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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나를 용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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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삼
작품등록일 :
2021.07.21 21:36
최근연재일 :
2021.08.13 23:45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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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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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수 :
97,293

작성
21.07.21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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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평온하고 평범하고 조용한 삶.

DUMMY

다수의 사람은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기를 혹은 존경받거나 사랑받는 사람이길 바란다.



아니면 적어도 살면서 단 한 번만이라도 남들보다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제게 커다란 행운이나 기연이 찾아오길 바라는 게 보편적이다.



특히나 처한 상황이 좋지 않거나, 그럭저럭 살만하더라도 지나치게 평범하거나 지루한 나날이 계속된다면.



그 갈망은 더더욱 짙어진다.



[‘용사’로 전직하시겠습니까. YES/NO]



“······.”




처음 보는 광경이 시선을 빼앗는다.



마치 누가 가져다 놓은 듯 길 한가운데 뜬금없이 떨어져 있는 팔찌에서 눈 부신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 빛 위로 새겨진 글씨를 스윽 훑어 읽은 디온이 조심스레 몸을 틀었다.



그리곤 행여 팔찌에 닿을까 멀찍이 떨어져 돌아갔다.



마법이 새겨진 아티팩트인 것 같았다. 값비싸고 제작이 어려워 평범한 사람은커녕 하급 귀족들도 보기 어렵다는 그것.



신기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제 형편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남의 물건에 손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 서두르지 않으면 날이 저물고 나서야 마을에 도착할 거다. 어둠이 내린 산길만큼 위험한 곳은 없다. 디안은 여전히 사그라들 줄 모르는 빛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놀렸다.



그에게는 값비싸고 위험해 보이는 아티팩트보다 좀 더 편안한 곳에서 쉬는 게 중요했다.



저벅저벅 걸어가는 디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누군가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6번째였다.



그가 다시 한번 자신의 운명을 모른 척. 아니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비켜나간 것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이, 아니 디온의 수호신이자 주피르의 12신 중 하나인 델카르는 마음먹었다.



그냥 순리대로 흘러가게 두었으나 마치 일부러 피하듯 그 순리를 족족 비껴 가니···.



어쩔 수 없이 가벼운 조작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델카르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디온 리크루. 그는 가난한 영지의 주인인 리크루 남작과 평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디온의 어머니 로나는 원래 남작 부인이 데리고 온 평민 하녀였는데, 리크루 남작의 강압으로 억지로 그와 하룻밤을 보낸 후 디온을 가졌다.



남작 부인이 그를 미워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이후로 부인이 제 어머니인 로나를 괴롭히는 것은 물론, 디온 역시 그의 배다른 형제들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남작 역시 제 핏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저택에 둔 것뿐이지 디온과 로나에게 관심 한 줌, 사랑 한번 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외면하며 두 사람을 오랫동안 방치했다. 남작 부인과 사이가 나빠진 것을 탓하며.



디온은 굳이 그의 사랑을 구걸하지도, 남작 부인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도, 이복형제들의 비위를 맞춰주지도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못살게 굴긴 하나, 허름한 식사라도 챙겨주긴 했고 다 낡은 거적때기라도 옷을 던져주긴 했으니. 먹고 입고 잘 걱정을 덜었는데 굳이 더 애쓸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모른 척했던 부인과 이복형제들의 괴롭힘은 로나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더 심해졌고, 그 때문에 성인이 된 디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택을 나왔다. 견디기 힘들어서라기보다, 귀찮고 걸리적거렸다.



작디작은 날파리도 눈앞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면 신경 쓰이는 법이다. 디온의 눈에 그들은 꼭 바쁜 날파리 같았다.



어쨌든 그 성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거창한 곳을 나오며 허울뿐인 성은 갖다버렸고, 어머니가 지어준 디온이라는 이름만 가지고 나왔다.



그다음 바로 용병길드로 찾아가 시험을 치르고 중급 용병이 되었다.



남작이 그에게 따로 검술 선생을 붙여주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복형제들이 검술을 배울 때 몰래몰래 훔쳐 배웠다. 그의 형제들이 멍청한 건지 그가 재능이 있는 건지. 혹여나 들킬까 봐 숨어 배운 그가 그들보다 훨씬 검을 더 잘 다뤘다.



물론, 이 사실을 들키면 귀찮아질 것이 뻔했기에 저택을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건 좋은 선택이었다.



아무튼 이런 과거를 바탕으로 그는 홀로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용병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파티를 구성해야만 하는 의뢰는 당연히 제외했다. 단체 생활은 그다지 내키지도 않을뿐더러, 위험한 의뢰를 받을 확률이 더 높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지도 않았고 그저 먹고살 만한 돈만 있으면 되니까.



디온은 도시에 들를 때마다 용병 길드에 있는 의뢰 판을 둘러보고 오래 걸리지 않거나, 그나마 간단한 일만 골라 했다.



이럴 거면 하급 용병을 목표로 하지 그랬냐, 하겠지만 혹시 몰라 중급으로 시험을 쳤던 디온도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그것이었다.



무튼 디온이 원하는 삶이란 그런 것이다. 평온하고 평범하고 조용한 삶.



그가 상점을 운영할만한 활발하고 친근한 성격이었거나- 아니, 적어도 농지에 대한 지식만 있었더라도 일찍이 아무도 없는 한적한 마을에 정착했을 거다.



그렇다고 이러한 과거가 그의 꿈을 짓밟거나, 성격을 소심하게 만들었거나, 의욕 없는 사람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그저 타고난 성정 자체가 무난한 삶을 지향하는 것일 뿐.




“왔수?”




마을의 작은 여관. 묵고 있는 손님을 알아본 여관 주인이 덤덤하게 그의 귀환을 반겼다. 짧게 고개를 끄덕인 디온은 저녁 식사를 부탁한 뒤 이층으로 올라갔다. 일층에서 떠드는 소리, 고소한 스튜 냄새와 발효된 과일의 시큼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오늘따라 찾은 손님이 많은 모양이다. 일층 식당에서 먹지 않고 음식을 가져다 달라고 한 것은 제법 괜찮은 선택이었다.



번잡한 곳에서 누군가가 분위기에 취해 제게 던진 질문에 대충이나마 대답하며 허겁지겁 먹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




“누구십니까?”




처음 보는 여인이 그가 묵는 방 안에서 멀뚱히 서 있었지만 디온은 침착하게 물었다. 로브로 꽁꽁 싸매고 있었지만, 끝에 드러난 하얀 손등이나, 로브 사이로 언뜻 보이는 머리카락과 얼굴이 여인의 것이었다. 이런 시골 마을에서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놀란 듯 커지는 하늘색 빛 눈동자를 보며 디온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꼭 표정만 보면 둘의 입장이 바뀐 것 같다.



자주 맞이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도둑이라고 걱정되지도 않았다. 당연하다. 훔쳐 갈 게 없다.



그게 아니더라도 찬찬히 생각해보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말없이 서 있는 걸 보아하니 자신을 위협할 것 같은 분위기도 아니다. 만약 그녀가 훌륭한 마법사라서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로 공격을 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렇게 되면 피할 수도 없을 테니 그저 얄궂은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면 된다.



오늘 내가 죽을 운명이었구나. 하고 말이다.




“혹시 디온 님이신가요?”



“그렇습니다만.”




디온이 끄덕이며 긍정하자, 눈앞 여인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갑자기 찾아와 놀라셨겠지만···. 따로 부탁드리고 싶은 의뢰가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저는 용병 길드를 통해서만 의뢰를 받고 있습니다. 따로 의뢰를 받으면···.”




디온이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분명 어떻게 된다고 설명을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가 곤란해집니다.”




대충 표정을 갈무리하며 얼버무리자, 여인이 다급한 얼굴로 서둘러 말을 잇는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용병 길드에서 이야기를 듣고 온 것이니.”




“······.”




디온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디온의 되묻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자신을 다프네라고 소개하며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급하게 의뢰를 부탁하고 싶어 용병 길드를 찾아가 보았지만, 마을에 있는 남아있는 용병

중 그녀의 의뢰를 수행할 만한 용병이 없고, 혹시 몰라 전령새까지 보내 근처 마을에도 반경을 넓혀 살펴보아도 하급 용병들만 몇 있을 뿐, 중급 용병 이상은 머물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지금 이곳에 머무는 유일한 중급 용병인 디온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단다.



혹시 몰라 그에게 의뢰를 맡길 수 있는지 물었고, ‘오면 물어보겠다. 그러나 받지는 않을 거다. ’라는 말을 들었지만, 한시가 급해 그가 묵고 있는 곳까지 뛰어왔다는 거다.



개인 정보가 이렇게 함부로 다뤄지다니. 용병 길드도 문제가 참 많다. 속으로 개탄한 디온의 입술 사이로 절로 탄식이 흘러나온다.



어쨌거나 그녀의 말을 들으며 디온은 머릿속을 정리했다.



첫 번째. 그녀가 말한 의뢰가 중급 용병 이상만 수행할 수 있는 꽤 난도가 있는 의뢰라는 것과,



두 번째. 묻지 않은 제 이름과 경위까지 술술 말하면서 아직 그 의뢰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는 것.



이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꽤 까다롭고 어려운 의뢰라는 거다.



다시 말하자면, 그가 반기지 않는 의뢰라는 소리다.




‘똑똑-’




“식사입니다.”




앞에 두고 가겠다는 말과 함께 가벼운 걸음 소리가 멀어져갔다. 디온은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물끄러미 다프네를 쳐다봤다.



식사는 혼자 하는 게 좋다. 그러니까 그녀가 그만 나가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의뢰도 받기 싫다. 그러니까 그만 나가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꽉 채웠다. 그러나 말로 뱉을 만큼 막돼먹은 성격은 아니라 디온은 애써 떠도는 문장들을 지웠다.



어쨌든, 이곳까지 여인의 몸으로 홀로 찾아온 것을 보면 진짜 급한 의뢰는 맞을 거다. 그렇다면 그냥 받지 않을 거니 나가 달라. 라는 소리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거다.



디온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최대한 달래야 할 것 같다.



진부한 변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허나 떠오르는 게 진부한 거라면 그거라도 내뱉을 수밖에.



디온은 아프지도 않은 머리를 손바닥으로 짚으며 무거운 숨을 푹푹 쉬어댔다.




“···죄송한데 제가 이번 의뢰를 하면서 몸을 다쳐서. 아마 며칠은 쉬어야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그냥 다시 용병 길드로 돌아가 다른 용병을 기다리심이···. 아마 곧 의뢰를 끝난 파티가 돌아올 것···. 쿨럭, 쿨럭.”




뒤에 기침은 굳이 안 하는 게 좋을 뻔했다. 디온의 변명으로 범벅된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다프네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디온 님이 직전 한 의뢰는 산 열매 따기라고 알고 있어요.”



“···쉬운 의뢰라고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위험한 일입니다. 높은 절벽에 있는 열매를 따다가 그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길드가 이렇게 개인 정보를 마구 발설해서야.



디온은 멀쩡한 얼굴로 오른쪽 어깨를 짚었다. 표정 자체가 없는 편이라 다행이었다. 다프네가 긴가민가한 시선으로 그의 어깨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게다가 나뭇가지에 잘못 긁혔는지 열도 좀 나는 것 같고···. 어쨌거나 이런 몸으로 의뢰를 받는다는 건 저뿐만 아니라 의뢰를 하신 분에게도 결례입니다. 죄송하지만 의뢰는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의뢰인지 듣지도 않으시고요?”



“···예. 어차피 들어도 못하니까···.”



“···그렇군요.”




다프네는 의심쩍은 얼굴을 하면서도 피곤할 텐데 시간을 뺏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얌전히 물러났다.



디온의 말을 믿기보단 닦달하기도 뭣한 변명이었기에 우선 한발 물러서는 것 같았다.



다프네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밖에서 디온을 기다리던 식사는 꽤 식었지만 먹기엔 나쁘지 않았다. 꽤 넉넉히 담긴 토마토스튜를 말끔히 비워낸 디온은 서둘러 몸을 씻어냈다.



주머니가 텅 빌 때까지 당분간 이 마을에 머물 예정이었지만 힘들게 됐다.



디온은 빠짐없이 챙겨도 여전히 가벼운 짐을 침대 옆에 두고 몸을 뉘었다.



경험에서 비춰보건대, 그녀는 내일도 이곳을 찾아올 게 분명했다. 그 전에 이 마을을 빠져나가기 위해선 서둘러야 했다. 새벽에 길드에 찾아가 보고도 해야 하니까.



그래도 이렇게 시끄럽고 이제 막 이른 저녁이 되었는데. 눕는다고 잘 수나 있을까. 디온은 작은 염려와 함께 돌아누웠다.



그리고 돌아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걱정이 무색할 만큼 즉잠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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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나를 용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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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수호신 델카르 21.08.13 11 0 12쪽
17 용사의 정체 21.08.08 12 0 11쪽
16 아, 하기 싫은데 21.08.06 15 0 12쪽
15 이럴 줄 알았다 21.08.05 15 0 12쪽
14 재회 21.08.03 14 1 13쪽
13 모자란 놈 21.08.02 15 0 13쪽
12 까이다 21.08.01 14 0 12쪽
11 제국 제일의 검사 21.07.31 16 0 12쪽
10 일단 수도로 간다 21.07.30 17 1 12쪽
9 관심없는 연극 21.07.29 16 0 12쪽
8 습격 21.07.28 16 1 12쪽
7 운명을 피하는 법 21.07.27 17 0 11쪽
6 점성술사 세레니아 21.07.26 23 0 12쪽
5 위대한 드래곤 바실리카드 21.07.25 24 0 12쪽
4 훌륭한 분 21.07.24 25 0 12쪽
3 그럴 줄 알았다 21.07.23 29 0 12쪽
2 이상한 노인의 의뢰 21.07.22 33 0 12쪽
» 평온하고 평범하고 조용한 삶. 21.07.21 6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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