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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센타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딸바보

보름달이 뜬 날은 사냥하기에 좋은 날이다.

 

까득! 우두둑. 우둑.

 

알약이 부서지며 푸석한 분말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환한 보름달은 수직동굴의 한 면을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나는 굵은 줄에 몸을 맡긴 채 고개를 들어 그 하늘을 가득 채운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약 기운이 천천히 몸 안에 퍼져 나가는지 살짝 정신이 몽롱해져 가는 것이 느껴졌고 환한 보름달은 점점 더 뿌옇고 크게 바뀌어 갔다.

 

그리고 내가 한참 약과 달에 취해 있던 그 때 헤드셋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드러그! 너 또 약 먹은 거야?”

후우. 아냐.”

거짓말 하지마! 그보다 아래는 어때?”

여기까진 이상 없어. 내가 살아 있는 걸 보면 알잖아.”

좋아. 내려간다.”

 

그리고 무선이 끊어짐과 동시에 수직동굴의 위에서는 수 개의 밧줄이 아래를 향해 던져졌다.

 

드러그. 먼저 내려가.”

라저.”

 

나는 동굴의 입구에서 레벨 준비를 하는 다른 레인저들을 힐끗 훑어 보고는 고정시켜 둔 줄을 풀고 곧장 아래의 무저갱을 향해 떨어져 갔다.

 

어둠 속에 보이는 것은 나의 헬멧 위에 부착된 라이트의 불빛 뿐이었고, 나는 곧 나이트 비전을 한쪽 눈으로 가져갔다.

 

터어어어어어엉!

 

바닥에 발을 내딛자 고요한 그 어둠 속 가득 공명이 퍼져 나갔다.

 

나는 곧장 자동소총을 들고 라이트와 함께 총구를 사방으로 돌렸지만 여전히 그곳에는 침묵 이외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는 드러그, 아래는 이상 없다.”

라저.”

 

그리고 무전이 끝나고 나자 머리 위에서 클립이 밧줄을 긁는 소리가 동굴 안 가득 울렸다.

 

터어어엉! 터어엉!

 

순식간에 레벨을 타고 내려온 그들은 곧장 사주 경계를 취했고, 얼마 되지도 않는 사이 스물 여덟이나 되는 인원이 동굴 안을 채웠다.

 

.

 

잘했어. 드러그. 그보다 너 빨리 약 안 끊으면 서른도 되기 전에 시체가 될 거야.”

내버려 둬. 어차피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죽는 건 똑같아.”

. 죽는다는 소릴 그렇게 쉽게 내뱉는 거 아냐.”

알았어.”

 

이 부대의 지휘관인 비어드는 나의 어깨를 툭 치며 나의 수고를 치하했다 거기다 더불어 은근히 나를 걱정해 주는 척 했지만 나는 그것이 딱히 고맙지는 않았다.

 

차라리 그렇게 걱정할 거면 날 미끼로 쓰지나 말든가.’

 

항상 그렇지만 작전에 있어서 처음 들어가는 이는 미끼에 불과했다. 운 좋게 입구에 녀석들이 없으면 사는 거고 아니면 보통 금세 고기덩어리가 되고는 했고 우연이라도 살아난다면 그나마 행운이었다.

 

그래서 미끼는 모두가 번갈아 가며 맡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비어드는 내가 운이 좋다는 이유로 벌써 세 번이나 연속으로 날 미끼로 썼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은 것인지 지난 세 번의 진입에서 공격을 당한 적은 없었다.

 

탐지기는 어때?”

! 아직이야.”

 

비어드는 곧장 동굴 내 구조를 확인 할 수 있는 탐지기를 들고 있던 오울에게 다가가 동굴의 구조를 확인했지만 아무래도 동굴이 꽤 넓은 것인지 오울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탐지기는 일종의 음파를 퍼트려 내부 구조를 확인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렇게 큰 동굴에서는 확인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동굴의 구조를 확인하는 시간이 지나자, 오울은 손짓으로 어둠이 가득한 동굴 내부를 가리켰다.

 

그리고 다른 팀원들을 선두로 우리는 그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동굴 안에는 차분한 발걸음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올 뿐이었지만, 그 차분함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

키아아아아!”

 

타다다다다! 타다당!! 타당!

 

척후의 짧은 외침과 함께 라이트가 어지럽게 흐트러지며 요란한 총소리가 동굴 속 가득 울렸다.

 

젠장! 하필 이럴 때.’

 

한참 피크에 오른 약 기운에 취해 있던 나에게 보이는 것은 흐릿한 불빛과 고막을 두들겨 오는 요란한 소리뿐이었고, 어지러워진 손으로 불빛이 보이는 곳을 겨누기는 했지만 나는 트리거를 당기지 않았다.

 

그나마 나의 사고는 아직은 조금이나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고, 지금 발포를 했다가는 적을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아군을 공격하게 될 것이란 걸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교전은 금방 끝났다.

 

! 썩을. 구울이 있어.”

쉽지 않겠는데?”

언젠 쉬운 적이 있었나?”

 

아드레날린이 한껏 분비된 덕분인지 나는 생각보다 빨리 각성 상태를 벗어났고, 살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비린 피 냄새와 섞은 살 냄새가 가득했다.

 

그리고 비어드와 오울은 눈 앞에 가득한 구울의 시체들을 보고 한껏 인상을 썼다.

 

탄종 바꿔! 수은탄이다.”

라저!”

 

구울이 있다는 것은 이 동굴 안에 흡혈종이 있다는 말과 같았고, 어쩌면 그건 마녀일지도 몰랐다.그리고 그것이 정말 마녀라면 지금 우리의 네 개 분대로 녀석을 상대하기는 힘들었다.

 

비어드, 돌아가야 하지 않아?”

넌 빨리 약이나 깨.”

마녀라도 있으면 우린 때죽음이야.”

닥쳐! 드러그! 우린 마녀 사냥꾼이야! 이 겁쟁이 자식아!”

 

나는 만약에 있을지 모를 상황에 대해서 비어드에게 경고했지만 그는 수염 가득한 얼굴을 찡그리며 나를 윽박질렀다.

 

이 부대에서 가장 오래 버틴 것은 비어드, 오울 그리고 나였고 그나마 우리 셋은 마녀를 잡아 본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가 고작 우리 셋의 생존이었고 나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다른 부대원들은 마녀가 왜 그렇게 무서운 존재인지를 알지 못했다.

 

알아서 해. 하지만 들어가기 전에 비콘을 남겨.”

! 겁쟁이 새끼.”

 

비어드는 끝까지 날 겁쟁이로 몰아 새웠지만 그 상황을 지켜 보고 있던 오울은 조심스럽게 동굴의 벽면에 비콘을 설치했다.

 

그는 대장의 권위에 도전하지는 않았지만 그도 마녀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잠시간의 논쟁을 끝낸 우리는 다시 어두운 동굴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라이트의 빛이 조금이나마 어둠 속을 밝혀 주기는 했지만 그 원초적 어둠까지 걷어내 주지는 못했고,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다잡기 위해 다시 포켓에서 알약을 하나 꺼내 들었다.

 

까득!

 

텁텁한 가루가 입안에 퍼져 나가며 나는 잠시나마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그렇게 작은 불빛만 가득한 동굴 속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죽음은 어떻게든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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