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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잿빛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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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1.06 04:00
최근연재일 :
2017.01.26 11:32
연재수 :
9 회
조회수 :
1,996
추천수 :
23
글자수 :
33,376

작성
17.01.24 16:01
조회
206
추천
2
글자
7쪽

7화.

DUMMY

새벽공기의 차가움에 대형은 몸을 불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숙였다. 텅 비어버린 마음과도 같은 찬바람이었다. 어쩐지 허탈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절벽 끝에 도달해 본 것은 포기였던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희망이라는 작은 한 줌조차 사라져버리고 남은 것은 내일을 놔 버리고, 자신을 놔 버린 포기였다. 끈질기게 잡고 버틸 줄 알았던 그 줄은 생각보다 너무도 쉽게 놔버렸다.

그래서 왠지 기뻤다. 이제는 이 토악질 나는 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약 하나를 꺼냈다.

순간 이것을 먹지 않으면 어떨까 그는 생각해 보았다.

정말 그럴 마음이 들었는지 그는 손을 움켜쥔 채 던질 자세를 취했다.

그러다 이내 힘없이 든 팔을 내리며 손바닥 위에 올려진 그것을 바라보았다.


타닥거리는 모닥불 소리마저 없었다면 그는 정말로 던져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질릴 대로 질린 그는 포기하고 싶었다. 반대쪽에서 자고 있는 그를 보며 그는 소리 없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약을 입에 집어넣었다.


내일은 도착했으면 좋겠다고 그는 바라보았다.

아까 지도를 봤을 때 내일 부지런히 걷는다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물론 음식이 충분하다면 말이다.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 그는 내일마저 음식을 구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다시 들자 내려 누르던 압박감이 더욱 무거워졌다.

정말 이제는 인육을 구해야 할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처음이 어려운 것이지 그다음은 괜찮을 것 같았다. 더 이상은 지킬 수 없겠지.

이제는 한계니까. 그는 품 안에 있는 것을 꺼내 보았다.


손보다 조금 작은 하모니카가 잡혀 나왔다. 아직 젊다면 젊을 나이.

세상을 모른다는, 아직 철이 덜 들었다는 말들을 들으며 포기 못 했던 꿈이 그에게 있었다. 아니 모든 청춘들에게 있었다. 내 길이라는 믿음 하나로 그렇게 걸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다 부질없어져 버렸다. 그는 억울했다. 모든 것들이 후회가 되었다.


조금 더 열심히 놀걸. 조금 더 추억을 쌓았어야 했는데. 조금, 아니 많이 노력할걸.

남아버린 건 괴물 같은 사람들과 변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들뿐이었다.

왜인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바다 위 뱃길처럼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가 두려웠다면 이제는 미래가 사라져 버린 것이 두려웠다. 막막했다.


목표가 없어지고 하루하루만을 위해 사는 가장 기초적인 본능만을 지키기 위해 사는 존재가 되었다는 건 어떤 말로도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죽음보다 못한 이 삶에서 그는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다.

피로해진 얼굴을 들고는 조금씩 줄어드는 불을 보며 그는 천천히 장작을 밀어 넣었다.



아침부터 시작해 오후가 됐을 지금까지 하늘은 계속 어두컴컴했다.

구름이 낮게 깔린 걸 보아하니 왠지 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바람은 어둡게 느껴졌다.

그래도 덕분에 더운 것을 피할 수 있어서 그들은 걷는 것에 조금 수월해 했다.


“오늘은 무조건 구해야 하니까 가리지 말고 찾아보자.”


“하나하나 다 찾으면 너무 시간 낭비지 않을까. 어차피 없을 것 같은데.”


기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냐. 가는 건 급한 게 아니잖아? 일단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해결해야지.”


조금 답답한 마음에 대형은 머리를 긁어댔다.


“그래, 알았어.”


하고 싶은 말을 꾹 눌러 삼킨 채 그는 그냥 알겠다는 대답만 했다.

속이 타들어 가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수는 알 도리가 없었다.


“어차피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천천히 가자.”


“···.”


바짝 마르는 입술을 핥으며 대형은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모두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본능적으로 앞에 있는 기수를 발로 힘껏 밀었다.


“야!”


탕··· 하는 총소리가 귓전을 찢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의 외침은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그 자신조차도.


기수는 대형이 뒤에서 밀어 앞으로 고꾸라지려다 어떤 순간적인 힘에 의해서 옆으로 쓰러졌다. 귀 주변으로 웅웅 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그는 옆으로 쓰러지며 반대쪽 멀리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모든 것이 천천히 흐르듯 순간적으로 느리게 보였던 그는 급하게 대형을 찾았고 그가 시야에 들어오자 대형이 무어라 소리치는 걸 볼 수 있었다.


“차 뒤로 숨어!”


자신의 말조차 멀리서 들려왔다. 소리가 없다시피 살다가 너무 가까이서 너무 큰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이명은 심각하게 다가왔다.

저번에 들은 소리보다 훨씬 가까웠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의 말을 들었는지 다행히 대형은 차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도 재빨리 몸을 던져 몸을 숨겼다.


다시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차 유리창을 깨고 몸통을 때리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죽음이 닥친 것에 대한 엄청난 공포감과 이명 때문에 들리지 않는 소리가 그들의 호흡을 더욱 가쁘게 만들었다.


기수는 걸리적거리는 가방을 옆으로 벗어놓았고, 그 순간 그가 쓰러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방 중간 부분을 뚫고 지나간 작은 구멍이 있었다.


주변엔 그들이 걷는 곳 말고는 양옆으로 벌판이 이어져 있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면 미리 숨어 있었다는 것이거나. 하지만 후자의 상황이라면 보지도 못하고 죽었을 것이고 이런 실수가 나오지 않았을 터였다. 군인인가?


위협을 한 게 아니라 바로 죽이려고 했다.

왜지? 그는 차 창문으로 슬쩍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벌써 제법 가까워진 상대를 보고 그는 낭패감에 빠졌다.


“거리가 멀지 않아. 어떡하지?”


초조하게 묻는 그의 말에 대형은 그가 한 것처럼 차 문을 통해 슬쩍 바라보았다.

다시 고개를 숙이는 그의 손은 아까와는 다르게 떨렸다.


“너무 가까워···.”


“그 사람이야...”


흔들리는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묻어져 있었다.

믿기지 않는 듯 그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눈 밑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그 집주인. 총을 가졌다고 했던 그 사람, 그 사람이라고... 우릴 쫓아왔어.”


“왜? 그 집을 두고 우리를 쫓아 왔다고? 그 사람을 죽인 것 때문에? 망할 놈. 자기들은 몇십 명을 죽이고 모았으면서. 자기 친구가 당하니까 그건 또 아닌가 보지?”


“다 끝났다.”


나지막한 소리가 울림 있게 조용히 퍼져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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