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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나를 용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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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삼
작품등록일 :
2021.07.21 21:36
최근연재일 :
2021.08.13 23:45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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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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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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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습격

DUMMY

고아였던 자신을 거둬주고 사랑을 알려주고 베푸는 미덕을 알려준 성황은 오랜 세월 신성제국을 지키며 모든 이에게 신의 뜻을 전했다.



그러다 몇 년 전, 갑작스럽게 정신을 잃었다.



성황이 품은 신성력과 그를 향한 신의 사랑이 지극해 진작 숨을 거두었어야 할 그가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긴 하지만 이제 그렇게 목숨을 연명하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별 볼 일 없는 자신을, 그저 넘치는 신성력 하나만 보고 신전으로 데리고 온 베누른 성황은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의 뜻이라는 말과 함께 그를 차기 성황으로 삼았다. 성황의 영향력 아래 숨을 죽이고 있던 그들은 그가 쓰러지자마자 그 뜻을 물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썼다.



신성력과 가꿔온 무력 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라그로스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성황의 자질은 그것으로 충분했으나 그에게는 뒤에서 그를 위해 온갖 악한 술수를 대신 꾸며줄 악한 이들이 없었다.



신을 모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서 신의 뜻을 반해야 한다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텨나가던 중.



어느 날 밤. 성황의 죽음을 앞당기기 위해선 신전 가장 깊은 곳에 보관된 보검으로 그를 찔러야 한다는 말을 주고받는 주교들을 본 순간, 라그로스는 망설임 따윈 없이 검을 품은 채 제국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를 이단으로 몰았고, 제국은 물론 대륙 전체에 수배령을 내렸다. 홀로 도망치던 라그로스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유일하게 연락을 하고 지내던, 마찬가지로 고아였던 지크딘을 찾아갔다.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친형제라고 여기는 사이였다.



그가 만약 자신을 제국으로 보낸다면 순순히 끌려가 주리라, 하고 생각했을 만큼 그를 믿었고 또 그만큼 이리저리 몸도 마음도 지친 상황이었다.



다행히 지크딘은 그가 찾아오자 놀란 기색이 역력했으나 짧게 고민하더니, 저에게 용병으로 신분을 감출 것을 제안했다. 자신과 함께 다닌다면 신원은 보장될 것이라고 말하며.



그때부터 라그로스는 지크딘과 함께 용병 생활을 시작했다. 혼자 도망치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마음이 편안했지만, 얼마 전 신성 제국에서 보낸 추격대가 이곳까지 닿았다는 소식을 듣자 오히려 불편해졌다.



저 때문에 지크딘까지 말려들까 불안하기도 했고.




“하아···.”




성황께선 괜찮을까. 적어도 신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엔 그의 손을 붙잡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혹시나 자신의 결정이 라그로스에게 큰 짐이 되는 건 아닐까, 언제나 걱정했었으니.



그러나 그럴 수 있는 날이 올까. 라그로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미 어둠이 내린 밤하늘이건만, 눈을 감으니 세상은 더더욱 짙은 어둠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원.”




한스가 투덜댔다. 디온은 그의 말에 굳이 말을 더 얹진 않았으나 동의했다. 산 중턱에, 만약 없더라도 그보다 조금 더 위에 있을 거라고 말했었는데. 그 일대를 샅샅이 뒤지고, 조금씩 위로 올라가며 살피는데도 본거지는커녕 도적의 꽁무니도 보이지 않는다.



짧으면 하루에서 이틀 길어도 사흘이면 끝날 줄 알았던 임무가 나흘이 지나고 닷새가 지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불만보다는 의아함이 먼저였다.



원래 이곳은 도적이나 산적이 있다가도 흩어지고, 흩어지다가도 금세 도망친 노예나 인근 범죄자들로 인해 빠르게 재구성되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이만큼 산을 뒤진 이상 몇 명이라도 마주쳐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 되레 신기하고 이상했다.




이렇게 된 이상 흩어져서 찾는 것이 낫지 않나, 한스가 조용히 중얼거렸으나 지크딘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산적이 소탕하기도 전에 흩어진 것이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라 다른 힘에 의해 강제로 해산됐거나, 의뢰 자체가 함정일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면서.




“에이, 함정이라니. 그건 지나친 염려같은데. 디온.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무리 대장이 신중하다고 소문이 났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크게 소리 내지는 못해 한껏 죽인 목소리로 열심히 조잘거린다. 그러나, 디온은 그 말에 짧게 동의할 수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간 겪어온 일이 있기에.



지크딘의 말이 현실이 될까 두려울 뿐이었다. 즉,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됐다.



하지만 이곳에는 저 말고도 다른 용병들도 있고 지크딘도 있으니.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눈치 보며 엎어져 있거나, 슬쩍 몸을 빼면 될 거다.



그렇게 디온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야영을 준비하도록.”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지크딘은 아직 해가 지기도 전에 야영 준비할 것을 명했다. 오늘부터는 돌아가며 보초도 서기로 했다.



내일 이른 아침부터 주변을 둘러보고 없으면, 산적이 자연적으로 흩어졌다고 결론을 내리고 하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면서.



그렇게 되면 의뢰는 자연스럽게 소멸한 것이기 때문에 의뢰비는 당연히 받지 못한다. 선금으로 받은 것이야 뺏진 않겠지만.



지크딘의 말에 용병들이 자그맣게 불만을 토하자 지크딘은 제 몫으로 받은 선금을 떼주기로 약속했다. 그 말에 다른 파티원들은 아쉽지만, 어느 정도 만족하며 불만을 잠재웠다.



한스는 어쨌거나 지금 용병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대장인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니 아무리 지크딘이라도 돈이 아까운지 일을 너무 보수적으로 처리하는 것 같다고 중얼거렸지만, 디온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그리고 내일 오후까지만 잘 버티면 어쨌거나 별일 없이 산을 내려가는 거니까. 게다가 공짜로 돈까지 받아서 내려가니. 그로서는 더할 나위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





“모두 물러서라!”



“크아악! 팔이, 내 팔이!”




난장판이 된 야영장 한가운데서 디온은 앞으로 그 어떤 일도 속단하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또 괜찮을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홀로 마음을 달래는 혼잣말이나 생각 따위도.



하늘을 수놓은 별빛들과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도 내려앉은 어둠을 이기지 못할 만큼 깜깜한 밤이 됐을 때.



무슨 사연을 가졌는지, 무슨 목적인지. 그 어떤 것도 밝히지 않은 무리가 야영장을 습격했다.



요즘 유행인지, 검은 로브 사내와 비슷한 로브를 입고서.



같은 패거리인가 의심도 해봤지만, 그 역시 그들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서는 걸 보니 같은 무리는 아닌 듯했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산적이나 도적 무리라고 하기엔 무위가 뛰어났다. 중급 용병들 역시 제법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그들의 공격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몇 차례 폭발음이 들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두 다리로 멀쩡히 서 있는 건 저와, 검은 로브, 대장인 지크딘 뿐이었다.



다른 용병들은 물론 한스 역시 공격에 당했는지 허옇게 질린 얼굴로 게거품까지 물고 쓰러져 있었다.




“······.”




이제 와 쓰러진 척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디온은 결국 지끈거리는 두통을 호흡으로 누른 채, 검은 로브와 지크딘의 뒤쪽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



저 정도의 실력자라면, 진짜로 기절한 게 아닌 이상 금방 알아챌 거다. 그러면 도리어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이 될 테니.




“라그로스.”



“···쟌.”



“이제야 만나게 됐군.”




떼거리로 몰려왔던 로브 무리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이가 로브를 뒤로 넘기며 말하자, 검은 로브가 저 역시 로브를 벗으며 답했다.



디온은 그제야 검은 로브의 이름을 알게 됐지만,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따로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둘이서 다른 곳으로 가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소망만이 존재했을 뿐.



이왕 가는 거 저 로브 떼거지도 같이 데리고 말이다.




“하잘 쓸모없는 너를 거둬 키운 성황을 버리고, 거기다 신이 내려준 성물까지 훔쳐서 달아나다니. 과연 뒷골목에서 구르던 쓰레기답군.”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너와 네 주인 역시 성황을 버린 것은 네놈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날 밤-”



디온은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았다. 알 필요가 없는 이야기다. 더는 얽히고 싶지 않다. 그래도 틀어막은 사이로 말소리가 들려와, 작게 흥얼대기까지 했다.



나는 못 들었어요. 나는 안 들려요. 자신의 이 뜻을 모두가 알아주길 바랐다.



디온은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이런 멍청한 짓을 할지 몰랐다. 누가 보면 모자란 놈처럼 보이겠지만, 그만큼 그는 절박했다.



신성제국이니 성황이니, 차기 성황이니 성물이니, 이단아이니 반역자니. 이런 스케일이 커도 너무 큰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차라리 기절하고 싶었다.




“원래 그 자리는 루딘 님의 것이었다. 너 같은 잡종이 넘볼 자리가 아니란 말이다.”



“그건 쥐어짜도 그 잡종보다 신성력이 딸리는 네 주인 탓 아니야?”



“제 처지도 모르고 날뛰는군. 오늘 이곳에서 너는 죽는다. 제국에서는 이단을 처리했다고 공표할 것이고, 네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남은 생명을 허망하게 붙잡고 있는 성황은 네가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는 말과 함께 신의 품으로 떠나겠지.”




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잠시 소강됐던 전투가 다시 불길처럼 일어났다. 그들은 라그로스뿐만 아니라 그들을 제외한 모두를 죽일 계획인 듯 내뿜는 공격에는 자비가 없었다. 적당히 얻어맞고 쓰러지리라. 검을 몇 번 맞대던 디온은 그 계획을 철회했다.



얻어맞는 순간 목숨을 장담하지 못한다.



마주한 검에서 불꽃이 튀었다. 마나를 끌어 올려 사용한 지 오래되어 그런지 끌어올리자 마자 날뛰는 기운을 다스리며 싸우는 게 버거울 지경이었다. 분명 자신의 마나인데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이렇게 정갈하고, 깨끗하며, 폭발적인 힘이라.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곱씹으며 돌이켜 보자.



맞다. 바실리카드의 힘.




“하···.”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한탄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거운 한숨으로 한탄을 대신한 그는 제게 쏘아져 오는 정체불명의 기운을 검으로 튕겨낸 뒤 힐끗 주변을 살폈다. 지크딘과 라그로스는 제 주변을 둘러싼 이들의 공격을 방어하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힘겨워 보이지는 않지만, 신성 제국의 단련된 기사들을 상대하고 있어서인지 그다지 여유로워 보이지도 않았다.



문제는, 그 역시 라그로스와 지크딘의 동료라고 봤는지 단순히 공격이 점점 더 집요해졌다.




“그만.”




여명이 밝아오기 직전까지 전투는 이어졌다. 온몸에서 힘이 점점 빠졌다. 디온은 자신은 말 한마디 더 하지도, 보태지도 않았는데 저 둘과 함께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는 게 어이없는 한편 억울했다.



그뿐만 아니라 라그로스와 지크딘 역시 움직임이 둔해진 게 보였다. 아무리 실력자라고 하더라도 긴 시간 여러 명을 상대하는 건 버거운 일일 테니.



그때까지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던 쟌이 손을 들자, 어느새 로브를 벗고 검을 휘두르던 신성 제국의 기사들이 앞으로 나오는 그의 뒤로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꼴 보기 싫었다. 여태껏 고생은 기사들에게 다 시켜놓고, 끝에 가서 뭐라도 된 것처럼 위풍당당하게 나오다니. 오늘 처음 본 상대건만, 첫인상이 좋지 않다.




“이제 그만 끝을 내야지. 인적이 드문 곳이라곤 하나 날이 밝으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자. 길바닥에서 태어나 흙바닥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억울할 것은 없겠지. 한껏 위세를 부리던 쟌이 손을 뻗었다. 그 주위로 하얀빛이 소용돌이치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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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수호신 델카르 21.08.13 11 0 12쪽
17 용사의 정체 21.08.08 12 0 11쪽
16 아, 하기 싫은데 21.08.06 15 0 12쪽
15 이럴 줄 알았다 21.08.05 15 0 12쪽
14 재회 21.08.03 14 1 13쪽
13 모자란 놈 21.08.02 15 0 13쪽
12 까이다 21.08.01 14 0 12쪽
11 제국 제일의 검사 21.07.31 16 0 12쪽
10 일단 수도로 간다 21.07.30 17 1 12쪽
9 관심없는 연극 21.07.29 16 0 12쪽
» 습격 21.07.28 17 1 12쪽
7 운명을 피하는 법 21.07.27 17 0 11쪽
6 점성술사 세레니아 21.07.26 23 0 12쪽
5 위대한 드래곤 바실리카드 21.07.25 24 0 12쪽
4 훌륭한 분 21.07.24 25 0 12쪽
3 그럴 줄 알았다 21.07.23 29 0 12쪽
2 이상한 노인의 의뢰 21.07.22 33 0 12쪽
1 평온하고 평범하고 조용한 삶. 21.07.21 6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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