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알파센타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컨셉

!

 

썩어 들어가던 손목이 결국 떨어져 나갔다.

 

이런…”

 

역시 너무 오래 머물렀던 것 인가. 이 몸은 이미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그나마 코가 먼저 썩어 들어간 것이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최소한 몸이 썩어 가는 냄새는 더 이상 맡을 수 없다는 게 정말 다행이었다.

 

코가 썩어갈 때는 장난 아니었지.

 

이미 바람에 날아가 버린 것인지 사라진 지 오래인 콧등을 더듬으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이 몸은 아마 사흘도 지나기 전에 질 좋은 비료가 되어 땅바닥에 흐트러질 것이 분명해 보였고 나는 그전에 새로운 몸을 찾아야 했다.

 

역시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아.”

 

이미 혀도 녹아 버렸기에 더 이상 제대로 된 발음도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나름 머리 속의 생각을 입 밖으로 뱉어 내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기괴한 바람소리 밖엔 들려오지 않았지만.

 

나는 누가 봐도 좀비로 밖에 보이지 않을 몸을 억지로 움직여 수풀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물론 그것도 나의 생각일 뿐으로 나의 한쪽 다리는 썩어서 반대쪽으로 형편없이 꺾여 있었다.

 

하아.”

 

이 한심한 몰골.

 

하지만 이 한심한 몰골이야 말로 내가 여태까지 인간다움을 지켜오고 있던 증거였다.

 

색욕이냐 식욕이냐.

 

둘 다 인간의 삼대 욕구 중 하나였지만 지금의 나에게 있어 그것은 단순한 욕구가 아니었다.

 

이야기 하자면 길지만 나는 지금 생존을 놓고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입장이었고 한참 동안 이어진 고민 끝에 내가 고른 것은 색욕이었다.

 

그래도 식인을 하는 것 보단 낫겠지.

 

그건 나의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변명이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 선택을 앞두고 있는 찰나 뿌옇기만 한 나의 시선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찾았다!”

우와! 썩는 냄새…”

어떻게 하지?”

기다려. 플레티넘들이 곧 도착할 거야.”

그나저나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버티다니 엄청 독한 녀석인데?”

그래. 그래서 우리에겐 가치가 있지.”

 

도대체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들이 내게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나는 어떠한 저항을 할 힘도 도망칠 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에취!”

왜 그래??”

잠시 코가 간지러워서.”

그 말은 녀석들이 근처에 있단 소리인가?”

아마도?”

정말 특이한 녀석이야. 너는. 다른 디텍터들은 눈으로 찾는다는데 너만 코로 찾잖아.”

훌쩍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워낙 썩은 냄새를 많이 맡아서 그런가.”

 

나는 간지러움으로 빨갛게 달아오른 코를 문질렀다.

 

그녀의 말처럼 일반적인 디텍터들에겐 동족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뭐가 잘못된 것인지 녀석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대신 내게는 녀석들의 냄새가 느껴졌다.

 

녀석들에겐 정말이지 지독한 썩은 내가 났고 그 냄새는 노회한 녀석일수록 더욱 지독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렇게 된 이유가 이 곳에 온 이후 몇 번이고 코가 썩어 들어간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좀 더 들어가 볼까?”

! 여기서 없어진 게 몇이라고 했지?”

근 육 개월간 일곱 명.”

꽤 소식인데?”

하지만 문제는 희생자가 생기는 간격이 좁혀지고 있다는 거지.”

알았어. 좀 더 들어가 보자.”

그나저나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괜찮아?”

에취! 크응! 이게 다 네가 생리 중이기 때문이잖아.”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네가 피 냄새는 싫다며!”

그래. 피 비린내는 질색이야. 살이 썩어가는 냄새하고.”

 

그녀의 이름은 레이첼, 그녀는 썩어가던 나를 처음 발견했던 이였고 나를 이 조직으로 끌어 들였던 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꽤나 미묘한 관계였다.

 

이러다 몸이 썩기 시작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쓸데없는 걱정은.”

너도 네 몸이 매일 썩어간다고 생각을 해봐.”

하긴 널 처음 발견했을 때의 몰골을 생각하면…”

그것도 몇 번째였더라? 기억도 안 나네. 에취!”

오늘은 기침을 자주 하는데?”

그러게. 몸 상태가 별로라 그런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빨갛게 달아오른 코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이 상태로는 힘들 거 같은데?

 

아무래도 코가 막힌 것인지 냄새가 제대로 맡아지지 않았다.

 

안되겠다. 일단 돌아가…”

알았어? 왜 그래?”

젠장 늦었어.”

 

통로 사이로 바람이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그제서야 왜 나의 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는지를 알았다.

 

우욱! 썩은 냄새가 진동 해.”

 

아무래도 지독한 녀석의 냄새 때문에 나의 코는 거의 마비 상태였던 것 같다. 산뜻한 바람이 불며 녀석의 냄새를 살짝 걷어내자 나는 그 지독한 냄새를 확인할 수 있었고 시체가 썩어 들어가는 듯한 냄새에 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보통 놈이 아냐. 지원을 부르자.”

오늘은 신나는 파티를 열 수 있겠는데?”

그전에 이 곳을 무사히 벗어나는 게 먼저일 거 같은데?”

뭔가 맡았어?”

짐승들이 오고 있어. 네 마리? 아니 다섯 마리.”

 

비록 녀석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대신 나의 코와 촉은 그걸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예민했고 나는 금세 바람에 섞여 날려오는 짐승들의 냄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원을 부를께. 알파! 여기는 찰리! 맥이 녀석들을 찾았다. 지원이 필요해!”

치익! 찰리! 지금 간다! 어느 쪽 통로로 들어갔지?”

중앙수로 E-3에서 200m.”

확인! 베타도 같이 가겠다.”

빨리 와!”

알았어. 잘 버티고 있어.”

 

레이첼은 이 수색팀의 팀장인 알파에게 연락을 넣었고 그들은 곧장 우리를 향해 달려올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촉에 의하면 짐승들이 우리에게 달려오는 것이 더 빨랐다.

 

일단 버텨야 해. 십자가를 박아.”

그러면 너도?”

내가 전열로 갈 테니 넌 십자가 뒤에서 엄호해.”

조심해.”

웬일이야? 네가 내 걱정을 다하고.”

네가 아니라 네 몸을 걱정 하는 거야. 그 몸에 흠집만 내봐.”

. 너무하네.”

 

웬일로 그녀가 내 걱정을 해준다 했더니 역시 그건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몸에 상처라도 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기세로 정색을 한 채 대답 했고 나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며 혀를 찼다.

 

그녀와 나는 딱 그 정도 사이였다.

 

그보다 짐승들의 노린내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욱! 지독하네. 이 자식들은 씻지도 않는 건가.”

 

나는 코 끝을 자극해 오는 그 지독한 야생의 냄새에 절로 이마를 찌푸렸다. 그리고 등에 매어져 있는 한 쌍의 가죽 홀더에서 그것들을 꺼내 들었다.

 

스륵. 스르륵.

 

하아. 넌 취향도 참 별나.”

원래 괴물과 악령에겐 체인소우와 산탄총이라고 정해져 있단 말씀.”

 

그녀는 내가 꺼내든 것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지만 내가 보기에 이 둘만큼이나 녀석들과 절친한 교류를 나누기에 유용한 도구들은 없었다.

 

철컥! 부르르릉!

 

나는 개머리판과 총열이 반쯤 잘린 숏오프 샷건을 팔과 겨드랑이에 끼운 채 체인소우의 시동을 켰다.

 

덜덜덜덜덜덜. 부릉! 부릉!

 

내가 정말 아끼고 아끼는 체인소우는 다행히 한번에 시동이 걸렸고 트리거를 당기자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좋아. 준비 끝!”

그럼 십자가를 세울게.”

알았어.”

 

레이첼은 자신의 등에 매여있던 십자가를 꺼내 들더니 허벅지에 차고 있던 나무 해머로 그것을 바닥에 박아갔다.

 

후우 신의 축복 아래 당신의 자녀가 악을 처단하고자 하오니 저에게 힘을 주소서.”

 

!!!

 

분명 바닥이 돌이었던 거 같은데.

 

투박한 강철의 십자가는 날카로운 그 끝과 함께 그녀의 힘이 더해지자 마치 두부에 젓가락이 꽂히듯 바닥을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그 십자가라는 것을 활성화 시켰다.

 

신이시여. 당신의 힘이 이 비루한 흔적에 머물게 하소서.”

 

화아악!

 

그녀의 영창과 함께 반쯤 투명한 경계가 십자가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나타났고 이제 그녀는 최소한 지원군들이 올 때까지는 안전할 것이었다.

 

물론 그 안전이란 단어 안에 나는 포함이 되지 않는다는 게 참 아쉬웠지만.

 

철퍽! 철퍽! 두두두두!

 

그리고 드디어 나의 코를 썩어 들어가게 만들고 있는 망할 강아지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실 강아지라 보기엔 너무 크고 흉측하게 생긴지라 아무래도 나 이외에 녀석들을 사랑해 줄 이는 없을 것 같았다.

 

크아아앙!”

어휴! 시끄러! 이래서 애완견은 꼭 중성화 수술을 시켜야 한다니까.”

 

우리에게 달려오는 녀석들은 모두 넷.

 

가뜩이나 어두운데 제대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검고 거친 털을 가진 제법 큰 녀석들이었다. 거기다 그 커다랗고 누렇고 날카로워 보이는 이빨들은 분명 내 취향이 아니었다.

 

엄호 잘해줘.”

걱정 마. 네 엉덩이는 안 맞출 테니까.”

 

이대로 녀석들을 기다렸다간 저 근육질 안 가득한 운동에너지 덕분에 강제 다이어트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기에 나는 달려오는 녀석들을 향해 오히려 달려들었다.

 

첫발은

 

! 티잉!!

 

나의 샷건에서 발사된 쇳조각들은 넓게 흩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녀석들을 맞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매섭게 달려오던 녀석들의 기세를 죽였고 나의 총알을 피하느라 녀석들은 둘로 흩어져 갔다.

 

좋아. 다음은

 

수로의 넓이는 대충 좌우로 3미터, 상하로 5미터 가량이었고 나는 기세가 흐트러진 녀석들 중 가장 가까이 있던 왼쪽 벽의 녀석을 노리고 바로 총을 겨누었다.

 

! 파파팡!

 

산탄이 벽을 두들기며 불꽃이 일어났지만 녀석은 급하게 몸을 비틀며 나의 총알을 피했다.

 

어디서 요가라도 배우다 왔나? 저 자세로 피하는 게 말이 돼?

 

나는 마음 속으로 기묘한 움직임을 보인 녀석을 보며 투덜거렸지만 그걸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금방 녀석의 뒤에 있던 다른 녀석이 내게 달려들어 세균과 오물이 가득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더러운 발톱을 내게 휘둘러 왔고 나는 급하게 바닥을 구르며 녀석의 손길을 피해갔다.

 

크아아아!”

 

촤악! 타탁!

 

아오! 젠장! 어제 세탁한 건데! 세탁비는 너희 주인한테 받아낼 거야!”

카아악!”

 

나의 클레임을 들은 건지 만 건지 그 녀석은 다시 내게로 그 지저분한 팔을 내밀어 왔고 나는 이번에는 그걸 피하지 않았다.

 

젠장. 크로스는 세탁비는 지원 안 해준단 말이야!”

 

부아아아아앙!

 

나는 체인소우를 똑바로 들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녀석의 발톱 사이로 그걸 밀어 넣었고 곧 붉은 색 피가 터져 나오며 녀석의 팔은 셋이 되었다.

 

크아아악!”

거 되게 시끄럽네! 이러니까 애완견은 중성화아니 그게 뭐더라?”

 

나는 이 시끄럽고 버릇없는 녀석이 다시는 짓을 수 없게 만들어 주려 했지만 다른 셋이 그걸 지켜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크악!”

어이쿠! 발톱 좀 깎고 다녀! 이러니까 너희들이 아직도 솔로인 거야!”

 

친절하게 충고까지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녀석들은 나를 노리고 그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러 왔고 나는 상체를 비틀며 어렵사리 그것들을 피해갔다.

 

그리고 슬슬 허리에 무리가 오겠다 싶은 시점에서 반가운 굉음이 터져 나왔다.

 

타앙!!

 

나를 노리던 녀석들 중 하나의 머리가 단숨에 날아가 버렸고 놀란 녀석들은 뒤로 몸을 뺐다. 그리고 녀석들과 나는 시원하게 버릇없는 강아지의 머리를 날려 버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십자가의 수평선 위에 자신의 키보다 큰 대구경 소총을 올려 놓고 녀석들을 조준 하고 있었고 그 소총의 검은 총구는 내 검지손가락이 하나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컸다.

 

나이스 타이밍!”

 

 

 

 

철컥! 탈칵!

 

닥치고 제대로 좀 싸워봐!”

이런 걸 원래 워밍업이라고 부른다고.”

입만 살아가지고.”

 

그녀의 말대로 나의 입은 부지런히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나의 몸까지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녀석들이 물러나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샷건의 빈 셀을 빼고 품에서 탄을 꺼내 재정전하고는 다시 녀석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부아아아앙!

 

나의 사랑하는 체인소우는 시원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그녀의 총탄이 다시 날아올지 몰라 머뭇거리는 강아지 녀석에게 사선으로 휘둘렀다.

 

깨앵!”

 

푸악!! 파파팍!

 

역시 이 느낌이지. 이런 게 손맛이야.

 

나의 체인소우는 거칠기 그지 없는 녀석의 검고 긴 털을 가뿐히 무시하고 녀석의 가슴을 파고 들었고 하필 심장을 건드리기라도 한 것인지 녀석의 가슴에서는 폭포수처럼 피가 솟아났다.

 

!! 아오! 젠장! 피는 제대로 지지도 않는데!”

 

순식간에 검붉은 피를 뒤집어 쓴 나는 불평을 터트리면서도 갈라진 녀석의 가슴 사이로 샷건을 밀어 넣었다.

 

우두둑!

 

손 끝으로 녀석의 뼈가 부서지는 느낌이 밀려왔고 나는 그대로 손가락에 걸린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퍼억!

 

그리고 녀석의 가슴 속에 박힌 나의 샷건은 커다란 납탄과 함께 시원한 숨구멍을 만들어 주었다.

 

어때? 시원하지? 멘솔 맛이야!”

 

안타깝게도 녀석은 시원한 멘솔 맛에 너무 감동을 먹은 탓인지 입을 크게 벌리고도 말을 잇지 못했다.

 

남은 건 둘인가?

 

나는 곧장 남은 둘의 위치를 확인했고 한 녀석이 내 시야에서 벗어나 있다는 걸 알아챘다.

 

보통 이럴 때는 항상 뒤에 있더라.

 

부아아앙!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곧장 몸을 돌리며 체인소우를 휘둘러 갔지만 아무래도 타이밍이 조금 늦었던 것 같다.

 

카앙!

 

휘두른 방향이 잘못된 것인지 나의 체인소우는 녀석의 팔에 튕겨났고 곧 녀석의 다른 팔이 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우웃!”

 

나는 급한 대로 쥐고 있던 샷건을 내밀며 그 팔을 막아갔지만 날카로운 발톱은 막을 수 있었어도 그 힘까지 버텨 낼 수는 없었다.

 

파악!

 

순식간에 나의 두 다리는 허공으로 떠올랐고 나의 몸은 그대로 밀려 통로의 벽에 부딪혀갔다.

 

!

 

으악!”

!”

 

등과 어깨 가득 통증이 느껴졌고 나를 부르는 레이첼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오지마!”

 

나는 혹시라도 그녀가 내게로 달려 올까 그녀를 제지하고는 아직도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두 다리의 힘을 빼고 그대로 주저 앉았다.

 

콰직!

 

나를 날려 버렸던 짐승은 그대로 내게 달려들어 자신의 팔을 일직선으로 뻗어 왔고 비록 그리고 멋진 장면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지만 나는 무릎을 꿇으며 녀석의 팔을 피했다.

 

과격하기 그지 없는 녀석의 힘자랑에 돌로 된 벽이 부서지며 돌가루가 내 머리 위로 튀었고 간신히 목숨만은 건진 나는 샷건을 녀석의 사타구니에 갖다 대었다.

 

!

 

같은 남자로서 이건 좀 미안하네.”

 

타앙!!

쿠아아아악!”

 

커다란 납덩이가 녀석의 사타구니를 분쇄하고 몸 안으로 파고 들었고 내장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생식기라고 해야 할지 남성의 참 소중한 부위가 파편이 되어 터져 나갔다.

 

우아아! 이건 최악이다! 우욱! 냄새!”

 

녀석에게 살짝 미안한 감정이 들었던 나는 터져 나오는 신체조각들과 코 끝을 스치는 냄새에 금세 기겁했고 이 오물들을 피로 씻어내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도 똥 오줌 보단 피가 낫겠지.

 

부아아앙!

 

다행히 나의 체인소우는 아직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들고 일어서며 그 녀석의 몸을 정확하게 이분의 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녀석의 피로 샤워를 했다.

 

! 돌아가면 속옷까지 죄다 버려야지.”

 

타앙!!

 

내가 피를 뒤집어 쓰고 얼굴을 닦아 내는 사이 처음 내 체인소우 맛을 봤던 녀석은 레이첼의 총탄에 머리마저 잃은 채 드러누워 버렸고 상황은 일단 종료 되었다.

 

! 푸흥!”

괜찮아?”

걱정 마. 네가 그렇게 아끼는 이 몸은 멀쩡하니까. 다만 냄새는 좀 날지도.”

하아. 다행이다. 어떻게 되는 줄 알았어.”

 

그녀는 나의 무사함을 기뻐한 것인지 아니면 이 몸이 무사한 것을 기뻐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안도의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나는 씁쓸하게 그 모습을 지켜 보았다.

 

!! 패앵!”

왜 그래?”

피가 코에도 들어갔어.”

그 정도는 문제 없잖아. 네가 오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문제는 냄새를 못 맡겠어.”

하아. 그건 좀 문제가 있네.”

그러니까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는 거기서 나오지 마.”

알았어.”

 

코가 멀쩡하지 않은 이상 우리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곳은 분명 녀석들의 소굴이었고 녀석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고 그걸 아는 이상 그녀를 벽 안에서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벽에 기대어 휴식을 취했고 그녀도 십자가에 기댄 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침묵만이 흘렀고 그 사이 나는 샷건과 체인소우를 손봤다.

 

그리고 다행히 그것들은 다소 손상이 있었지만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철퍽 철퍽

 

우리가 휴식을 취하는 사이 레이첼이 불렀던 지원은 뒤늦게나마 도착했고 그들의 발소리를 들으며 나는 몸을 일으켰다.

 

! 대장!”

 

그들은 여섯 명의 일행이었고 레이첼은 반갑게 금발의 긴 머리를 가진 장신의 남자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나는 그녀를 말렸다.

 

멈춰!”

? 뭐지?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디텍터?”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알파팀의 대장 미카엘이었다.

 

정말 재수 없을 만큼 잘 생겼지만 그는 이 조직에서는 꽤 실력이 있는 자였고 플레티넘인 그가 녀석들에게 몸을 빼앗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녀석들에 대해서 잘 아는 나로서는 그가 진짜 미카엘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미안하지만 코가 막혀서 말이지.”

정말 번거롭기 그지 없는 녀석이군.”

그게 댁들이 워낙 늦으니까 굳이 이 몸이 싸워야 했잖아.”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말없이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늑대괴물들을 바라보았고 미카엘은 녀석들의 흔적을 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서?”

너희들이 진짜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서 말이지.”

무뢰한 녀석!”

기다려. 그의 의견은 타당하다.”

 

미카엘의 옆에 있던 녀석이 나를 윽박질러 왔지만 미카엘은 그를 말렸다. 그는 분명 재수가 없긴 해도 충분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녀석이었다.

 

그래. 어떻게 하면 되지?”

간단하잖아. 십자가에 손을 가져가면 되지.”

그렇군. 간단하군.”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손에 끼고 있던 하얀 장갑을 벗고는 레이첼에게 다가가 그녀가 기대고 있던 십자가에 손을 대었다.

 

이제 됐나?”

다른 셋도.”

 

한 팀은 원래 세 명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에 둘은 인간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와 같은 디텍터였다. 그리고 디텍터는 저 십자가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미카엘이 십자가에 손을 대는 순간 나는 최소한 그의 팀은 그들이 아님을 알 수가 있었다.

 

너는 안하나? 리오트?”

! 귀찮게.”

 

그리고 베타팀의 대장 리오트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십자가에 손을 대는 것을 시작으로 다른 둘 마저 인간임을 확인한 나는 그제서야 손에 들고 있던 샷건과 체인소우를 등에 매고 있던 가죽 홀더 안으로 집어 넣었다.

 

무사해서 다행이군. 레이첼.”

맥이 꽤 고생했어요.”

맥이라 나는 여전히 녀석을 맥이라 부르는 건 마음에 안 드는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무슨 사과이름도 아니고.”

 

이 몸의 원래 주인의 이름은 맥킨토시였고 그들은 그 원주인의 이름대로 나를 불렀다. 사실 내게도 원래의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을 발음하기가 어려운 것인지 다들 그저 맥이라고만 부르니 이미 내 이름을 그들에게 각인 시킨다는 건 포기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 볼까? 이쪽이 확실한가? 디텍터?”

지독한 냄새가 났어.”

그렇군. 알았어.”

 

미카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둘의 디텍터에게 손짓을 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무장을 손에 쥔 채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난 이대로 개점휴업인가?”

그건 안돼. 목표를 찾은 이상 팀은 같이 움직인다.”

. 할 만큼 했는데. 이 핏덩어리 좀 봐. 끈적거리는 게 죽을 맛이라고.”

수고한 건 알겠지만 그래도 같이 있어줘야겠어. 레이첼도 갈 테니까.”

아아!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제는 할 일도 없을 텐데 굳이 자신들을 따라오라는 미카엘의 명령이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레이첼이 그를 따라가는 이상 나도 그들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 이미 코가 막혀 버린 지라 앞에서 걸어가는 저들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것도 나의 결정을 가볍게 해주었다.

 

나에겐 디텍터나 녀석들이나 썩은 내가 나는 건 똑같았고 평소 같으면 코마개라도 하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필요가 없으니까.

 

그럼 앞장서라고.”

 

디텍터를 앞에 세운 그들은 천천히 통로를 따라가기 시작했고 나는 레이첼과 함께 그들의 뒤를 따랐다.

 

비록 중간중간 머리 위에 있는 빗물 통로로 빛이 들어오긴 했지만 통로는 여전히 어둡고 음침하기 그지 없었고 이곳에는 정말 지독한 냄새가 나는 녀석이 있었다.

 

왜 꼭 나쁜 놈들은 이런 곳에 살지? 좀 밝고 화창한 곳에서 살면 안되나? 햇빛이 우울증엔 정말 좋다던데.”

하아 시끄러. 좀 닥쳐!”

 

레이첼은 조용한 무리 가운데서 홀로 떠들고 있는 내게 인상을 쓰며 험한 말을 던졌지만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도 나니까 이렇게 농담이라도 하는 거지.

 

지옥의 구덩이로 뛰어 드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런 무거운 분위기는 뭐냐고.


댓글 0

  • 댓글이 없습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글목록
번호 제목 작성일
12 내 일상 | 신 프롤 18-06-02
11 내 일상 | 프롤 18-04-18
» 내 일상 | 컨셉 18-02-05
9 내 일상 | 프롤 18-01-18
8 내 일상 | 딸바보 수정 17-12-11
7 내 일상 | 딸바보 17-12-11
6 내 일상 | 헌터 그녀 17-12-01
5 내 일상 | 위키 수정 17-11-28
4 내 일상 | 위키 2 17-11-08
3 내 일상 | 위키 본편 17-11-07
2 내 일상 | 위키 17-11-06
1 내 일상 | 트리거 해피 17-09-12

비밀번호 입력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