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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속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무사가 회귀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글자속
작품등록일 :
2023.07.31 20:39
최근연재일 :
2024.01.3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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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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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9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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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천하를 거닐며 칼춤을 추다 (2권 完)

DUMMY

一.




무성십존의 일익, 검성과.

강소에서 온 광화검의 비무를 위한 비무대.


훗날 열릴 천하제일비무대회가 열리는 한중의 정백무대(正白舞臺)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두 노강호에 의해서.


그러나 한 사내는 무척 젊어 보였고, 그 옆에 선 나머지 사내는 무척 늙어 보였다.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진산월과 조휘가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는 연유. 두 사람이 조손지간처럼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한평생을 함께한 친구처럼 어울리는 까닭은.


그것은 조휘라는 사내가 먼 미래를 살다가 회귀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이 강호에서 조휘. 그뿐이었다.






二.




한 달이 더 지났다. 수석으로 입맹한 조휘에게는 아무런 직책도 맡겨지지 않은 참이었다.


조휘는 스스로 총관부를 찾아가 자신을 하급무사로 써먹으라고 말했다. 총관부는 조휘 뒤에 있을 진산월의 눈치를 봐야만 했지만, 뒤이어 찾아온 군사의 말에 조휘를 하급무사로 받아들였다.


하급 무사는 무림맹의 최말단이지만, 그들만큼 중요한 이들은 없었다. 적어도 조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조휘는 하급 무사들과 같은 숙소를 쓰고 같은 밥을 먹었다. 임무를 나갈 때는 그들과 꼭 짝지어서 밖으로 나갔고, 함께 뒤풀이할 때는 그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분위기를 주도하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조휘는 하급 무사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조휘라는 사내는 그들보다 먼저 위로 올라갈 사내임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헐뜯고 끌어내려도 조휘는 고고한 학처럼 위로 올라갈 사내였다.


밉보이느니 차라리 마음을 여는 게 낫다는 판단은 누구 하나 뒤처질 것 없이 동시에 할 수 있었다.




한편, 공석이 된 백도의 정점. 무림맹주 자리를 향한 세인들의 관심은 점차 정점을 찍고 있었다.


봉공 중에서 야욕을 드러내는 이들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가장 충격적인 인물은 소림의 방장, 각몽이었다. 세속적 욕망과는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승려가 정점을 향한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의심하고 있을 때, 각몽의 저의를 의심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대의를 위한 각몽의 결단에 연신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용문이었다.


용문은 각몽이 머무르는 거처를 찾아 천하 정세를 논했다. 마교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하며 곽영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야기의 주제는 결국 한 사내로 귀결됐다.


“조 무인이 큰 일을 해냈습니다. 요즘에는 광화검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지요?”


“허허허. 도우의 성격이면 광화검이라는 이름을 듣기 무섭게 발작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랬다 하더이다.”


“그건 그렇고 빈도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작았던 어린 도장이 무혼의 경지를 돌파해 인간의 몸으로 자연의 조화에 간섭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니요.”


“백도의 홍복이지요.”


“이제는 빈도도 함부로 부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조화경의 무인이라······. 이리 늙었건만 아직도 가슴이 뜁니다. 새로운 강자의 등장에.”


“허허허. 방장 대사의 마음에 아직도 무를 향한 열망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제게도 보입디다. 대사님의 마음에 자리잡은 뜨거운 불꽃이.”


“그저 불꽃이 세상을 불태울 겁화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나저나 깜짝 놀랐습니다. 방장대사께서 맹주 위에 도전하신다니요. 큰 결단을 해주셨습니다.”


“아무래도······ 함께 커 왔던 친우들이 맹주 자리를 위해 다투는 모습은 썩 내키지 않더이다. 그리고 작금의 무림은 화약고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당장 어디에서 불꽃이 튀는 순간.”


“화약고가 터져나가겠지요.”


“그렇습니다. 마교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은밀하게 준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성맹의 동태도 심상치 않지요.”


“천성맹이라.”


“잘못하다간 흑도와 마도 양측에 동시에 공격받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흑제 혁련무강이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것일까요. 머지않아 양 맹의 친교를 도모해야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요.”


“이런 때에 검성께서 불현듯 은퇴를 선언하셨으니······. 백도의 구심점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용문이 눈을 빛냈다.


“그 말씀은.”


각몽이 나지막이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용문 역시도 무림맹의 봉공. 화산과 한중을 오가며 몇 번씩 보긴 했지만, 큰 친분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분은······?”


사내, 연소백이 용문에게 포권했다.


“전검대주 연소백입니다. 평소 흠모하던 검존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연소백은 담백하게 인사를 마치고 용문의 옆에 앉았다.


“아직 한 사람이 덜 온 것 같습니다?”


연소백이 각몽에게 물었다.


“그는 바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요. 지금 맹 내에서 가장 바쁜 사내긴 합니다.”


“허허허. 빈도가 듣기론······ 대주께서 그 친구에게 후임이 되어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그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연소백은 고개를 끄덕이고 담백하게 설명했다. 그의 설명은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흡입력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실무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장수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리라.


묵직하고 진중한 목소리에 고저 없는 설명은 일순 딱딱하게 느껴졌지만, 용문과 각몽에게는 그 무엇보다 진실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용문은 연소백의 설명을 들음으로써 전검대주 연소백이라는 사람의 성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실로 진실된 사내구나.’


그의 행동에 거짓은 없었다. 일단 그것 하나만으로 사람 대 사람으로서 교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제 사람을 키울 겸. 새로운 인물을 후임으로 받는 것이 가장 좋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러셨구려.”


용문이 연소백에게 물었다.


“조휘라는 사람을 그렇게 좋게 보신 겁니까?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을 곧바로 후임으로 세우실 정도로?”


연소백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요.”


“그럼······?”


“곁에 끼고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직접 알아볼 생각이었습니다.”


“······!”


“만약 그 친구가 제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아직 젊은 백도의 무인을 바르게 키워내는 것만으로 이 연소백이는 천명을 다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


용문은 연소백을 보고 생각했다.


실로 무서운 사내라고. 백도(白道)라는 단어를 그대로 의인화 시켜두면 바로 저 사내일 것이라고.


“천하는 병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병은 절대로 치료될 수 없겠지요. 강호에서 무림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은.”


“······!”


“대주. 그 말은 위험한 발언입니다.”


연소백이 작게 웃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당장에 저도 무공이 없으면 끼니도 제대로 못 벌어먹을 망종이 아닙니까. 저는 우리의 무림을 욕하는 것이 아닙니다.”


“······.”


“그러나······ 우리의 무림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작은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


“아비는 아비답게. 어미는 어미답게. 자식은 자식답고 스승은 스승다운. 그런 세상이 오는 것을 바라는 것.”


연소백이 각몽과 용문을 돌아봤다.


“그게 이 연소백이의 꿈입니다. 그리고 강호는 꿈꾸는 사람의 세상이지요. 강호는 결국 세상이라. 세상은 꿈꾸는 사람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하를 위하는 것도 그리 먼 일이 아니라는 거겠지요. 제 말이 틀립니까?”


“······.”


두 노강호는 말이 없었다.


“무림맹을 걱정하여 맹주 위에 오르고자 하였으나. 이 연소백이보다 먼저 강호를 걱정해주신 선배들께서 나서주시니, 그저 그 결단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직 하늘은 연소백이를 정상으로 보낼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기다려야겠지요. 그러니.”


연소백이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지금의 연소백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두 선배께서는 선배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십시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 강호의 정상에서 만납시다.”


연소백은 그렇게 사라졌다.


용문과 각몽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허허.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세상이라 하거늘. 하늘이 백도를 보살피어 우리에게 저리도 훌륭한 무인을 보내셨나봅니다.”


용문의 눈이 깊어졌다.


‘그리고 그건······ 우리에게만 보낸 것이 아니겠지.’


용문의 깊은 눈이 장강 너머 어딘가를 바라봤다. 무척이나 짙고 패도적인 어둠을.


‘흑도.’


그리고 아직 나타나지 않은 강대한 적.


‘마도.’


용문은 자신의 제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화산에 잠시 들렀던 인상적인 객을 떠올렸다.


‘부디 너희가 살아갈 세상이 그리 험하지 않기를.’




三.




“내일인가.”


드디어 비무대의 공사가 끝이 났다. 전날 진산월과 만나서 비무의 준비를 끝내고 온 조휘는 마지막으로 마음을 가다듬고자 했다.


조휘는 오랜만에 동기들과의 자리를 가졌다. 황보가의 망종이 물의를 일으켰던 청풍루에서는 추성태, 기운해, 강백, 남궁린, 당운비의 다섯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오랜만에 보는구먼. 두 달인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허이.”


청룡각주의 시험을 통과한 이들 다섯은 그대로 이번 기수의 무림맹에 입맹했다. 그것도 괄목할만한 성적으로.


“저는 친부모처럼 저를 길러주신 어르신 두 분 여행이나 보내드리려고 댁으로 한 번 들렀는데 퇴짜먹고 돌아왔어요.”


강백은 침울한 어투로 말했다. 토 노인에게 돌아가 금할매와 여행을 보내주겠다며 껄껄 웃었지만, 맹 내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던 토각은 강백의 말을 웃으며 받아줄 수 없었다.


“오랜만에 본가에 들렀습니다. 아버지께 오랜만에 흥미를 끄는 투자처가 생겼다고 말씀드리고 왔지요.”


“형님! 그런게 있었으면 저한테 귀뜸이라도 해주셨어야죠!”


“일없다. 이놈아.”


본가로 돌아간 기운해는 그의 아비인 기상위에게 그가 본 사내중에 가장 신기한 사내에 대해 전달했다. 조휘였다.


‘아버지의 그런 표정은 처음 봤다.’


기운해는 그때를 회상했다. 조휘에 대한 아들의 평을 들은 기상위의 얼굴은 나이 칠십 먹은 노인내의 얼굴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형님을 뵙고 왔습니다. 가문을 떠나셔서 먼 타지에서 고생하시는데 동생된 몸으로 얼굴 한 번 비쳐드려야하지 않겠습니까.”


남궁린은 강소로 떠났다. 남궁진천을 만나고 돌아온 그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돌아왔다.


“오. 형님이라면 그 창천호검이 아니오?”


“아하하. 그렇습니다.”


남궁린은 형 이야기를 하는 내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영감님은 뭐 하고 지내셨습니까?”


“오랜만에 혁운진이랑 술 한잔했지. 나는.”


추성태는 오랜만에 보는 혁운진과 술자리를 가졌다. 추성태에게 아주 어린 딸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혁운진이 대경실색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예? 영감님께 아주 어린 딸이 있으셨다고요?”


“그래. 올해로 일곱이다. 임자를 닮아 아주 귀여운 아이야. 너희도 한 번 보면 좋아할 거다.”


그 말을 들은 당운비가 눈을 빛냈다.


여기까지가, 조휘가 하급무사로 지낸 두 달간 일어난 일이었다.


기운해와 강백 두 떡대가 술자리를 주도하니 볼맛이 났다. 남궁린은 귀신처럼 검을 다루는 추성태에게 푹 빠진 듯했다. 그의 곁에 찰싹 붙어 있는 것이 눈을 흐리게 뜨고 바라보면 꼭 조손지간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당운비는 홀로 고고한 학처럼 상석에 앉아 고개를 젓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듯했다.


‘왜 나를 여기에.’


홀로 여인인 것도 여인인 것이지만, 가장 나이가 많다거나 무공이 가장 고강한 것도 아닌데 상석을 차지하고 있으려니까 얼굴이 화끈거리는 당운비였다.


조휘는 그 흐름을 대충 읽었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그의 기척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오랜만에 청풍루를 찾아온 혁운진이었다.


“조휘야!”


“어엇! 이거 청룡각주님이 아니십니까?”


혁운진에게 달려간 조휘가 그를 부축하는 시늉을 했다. 혁운진은 그런 조휘를 보고 피식 웃었다.


“일없다. 이놈아.”


“여긴 어쩐 일로······?”


혁운진이 껄껄 웃었다.


“무인이 칼이랑 술 빼면 뭐가 남겠나. 여자지!”


“아, 예에.”


그런 쪽엔 관심이 없던 조휘는 혁운진을 잘 돌려보내고는 동기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이고! 조휘 형님! 이거 늦으셨습니다!”


일행 중에 가장 친화력이 좋은 강백이 너스레를 떨며 조휘를 불렀다.


조휘도 손을 크게 휘저으며 강백을 반겼다.


“이거, 백이 아니냐! 못 본 사이에 얼굴이 더 훤해졌구나.”


“어억. 들켰습니까? 이것저것 좋은 것좀 주워먹고 다녔습니다.”


조휘가 자리에 끼자 이야기는 조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어느 사내들이 그렇듯. 그들은 먹고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흥이 돋으면 조휘가 부르는 휘파람에 춤을 추기도 했고, 술을 먹는 와중에 갑자기 운기조식을 하기도 했다.


강호인이란, 무릇. 이런 족속들이었다. 하루하루 사선 끝에서 살아가기에. 그들은 매 순간을 즐길 줄 알았다.


“마셔!”


“으하하하!”


술자리는 밤이 깊어지는 것과 같이 무르익었다.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아무런 직책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하급무사에 자처한 조휘에게 이런저런 질문이 쏟아졌다.


“형님은 왜 하급무사로 지원하셨습니까? 안 그래도 데리고 간다는 곳이 많을 것 같은데요.”


“싹다 무시했다.”


“그니까, 왜요?”


“그 전에. 한 잔 하지.”


단숨에 술을 들이킨 그가 말했다.


“하급무사들은. 무림맹을 지탱하는 기둥들이다. 위에서 지탱해주시는 봉공분들과는 다른 의미로 대단한 이들이지. 그들이 없으면 무림맹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어차피 전 맹주님과 비무를 하기 전까지는 난 아무일도 안 하려고 했다.”


“······.”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버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하급 무사라는 직책으로 살아가지만, 그들도 그들만의 천하를 책임지는 무사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들과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지 않겠나? 싶었지.”


“······.”


“어차피 우리 무인들은 천하를 거닐며 칼춤을 추는 놈들이 아니냐. 나 죽기 전에 내 이름 두 자 기억해줄 마음 맞는 사내들을 찾기가 그리 쉬울까. 그런데. 여기 봐라.”


조휘가 손을 활짝 펼쳤다.


“이렇게 마음 맞는 여섯이서 모여 입맹 동기가 되고.”


조휘가 이번에는 팔을 더 크게 벌렸다.


“천하 각지에서 여러 멋진 사내들이 무림맹이라는 한곳으로 모이지 않았더냐.”


“······.”


“천하를 거닐며 칼춤을 추는 사내들이다. 지금은 무림맹에 있지만, 언제고 천하를 향해 질주할 멋진 사내들······. 그들이 조휘라는 놈을 기억해준다면.”


조휘가 일행을 둘러봤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고 천하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


조휘가 작게 웃었다.


“모두가 각자의 천하를 살아간다. 그들의 천하에 내 이름 두자 새길 수 있는 것만으로. 내겐 무척 값진 두 달이었다.”


“······.”


“자. 마시자. 그리고 내일 있을 비무를 기대해라.”


“비무!”


“오랜만에 신나게 칼춤이나 한판 춰야겠다.”





四.




진산월과 조휘의 비무를 위해 지어진 대 비무장의 위용은 엄청났다. 이곳에 전각을 지어도 열 채는 더 들어갈 것 같았다.


기운해, 당비, 남궁린 모두 무림에서 내노라하는 출신의 사람들이지만, 그들도 내심 당황하는 기세가 보였다.


잔뼈가 굵은 추성태는 별 티를 안내고 있지만 그 압도적인 규모에 작게 흥분한 것 같았고, 애초에 한중에서 살아온 강백은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우리 형님 잘 할 수 있겠죠.”


“원래 수석입맹자는 맹주님이 따로 가르침을 내려주셨다고 들었는데, 이번부터 저렇게 공개 비무 형식으로 바꾼다고 하더구나.”


“공개 처형 아닙니까?”


“에이. 검성과의 비무인데 진다고 누가 뭐라할까.”


빼곡이 메운 사람들의 머리는 붓으로 점을 찍어둔 것 같았다. 강백은 바라만 보아도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이리 멀리서도 위축될 지경인데, 실제 현장에서 뛰는 형님은 어떤 느낌이란 말인가!


“안 떨어요. 저 사람.”


눈을 가늘게 좁힌 당운비가 말했다.


“저 사람. 하나도 긴장 안 했어.”


당운비의 말을 추성태가 받았다.


“참······ 난 사람은 난 사람이야.”







한편. 비무대 위.


진산월과 조휘는 서로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서 있었다. 비무에 임하기 전에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던 것.


“이런 날이 오는구먼. 이걸 끝으로 검성은 무림맹에서 은퇴일세.”


“무림맹에서라······.”


의미심장한 진산월의 말에 조휘가 작게 웃었다.


“아무래도, 우리는 밖에서 더 자주 보겠습니다. 그려.”


“껄걸. 아직 금분세수를 할 생각은 없네. 이래 보여도 심장이 뛰는 청춘이니 말이야.”


진산월의 늙수그레한 눈가의 주름이 깊게 파였다. 저 미소를 보고 누가 진산월을 강호에서 이름 높은 검성이라고 생각할까.


“청춘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조휘야. 여기. 이 내 심장이 뛰는 순간이 바로 청춘이야.”


“······.”


“내 비록 몸의 나이는 먹었지만, 마음의 나이는 먹지 않았어.”


조휘가 빙그레 웃었다.


“여기가 노선배와 저의 청춘입니까?”


“청춘이지.”


진산월이 검을 뽑았다.


“자. 신나게 칼춤이나 춰보자꾸나.”


조휘도 마주 검을 뽑아 진산월에게 겨눴다.


“선배의 지금을 보여주십시오.”


“너의 젊음을 보여다오.”


갑자기 시작한 칼부림에 좌중이 정적에 잠겼다. 그리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다.


조휘가 순식간에 두 번 휘두르면 진산월은 그보다 더 빠르게 다섯 번 휘둘렀다. 조휘는 진산월의 검을 피해내고 빈틈을 노려 찔러 들어갔다. 진산월이 검을 부드럽게 휘두르자 조휘의 검이 순식간에 그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조휘는 진산월에게서 비롯된 흡인력을 버티기 위해 거세게 진각을 밟았다. 그 반탄력으로 몸을 뒤로 물린 조휘가 허공에서 검을 휘둘렀다.


쒜에에엑!


조희의 검에서 피어난 백색의 검기가 다섯 줄기로 나뉘어서 진산월을 향해 날아갔다.


‘매개이도(梅開利導)?’


다섯 줄기의 검격이 하나의 꽃을 이뤘다. 매화는 아니지만 그것을 닮은 백색의 꽃이 날카롭게 검격을 이끌었다.


한 줄기도 거석을 부술 위력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려 다섯 개다. 심지어 한 대 모이니 따로 모여있을 때보다 수십 배는 더 강한 위용을 떨쳤다.


진산월은 자신을 덮쳐오는 꽃잎을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결국 돌고 돈다는 것이겠지.’


진산월이 검을 떨쳤다.


‘이놈아. 내가 푸른 봄을 논해서 꽃을 보여주는 것이더냐.’


띵─.


진산월의 주변이 투명하게 변했다. 마치 호수를 보는 것 같았다. 그 호수 위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더니 파랑이 번져나갔다.


퍼지는 윤슬이 내리쬐는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진산월의 검에 투명한 아지랑이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것도 한 번 받아보거라.”


조휘는 순간 밤이 도래한 줄 알았다. 진산월의 위로 거대한 보름달이 떠오르더니, 이내 그가 검으로 달을 갈라버렸다.


맹휘야월검(盟輝夜月劍), 추풍만리(秋風萬里).


검성의 독문무공, 맹휘야월검. 그 중에서도 고절한 방어력이 장기인 추풍만리의 초식이 펼쳐졌다.


달을 갈라 달빛을 머금은 검격이 거대한 벽이 되었다. 조휘가 피워낸 꽃잎은 창백한 달빛 앞에서 으스러졌다.


조휘는 그대로 성광일보를 밟아 진산월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조휘의 검에서 수천 마리의 벌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우우우우웅─!!


조휘의 검에서 터져나온 검명. 아니 음공이었다. 진산월은 조휘가 거리를 좁혀오자마자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끼고 대처를 해둔 참이었다. 음공의 충격파가 터짐과 동시에 충격을 해소, 그 흐름에 몸을 맡겨 신형을 뒤로 물렸다.


조휘는 진산월의 대처를 보며 눈을 빛냈다.


‘노렸다?’


순간 진산월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좌수로 들고 있던 얇은 세검은 어느새 조휘의 우수에 들려있었다.


하늘을 향해 번쩍 치솟아 있는 그 검에 실린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극한으로 힘을 압축해서 아무런 낭비가 없다. 밖으로 새어 나오는 기운이 없어서 평범한 철검이었지만, 그렇기에 비범했다.


조휘가 씩 웃었다.


“갑니다.”


조휘의 검이 쩌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참천.”


그리고 조휘의 언령과 동시에 하늘이 갈라졌다. 구름 낀 하늘에 푸른 길이 남았다. 조휘가 휘두른 검의 궤적을 따라 하늘이 잘려나간 것이다.


그것이 전조였다. 위에서 아래로. 곧게 떨어진 조휘의 검이 땅에 닿기 무섭게 진산월은 수천 갈래로 찢어진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


‘죽는다!’


진산월은 내심 당황했다. 조휘의 경지는 그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 강호에 출두한 지 석 달이 조금 넘어가는 무인과 삼십 년이 훌쩍 넘는 무인 사이 세월의 차이다.


그러나 어찌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조휘는 그 세월을 아우르는 검을 펼쳐냈다. 그리고 그것은 내심 진산월을 감동케 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진산월의 근처가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습하고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렇다면.’


진산월이 껄껄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내 전부를 보여주마.’


진산월의 검이 기묘한 그림을 그렸다.


“심상구현(心想具現).”


초련월만정야(苕戀月晩晶夜).



능소화가 사모한 달이 지는 밝은 밤. 진산월은 그날 천하를 배웠다.


이른 여름. 진산월로 인해 꿉꿉한 여름 공기가 불어왔다.


만개한 능소화 하나가 애처롭게 고개를 떨궜다. 하늘의 달은 지고 있었다. 무척이나 밝은 밤이었지만 조휘의 눈앞은 어둡기만 했다.


질식할 정도로 농도 짙은 습기와 열기. 그것이 합쳐진 여름 공기.


진산월은 그 여름날 배웠던 천하를 조휘에게 펼쳐냈다. 조휘는 순식간에 진산월의 세월을 경험했다.


마치 물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검 한 번 휘두르기 힘든 순간이었지만, 검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조휘는 진산월을 알게 됐다.


그가 천하를 배웠던 어느 여름날부터. 칼을 부딪칠 때마다 조휘는 진산월과 함께 천하를 주유했다.


천하를 거닐며 그의 곁에서 칼춤을 췄다.


무림맹주가 되었을 때는 그의 곁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날 진산월이 조휘에게 물었다.


‘어떻더냐?’


‘선배의 천하. 내가 받아서 잘 키우겠소.’


조휘는 진산월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심월무(心越武). 초아(草阿).”


순간,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조휘의 목소리는 진산월에겐 천둥과도 같은 소리였다. 진산월의 눈이 휘둥그레짐과 동시에 조휘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가장 높은 언덕 위에 홀로 핀 풀은 별을 동경했다.’


그 별의 이름은 천하.

언덕 위에 홀로 핀 풀은 나.


‘그리고 당신.’


우리는 그렇게 천하를 동경하며 살아왔다.


‘함께 커갑시다.’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별이 있으니.

홀로 핀 능소화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

.

.

.

.


비무를 지켜보던 무인들은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들 모두가 비무를 따라갈 순 없었지만, 그저 두 노소가 나누는 검을 보고 느낄 순 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무림맹의 맹원들. 두 맹주가 나누는 검을 보며 그들도 알게 모르게 느끼는 것이 많았다.


비무를 온전히 따라갈 수 있는 실력의 무인들은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검에서 느껴지는 검의. 젊은이는 선배를 동경하지만 노인의 늙음을 위로하고. 늙은이는 젊은이의 젊음을 동경하지만 늙음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도 강호를 오랫동안 살아온 노강호들. 검성의 검에서는 공감을, 조휘의 검에서는 위안을 얻었다.


선배의 뜻을 이어가겠노라는 의지가 조휘의 검에 담기자 노강호들은 모두 고개를 조금 돌렸다.


용문은 비무를 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고, 각몽은 허허롭게 웃고 있었다.


오랜만에 맹을 찾은 북천무검은 그가 존경하던 검성이 웬 이름 모를 떨거지와 검을 나눈다는 사실에 분개했으나 비무를 보고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천검제 남궁제학은 비무대를 지켜보다 눈을 감았다.


곽영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술을 홀짝였다.


연소백은 함께 어우러지는 두 강호를 보며 주먹을 꾹 쥐었다. 그 옆의 전검대는 모두 가슴이 벅차는 것을 느낀 듯했다.


“보아라.”


연소백이 자신의 대원들에게 말했다.


“저기 우리가 꿈꾸던 천하가 있다.”


조휘와 진산월은 한참을 검을 나눴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어느 추운 겨울날, 집 떠났던 미래의 맹주가.


화려하게 돌아왔다.








2권. 화려한 귀환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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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무사가 회귀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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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타초경사 (5) +3 23.09.15 2,225 41 14쪽
44 타초경사 (4) +2 23.09.14 2,241 42 14쪽
43 타초경사 (3) +3 23.09.13 2,292 41 14쪽
42 타초경사 (2) +2 23.09.12 2,364 38 14쪽
41 타초경사 (1) +3 23.09.11 2,505 44 14쪽
» 천하를 거닐며 칼춤을 추다 (2권 完) +5 23.09.09 2,681 52 25쪽
39 비와 주먹과 사나이 (5) +2 23.09.08 2,533 46 14쪽
38 비와 주먹과 사나이 (4) +2 23.09.07 2,502 41 14쪽
37 비와 주먹과 사나이 (3) +2 23.09.06 2,590 46 16쪽
36 비와 주먹과 사나이 (2) +2 23.09.05 2,579 45 15쪽
35 비와 주먹과 사나이 (1) +2 23.09.04 2,692 45 13쪽
34 남문 (4) +6 23.09.03 2,724 48 14쪽
33 남문 (3) +3 23.09.02 2,757 48 19쪽
32 남문 (2) +6 23.09.01 2,901 41 17쪽
31 남문 (1) +5 23.08.31 3,121 46 18쪽
30 매화검 (8) +5 23.08.30 2,995 45 17쪽
29 매화검 (7) +4 23.08.29 2,890 46 13쪽
28 매화검 (6) +3 23.08.28 2,882 46 13쪽
27 매화검 (5) +3 23.08.27 3,036 48 16쪽
26 매화검 (4) +2 23.08.26 3,099 49 16쪽
25 매화검 (3) +4 23.08.25 3,033 51 13쪽
24 매화검 (2) +4 23.08.24 3,133 50 16쪽
23 매화검 (1) +5 23.08.23 3,380 49 17쪽
22 화산에 오르다 (3) +3 23.08.22 3,477 48 18쪽
21 화산에 오르다 (2) +5 23.08.21 3,460 55 12쪽
20 화산에 오르다 (1) +3 23.08.20 3,770 54 15쪽
19 회자정리 거자필반 (1권 完) +3 23.08.19 3,742 55 16쪽
18 나만 기억하는 악연 (2) +4 23.08.18 3,720 60 18쪽
17 나만 기억하는 악연 (1) +4 23.08.17 3,723 57 16쪽
16 드리우는 암운 (3) +4 23.08.16 3,785 5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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