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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잿빛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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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1.06 04:00
최근연재일 :
2017.01.26 11:32
연재수 :
9 회
조회수 :
1,999
추천수 :
23
글자수 :
33,376

작성
17.01.20 02:45
조회
229
추천
2
글자
7쪽

5화.

DUMMY

뜨끈 미지근한 기분 나쁜 바람이 몸을 쓰다듬고, 머리칼을 어루만져 주었다.

남자는 숲속 한 곳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가슴이 쿡쿡 찌르듯이 아파왔다.

갑갑하고 먹먹한 마음에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기분이 느껴지는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모를 만큼. 그는 천천히 그 자리에 앉았다.


그의 앞에는 흉측할 정도로 뭉개진 채로 볼품없이 쓰러져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한 번의 말이 절망적인 결말을 이끌어 냈다는 생각에 그는 죄책감이 들었다.


사람 목숨 참 가볍게 여겼었다고 생각한 그는 부하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는 것에 놀랐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지. 늘 자기를 위해 먼저 나서 준 그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애써 털어낸 척 그는 일어서 가방이 놓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좀 쉬어라. 나머진 내가 할 테니.”


가방을 비워 낸 그는 며칠 먹을 최소한의 음식을 넣은 채 그대로 숲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음울한 밤이었다. 바람은 서늘했고, 별빛은 늘 그랬듯 보이지 않았다.

타닥거리는 모닥불 앞에서 그들은 그 엄숙한 밤하늘에 압도되었는지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아까보다는 정신을 차린 듯 보이는 대형을 보며 기수는 가방에서 통조림 두 개를 꺼내어 하나를 그에게 건네어 주었다.

그의 행동에 모닥불에 시선을 고정한 채 생각에 빠졌던 대형은 시선을 돌렸다.


슬며시 옅고 힘겨운 듯한 미소를 지어주는 걸로 대답을 대신 한 그는 말없이 그것을 건네받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기수는 어떻게 위로를 건네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처음 사람을 죽인 일은 감당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입속으로 신중하게 그는 단어를 찾으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까는···상황이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음···우리가 그런 일을 하지 않고는 살아 남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너무 자책한다거나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지.”


그는 슬쩍 고개를 들어 곁눈질로 슬쩍 쳐다봤다. 아까보다는 조금 풀어진 그의 표정에 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나뭇가지들을 좀 더 구해올게.”


일어서는 그의 모습을 본 대형은 상념에서 깨어나 무슨 소리냐는 말투로 놀라며 말했다.


“내가 갈게. 네가 더 고생했는데 좀 쉬어.”


일어나려는 그의 행동을 손짓으로 막으며 기수는 고개를 저었다.


“주변에 널린 게 나무인데 힘들 게 뭐가 있다고···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앉아서 쉬고 있어.”


그가 일어날까 기수는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발소리와 가까워지는 침묵에 대형은 잠시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이윽고 모닥불 소리만이 남았을 때 그는 슬쩍 기수가 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고는 윗옷 안주머니에서 약통을 꺼내었다. 두 알. 그게 전부였다.


그는 한 알을 입속으로 털어 넣으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이틀이다. 단 이틀.

내일과 그다음 날까지가 마지막이었다. 좋은 시한부라고 그는 생각했다.

지금에서라면 이승보다는 저승이 더 나을 테니까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싫었다.

혼자 떠나는 것 같아서, 버리고 가는 것 같아서 그는 마음이 심란했다.

마지막까지 이기적인 것 같아서 그는 괴로웠다. 너는 계속 살아가길 원할까. 아니면 내 모습을 보고 여지없이 나를 따라 올까. 어느 것도 내키지 않는 결과다.


후자의 상황이 가능성이 훨씬 클 것 같아 그는 기수에게 차마 곧 죽는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괴로움을 벌써부터 얹어주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이 뒤죽박죽 혼란스러웠다. 집, 친구, 희생···내 마지막 소원과 친구의 배려.

판단이 서질 않았다. 결국, 그는 더 나빠지는 것으로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무에 등을 기댄 그는 한 손으로 머리채를 잡은 채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새어 나오려는 소리를 억지로 삼켜냈다.



어둠이 걷히는 건 조금 이른 시간에 다가왔다.

밤이 길어지는 것과 조금씩 더워지는 걸 보니 아마 곧 여름이 올 것 같다고 대형은 생각했다.


오지 않는 잠에 뒤척이다 불침번을 교대한 후 그는 막 떠오르려는 해를 보고선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기수를 깨웠다.

얼마 남지 않는 시간에 그는 초조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먹을 걸 빨리 찾아야 한다고 핑계를 댄 후 그는 분주히 움직였다.


통조림을 먹다 그는 집어 먹던 손을 멈췄다. 문득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도 없는 마당에 곧 사라질 자신이 축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반 정도 먹은 다음 기수에게 건네주었다.

걱정하는 듯 괜찮냐고 기수는 물었고, 그는 입맛이 없다고 대충 둘러대었다. 아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고 생각한 기수는 더 묻지 않았다.


갈림길을 지나 좀 걷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길은 하나밖에 없었고, 주변은 밭과 논이었던 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쪽으로 작은 집이 한두 채 있었지만, 그들은 거리의 효율이나 그 집들에는 그들이 원하는 게 없을 거라 생각하고는 무시한 채 걷는 속도를 올렸다.


“아무도 없어서 좋긴 한데 길이 시골길이라 집도 없네.”


휑한 길 앞의 풍경이 몇 시간이나 계속되니 기수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답답한 마음에 그는 지도를 꺼내어 살펴보았다.


“좀 알 것 같아?”


“산이 여기니까··· 우리가 반나절 정도 걸었으니 아마, 이쯤?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대충 계산한 그는 손으로 짚으며 현재 위치쯤 되는 곳을 보여주었다.


“얼마 안 남았네.”


오후와 저녁 사이쯤. 그쯤에서야 그들은 몇몇의 집들이 늘어선 작은 마을 같은 곳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쭉 걷다 그들은 담벼락이 있는 공터에 다다르게 되었다. 불을 피운 흔적과 잿더미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다. 그리고···.


“저게 뭐야. 저거 뼈야?”


옆쪽으로 지나며 대형은 눈을 살짝 찡그린 채 시선을 고정시킨 채 물었고, 그 말에 기수는 고개를 돌려 그가 쳐다보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누렇고 탄 부분이 있는데 모양새는 딱 뼈인 것 같았다.


“동물이 남아 있었나?”


조금 놀란 듯 그들은 담벼락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무언가 불안한 느낌을 서서히 받았다.

점점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은 설마 했던 것을 확신으로 바꿔 주었다. 발걸음은 서서히 느려졌다.


“아···.”


말문이 막힌 기수는 그대로 흩어져 있는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기분 나쁜 더운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피비린내를 뜨겁게 몰고 와 그들을 적셨다.

코끝을 찌르는 비릿하고 불쾌한 냄새가 훅 들어오자 대형은 그 자리에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것들을 게워내었다.


“진짜였구나··· 진짜였어.”


씁쓸함과 허탈함, 분노와 공포가 마구잡이로 섞여 마음을 어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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