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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노아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작가놈이 되어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신노아
작품등록일 :
2023.05.10 10:51
최근연재일 :
2023.05.26 11:40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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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6,892

작성
23.05.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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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첫 집필. (2)

DUMMY

 




3.


백화전 우승.


‘이제야 비로소 지망생 딱지를 떼고 작가 행세를 할 수 있겠군.’


감회가 남달랐다.

게임에선 커피 마시듯 매일 일상처럼 해본 일이었지만 이곳은 현실 아니겠는가.

심지어 페널티들을 덕지덕지 달고서 이루어낸 성취인지라 더욱더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다음에 이어진 말이었다.


“예선심사, 120점. 만점. 본선심사, 120점. 만점. 총합 240점. 백화전이 지금의 형태로 개편된 이래, 만점을 받은 신인은 당신이 최초야.”

‘어?’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예선 본선 전부 만점이라고?’


······그거,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한 일 아니었나?

내 기억이 맞다면 설정상 백화전에선 일부러 만점을 부여하지 않았다. 일종의 전통이라 했던가.

아무리 뛰어난 신인작가여도 더 성장할 여지가 있을 것이요, 앞으로 더 분발해달라는 응원 및 질책이 백화전의 채점 방식엔 담겨 있었다.


‘그래서 게임에서도 아무리 기를 쓰고 용을 써봤자 만점은 절대 받지 못하는······. 아.’

그 순간이었다.


어리둥절해하던 내 뇌리에 한 가지 가설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나는 슬쩍 내 상태에 대해 떠올렸다.


────────────

이름: 아르투어 아트만

종합 랭크: FFF(EX)

특성: [천재], [악마의 무대], [뮤즈의 재림], [불요불굴], [아폴론의 혜안]

페널티: [귀차니즘의 성자], [반역낙인], [어릿광대의 혀], [애늙은이], [트러블 메이커], [역마살], [욕망의 사도]

중요 아이템: [전설적인 데뷔작]

────────────


다시 봐도 페널티들이 들러붙은 모습이 끔찍했다.

당장 요양병원에 남는 자리 없냐고 문의해봐야 할 수준이었지만,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바로 특성 [악마의 무대]와 아이템 [전설적인 데뷔작].


이따금 암시한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닌 특성들, 전생 때 에디터를 써서 ‘아르투어 아트만’에게 붙여준 능력들은 사실······. 거의 전부 원래는 다른 NPC들의 ‘고유 능력’이었다.

플레이어블 캐릭터, 즉 PC가 아니라 NPC의 고유기.


예컨대 똑같이 ‘러브크래프트’라는 캐릭터가 있다고 해도, 내가 키울 때의 ‘러브크래프트’랑 시나리오에서 라이벌로 등장할 때의 ‘NPC 러브크래프트’는 능력이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내 러브크래프트는 그냥 기기묘묘한 소설을 쓰는 작가 지망생으로 출발한다면, NPC 러브크래프트는 시나리오에 출연할 때마다 온갖 자연재해를 불러일으키는 대마녀 그 자체니까.


이렇게 소작설엔 NPC용으로 설정된 고유 능력들, 혹은 고유 아이템들이 있는데······. [악마의 무대]와 [전설적인 데뷔작]도 각각 다른 NPC의 전유물이었다.

즉.


‘설마, 플레이어 캐릭터로는 만점이 불가능하지만 NPC 능력으로는 가능했던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말이 되었다!


예선심사에서 만점을 받아낸 능력은 [악마의 무대]. 본선심사에서 만점을 따온 것은 [전설적인 데뷔작].

둘 다 플레이어 입장에선 얻을 수 없는 특성들이었다.

물론 플레이어는 순수한 능력빨로 저 모든 고유기들을 찍어누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캐릭터 육성이 조금은 진행된 중후반부터나 가능한 일.

아직 신춘문예, 그러니까 이제 갓 작가로서 데뷔한 스타팅 지점에 능력으로 찍어누르는 전략은 통용될 수 없다! 능력을 키울 시간 자체가 압도적으로 부족하니까!


요컨대 백화전 만점을 받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누구나 인정할 만한 실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플레이어 입장에선 이게 불가능하며, 오직 ‘NPC들의 고유기’ 같은 편법들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


‘아니. 이 가설이 맞다면 진짜 이론상으로만 가능하다는 수준이잖아?’


좀 어이가 없었다.

심지어 [악마의 무대]나 [전설적인 데뷔작], 둘 중 하나만 가지면 안 되고 전부 소유해야만 한다.

본선과 예선에서 동시에 만점을 받아내려면 둘 다 필요하므로.

당연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은 NPC들도 충족시키지 않는다!


‘완전 히든 이벤트일세.’


그렇다. 이거 히든 이벤트다.

플레이어의 능력과는 전혀 무관하게 오직 확률상으로만 존재하는 이벤트. 게임 제작자들이 순전히 이스터 에그로 숨겨둔 설정.


‘씁. 만약 전생이었다면······.’


당장 방송을 켜서 ‘지금까지 아무도 밝혀내지 못한 이벤트 트리거 최초 공개?!’ 같은 컨셉으로 영상을 찍었을 텐데.

그런 내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는 의도는 없었겠으나, 때마침 왕녀 전하께선 히든 이벤트에 걸맞는 제안을 해오셨다.


“기념비적인 만점자에게 주어지는 포상이 있어.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해줘.”

“포상 말씀입니까.”

“응.”


서공왕녀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당신의 가문을 복권시켜주는 것. 다른 하나는 언젠가 만점자가 나타날 것을 대비해, 서공령에서 대대로 보관해온 하사품.”


아.


“어느 쪽을 선택할래?”


나는 즉시 대답했다.


“하사품을 택하겠습니다. 전하.”

“······.”


서공왕녀가 입술을 다물었다. 너무나도 빠른 대답,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는 선택에 놀란 것이겠지.

“······어째서?”


으음.

이걸 어디까지 대답해야 하나 잠깐 고민이 들었다.

그 고민에 실질적인 증거를 제공해주기 위해 슬쩍, 서공왕녀를 ‘소재’로 관측했다.


────────────

[헤라클레이토스] -소재

이해도: 보통(Lv.3)

연관 소재: 왕녀, 서공, 무녀, 비블리오마니아, 애민(愛民), 의사소통장애, 자기혐오, 자살충동, 자학

왕국에서 제일 뛰어난 서공. 도서관장인 아낙시만드로스 왕녀와 자매지간.

서공으로서뿐만 아니라 무녀로서도 역대급 자질을 타고났다. 도서해에 봉인된 마(魔)들을 대부분 관장하고 있다. 모든 금서들은 그녀를 증오하면서도 두려워한다.

당신을 좀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역시. 게임이랑 다를 바 없다.’


애민(愛民).

연관 소재들 가운데 이런저런 불길한 단어들이 보였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저거였다. 왕국의 백성들을 사랑한다는 것.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에서 서공왕녀가 보여준 행동들을 고려해보면 여기선 솔직하게 대답해도 문제없겠지.


“왜냐하면 소인의 가문을 복권시켜주겠다는 제안은 함정이기 때문입니다.”

“······.”

“저는 반역자의 후예로, 참가자의 신원을 가리지 않기로 유명한 백화전에서 만점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역심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호출되었습니다. 설령 소인의 무고가 밝혀졌다 해도, 여기서 냉큼 가문의 복원을 선택한다면 저 자신이 정치적인 인물임을 자인하는 꼴입니다.”


나는 슬쩍 고개를 숙였다.


“애당초 백화전이란 신분과 지위에 관계없이, 자기 자신을 단지 한 명의 작가로 여기는 자들만이 참가하는 대회. 이곳에서 우승한 글쟁이가 감히 문인 된 본분을 잊어버리고 도리어 귀족임을 앞세운다면, 그야말로 본말전도 아니겠습니까.”

“현명하구나. 무척.”


서공왕녀의 어조에선 감정이 희박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가 정답을 골랐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 언니라면 그 현명함을 경계하거나 이용하려 들겠지만······. 백성의 현명함은 언제나 기꺼운 것이야. 언제나 왕국을 두려워하고, 처신해.”

“이를 말씀입니까.”

“아르투어 아트만.”


서공왕녀가 내풍기는 분위기가 일순 달라졌다.

여태까진 어딘지 모르게 붕- 떠 있어서 세상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진 느낌이었다면, 방금 왕녀의 목소리는 정확하게 방향성을 지닌 채 세속의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무릎을.”

“예.”


나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머리 위로 왕녀의 목소리가 조곤조곤 흘러내렸다.


“가장 밑바닥에 웅거하는 화산, 모든 금서의 묘지기, 책바치들의 해령에 군림하는 51대 서공령주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름으로 묻는다. 위대한 시인의 유지를 그대에게 전달하노니. 아르투어. 그대는 시인의 유품을 계승하겠는가?”

“예.”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그대가 흰꽃관의 주인이다.”

거기까지만 말하고, 왕녀의 숨소리는 평소처럼 돌아왔다. 어딘지 모르게 살짝 지친 기색으로 서공왕녀가 말했다.

“받아.”


받았다.

서공왕녀가 건네준 것은 자그마한 정육면체 나무상자였다. 양손으로 받자마자 사근사근한 향나무 냄새가 훅, 풍겼다.


“무척이나 귀한 물건이야. 다른 사람한테 함부로 보여주지 말고. 집에 돌아가면 혼자서 풀어봐.”

“아. 예, 전하. 가문이 망하고서 집도 사라져 여관을 전전하는 신세이긴 합니다만.”

“······.”

“반역자 조크였습니다.”

“코미디 작가로서의 재능은 절망적으로 없구나.”


서공왕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갑자기 눈을 깜빡거린 다음 내 쪽을 빤히 쳐다보았다.


“전하?”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그만 나가봐도 돼.”

“아니, 벌써 말입니까?”


나도 모르게 무심코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


왕녀님의 표정에 어이없다는 기색이 깃들었다. 내 말이 얼핏 어린애의 칭얼거림으로 들릴 수 있었는데 상대방의 귀엔 정확히 그리 들린 듯했다.


“여기에 계속 있고 싶어?”

“예.”

“왜?”

“어차피 여관에 돌아가도 소인이 하는 일이래봤자 침대에 틀어박혀 잠자는 것밖에 없습니다.”


진심이었다.

지금이야 원작에 등장한 공간에 원작의 캐릭터랑 같이 있어서 그나마 [귀차니즘의 성자]가 잠잠한 거지. 여기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곧바로 침대벌레로 퇴화해버릴 미래가 뻔히 보였다.


“그러느니 서공령에서밖에 존안을 뵙지 못하는 왕녀님과 조금이라도 길게 있는 편이 이득 아니겠습니까?”


이것도 130% 진심.

이 왕녀님, 기본적으로 서공령에만 지박령처럼 틀어박힌 NPC다. 이럴 때 안 만나면 또 언제 보라고.


“······혹시나 싶어서 말하지만, 여기 저주받은 곳이야. 역심이 없다는 게 증명됐어도 금서들은 위험해.”

“아. 그 점은 심려치 마시옵소서. 금서 그것들 어차피 저주만 좀 뿌려댈 줄 알지 본질은 한낱 꼬맹이들 아닙니까.”

“······.”


장담컨대 왕녀의 상태창에 표시된 ‘당신을 좀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문장이 방금 ‘당신을 상당히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합니다’로 바뀌었을 거다.


“······나 지금 바빠.”


결국 변명거리가 바닥난 서공왕녀께선 모든 변명의 최종보스격이라고 할 수 있는 변명을 내놓으셨다.


“작업해야 돼.”

“작업이라 하옵시면?”

“제본.”


쓰윽.

왕녀가 가리킨 곳엔 과연 모루에 책의 가죽표지가 매여 있었다.


“당신이 우승한 원고야. 저거, 책으로 제본해서 수상식 날에 내려줘야 해. 그러니까 바빠.”

“오.”


내 눈이 반짝거렸다.


“그럼 왕국제일의 서공이신 왕녀 전하께서 작업하시는 모습을 견학할 수 있는 기회 아닙니까.”

“······.”


왕녀가 쭈뼛거렸다.


“······견학?”

“예. 작가에겐 이런 경험이 소중한 법입니다. 하물며 소인의 원고를 제본해주신다니 이러한 영광이 달리 없습니다.”

“······나, 작업할 때는 엄청 집중해. 아무런 말도 안 할 거야.”

“저도 아무 말 안 하겠습니다.”

“작업 다 끝나려면 앞으로 5시간은 넘게 걸려.”

“오히려 좋습니다.”

“······.”


서공왕녀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더 이상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사실 지엄하신 왕족인 만큼 그냥 ‘꺼지라면 꺼질 것이지 뭐 이렇게 잔말이 많느냐?’ 하고 일갈하면 간단히 끝날 문제였다. 하지만 눈앞의 왕녀 전하에겐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권위 의식이 눈꼽만큼도 없는 성격이었다.

오히려 백성들에게 부채의식을 가졌다면 가졌지.


“······그럼, 마음대로 해.”


거 봐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이상한 작가.”


중얼.

서공왕녀는 작업대로 돌아갔다.

자신이 작업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한테 보여준 적이 별로 없었던 걸까. 망치를 꺼내든 손가락이 살짝 긴장으로 인해 뻣뻣했다.

하지만 긴장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


후우으으.

왕녀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폐 속 저 깊은 밑바닥에서부터 쓸어내어서 끌어올린 숨소리.

마치 기관차의 화통에서 새어나오는 증기처럼 살짝 벌어진 왕녀의 입술에서 뜨거운 입김이 번졌다.

그리고.

왕녀의 붉은 동공에서 태양이 작열했다.


까아앙!


그녀는 단숨에 망치를 휘둘렀다. 문외한에 불과한 내가 봐도 군더더기 없는 손놀림이었다.

모루에 메인 가죽에 왕녀의 망치가 충돌할 때마다 비명이 울려 퍼졌다.

비유도 뭣도 아닌 사실적 묘사로, 정말로 가죽이 ‘살아서’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까아아아아아악······!


아마도 평범한 짐승의 살갗을 벗겨낸 가죽이 아니겠지.

마법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선 그에 걸맞는 괴물과 요괴가 산재했다. 왕국 제일의 서공은 그런 가죽마저 가공할 수 있었다.


까아아――끼이아아아악――!


가죽은 망치에 두들겨 맞을 때마다 무지갯빛 물결로 일렁거렸다.

기기괴괴하며 형형색색한 빛깔들에서 비명은 파동이 되어 터져나왔다.


까아아앙!


왕녀는 정확히 바로 그 비명을 정조준하여 망치를 내리찍었다.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도록.


“······.”


나는 어째선지 눈앞의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뭐지?’


이상한 느낌.

서공왕녀의 작업을 바라보고 있자니 머릿속에서 뭔가, 뭉게뭉게한 안개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끔찍해.


구경꾼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터널에서 기어나왔는지 내 주변으로는 금서들이 모여 있었다.

금서들은 서공령에 비명이 울릴 때마다 흠칫흠칫 떨었다.


-정신 나간 괴물 같으니.

-어떻게 검은 세계수의 외피를 통째로 저리도 잔혹하게······.

-저건 인간이 아니야.


저 가죽의 주인이었을 어느 생명체와 똑같이 ‘괴물’ ‘요괴’의 범주에 들어가는 금서들은 비명소리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도망치긴커녕 구경꾼을 자처하는 까닭은, 사람으로 치면 공포영화를 즐기려는 심리와 비슷한 것일까.

반면에 내 마음의 촉은 계속해서 서공왕녀에게로 기울고 있었다.


‘뭔가.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야.’


전생 때는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에 나 자신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서공왕녀는 재차 망치를 내리찍었다.


까아아아아아아아―――·········


두근.

심장이 뛰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이 함부로 범람하지 못하도록 심장에 강둑을 쌓아두기 마련일 텐데, 그 돌담이 들썩거렸다.


‘아.’


그리고 나는 조금씩 이 감정의 정체를 이해했다.


‘이게, 글을 쓰고 싶다는 감정이구나.’


대체 저 풍경은 무어란 말인가.

어떤 괴물의 본체에서 뜯겨나온 가죽이 어찌 된 노릇인지 아직 살아있었으며, 또한 죽어가고 있었다.

이미 자신을 완결해줄 작가는 오래전에 죽어버려 단지 그 유품으로서 남은 금서들 또한, 이곳에서 자신들의 죽음을 유예한 채 산 사람의 시늉을 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세포들이 미약한 정전기를 일으켰다.


[소재 ‘제본’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소재 ‘서공’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소재 ‘비명’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지금 내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살아있지 않은 것들이 살아있는 척하고, 본래 목소리가 없는 것들이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죽지 못하는 것들의 죽음을 연기(演技)하고 또한 연기(延期)하고 있었다.


[소재 ‘금서’에 대한 이해도가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소재 ‘금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음(Lv.4)’으로 변화합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죽은 자들의 묘지 아니겠는가.

이미 죽어버린 것들이 다만 자신들의 죽음을 전시할 뿐인 지옥 아니겠는가.

서공왕녀는 이곳의 묘지기이자 문지기였다.


[소재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한 이해도가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소재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음(Lv.4)’으로 변화합니다.]


눈앞이 맑아졌다. 아니, 세상이 맑게 보였다.

아르투어의 몸에 오래된 때처럼 찌들었던 권태감이 일순간, 심장의 불길에 그을려 증발해버렸다.

작가의 열병.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워, 단지 손가락과 손톱의 끝에서부터 진동해오는 어떤 지독한 저릿함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


[특성 ‘아폴론의 혜안’이 발동하고 있습니다.]

[해당 작품의 집필 공략본을 작성합니다.]


저 비명소리를 박제해버리고 싶다.

저 풍경에 기어이 상처를 그어버리고 싶다.

풍경은 내 글 속에서 피를 흘리겠지. 그리고 그 피는 향기로울 것이다.


────────────

[집필 공략본]

작품명: 미정(未定)

장르: [기담] [단편]

집필 난이도: B급

집필 의욕: 최상(最上)

현재 완성도: 00%


1. 핵심 소재인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음(Lv.4)입니다. 충분합니다.


2. 핵심 소재인 ‘죽음’에 대한 이해도가 완벽(Lv.6)입니다. 당신은 어느 누구보다 완벽하게 죽음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3. 해당 작품에 대한 ‘집필의욕’이 최상(最上)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장작입니다. 태워버리십시오.

────────────


이런 감정을 ‘나’는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무어라 규정해야 좋을지 알기 어려웠다.

다만.


[특성 ‘욕망의 사도’가 발동합니다.]

[특성 ‘뮤즈의 재림’이 발동합니다.]


참을 수 없이.

글이 쓰고 싶어졌다.




 


작가의말

다음 편부터 연재 시간을 오후 6시 5분으로 변경하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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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반역낙인. (2) +29 23.05.15 3,476 197 16쪽
9 반역낙인. (1) +20 23.05.14 3,537 206 14쪽
8 시궁창 동기들. (2) +25 23.05.13 3,798 220 21쪽
7 시궁창 동기들. (1) +21 23.05.12 4,008 240 18쪽
6 데뷔 무대. (2) +19 23.05.11 4,685 253 14쪽
5 데뷔 무대. (1) +57 23.05.10 5,835 308 17쪽
4 페널티 천재. (3) +18 23.05.10 4,981 262 15쪽
3 페널티 천재. (2) +13 23.05.10 5,168 239 13쪽
2 페널티 천재. (1) +17 23.05.10 6,216 259 18쪽
1 에디터. +65 23.05.10 11,275 289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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