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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잿빛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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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1.06 04:00
최근연재일 :
2017.01.26 11:32
연재수 :
9 회
조회수 :
1,994
추천수 :
23
글자수 :
33,376

작성
17.01.08 23:48
조회
229
추천
4
글자
13쪽

2화.

DUMMY

텅 빈 길 저 멀리 누군가 서 있었다.

멀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도 안 갔지만 분명 사람이었다.


“··· 맞지?”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에 대해 반응하는 게 이제는 부정적이 되어버렸다.

기본적으로 신뢰와 믿음이 바탕이 아니라 경계가 먼저였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사회가 사라지고 나라가 사라지고 법이 사라진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만개하게 하였다. 차마 대답은 하지 못한 채 그는 그 상태 그대로 굳었다.

이 정도 거리에서 보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저 그대로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시선은 그대로 둔 채 주머니에서 망원경을 꺼낸 그는 조금 떨리는 손을 눈가로 가져갔다.


“남자야?”


“······.”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친구는 답답해하며 작게 소리쳤다.


“야!”


얼빠진 표정을 한 채 돌아본 그는 당황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노인네인데...?”


“뭐?”


깜짝 놀란 친구는 그에게서 망원경을 건네받아 주변과 그 뒤쪽까지도 살펴보았다.


“주변엔 아무도 없어.”


“어떡하지?”


아닌 게 아니라 지금 그들이 걷는 길옆은 산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막혀있었다. 편한 길로 가려던 게 오히려 지금의 피해갈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그냥 지나가자. 늙은 노인인데 뭐 별일 있겠어?”


누군지도 분간이 되지 않았던 거리는 어느새 생김새까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평소와 같던 걸음 속도는 늦춰지기 시작했다.


노인은 흔들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왔다.

노인의 모습이 점점 커지자 노인이 한쪽 발을 절고 있는 걸 그들은 알아챘다.

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깡마른 몸매가 입은 옷 사이로 보였다.

민머리에 주름은 가득 잡혀있었고 많이 타서 그런지 피부는 짙었으며 그곳에 검버섯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눈은 컸지만, 생기가 없었고 초점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십 미터쯤 남았을까.

노인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들도 같이 멈췄다.


“······.”


서로 마주 본 채 그대로 그저 서 있었다. 어느 누구 하나 말을 꺼내려 하지 않았다.

상대가 아무리 힘없는 약자이지만 환경이, 분위기가 그들을 압도시켰다. 날카로워진 신경은 그들을 배로 긴장하게 만들었다.

혹시나 몰라 그들은 저 너머와 그들이 걸어왔던 곳. 그리고 양쪽 높은 언덕 위쪽도 예의주시하며 주변을 살펴보는데 비해 노인은 놀라지도 겁내지도 않았다. 그저 걷다 힘들어 잠시 쉬는 것 마냥 평온했다.

아니 어쩌면 가능성을 잃은 포기일지도 몰랐다. 노인의 눈빛은 복잡해 보였다. 뭔가 애처로운 듯 갈망하는 듯한 눈빛을 한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대로 얼마나 서 있었을까. 1초가 1분 같던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었던 짧은 시간. 먼저 움직인 건 노인이었다.

그들이 불편해하는 게 미안해하는 듯 노인은 조금 옆으로 걸었다. 그렇게 조금씩 다가와 그들을 지나쳐갈 때 대형은 천천히 가방을 뒤적였다.


“······.”


소리에 반응한 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그대로 돌아보았다. 아주 천천히.

친구는 노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곁눈질로 그가 무얼 하는지 보았다.

그는 가방에서 캔 통조림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무릎을 굽힌 채 최대한 노인에게 가까운 곳에다 손을 뻗어 그것을 놓았다.

조심스레 일어난 그는 노인과 눈이 마주쳤고, 묵례를 건네며 눈짓으로 통조림을 가리켰다. 가방을 다시 짊어 멘 그는 친구의 팔을 툭툭 치며 신호를 보냈다.

멀어져 가는 그들을 노인은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점점 작아지다 점이 되고 그리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사라지고 나서도 노인은 오랫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조심스레 캔을 따 때가 잔뜩 낀 손으로 그것을 허겁지겁 먹던 노인은 어느새 가까이 왔는지 지척에서 난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내려놔.”


낮고 단호한 소리가 노인에게 닿았다. 천천히 일어선 노인은 조금은 완고한 눈빛과 함께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살고 싶으면 그거 내려놓고 꺼지라고.”


단호한 표정으로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바짝 마른 입술을 떼어 말했다.

물조차도 제대로 마시지 못해서인지 노인의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지고 쇳소리가 섞여나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안 돼.”


탕···하는 소리가 비어버린 길과 주변에 퍼져나갔다.

허물어지듯 쓰러지는 노인은 곧장 숨이 넘어갈 듯한 채로 아직까지 손에 쥔 통조림을 뒤집어 바닥에 박았다.

엄청난 양의 피가 바닥을 적셨고 후들거리는 다리에 고꾸라진 노인은 정신을 붙들고 붙들다 결국 경련을 일으키다 눈을 감았다. 뒤에 있던 남자는 칼을 주머니에 꺼내며 다가왔다.


“빌어먹을 노친네 기어이 저걸 바닥에 엎어놓네. 근데 굳이 총까지 써야 했습니까?”


“재수 없게 부정 탈 것 같아서 말이야. 더럽더라고.”


“그럼 안 가져가실 겁니까?”


잠시 고민하던 그는 총을 다시 원래 위치로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는 그의 고개에 뒤에 있던 남자는 칼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가래침을 탁 뱉은 그는 볼품없이 쓰러진 노인에게 닿지 않게 불쾌한 듯 옆으로 돌아갔다.


벼락같은 소리가 공기를 찢어 귓전을 때렸다. 메아리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총소리에 그들은 평원의 고라니처럼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숨은 목구멍을 타고 빠르게 차올랐다. 다리는 금방이라도 풀려버릴 듯 당겨왔다.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할 때쯤 그들은 멈춰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심장은 터질 듯 두근거려 얼굴까지 두근거리는 것 같았고 호흡곤란에 속은 메스꺼워 헛구역질이 나왔다. 삽시간에 온몸이 뜨거워졌다.

말라버린 목은 침조차 삼키는 게 힘들어 물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는 완전히 지친 몸을 움직여 가방에서 물을 꺼내 한 모금 마신 뒤 친구에게 건네주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들린 건 처음인데.”


헐떡이는 숨을 진정시키며 뒤쪽을 훑어본 친구는 불안한 듯이 주변을 계속 쳐다보았다.


“우리가 오던 쪽이었어. 무슨 일이지?”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불편한지 그는 계속 몸을 뒤척였다. 친구는 최대한 심호흡을 빠르게 하며 안정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멀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갈림길이 나올 때까지 속도 좀 내야겠다.”


힘겹게 일어서며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괜히 뒤가 오싹해져 그들은 종종 뒤를 돌아보았다.


“그 할아버지일까?”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그럴 때는 이미 지났잖아.”


“안 해, 그런 거.”


문득 생각난 듯 친구는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펼쳤다. 이리저리 손으로 재며 확인하던 그는 다시 가방에 넣었다.


“다행히도 방향은 맞네.”


“어디 가는 건데?


“집 가자고 한 거 아니었어?”


“그···랬지.”


고향... 그는 죽음이 정해져 있는 이곳에서 돌아가고 싶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하며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집과 동네. 밥 먹을 때조차도 불안한 지금. 마음만큼은 편안해지고 싶었다.

적어도 누울 때는 외롭지 않고 싶었다.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지방으로 갈수록 먹을 것은 더 없으면 없지, 많지는 않다는 건 누가 봐도 예상 가능할 텐데 너는 무슨 생각으로 결정한 걸까.

이기적인 생각이 들어 털어놓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지? 그는 엉켜버린 털실처럼 꼬인 머릿속에 제대로 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드디어 그들 앞에 갈림길이 나왔다.

친구는 지도를 꺼내어 보더니 한쪽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어서고 나서부터 그들은 다시 걷는 속도를 원래대로 늦췄다.

그는 기울어가는 해가 있는 하늘을 슬쩍 확인하고선 망원경으로 그리 멀지 않은 집을 골라내었다.


숟가락이 통조림을 긁는 소리뿐만이 집안에 울려 퍼졌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둘 중 누구도 말을 꺼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서로 아무 말 없이 땅만 쳐다보며 이제는 질릴 대로 질려버린 통조림을 입안에 욱여넣었다.


침묵이 마음을 물들여버리면 그것만큼 괴로울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버텨온 것도 어쩌면 혼자여서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미쳐버리지 않고는 못 버티는 이곳에서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다는 것.

마음 놓고 편하게 말을 하고 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이렇게 끼니를 때울까?”


그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간간이 들리는 총소리. 누군가는 그것으로 배 곪음을 걱정 없이 독점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는 정말 힘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 판국에 그는 어쩌면 자신들만이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가진 게 없는 가난한 사람들처럼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보이지 않는 저 멀리 에선 그들이 본 환경과는 다르게 서로 의지해 살아갈지 모르는 일이니까.


“아마 대부분은 그렇겠지. 총을 가진 몇 빼고는 아마 우리랑 비슷할걸. 우리보다 더 상황이 안 좋은 사람들은 어쩌면 인육을 먹을지도.”


“그럴지도 모르지.”


“아니, 말하다 보니 맞는 말 같네. 그렇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버틸 음가 없으니까. 당장 우리도 내일 먹을 것 걱정하는데, 우리라고 그런 날이 오지 않을 리가 있나.”


덤덤하게 말하는 친구의 표정을 보니 그는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지켜왔던 사람들이, 유일하게 이성이라는 걸 가진 인간이 이토록 짧은 시간에 그것을 잃어버리고, 완전한 동물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성이 없는 인간. 욕심과 탐욕, 이기심과 공격성만 남은 인간은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중요한 건 다시 위로 치고 올라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더 내려가는지였다.


그들에겐 미래가 없을 것이다. 오직 자신을 위해, 후손을 모르고 자신만의 편의를 위해 살다가 사라져 버릴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세상에게는 최선을 방법일지도 모를 것이다.

자연의 균형을 깨고 자신들만의 입맛으로 다시 균형을 맞추는 우리들의 민폐는 영향력이 너무 컸을 것이다.

어쩌면 이 상황이 만들어진 건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 세상이 내리는 마지막 수단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친구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하나 꺼내었다.


“오늘 체력을 너무 빼버려서 조금 더 먹어야겠어.”


캔 뚜껑을 들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뚜껑이 떨어져 나갔다. 물끄러미 보던 그는 손을 뻗어 친구에게서 통조림을 건네받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허리춤에서 단검 하나를 꺼낸 그는 통조림을 바닥에 두고 조심스레 단검을 내리찍었다.


“후임들이 사줬다고 했었나?”


“응. 이거 비싼 거라고. 5만 원 정도 할걸?”


그는 때가 잔뜩 찌든 작은 종지 그릇에 조심스레 덜어 담고는 친구에게 건네주었다.


“꽤 되네. 특전사는 전역할 때 그런 걸로 선물을 해 줘?”


그는 기억을 되짚는지 시선을 멀리 두며 잠시 동안 가만히 있었다.


“아니, 보통은 안 그러지. 먼저 자 이따 깨워줄게.”


많이 피곤했는지 그는 별말 없이 몸을 돌려 누웠다.

그 자세 그대로 멈춰진 듯 그들은 그렇게 있었다. 쓰라린 침묵이 귓가를 먹먹하게 만들 때쯤, 잠든 친구의 낮은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상태로 그는 몇 분이고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기수야.”


그는 속으로 일어나지 말라고 소리치며 나지막하게 기수를 불렀다.


“······.”


그는 조심스럽게 겉옷 안주머니에서 약 한 알을 꺼낸 뒤, 재빨리 입에 넣어 삼켰다.

다시 주머니를 뒤진 그의 손에는 작은 하모니카가 잡혀 있었다. 천천히 돌려보고 반대쪽 손으로 조심스레 쓸어 본 그는 자고 있는 기수의 뒷모습을 보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가능하기는 할까? 나는 두렵다 기수야.

우리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괴롭게 굶어 죽는 것 보다 이 세상에서조차 죽는 게 두려워질까 봐.

적응해 버려서 사람이 아닌 식인종 괴물로 돼버릴까 봐. 그래서 너와 내가 결국 서로 등에 칼을 꽂을 기회만을 노리게 되어버릴까 봐.

나는 진정 그게 두렵고 무섭다.


지금 이 상황 속에서도 우리 집은 따뜻할 것만 같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코끝을 스치는 저녁 냄새와 왔느냐는 어머니의 말과 문은 잘 잠갔는지 확인하라는 누나의 잔소리가 눈앞에서 선명해.

차를 타고 갔으면 진작에 닿았을 이 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가 왜 이리도 힘든지 모르겠다. 미련이 없어서, 정말 이제는 목표가 사라져 버려서 돌아가는 것인데.

너는 나와 다를까.

너는 빛 한줄기를 보았을까. 아니면 나처럼 지워버렸을까.


“대형, 일어나. 가야지.”


“어···가야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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