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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나를 용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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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삼
작품등록일 :
2021.07.21 21:36
최근연재일 :
2021.08.1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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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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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술사 세레니아

DUMMY

혹여나 제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있다면. 들여서는 안 될 길에 발을 놓았다면. 만약 그 행동을 고쳐 지금처럼 별일 다 일어나는 게 나아진다면. 충분히 한 번은 볼만했다. 또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면 그냥 넘기면 되고.



열심히 움직여 안토에 도착한 디온은 의뢰도 받지 않고, 마을 제일 구석에 있는 여관에 짐을 풀고 방안에 꼼짝도 하지 않고 박혔다.



돈도 넉넉하게 받았겠다.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또 귀찮고! 쓸데없으며! 굳이 바라지도 않은 일들이 시시때때로 생길 수도 있으니까.



이 여관은 지은 지 좀 된 터라 나무가 삭아 삐걱대는 소리가 많이 나고 전체적으로 받는 돈에 비해 시설이 좋지 않아 한번 묵고 두 번 다시 오지 않은 곳이다. 사실 안토 자체를 잘 오지 않았다. 사람이 제법 많이 다니는 도시였으니까.



그답지 않은 행동을 꽤 했다. 점 하나를 보려고 이 도시에 온 것부터,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까지.



그러나 이왕 이곳까지 온 거.



점을 보고 그냥 우연일 뿐이며, 앞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불안을 떨쳐낼 수 있을 거다.



하루 또 하루. 야금야금 시간이 지나며 혹시나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지는 않을까, 이상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하던 디온은 금세 안정을 찾았다.



점성술사가 도시에 들르면, 온통 그녀에 대한 소문이 들려오니. 방문에 대한 소문을 듣기 위해 하루 두 번 정도 아래층에 내려갔으나. 잠잠한 걸 보니 소식이 없는 모양이다.



디온은 그간 스스로를 돌아보며 인간은 일생을 살면서 생각지도 못한 일을 몇 번 겪는다고 했으니. 어쩌면 자신은 그 일을 좀 빠르게, 모조리 겪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오히려 그런 일이 안 벌어지지 않을까?



그리 마음을 다잡고 침대에 누워 편안히 하루를 보낸 디온은 그날 저녁, 점성술사의 천막이 세워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




끈질기게 기다리는 것. 위대한 점성술사를 만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딱 하나. 인내심이다.



점성술사는 직위, 명예, 돈을 보고 사람을 고르지 않는다. 그냥 자신이 임시로 지어놓은 천막 앞에 선 순서대로 열 명정도 운세를 점쳐주고 나머지 사람들은 돌려보낸다. 귀족이든, 평민이든, 부자든, 이름난 용병이든. 대신 줄을 서주는 것도 안된다. 오로지 점을 볼 사람이 스스로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며칠간 점을 봐주다 또 홀연히 사라진다.



제 앞뒤로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을 보던 디온은 고민에 빠졌다. 그냥 가버릴까. 날씨도 꽤 덥고. 무엇보다 제 앞에는 열 명 이상이 줄을 서 있다.



열 명이 넘어서도 줄을 계속 서거나, 서 있는 이유는. 그녀가 가끔가다 뒤에 있는 이들도 무작위로 골라 점을 봐주기 때문이다. 아주 드문 일인데도 사람들은 그 행운에 기대어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이제 마음도 다잡았고. 불안함도 가셨으니. 굳이 안 봐도 되는 거 아닌가.



별 쓸데없는 거로 깊게 고민하던 디온은, 점성술사가 나왔다는 주변의 말도 듣지 못했다. 때문에 천막으로 들어서려던 그녀가 발걸음을 틀어 제 곁으로 다가오는 것 역시도 알지 못했다.



자신의 발 앞에 짙게 지는 그림자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




고개를 든 디온은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한 쌍의 눈동자를 발견했다. 보랏빛으로 빛나는 두 눈은 그를 담고 있었다.



눈을 마주친 순간 빙긋 웃은 그녀는 길게 늘어선 사람들에게 짧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만, 오늘은 이분부터 점을 봐 드려야 할 것 같네요.”




그녀는 불만이 나오기도 전에, 좀 더 많은 사람의 점을 봐주겠다고 약속하며 기다리던 이들의 마음을 달랬다. 그러자 그녀에게 점을 보러, 또 그녀의 모습만이라도 구경하러 나왔던 많은 인파는 이제 그녀의 선택을 받은 디온에게 관심을 보였다.



웅성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디온은 속으로 작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럼, 가실까요.”




그녀의 말에 디온은 최대한 시선을 내리깔며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그냥 가겠다고 하는 순간 더 많은 관심과 집중을 받을 테니까. 그냥 조용히 따라가서 굳이 안 봐주셔도 된다고 말하고 몰래 뒤로 나가면 된다.



일이 이 지경까지 흘러가자,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들이 걱정됐다.




***




“갑자기 놀라셨죠?”



“···예.”




거짓 없는 그의 대답에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디온은 그녀에게 지금 웃음이 나오냐고 묻고 싶었다.



그녀를 따라 들어온 천막의 내부는 임시로 대충 친 것이라고 하기엔 꽤 아늑하고 시원해 보였다. 가운데 놓여있는 테이블이라든가, 그 위를 덮은 고급스러운 천, 그리고 정체 모를 수정구까지. 떠돌이 점성술사의 것이 아니었다.



이런 것에 까막눈이라고 하더라도 분위기부터 다르니. 역시 보통 아닌 것 같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런 대단한 사람이 자신을 꼭 짚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앉으세요. 이곳에는 대접해드릴 것이 없어서···.”




그녀가 자리에 자리 잡기도 전에 디온이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그보다 점성술사님. 생각해보니 저는 점을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삶에 만족하고. 또. 아무튼 굳이 시간을 내어 봐주시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저보다는 더 절실한 사람들에게 해답을 내려주시는 건···.”



“참으로 이타적인 분이시군요. 사양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이곳저곳 떠돈 것이니.”




참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세레니아라고 소개하며 수정구 뒤편 보랏빛 벨벳 쿠션이 있는 곳에 앉았다. 세레니아는 디온에게 제 맞은편에 앉으라고 말하며 귀에 걸고 있던 얇은 천을 거둬냈다.



잡티 하나 없는 하얀 얼굴에 밤하늘을 닮은 보라색 눈동자. 연분홍 꽃잎을 머금은 듯 따스한 혈색이 도는 입술과 뺨. 굽이치는 짙푸른 색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굽이치며 내려와 흔들린다. 흡사 밤의 여신처럼 아름다운 외향이었으나, 정신과 마음이 모두 복잡한 디온의 눈에는 그 눈부신 외모가 들어오지 않았다.



당장 그에게는 빠져나갈 출구가 가장 중요했으니.



그렇다고 나온 공간으로 빠져나가기엔 밖에 깔린 사람들의 관심이 두렵다. 어쩔 수 없이 깊은 한숨으로 마음을 정리한 디온이 세레니아 맞은편에 앉았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천막 아래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운명의 힘에 이끌려 저를 찾아오신 용사여.”




그래. 이런 곳은 첫마디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으니. 분명 저 말도 제 관심을 끌려고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일 거다. 디온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무엇이 궁금하여 저를 찾아오신 건가요? 앞으로 용사께서 걷게 될 미래가 궁금하여 오셨나요. 그것도 아니면-”



“그런···. 과장된 말은 굳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단지.”



“당신의 별자리는 헤르메시온. 용사의 운명을 타고난 자들만 가질 수 있는 별자리이죠.”




그의 말을 듣기는 한 건지, 세레니아는 그는 처음 듣는 그의 별자리에 대해 줄줄 늘어놓았다. 헤르메시온이 용사의 별자리라는 소리는커녕 별자리에도 이름이 붙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는데···.



혹시 어리숙한 제 모습을 보고 제대로 사기를 치려고 따로 부른 건가?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했다.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제겐 보인답니다. 당신의 용기 아래 모일 사람들과 당신의 지혜로 인해 평화를 유지하는 이 세상, 당신의 재치로 사라지는 수많은 위기가.”




저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내게 요즘 이상한 일이 생긴다. 라고 말하면···. 오히려 더 기름을 붓는 꼴이 아닐까?



“용사께서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최근 들어, 용사님의 주변에 기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예를 들면. 바라지 않았는데, 큰 기연을 얻게 되거나. 인연이 맺어지거나 하는 일 말이에요.”




세레니아가 그리 말하며 디온의 오른쪽 손등을 힐끗 쳐다봤다. 굳이 보이고 싶지도 않았고, 혹시나 어린 마음에 새긴 유치한 문신으로 볼까 일부러 가죽 장갑까지 사서 끼고 다녔는데. 그녀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쨌거나, 그녀의 추측에 디온은 아니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그런 적 없다고. 하나, 주춤하는 자신을 이 꾼(?)이 못 느꼈을 리가 없다.



심지어 그녀가 말하는 일들이 어느 정도 추측되는 게 더 문제였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보았는지, 세레니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운명이 격변하는 시기. 이 모든 것은 용사의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벌어진 일. 용사로서 사명을 다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분명 잘 헤쳐나갈 것이니.”




디온은 알 것 같았다. 여기서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그녀의 눈동자에 어린, 비틀린 열정이 제게 그리 외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용사라니. 제게는 너무 과분한 자리입니다. 저는 그럴만한 사람이 못 됩니다. 혹시, 그 운명을 피할 방법은 없습니까?”




그 사실 자체는 받아들이되, 거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친다면. 적당한 방법을 알려주지 않을까?



허나 기대와는 다르게 세레니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운명은 아무리 애써도 바꿀 수 없습니다. 정해진 것이니까요.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운명을 둘러싼 환경이나 상황이죠.”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산다면.”



“그래도 피할 수 없어요. 운명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디온은 가만히 세레니아를 바라보다 의자를 뒤로 물렸다.



아무리 유명하고 잘 맞히는 점성술사라고 하더라도, 가끔 틀릴 때도 있을 거다. 천 번 맞춰도 한번 틀릴 수도 있고. 아마 그 한번이 지금일 거다.



그렇게 계속 되뇌면서도 저 말들이 사실이라는 것이 와닿아 와 곤욕이었다.




***




돈이 많으면 좋다.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돈을 버느라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 디온 역시 돈이 많으면 지금보다 삶이 편하고 질적으로 향상될 것이란 걸 잘 안다. 하지만, 적당히 벌고 쓰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기 때문에 굳이 돈에 목매지는 않는다.



명예 역시 높을수록 좋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높은 자리에 앉거나, 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싶은 건 아니기에 없어도 상관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과 명예. 그런 것에 더 집착할수록 삶이 피곤해진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어서.



디온은 그런 것을 쫓는 것보다 그냥 그럭저럭 살며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더 좋았다. 용사라니. 진정 원치 않는 삶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저렇게 관심받거나, 큰 인물이 되고 싶거나, 다른 사람이 따르는 것을 즐기는 이들은 많을 텐데 왜 하필 저처럼 잔잔한 사람에게···.



정해진 답이 없으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세레니아는 지금은 이렇게 짧은 만남이지만 후에 더 오래 볼 일이 있을 테니 그때를 기다리겠다고 말하며 그를 배웅했다.



디온은 간절히 그날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어째서, 제게. 결단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말인가. 제게는 별 특별한 능력이라거나 그런 게 없는데?



세레니아의 천막에서 터벅터벅 멀어지던 디온은 고뇌에 잠겼다.



무언가. 이 사태를 타개할 방법이 필요했다. 그것도 절실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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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용사의 정체 21.08.08 12 0 11쪽
16 아, 하기 싫은데 21.08.06 15 0 12쪽
15 이럴 줄 알았다 21.08.05 15 0 12쪽
14 재회 21.08.03 14 1 13쪽
13 모자란 놈 21.08.02 15 0 13쪽
12 까이다 21.08.01 14 0 12쪽
11 제국 제일의 검사 21.07.31 16 0 12쪽
10 일단 수도로 간다 21.07.30 17 1 12쪽
9 관심없는 연극 21.07.29 16 0 12쪽
8 습격 21.07.28 16 1 12쪽
7 운명을 피하는 법 21.07.27 17 0 11쪽
» 점성술사 세레니아 21.07.26 23 0 12쪽
5 위대한 드래곤 바실리카드 21.07.25 24 0 12쪽
4 훌륭한 분 21.07.24 25 0 12쪽
3 그럴 줄 알았다 21.07.23 29 0 12쪽
2 이상한 노인의 의뢰 21.07.22 33 0 12쪽
1 평온하고 평범하고 조용한 삶. 21.07.21 60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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