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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나를 용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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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삼
작품등록일 :
2021.07.21 21:36
최근연재일 :
2021.08.1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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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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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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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3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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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국 제일의 검사

DUMMY

“어르신.”




디온이 나지막이 말하자 노인은 펄펄 뛰며 말했다.




“이제 날도 슬슬 져가는데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나? 뭐 야시장이라도 구경하려고?”



“아니요. 어디에서 묵을지 아직 정하질 못해서.”



“아직도?! 웬만한 곳은 방이 다 찼을 텐데?”




젊은 자신보다 더 기운찬 모습이 신기했다. 디온은 짧게 끄덕이며 답했다.




“예. 그렇더군요.”



“그래?”




노인은 잠시 신음을 흘리며 골똘히 생각하더니 곧 그의 팔을 불쑥 붙잡고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뿌리치려면 뿌리칠 수도 있었지만, 혹여나 나이 든 노인이 다칠까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힘은 또 왜 이렇게 센 건데.




“저.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어르신?”



“갈 곳 없다며! 우리 집에 남는 방이 있으니 거기서라도 지내.”



“아니, 굳이 안 그러셔도-”



“됐어. 사양할 것 없어. 그래도 인연이니 길에서 잔다는데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지.”




아니 내가 안 됐다고요.



언제든 손을 놓고 도망칠 수 있으니. 일단은 대충 노인의 발걸음에 맞춰서 걸으며 때를 노리던 디온은 몇 몇 개의 골목을 지나, 개울 옆으로 난 좁은 길을 지나며 훅훅 바뀌는 풍경에 머리가 어찔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마법처럼 바로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대저택에 할 말을 잃었다.



처음 보는 검푸른 벽돌에 둘러싸인 저택은, 저택보다는 성에 가까웠다.



쨍한 주황빛에서 서서히 어둑해지는 밤 노을에 물든 저택의 겉면은 신비로운 상앗빛으로 반짝이며, 가볍게 둘러봐도 그 크기를 가늠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만약, 그가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황궁이 보이는 식당’, 말 그대로 ‘황궁이 보이는 식당’이 이름인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곳이 황궁이라고 착각했을 정도로 크고 웅장했다.



아니 골목 몇 개만 돌았던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디온의 시선이 남몰래 노인의 뒤통수로 툭, 떨어졌다.



도대체 이 노인의 정체는 뭐지? 이 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인가? 그것도 아니면 마구간지기? 하인들이 머무는 숙소에 남는 방이 있다든가, 창고가 있다든가. 그런 건가? 그렇겠지.



···단순히 그런 걸 텐데.



왜 그간 일들이 빚어낸 날카로운 촉이 서둘러 도망가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뭐해? 안 움직이고?!”




좀처럼 땅에서 발바닥이 떨어지지 않는다. 노인이 뒤돌아보며, 늙은이 골병들게 할 일 있냐며, 발을 빨리 놀리라고 하는데 디온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저, 어르신. 아무리 둘러봐도 이곳에는 저 저택밖에 없는데. 혹 저 저곳에서 일하고 계십니까?”



“내 저택인데 내가 일을 왜 하나?”




하긴 이제는 내 저택이라기보다는 아들놈 저택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노인이 중얼거리며 주억인다.



뭐요? 아들 저택?



디온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같이 줄을 서면서 옆을 지나가는 마차 안 귀족들을 보고 욕을 내뱉는 걸 두 눈으로, 두 귀로 똑똑히 보고 들었는데···.



심지어 주변에는 이 노인을 지키는 이가 하나도 없지 않았나.



이 저택의 주인이라고 하면 귀족, 그것도 꽤 영향력 있는 귀족일 텐데. 호위도 하나 없이···.



물론, 경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마나를 잘 갈무리할 수 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해진다. 디온은 애써 침착한 얼굴로 물었다. 그저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노인네일지도 모른다.




“···저와 같이 수도로 오기 위해 줄을 서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이 저택의 주인이시라면 굳이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으셔도-”



“됐어. 나는 줄 서서 들어가는 거 좋아해.”




사람 참 할 말 없게 만든다.



좋아한다니 더는 더 할 말도, 물을 말도 없다. 디온이 가만히 있자, 노인이 다시 한번 재촉한다.




“아, 서둘러 가지 않고 뭐해? 시간 아깝게스리.”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돌아가서 적당한 여관에-”



“빈방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있어요. 있습니다.”




이 정도면 오늘 몫의 정보는 충분히 채웠다.



오늘 수도로 들어서는 길에서 처음 만난 노인이 사실은 귀족이며(추측일 뿐이지만) 커다란 저택에 살고 있더라.



그 이상 깊게 알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돌아서면 그냥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으로 끝날 거다.



디온은 마음이 급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튼 호의는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저는···. 저는 그냥 여관이 편합니다. 가보겠습니다.”



“어허. 다 와놓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게야?”




팔목을 붙잡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여전히 걱정은 됐지만, 그래도 디온은 나름 힘을 조절하며 팔을 뿌리쳤다.



하나, 노인의 손에 힘이 풀리기는커녕 마치 밧줄처럼 더 꽉 들러 붙어온다.



깜짝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씨익 웃는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X된 건 확실하다.



가슴속을 가득 메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아 다행이었다.




“젠디크 님?”




옥신각신하며 가야 한다. 왜 그래야 하나. 온 김에 묵고 가라. 이렇게 굳이 소란을 피운 덕분인지 멀찍이 떨어져서 정문을 지키고 있던 기사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붙잡힌 디온을 보곤 갸웃하던 기사는 곧 디온의 앞에 있는 노인을 보며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젠디크라.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다.



젠디크 아스르달로. 제국 제일의 검사이자 기사단장이었던 남자. 육십이 넘자 황제가 붙잡았음에도 그 손을 뿌리치고 단장 자리에서 물러난 자.



제국 돌아가는 일에 관심 없고, 그냥 제 한 몸 건사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디온도 들어본 그 이름.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 노인이 그 젠디크 아스르달로일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육십이 넘었음에도 마나가 깊고 무위로 다져진 몸이라 그 나이대 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고 했는데, 이 노인은 벌써 여든 살은 넘어 보였다.



그래 아닐 거다. 아니어야 한다.




“또 이런 모습으로 나가셨습니까?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이제는 알아볼 때도 되지 않았냐? 그런데 너는 왜 훈련장에 안 있고 정문을 지키고 서 있어?”



“아, 그게 공작님이-”




둘의 대화에 디온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니라고 계속 부정하고 있지만, 왠지 그 젠디크가 이 젠디크일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멍하게 서 있어?”




디온이 초점 잃은 눈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자,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 젠디크가 굽었던 허리를 펴며 말했다.




“흠. 뭐. 이렇게 된 거 정식으로 소개하지.”




그렇게 말하며 가슴팍을 두드리자, 몸 주위로 옅은 안개가 퍼진다 싶더니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젠디크 아스르달로.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지도 모르겠군.”




검은 머리카락, 마찬가지로 검게 물든 눈동자. 탄탄한 몸을 가진 남자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과연. 듣던 대로 세월의 흐름을 비킨 듯한 외형이었지만, 디온은 그런 것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설도 이렇게 쓰면 욕먹는다.



아찔한 이벤트가 계속되니 무신경한 그라도 과부하가 온다.



디온은 혹시, 만약에, 정말로 만에 하나. 이 모든 것이 꿈이지 않을까 눈을 감았다 떠 본다.




“서서 자려고?”




목소리마저 젊어진 젠디크가 킬킬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또.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





젠디크 아스르달로. 제국, 아니 대륙에서 손꼽히는 뛰어난 검사였다.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날카롭고 단단한 마나는 적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위태로운 제국을 지켰으며, 많은 이의 존경을 얻게 해주었다.



제국민들은 그가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줄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바람과는 달리 제 아들이 그럭저럭 쓸만한 실력이 되고(지극히 그의 기준에서), 가문을 통솔할 힘을 얻자마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가문의 수장이나 제국의 기사단장이나.



명예롭기는 해도 그에게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생활이 단조롭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의 아들은 물론 제국의 황제 더 나아가 제국민들까지 그를 말렸으나 그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내가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하는 것도 아니오, 이곳을 떠나는 것도 아니오. 단지 가문과 나랏일을 하기 싫어서 물러나는 거니 붙잡지 말라. 나는 여태껏 할 만큼 했다.



그렇게 나오니 더는 붙잡을 수 없었다.



말도 없이 떠나기도 하고, 아카데미의 초청도 거절하고, 후배양성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돌아오긴 했고, 한 번씩 눈에 띄는 인재들을 제국으로 데려오기도 했으며, 직접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황성이나 가문 내 훈련장에 들러 조언을 던져주긴 하니.



그의 뜻을 꺾으라고 계속 매달리는 것도 못 할 짓이었다. 젠디크의 말대로. 그는 높은 자리에 있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젠디크는 육십이 넘어서야 모든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나름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거나, 이곳저곳에 얼굴을 비친 탓에 알아보는 이가 적지 않았다. 하여 다른 곳으로 갔다가 수도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티팩트를 이용해 모습을 감추곤 했다.



이번에도 타국의 오랜 친우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본모습을 숨기고 줄을 서 있을 때였다.



사실, 몇 달 전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갑자기 아내의 몸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그 곁을 지키다가, 병세가 나아지고 나서야 저택을 나섰다. 그 때문인지 그의 친우는 꽤 끈질기게 그를 붙잡아서 생각보다 더 오래 머물러야 했다.



가문의 마차를 타고 들어가도 됐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그는 사실 뼛속까지 귀족이라고는 하나 귀족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누리는 것들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직접 이룬 것이 아니라, 얻은 것이니까.




‘저, 죄송한데 말씀 좀 묻겠습니다.’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조심스러운 손길. 혹 아티팩트의 마나가 떨어져 누군가가 제 모습을 알아본 것인가 걱정했지만 곧 주름 가득한 손등을 보곤 안심하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참 오랜만에 그의 흥미를 돋우는 녀석이 서 있었다.





***






“마음 편히 지내도록. 얼마든지 있어도 좋으니까.”




젠디크는 호탕하게 웃으며 방을 빠져나갔다. 그가 묵었던 그 어느 여관, 그리고 그가 어린시절을 보낸 남작가의 가장 화려한 침실보다 더 좋은 곳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아스르달로 공작가였으니까.



그러나 불편했다. 하룻밤 자기는커녕 당장이라도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목욕과 식사 준비를 도와주겠다는 하인들도 물린 디온은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곰곰이 지나가 버린 삶을 한 부분, 한 부분씩 회상했다.



도대체 어디서, 언제, 신의 미움을 사버린 걸까.



지난 몇 개월 간의 삶은 신의 미움을 받은 게 아닌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용사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 신의 미움, 저주라고 생각하냐면···. 이 건에 대해서만큼은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하기 싫으니까! 아무리 좋은 감투라고 해도, 훌륭한 직업이라고 해도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라고 하면 그건 고문이고 곤욕이다. 만약 이런 말을 듣고도 배부른 소리라고 한다면 디온은 그 말을 한 사람에게 외치고 싶었다.



그럼 네가 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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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나를 용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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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수호신 델카르 21.08.13 11 0 12쪽
17 용사의 정체 21.08.08 12 0 11쪽
16 아, 하기 싫은데 21.08.06 15 0 12쪽
15 이럴 줄 알았다 21.08.05 15 0 12쪽
14 재회 21.08.03 14 1 13쪽
13 모자란 놈 21.08.02 15 0 13쪽
12 까이다 21.08.01 14 0 12쪽
» 제국 제일의 검사 21.07.31 17 0 12쪽
10 일단 수도로 간다 21.07.30 17 1 12쪽
9 관심없는 연극 21.07.29 16 0 12쪽
8 습격 21.07.28 17 1 12쪽
7 운명을 피하는 법 21.07.27 17 0 11쪽
6 점성술사 세레니아 21.07.26 23 0 12쪽
5 위대한 드래곤 바실리카드 21.07.25 24 0 12쪽
4 훌륭한 분 21.07.24 25 0 12쪽
3 그럴 줄 알았다 21.07.23 29 0 12쪽
2 이상한 노인의 의뢰 21.07.22 33 0 12쪽
1 평온하고 평범하고 조용한 삶. 21.07.21 6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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