만 하루 두 시진씩 수련하도록 하렴. 그러면 이런 촌구석에서 맞고 다닐 일은 그다지 없을 테니.”

애석해하는 나린이었지만 ‘받은’ 무공을 느껴본 희우는 전혀 실망하지 않고 있었기에 나린의 말을 흘려들었다. 애초에 실망할 무공인지 아닌지 판단도 못하는 어린애였으니 실망할 리가 없다. 대신 그는 무공이 깃든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런데 사부님. 무공 이름은 뭐예요?”

그의 질문에 나린은 지금까지 본 적 없이 당황했다. 희우는 자신의 사부가 말을 더듬는 모습을 지금 처음 보았으니까.

“응? 이, 이름? 아, 음. 그러니까… 그래. 나린신공이란다.”

또한, 그토록 허술한 대답을 들은 것도 처음이었다. 명백히 무공 이름 따위 생각도 하지 않았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희우는 ‘좋아. 잘 받아 넘겼어!’하고 몰래 안도하는 사부를 부루퉁한 표정으로 보며 물었다.

“…사부님 이름이 뭐였죠?” 나린은 불만스러운 기색인 제자를 보며 배시시 웃고는 말했다.

“뭐야. 사부 이름도 잊어버린 거니? 내 이름은 나린이잖니.”

“…….”

희우는 황당해서 말을 잃었고, 그 날 평소보다 일찍 집에 돌아갔다. 평상시엔 수련이라는 말을 빙자한 교육시간 이후에도 사부와 대화를 좀 더 나누다가 돌아갔었는데, 오늘은 이 무공 이름 건으로 조금 삐쳤었기에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린은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희우는 이 날 일찍 돌아갔던 자신을 줄곧 후회했다. 미리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사부와 시간을 보냈을 텐데.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한 자신을 끝없이 질타하며 슬퍼했다.


- 사부와의 추억




세월은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돌이켜보면 그보다 빠른 것이 없을 정도로 사람을 기만하며 흘러간다.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사부가 떠난 지 어언 강산이 한 번 뒤바뀌는 세월이 지났다.

작년부로 지학(志學)의 나이를 지난 희우는 어엿한 사내가 되어있었다. 수련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충 바위를 깎아서 만든 석검을 든 채 방금 자신의 손으로 부숴버린 작은 언덕만 한 바위를 힐끔 본 그는 이내 미련 없이 수련을 그만두고 몸을 돌렸다.

‘사부의 말은 그런 뜻이었나.’

그동안 희우는 사부의 유언(?)에 따라 충실하게 나린신공을 수련해왔다. 하루에 두 시진. 조급하지도 게으르지도 않게 수련해온 결과로 정확히 십 년이 되는 이 순간 사부가 전수해준 나린신공을 더 이상의 수련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체득해냈다.

그렇기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십 년이었다.

‘이제 때가 된 거겠지.’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던 하산의 때를 노래하는 선언이기도 했다.


“누나~ 나 왔어!”

“희우? 오늘은 일찍 왔네?”

삐걱대는 소리가 요란한 대문을 반쯤 뭉개버리며 들어오는 희우를 복숭아처럼 달콤하고 꾀꼬리같이 아름다운 목소리가 반겼다. 목소리만 들어도 그 미모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고운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희우의 누나 백사희(百士希)였다.

“응. 이제 수련 끝났거든. 좀 이르지만 저녁 할까?”

“매번 미안해. 내가 몸이 이래서…….”

미안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희우가 백사희를 돌아보았다. 보이는 것은 희우에겐 익숙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희우보다도 어려보이는 작은 체구와 청순가련한 얼굴, 병중에도 부드럽게 기른 머릿결과 잘 가꿔낸 부드러운 피부는 특유의 병약한 분위기와 합쳐져 작고 여린 아기토끼를 보는 듯한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그 아기토끼가 미안함과 죄책감을 품은 눈빛으로 올려다보니, 사내라면 누구라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가련한 유혹이 완성된다. 스스로 자각도 없이 내지르는 순수한 유혹은 묘한 백치미까지 섞여서 더욱 더 그녀의 가련함을 강조한다.

“떽. 그런 말 하지 말랬지?”

물론 남매인 희우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희우는 누나를 가볍게 타박하고는 산에서 가져온 망태기를 마당에 엎었다. 그러자 망태기에 꽉꽉 들어차있던 약초들이 후두둑 쏟아져 내린다.

희우가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캐두었던 약초들이었다. 백년하수오나 오십년설삼처럼 귀한 영초는 없지만 그래도 십 년에서 이십 년 정도 묵은 영초들이 열댓 개가 넘게 포함되어 있다.

어지간한 약초꾼들이 하루에 영초 하나도 운이 좋아야 간신히 구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기 짝이 없는 수확이다. 하지만 그런 어마어마한 희우의 능력보다도 더욱 놀라운 점은 많은 약재들의 대부분이 오늘 이 집에서 모두 소비될 예정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날이 갈수록 많이 필요해지잖아. 매일 너랑 아빠한테 고생만 시키고…….”

바로 백사희의 지병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백사희가 모친의 태내에서부터 앓고 있던 지병은 영약과 약재를 통해 기를 보하는 것으로 가라앉힐 수 있었다. 처음 태어날 무렵에는 간단한 보양식 정도로도 가라앉았지만 날이 갈수록 병세가 강해지면서 점점 더 많은 약재를 요구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근방에서 제일 잘나가는 약초꾼인 백이건이 감당을 못하는 수준이 되었다. 하루에 어지간한 약초꾼의 보름치 수입 이상의 약재를 먹어치우니 아무리 뛰어난 약초꾼이라도 감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평생을 약초꾼으로 살아온 백이건이 하늘의 사랑을 받는다고 평할 수준으로 약재를 찾아내고, 나린신공이라는 희대의 신공까지 동원해 캐오는 희우가 아니었다면 백사희는 죽어도 백 번은 죽었을 정도.

근방의 산들을 죄다 털다시피 해서 쏟은 약재의 양은 고스란히 백사희에게 마음의 짐이 되었다. 아무리 소중한 가족이라도 말 몇 마디로 내려놓기에는 그 짐은 너무 많고도 무겁다.

그 사실을 아는 희우는 망태기에서 떨어진 약재들을 이리저리 분류하며 포기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에휴. 말을 말자. 병이 나으면 절로 사라질 소리니.”

“…병이 나아?”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백사희가 의아한 눈을 한다. 근방에서 가장 용하다는 의원을 데려와도 어떤 병인지 알아보지도 못한 병이다. 손가락은 물론 발가락까지 동원해도 모자랄 숫자의 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모아 낸 결론이 약재를 통한 임시방편뿐이었으니 치료는 옛날 옛적에 포기한 지 오래다.

“흠. 아버지 오시면 얘기하려고 했었는데, 이제 내 수련도 끝났으니 떠나자고 할 참이었거든.”

싱긋 웃으며 말하는 희우를 보며 백사희는 살포시 미소를 띠었다. 떠난다고 될 수준이었다면 백이건이 진작 두 자식을 이끌고 떠났으리라. 그랬기에 희우의 말은 그녀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이미 포기한 누나에게 희망을 주려는 동생의 기특한 말이라고 생각하며 웃어줄 뿐.

“장난치는 거 아냐. 누나.”

그런 백사희를 보며 희우는 정색했다. 백사희가 무슨 생각으로 포기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백사희를 낫게 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백사희에게 희망을 불어넣길 원했다.

본디 병이란, 낫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더 쉽고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으므로.

“진맥을 많이 받았대도 불렀던 의원들은 고작 감기나 봐주는 허접한 의원들뿐이었어. 우리 집 재산으론 그 정도 의원도 청하기가 어려워서 동네를 떠나봐야 거기서 거기인 의원밖에 못 부르니 그냥 틀어박혀 있었지.”

하루하루 살려두는데 드는 돈만 쳐도 감당이 어려울 정도였으니 이름난 명의 같은 사람을 부를 수 있을 리가 없다. 평가절하하기엔 꽤나 실력 있는 의원도 있었으나 그들도 그렇게 뛰어난 의원들은 아니었다. 백사희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우리의 목적지는 그런 허접한 의원들이 아냐. 최고의 의원을 찾아갈 거야.”

“최고…?”

자신만만한 희우의 말에 백사희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희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백사희에게 새기기 위해 입을 열었다.

“누나는 잘 모르겠지만 중원에는 사천당가라는 곳이 있어. 의술로 천하제일을 다투는 세가지.”

사천당가. 무림에 적을 둔 이라면 모르는 쪽이 이상할 정도의 이름이다. 천하에서 가장 강성한 다섯 세가(五大勢家)의 하나이자 사천무림에서 정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나 독과 암기에 관해서는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거대세가.

천하제일의 독을 다루기 위해 천하제일의 의술을 터득하고 있다는 당가의 기술은 무림맹에서 독과 의술에 대한 전권을 양도받고 있으며, 황실의 어의들조차 가르침을 청할 정도라고 한다.

당연히 어느 정도 솜씨가 있다 해도 이런 산 구석에서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의원과는 격이 다른 곳. 다만 무가로서의 이름이 너무 큰 덕에 의가로서의 면모가 알려지질 않아 백사희는 물론 희우 역시 사부에게서 무림의 주요세력들에 대해 듣지 않았다면 존재조차 알지 못했어야 할 세력이었다.

“황실의 어의들도 배우러 간다지? 그 당가가 우리의 목적지야. 거기서 실패하면 천하에 이름난 신의(神醫)들을 하나하나 다 찾아가볼 거고.”

“무, 무슨 소리야.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만나.”

무림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는 백사희조차 듣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이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놓는 희우에게 백사희가 살짝 떨면서 지적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천하제일의 의술과 신의라는 이름에 완전히 포기했다고 생각한 희망이 슬금슬금 솟구침을 느낀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말해주기는 어렵지만 이미 준비는 전부 해뒀으니까.”

그렇게 백사희를 안심시키면서 희우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의 머릿속으로 백사희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누나의 병에 대해 사부에게 물었을 때 들었던 말이었다.

[지금은 힘들겠고 한 십 년 정도 지나면 치료법이 생길 거야. 그 때 당가 같은 곳을 찾아가면 될 거란다. 내가 키워줄 그릇 정도면 당가에서 박대할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당당히 찾아가렴.]

…솔직히 말해 십 년 뒤의 의술을 논하는 시점에서 신뢰성이 확 떨어지는 말이었지만 희우에게 사부는 신선이나 여신 정도 되는 맹목적인 믿음의 대상이 된 터라 희우는 그녀가 콩으로 용봉탕을 만든대도 믿을 몸이었다.


작가의말

참고로 사부와의 추억 파트는 매 장 앞머리에 붙게됩니다.


본격적으로 무림출도를 시작하려면 조금 더 써야겠네요


우후훙.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린신공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죄송합니다.. 또 공지가 늦었습니다. +1 16.06.30 1,333 0 -
공지 정식연재 날짜가 대략적으로 나왔습니다. +2 16.06.02 1,287 0 -
공지 필수공지)나린신공이 정식계약을 마쳤습니다. +9 16.02.26 2,089 0 -
공지 2월 25일 목요일 휴재합니다. +1 16.02.24 909 0 -
공지 에.. 죄송합니다.. +2 16.02.13 1,734 0 -
공지 설연재 추가사항입니다.. 16.02.09 1,232 0 -
공지 수정)죄송합니다 연기가 아니라 휴재가 됐습니다. +2 16.01.21 1,582 0 -
공지 오늘 연재 많이 늦습니다..... 16.01.14 1,424 0 -
공지 오늘 연재 많이 늦을거같습니다. 15.12.29 4,016 0 -
6 一章. 무림출도Ⅳ +16 15.08.13 9,185 304 13쪽
5 一章. 무림출도Ⅲ +9 15.08.11 9,359 332 12쪽
4 一章. 무림출도Ⅱ +8 15.08.08 10,247 316 12쪽
» 一章. 무림출도Ⅰ +6 15.08.06 11,884 336 12쪽
2 序章 +8 15.08.04 12,785 348 14쪽
1 零章 +10 15.08.01 15,979 363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